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함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애는 내 특기가 아니야."


치기 어린시절, 하루하루가 반짝반짝 빛이 나 다르게 보이던 시절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마음 속에 고이 품고 있던 내 마음을 전했을 때. 함께 집에서 장기를 두는 상황은 로맨틱하지 않았지만 툭 튀어나온 말은 진심이었다. 마음 속에 담긴 말이 멋대로 튀어나가 당황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대답했다. 언제나 그렇 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리고 조금 답지않게 장기말 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가 고심 끝에 둔 것은 악수였다.


"안 질리냐."


어떻게 그랬을까. 몇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갓난쟁이 같은 무모함이 가득했다. 고백하고 차이고 또 고백하고 차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반복했다. 그는 조금 지친 얼굴을 했다. 귀찮음도 섞인 것 같았다. 그래도 전혀. 라고 딱잘라 대답했다. 그도 그럴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더운 여름날 열이 오른 내게 아이스크림을 내밀고 있었다. 


"친구가 좋지 않냐."


그가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과 후 노을 볕이 들어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는 교실에 둘이 남아 오랜만에 좋은 분위기였지만 그는 여전했다. 꽤 곤란한 표정을 하다 결국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은 쌀쌀 맞았지만 졸업식을 마치고 느즈막하게 남을 짐을 챙기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친구인게 편해."


그는 언제나 의견이 없었다. 그러던가 귀찮다. 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였으니까 당연하다. 의견을 내면 자신이 끌고가야하는 귀찮음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꽤 단호했다. 말에 힘이 있었고 표정은 미묘하게 굳었다. 그 날도 나는 술을 마시고 당연히 그의 집에서 자기 위해 씻고 나왔고 그는 술자리가 끝난 후에도 혼자 한 잔을 더 마시고 있었다. 


"친구로 하자. 제발."


여유가 없어보였다. 그는 귀찮은 일은 뒤로 미루지만 스마트하게 해결할 머리가 있어서 그런지 항상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뭘해도 순조로웠다. 그런 그가 조금 절박해보였다. 일찍 퇴근을 마친 내가 먼저 집으로 와 차린 저녁을 먹는 도중 그가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젓가락질이 뜸했다. 하지만 그 날도 그는 그릇을 말끔하게 비워주었다.


나는 둔하고 눈치가 없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좋아해.



-



"나 시카마루 좋아하는데. 우리 사귈까?"


그 녀석은 원래 능숙하지 못하다. 고백도 능숙하지 못했다. 함께 장기를 두던 도중에 튀어나온 고백은 무심코 뱉어버린 말에 불과하다. 나는 잘 알고있다. 그 녀석과 함께한 세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녀석의 푸른동공에게는 이상하게 하늘이 더 맑아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녀석이 보는 나는 내 자체가 아니란걸 잘 안다. 고민 끝에 둔 악수를 만회할 고민에 다시 빠졌다.


"시카마루 좋아해."


녀석은 천진난만했다. 거절에도 웃어보였고 다음날이면 다시 같은 고백을 되풀이했다. 꼭 망가져버린 테이프에 담긴 고백노래 한구절이 무한으로 반복되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귓가에 그 음악이 틀어진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이 뚝뚝 녹아내리는 여름볕에 조금 지친 느낌이들었다.


"우린 안 사귀냐니깐?"


왜 당연히 우리가 언젠간 사귈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읊어대던 가사가 바뀌었다. 친구가 좋지 않겠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어보인다. 왜 아니라고 대답하는지 모르겠다. 녀석과 나는 벌써 18년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제와서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졸업식 녀석이 홀로 반에 남아 뒤늦게 챙기는 물건은 볼품없는 것들 뿐이다. 내가 녀석과 수업도중에 간혹 주고받았던 쪽지 몇개, 그리고 수업시간에 함께 오목을 두곤했던 낙서 노트 하나.


"정말로 내 남자친구 안해?"


친구인게 편하다. 함께 술을 마시고, 적당히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게 아닐까.곡조가 조금 변한 기분이다. 늦었다며 녀석이 씻으러 들어간 이후 냉장고에 남아있던 맥주캔을 땄다. 녀석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답을 던졌다. 물기가 어린 머리를 대충 털어낸 녀석은 흐음- 이라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말려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우리 이젠 애인해도 되지않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구간이. 다른 음색, 다른 박자, 다른 가사여도 모두 같은 음악이다. 나를 향한 고백을 담은 노래. 씹힌 테이프는 같은 곳을 제자리 걸음만했다. 표정관리가 되질 않았다. 퇴근 후 돌던 입맛도 싹 달아난 것같았다. 그릇을 비운 후 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녀석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젠 녀석을 모르겠다.



