몇 세기를 흘려보냈다. 그 중 절반이 안되는 시간은 ‘살았다’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 ‘살았다.’ 혹은 ‘살아가고 있다’라는 평범한 감정이 두려움으로부터 말미암아 태어나 영원을 조롱하고, 배신하고, 다시 죽게 만들었다. 그렇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나는 본능에 의거하여 시간을 소비했다. ‘소비’ 소멸되는 삶의 느낌을 겨우 붙잡기 위해 바지런히 소비했다. 그것은 집안을 빽빽하게 장식해놓을만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쥐고 있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었다. 좋은 추억일 수록 금새 퇴색하여 바람에 날리는 먼지만큼이나 가벼워지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비’하며 ‘수집’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것들은 ‘사연’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라도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깨지고, 갈라지고, 찬란했던 빛은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그렇게라도, 그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절대 ‘추억’이 될 수 없었다. 아마 역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오래 살았던 ‘월록’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겠지.

그래, 나는 추억과 같은 기억이 아닌 역사로 기록될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함께 곱씹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너를 어떤 방법으로 소비하게 될까.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죽어있어야 할까. 너를 따라갈수도 없고, 너를 이끌어 줄 수 없는 이 영겁을 나는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어깨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곧게 뻗어있는 어깨선을 따라 입을 맞추자 눈꺼풀이 열렸다. 그는 말가니 나를 바라보고, 멋쩍게 웃었다.

“음.... 좋은 아침이야, 매그너스.”

낮게 잠긴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네는 너를 위해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웃어야겠다.

“좋은 아침, 알렉산더.”

지독한 시간을 보내게 해줄 나의 달콤한 연인을 위해.

취향타는 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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