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프라이즈 크루들은 최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정확하게는 뭔가 단단히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커크 함장님과 스팍 부함장님이 서로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낸지 벌써 며칠이 지나고 있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확실히 평소와 같은 상태는 분명 아니었다. 물론 다른 때에도 그들이 신경전을 벌여 며칠이고 말을 하지 않는 날들이 종종 있기야 했지만 지금의 이건 뭔가 달랐다. 


 스팍 부함장님은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았지만 근무 중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고,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스팍 부함장님이 ‘근무 중’ 딴 생각이라니,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일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커크 함장님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 마냥 하루에도 기분이 들쭉날쭉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가 딱히 자신의 기분을 크루들에게 전가 시키는 일은 없었지만 어떤 날에는 대단히 흥분되는 미지의 세계를 만난 사람 마냥 들떠있었고, 다른 날에는 끔찍하게 지루한 임무를 받은 사람처럼 지독하게 쳐져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늘 막내 체콥의 옆구리를 찔러서 커크 함장님의 상태를 체크하게 하고는 했다. 그러면 체콥은 왜 또 자신이냐고 울상이 되어 고개를 도리질을 치다가 옆자리에 술루가 단호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우물쭈물하다 커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Captain, Captain Kirk, Are you feeling okay? (함댱님, 함댱님, 괜찮으신 건가요?), 하고 체콥이 물으면 커크는 웃으면서 What is there not to be okay? Right, Commander? (괜찮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렇지 않나, 부함장?), 하고 대답하며 제 등 뒤에 앉은 스팍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스팍이 그의 질문 아닌 질문에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터보 리프트를 타고 함교를 떠나버렸다.


 그러면 스팍 부함장은 입을 꾹 다물고 비어있는 함장 의자를 쳐다보며 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릴 뿐이었다. 함장과 부함장이 이런 분위기였으니 함교의 우후라와 체콥, 술루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스콧이 함교에 올라와 있는 날이면 그에게도 시선을 던졌지만 스콧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곧 함교를 떠날 뿐이었다. (본즈가 있었더라면 그 또한 함께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시선을 서로 주고받았을 테지만, 말했듯 이때 당시 그는 현재 의료 임무 때문에 연합 행성 제타-알파 베로니우스 Ⅵ의 의학 연구동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커크의 기분이 가장 오락가락할 때는 식사를 할 때였다. 함선의 모든 사람들은 근래에 자신들의 함장이 평소 그의 식성과 비교한다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양만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엔터프라이즈에서 킨저 소위와 더불어 리플리케이터 음식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는 유일한 크루였다. 사실, 기나긴 탐사 동안 리플리케이터 음식만으로 버티기에 리플리케이터 음식에는 미각을 질리게 하는 그런 인공적인 거짓스러운 맛이 존재했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양껏 먹던 커크였다. 상당한 대식가였던 그가 지난 몇 주간 사과 한 두 알 정도로 식사를 그만두고는 했었다. 아주 간혹 가다가 사과잼을 바른 토스트나 사과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즐기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특이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면 오랜 우주 생활에 아무리 커크 함장님이라고 할지라도 이제쯤이면 리플리케이터 음식에 질렸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함선 내에 돌고 있었다. 커크 함장님이 자신의 옛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온 것 같았다는 소문이었다. 아니, 예전보다 더 했다. 그는 함교에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간식을 먹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돌아보면 항상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더 한 것은 새벽 3시에 식당에 내려갔다가 엄청나게 큰 그릇에 무언가를 잔뜩 담고 야무지게 비벼 먹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는 목격담이 종종 들려왔다.


 처음에 소문을 전해 들은 크루들은 목격자들이 '헛것'을 봤다거나 잠이 덜 깨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했지만 증언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자 분명히 무언가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에는 이 기묘한 상황을 진정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팍 부함장님은 커크 함장님과 알 수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신경전이라는 것은 상당히 비논리적인 행동이었지만 솔직히 적어도 함선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커크 함장님에게 가차 없이 잔소리를 할 수 있는 맥코이 박사님은 현재 함선에 탑승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어쩌면 CMO가 돌아오면 현(現)사태가 진정될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커크 함장님과 스팍 부함 장님과 모두 친밀한 장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맥코이 박사의 귀환 이후, 어딘가 모르게 사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커크 함장님과 맥코이 박사님은 둘만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의뭉스럽게 굴었고, 구석에 서서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다가 다른 크루가 지나가면 말을 뚝 그쳐 버리고는 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쑥덕거림을 경험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함교에까지 그런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그로 인해, 맥코이 박사님이 돌아오기 전에는 ‘두 분이 싸우셨대’ 정도의 소문이 더 나아가서 ‘커크 함장님이 스팍 부함장님을 버리고 맥코이 박사님으로 갈아타셨대.’라는 식의 소문이 흉흉하게 들려왔다.


