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박지민의 조언

W. 에뚜왈







"어뜩, 어뜨케, 나한테, 흐윽, 흡, 큭, 이럴 수 이써... 어ㅓ허엉..."

"하, 석진이 형 또 시작이다."

"윤기 형한테 전화해 봐야 되는 거 아냐?"


잔뜩 심각해진 얼굴로 박지민 분주히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퇴근하자마자 각 잡고 마셔댔던 이자카야는 룸 조명이 어찌나 어두침침한지 손에 꺼내 쥔 핸드폰 액정 화면 밝기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고형의 물체였다면 이미 먼지가 수북이 쌓여 어디 구석탱이에나 처박혀 있을 것만 같은 케케묵은 번호를 연락처에서 겨우 뒤져 찾아낸다. 거침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박지민 동작이 별안간 우뚝 멈췄다. 


"근데, 윤기 형한테 전화해도... 되려나?"

"윤기 형 말고 딱히 별 수 있어?"

"아니, 없지."


김태형 질문에 박지민 단호한 얼굴로 즉답했다. 서로를 마주 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치 짠 것처럼 한 사람을 향했다. 그 끝에는 아까부터 말릴 새도 없이 술잔을 연거푸 비워대던 김석진이 있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던 민윤기랑 기어코 얼마 전에 이별하고만 비련의 주인공(인 척하는 진상.) 그의 말로는 본인이 찼다는데 어째 차인 사람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다. 여하튼 헤어진 뒤로 위로랍시고 몇 번을 함께 술자리를 가졌었더랬다. 그리고 그때마다 취했고, 그때마다 정신 못 차렸고, 그때마다 민윤기 이름 석 자 불러대며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을 때까지 울었다.


"형님, 저예요."


결국 그의 헤어진 연인(일명 구남친)한테 전화하는 것은 박지민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으리라. 


["전화하지 말랬지, 내가."]


푹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럼 아예 전화를 받지 말든가요. 의외로 형들한테 강한 박지민 한 마디 쏘아 올리고 싶었지만, 굳이 불필요했다. 대신에 핸드폰을 반대쪽 손으로 고쳐잡고는 어느새 테이블 위로 엎어진 김석진의 젖은 눈가를 두어 번 훔쳐냈다.


"석진이 형이 형만 찾는데 그럼 어떡해요."

["애초에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술을 처먹이는 건데."]

"우리가 뭐 억지로 먹였어요? 본인이 폭주했지."

["시발."]


짜증이 가득 섞인 욕설에도 박지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온대? 힘없이 축축 늘어지는 김석진 몸을 붙들고 있던 김태형 소리 없이 입모양을 내어 묻는다. 아직 귓가 너머의 상대는 대답도 안 했건만, 박지민은 무슨 자신감인지 비장한 얼굴로 두어 번 고개 끄덕였다.


["어딘데."]


역시나였다. 


"청담동 OO 이자카야요.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 * * 


"윤기형 오랜만. 그럼 이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행니임."

"야, 너네,"


청담동 고급 이자카야 룸이었다. 민윤기 등장하자마자 약삭빠른 박지민 김태형 인사도 제대로 하기 전에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도망치더랬다. 아니, 필시 일부러였다. 1분 1초라도 더 있다간 입이 걸기로 유명한 민윤기한테서 온갖 쌍욕 다 처먹고 마상 입을 걸 알아서다. 대략 일주일 전 학습한 전적이 있기에 오늘은 얼굴 보자마자 꽐라된 김석진 떠넘기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가 술 먹고 울고 불며 전남친 찾아댄 게 비단 오늘이 처음이 아니란 소리다. 


"흐윽, 흐....흐엉..."

"그만 울고 일어나, 김석진."


정확히 일주일 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꼬라지였다. 그새 또 살이 내렸는지 더 말라서는 어깨를 파르르 떨며 김석진 그날처럼 울고 있었다. 헤어지고 나서 기분 전환 삼아 염색이라도 한 건지 새카맣던 머리색이 어느새 다갈색이었다. 나랑 사귈 땐 검은색이었잖아. 그 부드러운 머리칼에 본능적으로 손이 뻗어나간다. 다행히 닿기 전 멈췄다. 칼로 절단해버린 거친 단면처럼 잘린 손길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 


"일어나라고."

