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목격자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이야기를 멈추고 싶어도 앞에선 그가, 뒤에선 그녀가 버티고 있었다. 흐름이 끊기는 순간 영영 입을 다물리란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래서 심리를 잘 아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피곤하다.



“그 집엔 어떻게 들어간 거야?”



등받이에 몸을 쭉 늘어뜨린 그녀가 노래하듯 물었다. 나른한 숨과 함께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반쯤 감긴 눈은 기특하게도 아직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감싸 쥔 머그잔은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위태롭게 출렁이며 물결쳤다. 얼마나 내 이야기가 궁금하면 졸음을 참고서라도 들으려 할까.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컵을 뺏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거실의 커다란 창문을 깨야 했어. 마침 마당에 제설용 삽이 있더라. 머리 부분이 철로 된, 공사장에서 쓸 법한 삽 말이야. 그걸 들고 미친 사람처럼 창문을 내리쳤어. 꽤 무거웠는데, 다행히 창이 금방 깨졌어.”

“이왕 깰 거, 창 걸쇠 근처의 유리를 부수는 게 효율이 좋지 않았어? 현장은 정중앙이 박살 나 있더라고.”

“유리가 두꺼워서 어쩔 수 없었어. 되는대로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팔다리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필사적이었던 만큼 그날의 인상이 몸에 선명히 남은 거겠지. 목구멍에서 매캐한 연기가 올라왔다. 과하게 힘을 쓴 근육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을 일으킨다. 기억이란 참 대단하지.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 악몽을 다시 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창문이 깨지자 먼저 새카만 연기가 퍼져 나왔어.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숨이 턱 막혔지. 다행히 손수건이 있어 얼굴을 막고 잠시 멀리 서 있었어.”

“냄새 때문에?”

응. 연기야 어찌저찌 참아본다지만…. 그 역한 냄새 넌 상상도 못 할걸. 불행 중 다행으로 냄새가 사그라드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어.“



나는 검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날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마 그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는 중일 테지. 나는 그의 상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체감상 5분 정도 지났을 겁니다. 뚫은 구멍을 충분히 넓힌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바닥에 발을 딛으니 질퍽거리는 물소리가 나더군요. 재와 물이 뒤섞이지 않은 상태의 웅덩이였습니다. 스프링클러 탓에 온 집안이 물로 가득했죠. 화재 때문에 전기가 나가 가전제품의 전원은 모두 꺼져있었고요.”

“그 집은 그늘이 진하니 손전등이 필요했겠어요.”

“네. 그래서 자세히 둘러보진 못하고 대충 볕이 드는 곳만 봤습니다. 휴대폰도 손전등이 달려있긴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어요.”

“안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거실 한 가운데 시커먼 덩어리가 있었어요. 묵직한 것이 새카맣게 탄 채로 엎어져 있었죠. 상상이 가시나요?”



사람이. 검사님, 사람이.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재개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휴식이 필요했다.



“오븐으로 새카맣게 태운 스테이크와 비슷했어요. 잘못 구운 식빵 덩어리 같은 커다란 숯이 있었죠. 맨 처음 그것을 봤을 때, 무언가의 모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누가 그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한 크기는 성인 남성이나 체격이 큰 여성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 누가 당장 자신의 앞에 놓인 물체가 죽은 사람이라고 판단해낼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은 이성보단 감성이 앞서는 법이다.

그 물체가 시체라는 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엎어져 죽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고, 알 생각도 없었으니까. 덕분에 수사관들에게 쓸모없는 의심을 샀다. 일반인보다 짧은 시간 동안 헤매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틈이 충분히 수상했을 테니까.

눈 앞에 빌어먹을 검은 형체가 아른거렸다. 토악질이 올라온다. 난 애써 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스프링클러 때문에 군데군데 덜 탄 부분이 있어 사람인 걸 알았어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더군요. 맥박은 없었고, 코 주변에는 검댕이 묻어있었어요. 자세를 보아하니 거실을 통해 탈출하려다 실패한 것 같았어요. 아무튼 도움을 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죠. 그 안에선 뭔가를 더 할 수 없었거든요.”

“거기까지가 신고하기 전의 상황이군요.”

“예.”

“무섭지는 않았습니까.”