 그러한 소문 때문이었는지 비교적 차분했던 스팍의 상태 또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함교 크루들은 정말이지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었다. 폭풍 전야와 같은 상태가 매일 계속 되었다.




Þ


 저기압은 거대한 구름을 제 안쪽으로 서서히 끌어 모으고 있었다. 커크와 스팍이 좀처럼 대화라는 것을 하지 않으니, 엔터프라이즈 호의 일은 종종 뒤엉키고 꼬여버리기 마련이었다. 사건·사고들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크루들의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고, 말썽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음 서식지를 찾아다녔다. 크루들은 나지막하고 둔탁한 천둥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 먼 곳에서부터 들리던 그 소리는 이제 서서히 자신들의 머리 위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두 듣지 못한 양, 모르는 척 행동할 뿐이었다. 다만 폭풍이 다가와 제 머리 위에로 비를 뿌릴 때를 대비해서 삼삼오오 모여서 피난처를 의논하고는 했다.


“McCoy to Kirk.”

[맥코이로부터 커크에게.] 

“Kirk, here.”

[나야.] 


“Come down to the med-bay.”

[의무실로 내려올 것.] 

“I’ll be on my way, Kirk Out.”

[지금 출발할게, 커크 아웃.] 


 맥코이 박사가 커크를 호출하는 방송이 함교 전체에 울렸을 때, 함교 크루들은 ‘젠장, 망했다.’, 라고 생각했다. 스팍 본인이 눈치를 챘는지 채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즘 들어 스팍 부함장은 대단히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함장님이 부함장님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해진 상황이었고, 원래 친하기는 했다지만 함장님이 맥코이 박사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커크 함장이 먹는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신의 식판에서 함장의 식판으로 음식이나 채소를 덜어주는 다소 괴팍한 구석이 있는 맥코이 박사의 다정한 모습을 목격한 크루들은 짧은 쇼크 상태에 빠지기도 했었다. 본래도 ‘함장의 숨겨둔 양육자’ (‘숨겨진‘이라는 표현은 사실 의미 없었지만) 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맥코이 박사였지만 최근 들어 함장을 챙기는 정도가 남달랐다. 


 함교 크루들은 힐끔거리면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스팍의 등을 쳐다보았다. 그 어떤 미동도 없었지만 아무리 '그'라도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스팍과 우후라는 이미 연인관계를 끝내는 것으로 서로 합의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졌지만 성숙한 어른들답게 그래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연애 감정은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끼는 친구로서 스팍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후라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팍의 옆에 가서 섰다. 술루와 체콥은 그런 그녀를 모르는 척, 또 그들의 대화를 못 듣는 척 했다.


“Are you feeling okay, Spock?”

[기분 괜찮아요, 스팍?] 

“I do not understand why you are asking me such question As I have no reason to feel any other way. Lieutenant Uhura.”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연유를 모르겠군요. 다른 기분 상태일 이유가 없습니다. 우후라 대위.] 


 우후라가 비워진 커크의 자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우후라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그를 어리석고 오만한 멍청이라고 생각했었다. 뭐, 솔직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임무를 하면서 그가 무책임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첫 인상이라는 것은 강렬한 것이기에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대놓고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그때 자신이 아주 잘못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후라는 스팍이 자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말수가 적은 스팍의 부쩍 줄어든 말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팍은 자신을 걱정 어린 눈길로 쳐다보는 우후라를 마주 쳐다보았다.


“Why do you assume I would feel not ‘okay’?”

[왜 제가 기분이 ‘괜찮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It's just that…, Well, If you are ‘okay’ then it‘s fine.”

[그게 그러니까…, 음, 당신이 ‘괜찮다’면 그걸로 됐어요.] 

“Fine has a various definition.”

[괜찮다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만. ] 


 우후라는 그렇게 말하는 스팍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녀는 스팍의 어깨를 토닥이려고 팔을 뻗었다가 이제 손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그녀가 스팍과 함께 했던 시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니었다. 여전히 많은 크루들은 스팍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그녀만큼은 어느 정도 스팍의 기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스팍은 자신에게 자신은 괜찮으며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우후라가 보기에 그는 분명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쉬이 기분이 상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분노, 슬픔 그리고 좌절을 느꼈다. 비록 그가 벌칸이었고, 그들은 감정을 정체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스팍의 반은 인간이었다. 커크가 근래에 하는 짓은 분명한 ‘바람’ 이었다. 그것도 맥코이 박사와. 


