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은 금요일 아닌가요?'

'사흘이 4일이 아니라 3일이라고요?'


언젠가부터 SNS 등지에서는

요즘 젊은 층의 어휘력이 뜨거운 화두로 다뤄지고 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그런 단어를 쓴 상대방을 오히려 비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왜 이름이 아니라 성함이 뭐냐고 물어봐요? 고객 상담원이면 쉬운 말을 써야죠!'

'어차피 사실상 사장된 단어인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 사는 데 아무 문제 없는데 쓸데없이 난리야'


물론 처음 들었을 땐 나도 코웃음이 났다.

별로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본인이 모르니 사장된 단어라고 주장하고,

심지어 타인에게 그 단어를 쓰지 말라고 요구한다니?

몰랐으면 이번 기회에 배우고 알아두면 좋은 거지,

왜 모르는 게 정상이라고 우기고 화를 낼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현상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솔직히 단어 좀 몰라도 안 죽는다. 잘만 살 수 있다.

내 조부모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성실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사셨다고 한다.

지식은 사람의 수준을 재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기에

무식한 사람도 얼마든지 이른바 '갓생'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말이 나오는 류의 사람들은

성실하거나 인성이 좋지도 않으면서 지식도 없는 것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모르는 단어를 썼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겠다.

나라도 누군가가 조선 시대에나 쓰던 사어나

전문가나 알 법한 용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려 하면

당황하고, 왜 굳이 그런 말을 쓰냐고 물을지 모른다.

진심으로 '금일' '성함' 같은 말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이 보인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무식한 것일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조금만 확인해보려 노력했다면 금방 화 낼 일이 아님을 알았을 텐데,

그렇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이 어려운 단어를 썼다고 단정지은 것이 문제라고 하겠다.


남탓을 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외면하게 돼 개선의 기회를 놓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지식 수준이 낮은데 이를 높이려 노력하는 사람도 없으니

혁신이나 발전이 있을 수 없고, 잘해야 현상 유지, 높은 확률로 퇴보의 길을 걸을 것이다.


즉 '반지성주의'는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선빵은 누가 쳤나

반지성주의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금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일부는 보다 헤아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식에 대한 사회적 멸시가

방어 기제를 발동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문화권이 그렇듯,

한국 사회는 지(知)를 숭상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많음에도

우리나라는 웬만하면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화이트칼라 직종으로 들어가라고 독려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지식 퀴즈를 내고

못 맞추는 연예인을 놀리는 개그가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현명함이 있다.

상인에게는 장사 감각이나 손님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스포츠 선수의 운동 노하우 등이

인문학, 과학, 수학 지식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후자의 지식을 가져야만 유식하다고 말하고

이를 갖추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보기 일쑤다.


하지만 이는 무식한 사람들이

공부해야겠다고 동기를 부여하는 대신

유식을 강요하는 사회 풍토에 대한 반감만 심어주었고,

이것이 반지성주의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무식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걱정하거나

괜히 방어적으로 나올 필요 없다고,

그렇게 느끼게 해줘야 한다.


해결책은?


어휘력은 비교적 해결하기 쉬운 문제다.

바로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철저히 하면 된다.

한국어는 단어의 70%가 한자로 이뤄져 있으니

한자를 알면 모르는 단어를 봐도 뜻을 유추하고 기억하기 쉽다.

단어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 신문이나 책을 읽기 쉬워지고,

자연스럽게 다른 지식을 쌓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냥 한자 공부 안 시키고,

어려운 한자어들을 사장시키면 안 되냐고?

단기적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 그때는 또 다른 단어들이 표적이 될 것이다.

'2일 뒤라고 하지 왜 헷갈리게 모레라고 해요?'

'누가 천둥이라고 말하냐? 번개 소리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데.'

그때마다 우리 스스로 어휘력을 줄여야 한다면

얼마 안 가 기본적인 말밖에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강점이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규정할 수 있다는 것,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모호해진다.

아무리 잘 모르는 것도

설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깨우칠 수 있다.


결국 어휘력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 체계를 확립하고,

동시에 지식 수준 때문에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릴 때부터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었는데 아무래도 재능도 끈기도 부족한 거 같아서 포기했구요, 대신 부담 없는 포스타입에 제가 쓴 글들을 조금씩 올려보려고 합니다! 잘 읽어주세요!

김필립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