"너는, 너는...! 흐윽..."


살얼음처럼 차디찬 목소리에 결국 서러움이 터지고 만다. 양 무릎 사이에 안쓰럽게 파묻혀 있던 김석진 고개가 번쩍 들렸다. 동시에 잔뜩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이 매섭게 민윤기를 노려보았다. 


"나쁜 새끼야, 너..."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을 겨우 깨물며 간신히 내뱉은 욕이 고작 이거였다. 하아. 최악인 기분만큼이나 엉망으로 쏟아져 내린 검은색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며 민윤기 한숨 섞인 공기를 길게 내쉬었다. 그 후에 찾아오는 적막이 무서워서 김석진은 시선을 내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또 울었다. 


"김석진."

"으흑...."

"헤어지자고 한 건, 너야."


니가 그만하자고 했다고.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뱃속에서 울걱이는 기복이 일었다. 한 달 전의 일이 불가항력적으로 머릿속을 장악하고 만다. 그날의 싸늘했던 공기. 숨 막힐 듯한 적막함.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매정히 돌아서던 네 등까지. 그날의 모든 조각들을 떠올리면 이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생명체가 된 것처럼 고독했다. 지독히도 괴로웠다. 차라리 정신병자처럼 미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맹렬히 오직 너만을 향했던 감정이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 처박혀 폐기물처럼 버려졌다. 그런데도, 넌. 김석진 너는. 그렇게 무섭도록 이기적인 모습으로 떠났으면서. 


"씨발, 왜 자꾸 사람 돌게 만드는데. 어?"

"나한테 욕하지 마..! 흐헝..."

"나 버린 건 너라고!! 근데 왜 니가 차인 새끼처럼 처 울고 있는데, 왜!"


뭐라도 부숴버리면 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좀 나아질까.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매섭게 쥔 민윤기 손등 위로 불거진 힘줄이 올랐다. 테이블에 나뒹굴고 있는 주인 잃은 글라스라도 손에 쥐고 으스러뜨리고 싶었다. 김석진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스스로라도 망가뜨려야 했다. 네게 상처받은 모든 것들은 내가 감내해야만 했다. 머릿속을 뒤집어대고 뱃속에 엉켜 붙는 숱한 상념들과 감정들을 핏방울에라도 담아 쏟아내고 싶었다. 거칠고 깊은 탄식이 섞인 숨이 길게 뿜어져 나온다. 


"일어나. 집에 데려다줄게."

"흐윽...됐어..흑."

"김석진."

"됐다고!!"


꽤나 앙칼진 목소리에도 민윤기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라는 듯이 익숙하다는 식이었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는 김석진 손목을 거침없이 잡아올렸고, 다른 손으로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코트를 챙겨 들었다. 


"일어나."

"흐윽...흐엉..."


뭐가 그렇게나 서럽고 슬픈 걸까 너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의미를 가득 담아낸 눈물방울들이 계속해서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것들을 닦아줄 호의나 친절 따위는 없었다. 무미건조한 손길이 비틀거리는 김석진 어깨를 마지못해 지탱했다. 


"앉아, 신발 신게."


하필이면 좌식 룸이었다. 꽤나 고풍스럽게 꾸며진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일단 김석진부터 문간에 앉혔다. 여전히 고개는 땅바닥을 뚫고 들어갈 듯이 푸욱 수그러진 채였다. 아직 울고 있을 것이다. 민윤기는 김석진 앞에 마주 보고 앉아 주저 없이 무릎을 꿇는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그의 발목을 끌어다 잡고는 구두를 찾아 신겨 주었다. 그것 또한 익숙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자, 됐다."

"흐으윽...."


익숙해서 더 무서운 다정함에 또다시 눈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도저히 참을 길이 없었다. 손등 반 정도를 덮은 옷소매를 내어 우악스럽게 눈가를 닦아보지만 허사였다. 헤어지고 나서도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워 괴로웠던 손길이었다. 다정하고 또한 한계 없이 상냥했던 애정이었다. 왜 그걸 몰랐을까.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왜 이제서야. 왜. 그의 마음을 뒤늦게 깨닫고야 만 걸까. 


"코트 입어."


