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베리 밸리는 머글과 마법사가 섞여서 사는 마을이었지만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중심의 번화가는 머글식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는 마법 세계에서도 화려하게 보내는 날이었지만 머글 세계 역시 사방을 반짝반짝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한껏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저건 왜 움직이지 않지?”

  움직이지 않고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보고 넷 중 머글 경험이 전혀 없는 시리우스가 제일 신기해했다. 낯선 얼굴 넷이 돌아다니는 것도 눈에 띄는 한적한 작은 마을에서 하물며 시리우스가 그런 식으로 신기해하며 기웃거리니 더욱 눈에 띄었다. 한껏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포터 씨네 외아들을 기억하고 있던 마을 어른들이 간간히 제임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니 많이 컸다느니 하고 말을 거는 주민에게 넉살좋게 대답하는 제임스에게 시리우스가 물었다.

  “아는 사람?”
  “아니.”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오는 대답에 친구들은 실소했다. 제임스는 뻔뻔하게 웃으며 방금 받아온 캔디케인과 사탕 몇 가지를 리무스에게 내밀었다. 사탕보다는 초콜릿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사탕도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기꺼이 받아든 리무스는 레몬색 사탕을 골랐다. 포장지를 벗겨도 얌전히 있는 머글 사탕을 재미있다는 듯이 입에 넣은 리무스가 잠시 후 놀란 소리를 냈다.

  “어?”
  “왜?”

  리무스의 반응에 다들 놀라서 멈춰 서서는 리무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이어지는 리무스의 말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레몬맛이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는 듯 시시하다는 표정을 하는 친구들에게 답답해하며 리무스는 자기가 느낀 놀라움을 설명했다.

  “레몬색을 먹었는데 레몬맛이 난다니까? 그럼 메론색은 메론맛인가?”
  “그것 참…… 신기하네.”

  초콜릿이든 사탕이든 단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시리우스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제임스와 피터는 리무스의 권유에 못 이겨 결국 하나씩 입에 물고 색깔대로의 맛이 난다는 것을 증언해 주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좋아하는 리무스 몰래 맛만 본 사탕을 뱉다가 걸린 제임스는 리무스가 뭐라 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근처에 있던 머글 과자가게로 끌고 들어갔다. 펄쩍펄쩍 뛰어오르지도 않고 꿈틀거리지도 않는 초콜릿이 신기한 듯 리무스는 이것저것 한참 들여다보더니 바구니에 조금씩 담기 시작했다. 리무스가 카운터에 바구니를 내밀자 여주인은 싱글벙글하며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리우스를 가리켰다.

  “너희들 친구니?”
  “네.”

  이미 마법세계에서 익숙하게 겪어본 반응이었기 때문에 리무스는 냉큼 대답했고, 서비스로 사탕 한 움큼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지폐 여러 장 겹친 것을 통째로 내미는 제임스를 보고 여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리무스가 고른 만큼의 돈만 빼내고는 나머지를 제임스에게 돌려주었다. 딸랑딸랑 가게 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시리우스에게 리무스는 웃으며 꾸러미를 들어보였다.

  “너랑 다니면 서비스가 좋아서 좋다니까.”

  흔한 일이라 시리우스는 ‘흠,’ 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잠시 후, 보름이 가까운데도 저렇게 밝아 보이는 리무스는 처음이라며 제임스가 소곤거리는 말에는 피식거리고 웃었다.



  사전에 미리 말했던 대로 제임스의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후 먼저 고드릭 골짜기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친구들이 다 같이 보내는 방학이니 꼭 자기들끼리만 지내보고 싶다는 말에 제임스의 부모님은 의외로 금방 허락해 주었는데, 다만 너희들이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을지 기대한다며 한껏 웃음을 참는 유페미아에 비해 플리몬트는 미처 감추지 못한 섭섭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와서는,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녀석이.”

  돌아갈 준비를 하던 플리몬트가 기어이 서운한 소리를 한마디 했고 제임스는 씩 웃었다. 가족이 오붓하게 보낼 연휴에 괜히 끼어든 걸까 하는 생각이 리무스의 표정에 드러났는지 유페미아가 상냥하게 말했다.

  “원래 저렇게 애 같은 소리를 하는 양반이니 신경 쓰지 말렴. 저 녀석이 사고치거나 하면 바로 플루가루 쓰고.”
  “네.”

  리무스 쪽의 훈훈한 분위기와는 달리 플리몬트는 어느새 제임스와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 정도는 흔한 일이라는 듯 유페미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그의 집에서는 상상도 못해보았던 신기한 광경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제임스의 부모님을 보낸 후 이곳에서 친구들끼리만 보름을 지내고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쯤에는 같이 고드릭 골짜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만약 상황을 봐서 블랙가의 감시가 심하면 계획이야 변동하면 되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변하는 것은 일단 동굴에서 하기로 하고 넷은 오후 느지막이 동굴로 향했다. 메마르고 뾰족한 나뭇가지에 걸린 노을이 붉었다. 만약에 대비해서 입구를 반쯤 막아두고 제임스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약을 몸 여기저기에 바르기 시작했다. 셋이서 작은 유리병에 담긴 마법약을 손에 덜어 치덕치덕 몸에 바르는 모습이 웃겼는지 근처 상자에 걸터앉아서 지켜보던 리무스가 소리 내서 웃었다.

  “리무스, 몰랐어? 요즘 늑대인간 향수가 유행하는 거.”

  그러면서 제임스는 정말 향수를 뿌리는 것처럼 손목과 귀 뒤, 옷깃에 가볍게 묻히는 시늉을 했다. 나무랄 데 없는 동작이었지만 바르는 것이 늑대인간의 체취를 모은 마법약이어서야 글러먹었다. 리무스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유행은 내 쪽에서 거절이야.”
  “오 아니야 리무스, 이 정도는 해줘야 멋진 남자라니까?”