 그녀는 남의 연애 문제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연애, 아니, 이제는 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두 인간 남자와 한 벌칸-의 연애가 함선 전체의 분위기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더 이상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동안 그들 사이의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호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고들이 몇이었던가. 사이에 끼어서 골머리를 앓는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높이 들고 함교를 걸어 나가는 우후라의 뒷모습을 술루와 체콥은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Þ 

 

 의무실에는 본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크는 시선으로 본즈에게 다들 어디 간 것이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아무도 없는 의무실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여태까지 그에 대한 진찰은 보통 커크의 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커크는 시선으로 본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커크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본즈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말도 안 되게 다정하게 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툴툴거리는 퉁명스러운 태도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본즈는 본즈였다. 여전했다. 커크는 자신의 질문에 본즈가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냥 얌전히 의사 선생님 말이나 들으라는 거지? 별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맥코이는 커크를 향해 그런 얄미운 표정 좀 짓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그의 팔을 붙잡고 진료용 커튼 뒤로 끌고 들어갔다.


“Why did you call?”

[왜 불렀어?] 

“You‘ll know, just get on the bed.”

[알게 될 거야, 그냥 침대 위에 올라가.] 


 커크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본즈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본즈가 자신에게 던져준 진료용 옷으로 받아들었다. 그는 본즈에게 지퍼를 내려달라는 식으로 뒤를 돌아섰고, 레너드는 Unbelievable(믿을 수 없군), 을 중얼거리면서도 친히 커크의 지퍼를 내려주었다. 커크는 앞으로 돌아서서 싱긋 하고 웃었다. 커크는 기회가 있을 때면 때로 퉁명스럽기 그지 없는 본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 머리 위로 노란색 유니폼을 끌어올렸고, 그에 따라 복부에 두른 압박 붕대가 드러났다. 레너드는 복잡한 심경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지만 굳이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임산부에게 좋지 않았다.


“Forgot to ask, How did you manage to cheat on the medical examination?”

[지난번에 물어보는 걸 깜빡했었는데, 정기 검진은 도대체 어떻게 속여 넘긴 거야?] 

“I called Clark.”

[클락 불렀어.] 


 클락은 최근에 엔터프라이즈 호에 새롭게 배치 받은 의료 장교였는데,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렸고, 스타플릿의 영웅인 커크 함장을 존경하고 또 어려워하고 있었다. 커크가 그런 그를 구슬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것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신체검사를 피해갔을 것이 분명했다. 맥코이는 자신이 함선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를 보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으며 자신을 피하고는 했던 클락의 반응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내 휘하 장교들을 함부로 사적으로 부렸다 이거지, 성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맥코이는 다소 감정을 실어서 짐의 뒤통수를 딱, 하고 때렸다. 커크는 Why did you do that for?!(왜 그러는 거야?!),라고 꿍얼거리기는 했지만 본즈가 시키는 대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맥코이 박사는 커크가 무사히 침대 위에 자리 잡은 것을 보고 서랍장 안에 들어 있던 기계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어서 젤을 꺼내서는 커크의 배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느껴지는 차가운 촉감에 커크가 깜짝 놀라 버둥거렸다.


“What the…?!”

[이게 뭔…?!] 

“Can you be quite for a minute, Jim?”

[그냥 잠시라도 조용히 있으면 안 되는 거냐, 짐?] 


 본즈의 핀잔에 커크는 혼자 입술을 삐죽이고는 아예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웠다. 감겨있는 어둠 너머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방안에 맴돌았다. 금속성의 무언가가 배 위에 닿았다. 커크가 놀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본즈가 그의 이마와 감겨있는 눈을 손으로 감싸고 그를 천천히, 다시 베개 위에 눕혔다. 커크는 순순히 본즈의 손길을 따랐다. 


 그리고 그때  ――― /두근두근/ ―――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커크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하고 떴다. 아이의 심장 소리였다. 그동안 시간 흐름에 따라 배가 불러온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무사한지 알 방도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아이의 심장 소리가 방안을 조용히 울렸다. 자신이 품은 아이는 건강하고 잘 자라고 있었다. 남자가 임신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생명을 품도록 만들어진 몸이 아니었기에 덜컥 임신하게 되었을 때, 커크는 걱정도, 마음고생도 많았다. 자신에게 찾아와서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커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머나먼 우주에 나와 어느 누구도 목도하지 못한 우주의 수많은 경이를 보아 왔지만, 그 어떤 감동도 지금 그가 마주한 기쁨을 넘어서지는 못하리라.