유독 남들보다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면 늘 골골대며 감기를 달고 사는 김석진 체질을 까먹을 리 없었다. 민윤기는 입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들고 있던 코트를 그의 어깨에 바로 걸쳐 주었다. 그 후에는 당연한 수순처럼 피부에 차디찬 공기가 맞닿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민윤기는 김석진 본인보다 김석진을 더 챙겼다. 


무관심한 말투와 무심한 표정으로 무장한 그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다정했을 거다. 차갑게 느껴지는 말투는 꽤나 유난스러운 애정의 손길을 중화시키기 위한 그의 수단이었을 테다. 사실, 그가 전혀 무심하지 않은 성격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 욕심이 났다. 더욱더 그의 마음을 원했다. 다정스럽고도 낯간지러운 애정 표현이라도 해주길 꼴사납게 바랐었나 보다. 김석진은 철저히 본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애정의 방식을 강요했고, 그 욕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되려 커다란 외로움으로 김석진을 잠식시켰다. 사방이 가로막힌 그 철저한 고독의 공간 속은 민윤기에 대한 오해와 갈등을 동반했다. 그 어리숙했던 그 어린 모든 감정들은 결국 그에게 헤어짐을 고하도록 김석진을 조종했다.


"윤기야...흐윽..."


결국 이렇게 뼈저리게 후회할 것을.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를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할 거면서. 그와 헤어져 있는 동안의 매일매일을 목놓아 울어댈걸.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이제 와 뒤늦게 후회하는 스스로에게 모멸감이 들었으나, 이별 후에도 멀쩡해 보이는 민윤기한테도 또한 미운 감정이 일었다. 지독히 냉정한 놈. 그래서 한심하게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제 눈물을 닦아주는 다정한 손길은 없었고, 그에게서는 이전만큼의 애정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련 맞게 또다시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흐허엉....흡, 흐윽..."

"그만 울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민윤기 목소리는 몇 번이나 심장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너는 정말 끝이야? 너는 정말 다 정리한 거야?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는 이전에 없던 고요와 냉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김석진은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이 되어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했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거친 낭떠러지 앞에 내몰린 사람처럼 김석진은 그를 붙잡아야만 했다. 또다시 반복하고 만 이기적인 방식일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미안해.. 흐윽... 우리,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뭐?"

"자꾸 나만 너 좋아하는 것 같구... 흐윽.. 나는 너한테 표현도 많이 하고, 보고 싶다고도 많이 하는데, 너는...! 너는...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해주고...흑..."

"......."

"무서웠어... 나만 점점 너를 더 많이 좋아하는 걸까 봐... 네가 나를 안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 자꾸 욕심이 나서..."


차가운 밤공기 탓일까.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쭈뼛거리는 감각이 일면서 전류가 온몸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마비됐다. 온 감각이 멈춰버린 듯한 기분.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전부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각. 이별의 사유를 이제서야 털어놓는 옛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민윤기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해졌다. 





".....그게 이유였어?"

"......윤기야.."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헤어지자고 했던 이유가,"


그의 목소리와 입가에 잇따라 조소가 걸린다. 


"고작 그딴 거 때문이었어?"

"윤기야, 나는...!"


다급히 그의 손을 붙잡아 보지만, 닿으면 병균이라도 옮기는 사람 취급하듯 거칠게 내쳐지고 만다.


"김석진 너 최악이다."


차디찬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서늘했고,


"너 때문에 나는 시발, 하.."


이제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인 최후의 끝인 것처럼.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 김석진."


애초부터 일방적이었던 이별은, 이제야 마침내 양방이 되어 김석진에게 되돌아왔다. 








* * *


오전 03:53     윤기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오전 04:30     윤기야... 나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오전 06:50     만나서 제대로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어. 연락 좀 줘...


민윤기는 그 후로 말 한마디 없이 운전했고, 김석진을 짐짝처럼 버리듯 집 앞에 내려주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도 전화를 열 통 넘게 걸고, 자존심도 없이 질질 매달리는 메시지를 몇 건이나 보냈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별 후폭풍을 한 달 내내 처맞아댄 김석진은 미련스럽게도 밤새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환멸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던 민윤기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죽고 싶었다. 