-



"시카마루. 오늘 같이 자자. 나 베게도 들고왔다니깐."


샤워를 마친 나루토는 베시시 웃으며 등 뒤에있는 베게를 꺼내보였다. 시카마루는 보고있던 책에 갈피를 꽂아두고 덮었다. 12시 늦은시간 내일도 출근이 있는 아주 평범한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은 이왕이면 따로 자도 좋을텐데 나루토는 굳이 넓직한 제 침대를 놔두고 시카마루 옆, 작은 틈으로 낑겨들어왔다. 몸이 식을라 이불 안으로 들어온 나루토는 당연스럽게 그에게 달라붙었다. 깨끗한 냄새가 훅 끼쳤다. 함께 쓰는 샴푸, 바디워시가 나루토 체향에 녹아 특유의 청아하고 깨끗한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불이 꺼진 깜깜한 방 안에 바스락거리는 이불소리가 들렸고, 습관처럼 웅크린 나루토 어깨가 이내 규칙적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시카마루. 좋아해. 잘자라니깐..."


잠결이 묻어나는 소리로 나루토는 중얼거리곤 잠에 들었다. 시카마루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떴다. 잠이 오질 않았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어두운 거실에 작은 향초을 켜고 맥주를 땄다. 희미한 불에 드러난 주변을 바라보니 전부 둘이서 하나씩 채워나간 살림들이다.

소파는 조금 큰게 편하겠지. 티비는 시카마루가 잘 보지 않지만 주말 드라마 열혈 시청자인 나루토를 위해서 조금 좋은걸. 나루토가 키우는 화분을 놓기 위해 선반도 해. 시카마루가 읽는 책이 또 쌓였네. 책장이 하나 더 필요하겠다.

전부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갖춰진 것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기까지 한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주 당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했고 작은 살림부터 시작해서 하나둘 키워나갔다. 함께 다니는게 당연했고 그러니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면 그래도 된다. 친구니까. 함께 밥을 먹거나 가끔 침대를 빌려서 자거나 함께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연인이 될 필요가 있는건가 깊은 고민이 몰려왔다. 

반절 남은 맥주가 미지근해졌다.


"시카마루..."


잠에서 문득 깨니 옆자리가 비어있다. 나루토는 더듬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나루토가 우기고 우겨서 산 라벤더향 향초 불빛 사이로 시카마루가 거실 소파에 웅크려 자고있다. 이불을 가지고와서 그에게 덮어주고 나루토는 소파 아래 앉아 팔을 걸치고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쉽게 잠들지 못한건지 눈가에 피곤함이 보인다.


"좋아해. 좋아한다니깐...."


나루토의 목소리 때문일까 시카마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일렁이는 붉은색 향초 빛에 비친 나루토의 푸른색 눈이 가느다랗게 웃었다.


"좋아해. 시카마루."


느릿하게 눈을 꿈벅이던 시카마루는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떴다.


"야. 애인은 헤어질 수 있어."

"안 헤어지게 평생 사귀면 되지."

"애인끼린 싸워."

"싸우고 화해하면 된다니깐."


몇 번이고 반복 되었던 대화이다. 같은 구간이 반복되는 지겨운 사랑노래같은 대화.


"나루토."

"응."

"지쳤다."

"그래?"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연애라는거 해보자. 귀찮겠지만."


새벽이 까무룩 넘어가는 시간 라벤더 향이 퍼지는 거실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카마루가 피곤한 듯 눈을 감으니 나루토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시카마루 손등 위로 올려져있던 손이 빈틈없이 손 틈을 맞물려잡았고 그의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젠 다른 노래 부르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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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와는 많이 다른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개인적으로 가사 한 구절이 너무 좋아서 인용해봤습니다! 저는 나루토가 부르는 고백노래에 시카마루가 지쳐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구요. 잘 느껴지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을 좀 못써서 그런거니 어쩔 수 없습니다. 노래를 듣고 바로 후다닥 쓴거라 내용이 많이 부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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