“Oh, Gosh, Fuck! Bones,”

[오, 세상에, 씨발, 본즈.] 

“Language, Jim.”

[말 조심해, 짐.] 


 커크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처럼 내뱉은 욕에 본즈가 그를 향해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어찌 되었든 욕설부터 배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그에 커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Right. But can you hear that? Oh, my god, Bones! This is crazy.”

[아, 맞다, 하지만 들려? 너도 듣고 있어? 오, 신이시여, 본즈. 이건 정말 미친 거 같아!] 


 커크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신난 얼굴로 본즈를 쳐다보았다. 맥코이가 커크를 알아온 동안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은 기대감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마 임신 사실을 숨기느라 제대로 검사를 받아본 적도 없었을 테고, 아기집이 제대로 생겼는지 확인한다거나 아이의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기야 어떻게 그랬겠는가. 자신에게 마저 임신한 사실을 몇 개월 동안이나 감추고 있었는데. 아이의 건강 검진은 커녕 들키지 않으려고 제 건강 검진조차 도망 다닌 녀석이었다. 맥코이는 다른 크루에게 들킬까봐 몰래 자신의 쿼터에서 배에 압박 붕대를 감고 있던 커크의 모습이 생각났다. (확실히 지금 유니폼이 불룩 튀어나온 배를 쉽게 감출 수 있는 유니폼은 아니지.) 그때 덜컹하고 떨어질 뻔 했던 심장을 생각하니 한숨을 푹, 하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이 녀석 때문에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그런 레너드의 걱정일랑 상관치 않고 커크는 여전히 한껏 들떠 있었다.


“Amazingly adorable! Hey, Bones, Don't you think? Listen to the heart beat, it's strong and vigorous! I think my baby is going to have a big heart! Soul of a universe. That's my baby!”

[믿을 수 없게 사랑스럽지 않아? 본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심장 소리 좀 들어봐! 강하고 활기가 넘치지 않아?! 내 생각에는 내 아이는 큰 심장을 가진 아이가 될 거야, 우주의 영혼을 가진! 그래야 내 아이지!]

“My God, How did you bear all this time not to boast about this?”

[세상에, 여태까지 자랑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맥코이는 커크의 팔불출에 기가 막혔다. 어느 누가 엉덩이 가볍기로 악명 높은 제임스 T. 커크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 분명했다. Like it that much? (그렇게 좋냐), 라고 농담하듯 물어보자, 커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철딱서니ㅣ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레너드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면을 한 번 들여다 보고, 다시 커크를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입을 열기를 고민하던 맥코이 박사는 입술에 침을 적시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젠가는 모두 알아야 할 일이었다.


“Jim, I think it’s about time you tell everyone.”

[짐, 이제 슬슬 모두한테 말해줄 때 되지 않았어?] 


 커크는 본즈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실실 웃고 있었다. 맥코이는 골이 난 표정으로 기계의 화면을 꺼버렸다. 그러자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커크가 손을 뻗어서 화면을 다시 틀고는 다시 화면에 나타난 아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 빌어먹을 멍청한 놈은 도대체가 정도를 모른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맥코이는 이내 다시 짜증스러운 손길로 화면을 끄고는, 커크가 다시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기계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커크를 보며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You need to let the others know, Jim. And I'm serious about this, You can't be running around like you used to with carrying a baby.”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야 된다고, 짐. 난 지금 진지해. 아이 가진 사람이 평소처럼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Þ 


 우후라는 의무실에서 빠져나와 서둘러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벽을 짚고서야 겨우 제대로 서있을 수 있었다. 우후라는 코너를 돌며 스팍과 부딪힐 때까지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Oh, I’m sorry, I didn’t…(오, 미안해요, 오는 걸 못 봤…), 라고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스팍의 얼굴을 보더니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뒤에서 스팍이 자신을 부르는 것도 무시한 채 손으로 입을 막고 서둘러 어딘가로 뛰어갔다. 입을 막지 않으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말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 13년도 글에서 일부 문장 수정이 있습니다. 커크가 끊임없이 뭘 먹는 사람이 더라구요. 

  (정확하게는 크리스 파인이 그렇지만...)

 +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은 언제나 피가 되고 살이 되며, 큰 원동력이 됩니다. :)

 + 구뉴전 이후 일부 오타 등을 수정하였습니다.



랑야방 / SPN / 스타트렉 / ETC

고래와호랑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