숙취만으로도 괴로운데 잠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말 그대로 몸 상태는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은 해야만 했다. 민윤기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정신머리부터 깨웠다. 찬물로 무리하게 씻은 다음 퉁퉁 부은 눈으로 겨우 옷을 골라 꾸역꾸역 입었다. 회사로 향하는 지옥철에서는 몇 번이나 애꿎은 역에 내려가며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비워내야만 했다. 


"김석진 주임... 오후 반차라도 내는 게 어때."


김석진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출근하자, 평소에 쿠사리 주기로 유명한 사수가 반차를 권유할 정도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써 마다하며 어색히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차라리 정신없이 바쁜 게 나았다. 그래야 온 머릿속을 멋대로 장악한 민윤기를 그나마 한편으로 밀어낼 수 있었으니까.


지잉.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조건반사적으로 액정을 확인한다. 그러나 상대는 그토록 기다리던 민윤기가 아니었고, 동시에 긴 한숨이 실망과 함께 터져 나왔다.  


박지민

어제 윤기형이랑 얘기 잘 했어?   오전 09:13


김석진과 민윤기, 박지민은 같은 대학교 동문이었다. 물론 셋 다 과도 달랐고, 학년도 달랐으나, 같은 동아리였다. 민윤기와는 대학 시절 내내 말 몇 마디 나눠보지 못할 정도로 어울리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박지민 주도 하에 술자리 몇 번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민윤기를 좋아하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사귀게 됐다. 불가항력적으로 말이다. 민윤기는 그렇게 김석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침범하여 뒤흔드는 존재였다. 


  오전 09:15     내가 다시 해보자고 계속 매달렸는데, 그 후로 연락도 없어.


힘없는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메시지를 보낸다. 동시에 어젯밤 일을 떠올리자 또다시 청승맞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서둘러 손가락으로 눈물을 쿡 찍어 닦는다. 후우. 또다시 깊은 탄식이 연기처럼 흐른다. 


박지민

윤기형 성격 잘 알면서 그래.   오전 09:20


오전 09:21     걔는 나랑 헤어지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 봐.


박지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전 09:23


오전 09:24     그게 무슨 소리야?


박지민

형은 좀 더 반성할 필요가 있어.    오전 09:26 


무슨 의미인지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는 말이었다. 박지민 마지막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본다. 좀 더 반성할 필요가 있다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헤어지자고 했던 이유가,"

"고작 그딴 거 때문이었어?"


그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 이별을 통보했었다. 내 마음만큼 그의 마음을 보답받지 못할까 두려워 어리석은 헤어짐을 고했다. 


"김석진 너 최악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 그 정도의 볼품없는 두려움 때문에. 그토록 철저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너 때문에 나는 시발, 하.."


괴로움이 가득한 힘겨운 얼굴로 민윤기는 끝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 김석진."


그가 바라는 대로 결국 그를 놓아주는 게, 어쩌면 그를 위한 가장 옳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섣불리 이별을 고했던 사람 따위가 다시 그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박지민

윤기 형한테도 정리할 시간을 줘야지, 형.    오전 09:34


박지민의 말대로였다. 끝까지 이기적이었던 김석진은 이번에야말로 민윤기를 놓아주어야만 했다. 어리석고 또한 미숙했기에 잘못된 선택을 저지르고 만 인간이 치러야 할 후회의 대가이자, 유일한 죗값. 


이별. 마침내 이별이었다. 








* * * 


몇 주가 지났다. 거짓말처럼. 이별 후 맞이하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고, 늘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김석진을 괴롭게 했다. 기나긴 밤은 지나치게 외로워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술을 마셔야만 했다. 삶이 더는 무기력하여,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하루 한 끼 겨우 챙겨 먹기 일쑤였다. 덕분에 위장이 죄다 망가졌는지 하루는 내장이 꼬인 것처럼 뒤집혀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멀쩡한 척 출근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민윤기를 잊은 사람처럼 살 수 없었다. 


박지민 김태형은 환상의 복식조가 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해서 불러댔지만,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져서 전부 마다하고 죽은 것처럼 지냈다. 늘 외모에는 자신이 있다 못해 흘러넘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 있는 낯선 몰골을 확인한 뒤로는 그 자신감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피골이 상접한 이 거렁뱅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민윤기와 헤어진 직후 기분 전환 한답시고 답지 않게 염색했던 브라운 컬러 머리카락이 어느새 뿌리가 올라와 지저분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는 미리 예약한 미용실에 가서 다시 검은색으로 덮었다. 그러니 조금 예전의 김석진 같았다.