  그러더니 제임스는 짓궂게 눈을 빛내며 병을 들고 리무스에게 다가갔다. 위기감을 느낀 리무스는 극구 사양하며 몸을 피했지만 좁은 동굴 안에서 제임스를 떨쳐내기는 무리였다. 결국 리무스에게도 마법약을 치덕치덕 발라놓고 나서야 의기양양하게 돌아보던 제임스는 어느새 쫓아온 시리우스에게 뭐하는 짓이냐며 보기 좋게 발로 걷어차였다.

  “다 쓰면 또 만들어야 하잖아.”
  “만들면 되지!”

  제임스가 항의하자 시리우스는 ‘그럼 네가 만들어.’ 하고 시크하게 대답했다. 어렵지 않은 마법약이라고 해도 제작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고 재미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임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반도 안남은 약병의 뚜껑을 닫았다. 투덜거리는 제임스 옆에서 리무스는 피식 웃었다. 저렇게 싫어하면서도 자신에게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전에야 자기한테 비밀로 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직접 만들어야 했다지만, 평소 숙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달라고 하더니 이 일에는 아예 그럴 생각도 안하는 것 같았다.



  동굴 안에 리무스가 마법으로 켜둔 등불이 따뜻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반질반질하게 닳은 흔적이 남아있는 나무토막을 만지작거리는 리무스 옆에 미리 동물로 변한 셋이 옹기종기 모였다. 손 가는대로 하나씩 살살 쓰다듬다가 리무스가 문득 입을 열었다.

  “패드풋.”

  패드풋이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들었다. 패드풋과 눈을 마주치자 리무스는 만지작거리던 나무토막을 보여주더니 어깨를 크게 휘둘러 던지는 시늉을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너 ‘물어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

  패드풋은 프롱스가 사람 모습이었다면 틀림없이 바닥을 뒹굴며 웃고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전에 제임스도 똑같은 소리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단 실제로 던진 다음에 자신에게 물어오라던 제임스와, 던지기 전에 먼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리무스 중에 누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프롱스가 잘했다는 듯이 리무스에게 머리를 콩콩 부딪쳤다. 리무스도 피식 웃으면서 사슴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 때 리무스는 몸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는 것을 느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몸을 굽히고 부들부들 경련하면서도 리무스는 친구들을 밀쳐냈다. 재차 보아도 여전히 괴로워 보이는 변신을 끝내고 완전히 늑대의 모습을 한 리무스가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낯선 공간에 있음을 알았는지 늑대는 위압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인간 냄새를 맡은 듯 난폭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동물들에게는 지난 보름보다도 덜 경계하는 눈치였다.



  프롱스가 대담하게 좀 더 가까이 가보아도 늑대는 특별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친구들은 만족스러운 눈빛을 주고받고는 늑대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늑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보란 듯이 천천히 동굴 입구로 움직였다. 늑대도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프롱스는 귀를 쫑긋거리며 동굴 안쪽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늑대인간이 달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숲에 발을 디딘 늑대인간이 어느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놀라서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좁은 오두막을 벗어난 게 기뻤는지 무니는 지칠 줄 모르고 이쪽저쪽으로 달렸다.

  한참 후에야 어느 공터에서 멈춘 늑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길게 울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전력질주에 가깝게 뛰어다녔더니 힘들긴 해도 기분이 좋아서 프롱스와 패드풋도 그 근처에 털썩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나 그 때 무니의 울음소리에 화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먼 곳에서 비슷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프롱스는 화들짝 놀라 도로 벌떡 일어나, 긴장한 채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스산한 바람소리가 나뭇가지를 울렸다. 새삼스럽게 숲의 공기가 불안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금지된 숲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굉장히 불안한 공기였다.

  프롱스는 고개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낮에 맡던 숲 특유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아니었다. 패드풋 역시 같은 것을 느낀 듯 불안하게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다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잘못 들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불안함이 덜컥 몰려왔다. 프롱스는 이 숲에 늑대가 산다고 들었던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사람 거주하는 마을이 가까운 숲에 야생 늑대가 살아있을 리가 없거니와 설령 그랬다면 숲에 들어가서 놀도록 그냥 두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 때 무니가 다시 길게 울었다. 평소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에서 자주 들었던 울음소리와는 다른, 길고 높은 소리였다. 그것이 모종의 신호가 되었는지 멀리에서도 대답하듯 다시 길게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서 앞 다투어 내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불현듯 프롱스는 이 소리가 늑대인간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겹게 읽었던 책에는 분명 그런 구절이 있었다.

  ‘늑대인간은 동족의 울음소리에 반응한다.’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요 몇 달간 예언자일보는 소란스럽게 펜릴 그레이백이 이끄는 늑대인간 무리가 일으키는 습격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비록 제임스는 신문을 꼼꼼히 챙겨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연회장의 테이블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신문 1면의 헤드라인 정도는 지나가면서 언뜻언뜻 눈에 보이곤 했다. 그러나 엘더베리 밸리에 있다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제임스는 혼란스러웠다.

  만약 제임스가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더라면 늑대인간이 습격한 마을 사이에 아무런 규칙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늑대인간들은 결국 마법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동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았다. 마법부도 보름마다 나름 대책을 세우려 노력했지만, 더 이상 공격 대상을 마법사들이 사는 마을로 한정짓지 않게 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볼드모트는 그들을 직접 죽음을 먹는 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수하로 부리며 마음껏 날뛸 것을 명령했다. 충성심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려는 듯 늑대인간들은 일반적인 죽음을 먹는 자보다 훨씬 잔인하고 파괴적인 사건을 저질렀다. 그리고 리무스는 그러한 알량한 자기증명의 희생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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