“그닥. 그다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오만상을 쓰며 혀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내가 겪은 일의 순간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모양이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과하게 집중하더라니. 그녀는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긴 매일 죽은 사람을 보며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지.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과 죽은 사람의 마지막을 되새기는 것만큼은 죽어서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그 뒤에는?”

“경찰과 구급대원이 올 동안 마당에 서있었습니다.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아예 나가버리기엔 좀.”



두 사람은 티 내지 않았지만, 꽤 놀란 듯했다.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이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리한 두 친구의 머릿속이 훤히 보였다. 하긴 내 행보가 일반적인 형태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

하지만 그 당시 내 사고와 판단은 두 사람의 예상과 달랐다. 혹시나 그 남자가 되살아나진 않을까, 혹시 움직이진 않을까, 숨을 쉬진 않을까.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현실이 되길 빌어보며 그곳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이러든 저러든 내가 그 집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사람들을 지켜보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쏟아진 휴지통, 형체가 사라진 휴지 더미, 담배꽁초, 잿더미, 가게 홍보 문구가 적힌 싸구려 라이터, 녹아서 눌어붙은 마요네즈 병. 가장 눈에 띈 건 술병이었어요. 도수가 높기로 유명한 술이 뒹굴고 있었거든요. 붉은색 중국풍 라벨이 붙은 술, 알죠? 솔직히 온종일 식용 알코올을 들이붓던 사람이었으니 그러려니 했어요. 이 양반이 기어코 사고를 쳤구나 싶었죠.”

“평소에 좀. 심했습니까?”

“제가 직접 만행을 겪은 적은 없지만, 이사 올 때 이웃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조심하라고 경고하더군요. 그러니 믿을만한 정보이지 않겠어요?”



사실 이웃들의 이야기는 좀 더 과격하고 역겨웠다. 본가로 겨우 돌아왔더니 옆집 사람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라니.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진작에 다른 곳으로 이사하셨을 것이다. 떠나기 싫다고 하셔도 내가 어떻게든 다른 집을 알아봤을 테지. 이럴 줄 알았다면 본가는 무슨,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내가 겪은, 죽은 남자의 만행은 그래도 소문보다 가벼웠다. 담 너머로 시비를 걸고, 한밤중에 콘서트를 열고, 고성방가하고, 무언가를 제집 담에 집어 던졌다. 아마 화재로 죽지 않았어도 곧 쓸데없이 용감한 누군가가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내 앞의 사내에게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끝내주는 진정 효과를 보려다 끝내주게 저승으로 갔겠죠.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작열통은 매우 고통스러웠을 텐데요. 비명이나 구호 요청은 듣지 못했습니까.”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보였다.



“연기가 나기 한참 전에 비명이 들리긴 했어요. 그치만에 워낙 만취 상태로 소리 지르던 날이 많아서요. 또 난리를 치는구나 싶었죠.”



“사건 전후 며칠 사이로 수상한 차량이나 의심스러운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평소보다 조용했어요. 공휴일과 주말이 붙은 주간이라 다들 집을 비웠거든요.”



난 일부러 ‘조용’이란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 사건 이후로 몇 번이나 같은 증언을 반복하는 건지. 계속되는 확인 질문이 슬슬 피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솔직히 난 그들에게 의심할 여지를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난 기억력과 사고력을 몇 차례나 시험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잖은가.

속뜻을 알아들었는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댔다. 긴 숨소리와 함께 몸이 축 늘어졌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꽤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된 것 같네요”

“그럼요. 아, 한 가지만 더. 그 시체가 집주인 남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혼자 사는 집에 집주인이 아니라 외지인이 죽어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죠.”



그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어느새 그에게 다가온 내 친구는 웃음을 참느라 볼이 빵빵해진 모습으로 그의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익숙한 자세로 제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물론 등을 토닥여주는 상냥한 손짓도 잊지 않았다.



“다를 거라고 했잖아.”



다정함이 그득한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있었다. 배려한답시고 꾹꾹 눌러놓은 즐거움이 훤히 보였다. 성격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진정한 친구라며 손뼉을 쳐줘야 할지. 그녀는 내 머릿속이 복잡하든 말든 검사의 어깨에 턱을 걸쳤다.



“이번 건 아닐 거야.”