그 다음날이었던 토요일에는 바깥바람도 쐴 겸 서점으로 향했다. 민윤기와 헤어진 이후로 주말 외출은 처음이었다. 밖은 이미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봄이었다. 그간 계절 감각을 상실해 버렸던 터라, 얇은 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결국 벗어 팔에 걸쳤다. 


의미 없이 서점 안을 서성이다 민윤기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책을 발견했다. 익숙한 제목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그의 흔적은 우연스럽고도 생경한 기쁨을 주었으나, 동시에 그만큼 서글퍼졌다. 그래서 서둘러 왈칵 치솟은 눈물을 손끝으로 찍어내야만 했다. 


결국 손에 한 번 쥐었던 책을 다시 내려놓을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그대로 계산한 뒤 쇼핑백에 고이 담아 모시듯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직접 요리를 해먹을 생각이었다. 미리 사다 놓은 찌개용 재료를 손질해서 가스불에 올린 다음, 끓는 동안 책을 읽으려고 했다. 민윤기를 만나기 전, 평소의 김석진처럼. 


Rrrrrrr- Rrrrrrr-


별안간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 벨 소리만 없었다면 말이다. 


[ 민윤기 ]


핸드폰 액정 화면에 뜬 이름 세 글자에 이렇게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거면서. 


"여... 여보세요..?"

["......."]

"......윤기야."


심장이 저 발밑 아래로 풍덩 떨어졌고, 펄떡이며 뛰어댔다. 핸드폰을 부여잡은 손끝이 미친 듯이 떨렸다.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목소리를 한껏 죽였으나, 대신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껏 시끄러워진 김석진의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귓가 너머의 상대는 웬일인지 고요한 침묵이었다.


"....윤...기야."

[".....김석진."]


그에게서 불린 제 이름 석 자가 이렇게나 두려운 건 민윤기를 여전히 사랑해서다. 


["김석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름을 오롯이 기다리는 건 민윤기를 또한 지나치게 사랑해서다. 그가 입 밖으로 내뱉을 말들이 잔인한 감정의 나열이라 할지라도.


["석진아."]


취기가 오른 목소리였다. 밖인지 도로 위로 차가 움직이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와 경적 소리가 뒤엉켜 웅웅 울렸다. 그러다 일순 주변이 고요해지면서,


["보고 싶어."]


민윤기 목소리만이 선명해졌다.


"나도.. 나도 보고 싶어..!"


말이란 건 형체가 없기에 고형의 물체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그가 돌연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마음을 무를세라, 다급히 화답했다. 왠지 모르게 더없이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어디야?"


쿵쾅쿵쾅 뛰어대는 제 맥박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였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일이었고,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보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지금 어딨어? 내가, 내가 거기로 갈게..!"


동시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겉옷을 집어 들었다. 서둘러 집 밖을 나서려는데, 어느새 펄펄 끓으며 김을 내뿜고 있는 찌개를 발견한다. 한달음에 달려가 황급히 가스불을 껐다.


["아니, 됐어."]


거절하는 차가운 목소리에 한껏 부산스럽던 동작이 서서히 멎는다. 실망스러운 기색을 전혀 감추지 못한 채로 김석진은 또다시 울먹인다. 쥐고 있던 겉옷을 애써 만지작거리며 두 눈 가득 차오른 눈물을 몰래 훔쳐 닦았다. 


["집 앞이야."]


민윤기의 뒷말을 듣기 전까지.


"....뭐?"


너무 놀란 나머지 사고 회로가 우뚝 정지하는 기분이었으나, 그보다 빠른 본능이 현관으로 몸을 내달리게 했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자 거짓말처럼 눈앞에 민윤기가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잃은 듯한 멍한 감각에 휩싸인다. 


"윤,"


그러나 그는 망상 속이 아닌 실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대로 집어삼킬 듯이 맞물린 입술이 이토록 뜨거운 감각일 리 없었다. 


"흐윽..."


