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네.”

“이게 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마침 네 옆자리가 비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난.”


조례가 끝나고 담임을 따라 교무실로 왔을 때, 담임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내가 특별히 말 안 해도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긴 하는데, 그래도 미리 말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뭔데요?”

“청훈이, 잘 돌봐 달라고. 그 애가……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상처가 좀 많아.”


담임이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내게 말했다.


“……네.”


나는 담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교실로 올라왔다.


오늘 전학 온 놈은 아무래도 다니던 학교에서 왕따라도 당했던 모양이다. 하긴, 이맘때 전학 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담임이 굳이 날 불러내서 그놈을 잘 봐 달라느니 뭐니 부탁까지 한 건 과했다. 상처가 많다 어떻다, 그런 거 말해 주면 괜히 의식하게 되잖아. 내가 담임의 부탁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전학생한테 자연스럽지 못하게 군다면, 걔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르지는 않을 거고.


동정 같은 호의는 안 받느니만 못한 거 아닌가.


아무튼 이따 전학생을 보면 어디 사냐고 물어라도 봐야겠다. 나도 그렇게 붙임성 있는 편은 아닌데, 앞으로 좀 성가실 것 같다.




*


넉살 좋은 김용철의 활약으로, 나는 전학생이자 내 짝인 이청훈이 부잣집 도련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주 드나드는 공원 옆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주상복합 아파트의 분양가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이 근방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이청훈은 사람을 엄청 무서워하는 것 같다. 뭔가 물어보면 한참 머뭇거리다 대답하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엄청 작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놀라서 얼른 시선을 바닥에 깔아 버리기 일쑤고.


1교시가 끝나고, 반 놈 중 몇몇이 이청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청훈을 대하는, 반 놈들의 태도는 무척 우호적이었다.


“너 되게 잘생겼다.”


반 놈 중 하나가 이청훈에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이미 봤던 이청훈의 얼굴을 공연히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깨끗한 피부에 단정하고 곱상하게 생긴 이목구비. 이청훈은 누가 보더라도 ‘좀 생겼다’고 할 만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여하간 반 놈들이 내 몫까지 이청훈한테 알아서 잘할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평소대로 살면 되겠지.




*


점심시간이 되고, 평소처럼 엎드려 자려다 말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청훈에게 밥을 먹자고 하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아까 얘한테 말 걸고 하던 놈들은 다 어디로 갔냐.


이청훈은 엎드린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다가, 밥을 타려는 모양인지 머뭇머뭇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오늘 처음으로, 나는 이청훈에게 말을 걸었다. 부름에 놀란 이청훈은 몸까지 부르르 떨었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놀라고 난리야.


“너 급식 먹냐?”

“……응.”

“난 빵 먹는데.”

“응?”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자 이청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매점 어디 있는지 안 궁금하냐?”

“어어…….”

“안 궁금하면 말아.”


나는 이청훈이 머뭇대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나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이 있는 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기에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당황한 얼굴을 한 이청훈이 있었다.


“밥 안 먹냐?”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

“매점은 내내 열려 있고, 급식 당번들 밥 푸는 시간은 정해져 있잖아. 걔들도 얼른 다른 애들 퍼 주고 자기들 밥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러네. 그럼…… 다시 갈게.”


이청훈은 힘겹게 대꾸를 마치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뒷모습이 유달리 왜소해 보였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어지간히 답답한 놈이다.


나는 매점에서 메론 맛이 나는 기다란 빵과 흰 우유를 샀다. 그러고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 놈들이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처먹고 떠드는 교실 안에서, 홀로 깨작깨작 밥을 먹는 이청훈을 불렀다.


“야.”


이청훈이 밥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놈은 나와 마주치자마자 또 깜짝 놀라더니 식판으로 눈을 깔았다.

 

“뭔데 자꾸 마주치기만 하면 눈 까느라 정신없냐? 내가 잡아먹어?”

“아니……. 미안.”


하도 답답해서 따졌더니, 놈은 따진 나만 민망하게 사과를 해 버렸다.


나는 이청훈의 무의미한 사과를 무시한 채 빵을 뜯어먹었다. 이청훈은 밥을 먹는 내내 나를 흘깃거리며 눈치를 보았고, 나는 그 시선 때문에 체라도 할 것 같았다.


……씨발.




*


“3층에.”


종례를 마친 담임이 교실을 나가고 남은 놈들이 각자 책가방을 쌀 때, 나는 느지막이 가방을 챙기던 이청훈에게 말을 걸었다.


“응?”


이청훈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물었다.


“매점.”

“응.”

“3층 복도 끝에 있다고.”


나는 이청훈에게 매점 위치를 알려준 뒤, 진작에 다 싼 가방을 들고서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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