그녀는 손가락을 펼쳐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어미 새를 보는 새끼 새처럼 우리의 시선은 모두 그녀의 손끝으로 모였다.



“연쇄 방화 사건과 이번 사고의 공통점은 발화방식뿐이야. 나머지는 전혀 다르잖아. 부검에서도 신경 쓰일만한 점은 없었어. 이건 누워서 봐도,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봐도 별개의 일이야.”

“하지만 이번 사고는 탐문과 현장 사이에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특히 담배. 피해자가 술은 좋아했어도 담배는 아주 싫어했어. 하지만 서랍에는 담배가 가득 들어있었지. 게다가 주변 가게나 편의점에서 담배를 샀다는 증언도 없어. 담배와 관련된 인터넷 기록 역시 전혀 나오지 않았어. 심지어 담배 피는 모습을 본 사람조차 단 한 명도 없어.”

“그뿐이잖아.”

“하지만 이상하잖아.”

“그렇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모두 딱 맞아떨어지잖아. 사고가 분명해.”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작은 한탄이 새어 나왔다. 집을 나온 답답함이 공중에서 허망하게 흩어졌다. 이리 안타까워할 정도라니. 수사관은 무엇이든지 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지만 아무래도 그의 집착은 좀 과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내게 전화했구나. 광기를 알고 나니 주변이 달라 보였다. 이 서재는 무서울 정도로 눅눅했다. 바닥과 가구에는 끈적한 집념이 흘러내려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완전히 닿으려면 몸을 일으켜야겠지만, 표면을 만져보기엔 이 짓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근데.”



그녀가 다급하게 날 불렀다. 고개를 들자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 위 또 다른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 속은 괜찮아? 이런 이야기 힘들어하지 않았어? 생각보다 잘 버티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잠시 몸을 굳혔다. 이리저리 표정을 바꿔가며 괜찮다는 말을 표현해보려 했지만, 죄다 어색하고 괴상망측했다. 누가 봐도 괜찮지 못 한 사람의 거짓말이지 않은가. 젠장.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리도 없었다. 그러게, 내가 그만하자고 온몸으로 표현했을 때 멈췄어야지. 눈치가 없어. 나는 그대로 내 가방을 끌어안았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하. 어색한 웃음이 입술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하하하, 당연히 죽을 거 같아.”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음, 역시.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내 팔을 붙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녀가 내 몸을 누르는 동안 집 주인은 두꺼운 담요를 찾았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닌 뭉텅이로 왕창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집어 던졌다.

두 사람은 날 김밥 싸듯 담요로 돌돌 말았다. 두어 장을 연결해 감싸고 또다시 서너 장으로 풀리지 않도록 고정해 말았다. 온갖 히터가 내 몸을 쏘고 내 앞에 놓인 차가 서너 번 바뀌고 나서야 그들은 날 일으켜주었다. 물론 담요는 풀어주지 않은 탓에 그야말로 앉은 번데기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합시다.”

“그게 좋겠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비도 그칠 것 같지 않은데.”



그는 카세트 녹음을 멈추곤 서재 책상으로 향했다. 라디오 볼륨을 천천히 최대로 높였다. 빗소리가 가득하던 방안은 어느새 잔잔한 팝송으로 가득했다. 그가 서랍을 열자 덜그럭거리며 물건이 앞쪽으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속을 조용히 응시했다.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히는 걸 보니 신경 쓰이는 물건을 본 모양이었다.

그가 꺼내든 물건은 명함 크기의 작은 종이였다. 멀리서 봐도 빳빳해 보이는 질감 덕이 그가 흔들어도 모서리만 휘어질 뿐 꺾이거나 뒤집히지 않았다. 그는 시선만 움직여 빠르게 내용을 흝은 후 책상 아래로 허리를 숙였다.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희미하게 매캐한 냄새가 났다. 나를 배려해 내가 보지 못하도록 몰래 종이를 태우는 모양이었다. 한참 부스럭거리고 나서야 그는 다시 상체를 들었다. 손에는 역시나, 은색 지포 라이터가 있었다.



“다들 카드 게임 좋아하십니까?”



검사가 활짝 미소 지었다.



YUNSSAEM 맞음 인외 초월자 미스터리 최고ㅡ!

농사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