동시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양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입술께로 떨어졌으나 민윤기는 그것을 거침없이 훔쳐냈고, 온몸의 무게를 여지없이 쏟아내며 김석진을 품에 겹쳤다. 등 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맞부딪치는 옷자락 소리가 집안을 거칠게 울렸다. 그간의 갈증을 해소하기라도 하듯 뜨거운 혀가 본능적으로 얽히고, 그의 살결이 코끝에 마구 닿았다.


"윤기야. 흑... 윤기야.."


벅찬 감정에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눈물이 그렁그렁 해져서 뿌옇게 바랜 시야 틈으로 겨우 그와 눈을 마주친다. 찰나와 같이 떨어진 입술 사이로 익숙했던 서로의 숨결이 뺨에 날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서로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상대의 뒷머리칼을 으스러질 듯이 움켜잡은 채로 민윤기는 거칠게 턱을 부딪치며 혀를 섞었다. 동시에 알싸한 위스키 향이 풍겼다. 익숙한 체향이 코끝을 마비시켰고, 동시에 다리가 풀렸다. 커다란 손이 단단히 허리를 받쳤고, 등을 가득 감싸왔다. 익숙해서 더 무서웠고, 그래서 더 그리웠던 민윤기. 


"못하겠어."

".....윤기야."

"널 잊는 게 안 돼, 나는."


도저히 못하겠어. 푹 젖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민윤기는 슬프게 웃는다. 잔뜩 쏟아져내린 앞머리에 초근히 젖어있을 두 눈가를 은연히 감춘 그가 김석진 어깨에 고개를 포옥 기대왔다. 저와 마찬가지였을 그의 괴로움과 고통을 이제서야 깨달은 김석진은 마침내 목놓아 엉엉 울었다. 어쩌면 또다시 이기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음이 저와 같음에 마음 놓고 기뻤다. 그리고 그만큼 고통스럽게 아팠다. 


"미안해.. 흐윽, 윤기야... 흐엉..."


그래서 그의 품 안에서 더욱 서럽게 울었다. 결국 쓰러지듯 바닥 위로 주저앉은 김석진을 따라 그의 앞에 무릎을 접고 마주 앉은 민윤기는 손을 뻗어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꼬박 닦아주었다. 


"김석진."

"흐윽...."

"석진아."


다정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얼마 만인지.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몽롱한 정신으로 그를 바라보자, 저를 향해 웃어주는 미소에 심장이 파르르 아프게 떨려왔다.


"나를 욕심내 줘."


나를 놓지 마.


"나를 네 맘대로 해."


김석진 너는 날 그렇게 다뤄도 돼. 


"너는 그래도 돼."


너는 이기적이어도 돼. 무리하게 네 방식을 강요해도 돼. 내 애정을 욕심부려도 돼. 이기적이게 일방적으로 굴어도 돼.


"나는 앞으로도 또다시 너를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가장 치명적이고도 커다란 상처를 품에 새긴 사람은 김석진이 아니라 민윤기였다. 감히 김석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 자체에 대해 절망적인 허무함과 무력감을 절감했을 테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미지의 영역에 섣불리 손을 뻗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윤기는,


"나를 놓으려고만 하지 마."


저를 향해 다시금 손을 뻗어내는 그의 용기는 그렇기에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윤기야. 윤기야..."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하는 그의 목소리와 서글픈 표정에 더는 미안하다는 말 따위를 꺼낼 수 없었다. 그것 또한 이기적인 마음임을 알아서였다. 대신에 그와의 이별을 죽을 만큼 후회하고 반성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린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아니,


그런 실수를 또다시 반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랑해, 윤기야."


네가 없던 시간은 너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웠기에. 


"나랑 다시... 만나 줄래?"


나 욕심부려도 될까? 내 마음을 너한테 강요해도 될까? 여전히 눈물방울을 잔뜩 단 채로 조심스럽게 그를 향해 묻는다. 민윤기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뜨리며 조용히 웃었다. 


"응. 그래도 돼."


그가 다시금 김석진의 양 뺨을 끌어다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마치 서로를 잊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 * *


"다 네 덕분이야, 지민아."

"응? 뭐가?"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했다. 오랜만에 보는 김석진 얼굴도 이전에 본 적 없는 세상 밝은 모습이었다. 민윤기랑 그렇게 죽네 사네 지지고 볶고 하더니 결국 다시 붙어먹었구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인지라 그다지 놀라지 않고 축하해 주고 있는데, 뜬금없이 네 덕분이라는 말에 박지민 표정이 금세 의아해졌다.


