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아주 지금껏
황혼이 지고 동이 트는 줄로 알았다
지금껏
아주 지금껏
달이 지고 세상이 다시 환해지는 줄로 알았다
손 한 번 서로 붙잡아 본 적이 있어야 멀어지는 것이 가능하고
행복에 잠 못 이뤄 본 적이 있어야 괴리의 어둠에 갇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모르고 있었다
왜 뿌리에 물을 내리지 않고
꽃이 피길 기다리는 법만을 가르쳤을까
왜 차가운 눈물을 뜨겁게 하지 않고
별 수 없어진 넓은 바다를 마르게 하는 법만을 가르쳤을까
대신 비가 되어 내린 나의 투정이 결국 날 숨막히게 한다고
마찬가지로 얼음 같기 그지 없던 당신의 손이 닿은 발 끝으로 난 소리 없이 걸을 수 조차 없다고
내가 털어놓은 모든 비밀이
당신이 삼킨 거대한 위로가
위로가 봄비 같았을 위로가
한꺼번에 여기 쏟아져 나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다고
그 때의 열여섯 어린 소녀는
눈이 그치기도 전에 스스로 꽃을 피우던 그 예쁜 소녀는
어쩌면 속은 나보다 더 많이 곯아 있었을 지도 모르는 그 찬란한 소녀는
수십 해가 지난 후 나의 가슴 안에 고스란히 스며 들었다
차라리 영영 행복만 남기고 아픔은 모두 내게 새기지
당신은 사랑만 하고
나는 고통만 하고
해가 지기만 하는 세상에서는 그 영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 당신을 탓하지도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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