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솔(@silverpinetree)님과 함께한 썰을 기반으로 한 소설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 5편이내 완결 예정... 입니다... 아마도...
1. 먹이사슬


"음... 먹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삐이..."

두훈은 동굴에 돌아와서도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초식동물인 자신은 육식동물인 고양이의 식사를 책임질 수 없었다. 또한 아직 아기인 고양이는 젖을 먹어야 했다. 고민의 그루밍을 하던 두훈은 결국 인간 마을로 내려가 새끼를 밴 진돗개 영물에게 도움을 청했다. 인간 마을에 살고 있는 진돗개 영물은 들개들에게 먹힐뻔한 두훈을 여러 번 도와준 착한 영물이었다.

처음엔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진돗개는 두훈의 그렁그렁한 눈과 미약하게 울고 있는 작은 고양이를 보고 하는 수 없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두훈은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고양이는 진돗개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커갔다.


두훈은 어느 정도 자란 고양이의 다음 먹이를 계속 고민해야 했다. 가장 큰 걱정인 육식이 문제였다. 그나마 친한 육식동물인 부엉이 영물을 통해 작은 설치류 시체를 가끔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돗개 영물도 자신의 먹이를 두훈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두훈은 감사한 마음에 진돗개 영물에겐 임신한 금수들에게 좋은 과일을, 부엉이 영물에겐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숲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얻은 먹이와 토끼로서 정말 힘겹게 잡은 곤충들을 먹이고 열심히 핥아주며 정성껏 작은 고양이를 돌보았다.


"형아."

"아이고 우리 야옹이."


두훈은 진돗개 영물과 머리를 맞대 고민한 끝에 고양이에게 '형호'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렇지만 인간들이 고양이를 부르는 애칭을 들은 두훈은 그대로 형호를 자주 야옹이라고 불렀다. 형호는 자신의 형, 두훈이 그렇게 불러줄 때마다 사랑받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름으로 불러줄 때도 행복했다. 이제는 두훈보다 2배 이상 커진 형호는 몸을 뒹굴고 그르렁 소리를 내며 허공에 헛손질을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형호는 초식동물인 형이 자신을 위해 힘겹게 먹이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 많은 부엉이 영물에게 전해 들었다. 그때 이제 자신이 용맹한 고양이로서 스스로 샤냥을 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아챘다.


"형아."

"응 우리 야옹이."

"이제부터 형아가 먹이 주지 마."

"응?"

"내가 사냥할 거야."


토끼는 당황했지만 이제 슬슬 형호가 고양이로서 본성이 나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는 수 없이 허락한 두훈은 형호에게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조심임을 강조하며 고양이를 동굴 밖으로 혼자 보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바깥에 내놓으니 불안감이 쌓인 두훈은 동굴을 빙글빙글 돌며 형호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해가 나무에 걸릴 때쯤 형호는 위풍당당하게 참새를 물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두훈은 혹시나 형호가 다쳤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가 그루밍을 했다.


"다친 곳은 없지 형호야?"

"응응 형아 나 참새 잡았어."

"... 응 잘했어."


다행히 형호가 잡아온 건 영물이 아닌 평범한 참새였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피식자가 시체로 누워있는 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엉이가 형호를 위해 먹이로 준 건 죽은 지 시간이 꽤 된 차가운 시체였지만, 형호가 잡아온 건 아직도 따뜻한 갓 잡은 참새였다. 두훈은 시선을 피한 채 억지로 웃으면서 형호를 칭찬했다.

형호는 두훈의 칭찬에 기뻐하며 참새를 씹어 먹었다. 참새를 먹는 소리와 싱싱한 피 냄새에 두훈은 본능과도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덜덜 떨던 두훈은 혹시라도 형호가 알아챌까 봐 뒤돌아 그루밍을 하는 척 귀와 얼굴을 가렸다.


*


참새, 두더지, 구렁이... 그렇게 샤냥감의 크기를 키워가던 형호는 커져가는 자신감처럼 몸집도 비대해졌다. 이제 형호의 크기는 대형견만 해졌다. 심지어 아직 성장기라 더 자라는 중이었다. 토끼는 자신의 고양이가 일반적인 고양이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 이유가 영물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사슴을 사냥해 오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당당하게 사슴의 목을 물고 동굴에 돌아온 검은 고양이 아니 검은 맹수는 자신의 토끼 형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토끼 형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동굴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형?"

"허어억!"


형호가 고양이가 최상위 맹수 영물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피식자로서의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형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지가 떨리고 제대로 눈을 마주 할 수 없었다.

검은 맹수는 처음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안절부절못했다. 평소처럼 평범한 짐승을 잡아왔는데 형이 자신을 피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형이 자신을 피하는 이유가 두려움이라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형호는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하기 위해 두훈에게 그루밍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건 역효과였다. 형호의 입안엔 방금 잡은 사슴의 피 냄새가 입 안 전체에 퍼져있었다. 두훈은 다가오는 사슴 피 냄새에 결국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형!"

"흑... 형호야..."

"난, 난 형을 절대 해치지 않아!"

"알아, 아는데..."


두훈의 두려움과 눈물은 본능이었다. 두훈은 계속 얼굴을 그루밍하면서 울음을 그치려 했지만 본능은 그걸 허용치 않았다. 형호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자신이 육식을 해서 형이 자신을 무서워한다. 그 이유에 도달하자 형호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인 형이 자신을 떠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형. 나 미워하지 마..."


동굴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


형호는 그 이후로 육식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육식동물인 것을 두려워하는 형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로 인해 형호는 힘을 잃어갔다. 결국 몸 조차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형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힘없는 형호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눈물 투성이의 토끼, 두훈이었다. 형호는 아직도 형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건가 하고 슬퍼하려는 순간, 자신의 입에 차가운 무언가 떨어졌다. 참새의 시체였다.


"형호야, 제발 이거 먹고 기운 내줘...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형호는 고개를 저으며 참새를 거부했다. 형이 두려워하는 건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자 두훈은 형호의 입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형호는 입 안에 들어오는 따뜻한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 무슨 짓이야!"

"참새가 싫어서 그래? 그럼 나라도 먹고 제발 기운 내줘..."

"그게 무슨..."

"네가 안 먹으면 난 계속 네 입 안으로 들어갈 거야."

"형... 형은 내가 육식하는 게 무섭잖아. 난 형이 무서워하는 건 안 할 거야."

"... 맞아, 무서워.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네가 죽는 거야. 네가 죽지 않는다면 난 뭐든지 할 거야... 내가 미안해 형호야. 잘못했어..."


두훈은 다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 형호의 품에 쏙 들어가 작은 몸으로 형호를 끌어안았다. 형호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형의 체온에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을 사랑하는 형을 다시금 얻은 기분이었다.


*


진돗개 영물은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건 오랜만에 보는 작은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보다 커다래진 검은 맹수였다. 본인도 본능으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검은 맹수 머리 위에 올라타있는 작은 흰 토끼 때문에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진돗개는 인간들의 티비를 통해 형호가 고양이가 아닌 흑표범이라는 걸 알아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형호는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두훈도 형호의 정체를 알게 되어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얻을 걸 얻은 두훈과 형호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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