"네 말대로 윤기한테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었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정말 놓아줘야겠다 싶었었거든."

"......??"

"네가 나한테 반성 좀 하라고 했잖아. 그때 정신이 확 들더라고. 내가 그동안 정말 이기적이었구나.. 하고."

".....뭔 소리야?"

"네가 그때 조언해 줬었잖아. 기억 안 나?"


도통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 발언들뿐이었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민에 휩싸인 박지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와 함께 뜬 액정 화면 속의 이름을 확인한 김석진 눈 밑 애교살 가득 접어가며 배시시 웃는다.


"윤기 금방 도착한대."

"아니, 형 잠깐만? 혹시 내가 그때 반성하라고 했던 얘기 말하는 거야?"

"응, 맞아. 윤기한테도 정리할 시간을 주라고 했잖아."

"아..?"

"내가 진심으로 반성해서 하늘이 날 용서해 줬나 봐. 아니다, 윤기가 날 용서해 준 거구나, 헤헷."


아무 생각 없이 헤벌쭉 웃는 상대를 벙찐 채로 바라본다. 아까부터 저 형이 자꾸 뭔 소리를 하는 거람? 분명 무슨 커다란 오해가 있는 듯했다. 


"형, 그때 내가 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어, 윤기야! 왔어?"


때마침 등 뒤로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오, 형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다, 박지민."


윤기 왔다아! 세상 흐드러지는 미소로 그를 맞이하는 김석진과 자연스럽게 그 옆에 철썩 붙어 앉는 민윤기를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본다. 


"금방 왔네?"

"응, 작업 일찍 끝나서."

"뭐 마실래?"

"아니, 됐어."

"왜애?"

"차 가지고 왔어. 그거 타고 가."

"진짜? 헤헤."


 술 많이 마셨어? 아니이. 오늘 회사에서는 별일 없었고? 으응. 들어오자마자 김석진 상태부터 꼼꼼히 살피는 민윤기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신경 안 쓰는 척하는 무심한 얼굴과 말투로 대화 주제는 사뭇 다정한 점이 말이다. 헤어진 전남친이 술 처먹고 전화해서 온갖 진상 짓 다해가며 불러댔을 때도 딱 이랬다. 


서로 일 센티미터의 틈도 없이 찰싹 들러붙어서는 꽁냥꽁냥거리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이제서야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갔던 건지 각이 딱 나온다. 


"아, 맞다. 지민아, 방금 무슨 얘기 하려던 거 아니었어?"


무슨 얘기? 잔뜩 물음표를 단 두 사람이 저를 동시에 응시했다. 박지민 괜히 허공을 바라보며 애먼 볼만 긁적인다. 


"어, 그게..."


반성 좀 하라는 얘기는 형이 눈치가 드럽게 없는 걸 반성하라는 뜻이었는데. 윤기 형한테 정리할 시간을 주라는 건, 그 형도 당연히 다시 만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생각할 시간을 좀 주라는 뜻이었고. 


"글쎄.... 뭐랄까."


아니, 애초에 아무 마음에도 없는 전남친이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저 민윤기가 부리나케 달려올 사람이겠냐고. 이 눈치 더럽게 없는 김석진아. 


"어... 까먹었어."

"엥? 뭐야, 박지미인."


단 한 번도 끝난 적 없었던 서로를 향한 애정은, 저만 알고 있는 걸로 해야겠다. 그리고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던 조언도.


뭐, 어쨌든 잘 됐으니까. 그걸로 된 거지. 뭐.












오랜만에 글로 인사드립니다! 지독하게 민윤기랑 얽히는 스토리를 한번쯤은 써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첫 슙진 단편입니다.


헤어지면 가차없지만 의외로 순애보인 민슈가와 진심이 되는 사랑이 무서운데 또 애정 결핍은 있는 석찌니의 셀프 흑역사 제조 캐릭터가 특징.. 거기다 남 연애에 그닥 관심이 크지 않는 조력자(? 짐니까지..!


작중 석지니 행동에 공감성 수치 씨게 와서 혼자 입 틀어 막은 장면 몇 개 있었습니다..(흐린눈

슙진 맛나네여 냠냠







진른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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