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링 코만도스(THE HOWLING COMMANDOS).

2차 세계 대전 당시 캡틴 아메리카가 이끌었던 다국적 외인부대. 하이드라와 맞서 싸운 그들은 한명 한명이 영웅으로 기억되는 위대한 전쟁영웅들이었다. 

최소한 아이든이 본 책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에 아이든 헌터는 없었다. 더욱이 앞으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었다.


한가지의 재밌는 변수만 없었다면.




아이든 헌터, 그것은 변수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물질. 본래 정해진 것들을 엉망진창으로 꼬아버리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인간. 어떠한 인과관계도 신경쓰거나 걱정하지 않고 현실에만 집중하는 그 태도는 때로 재미있는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하나의 사실에서 기인하는데, 그것은 바로 7명의 하울링 코만도스 중 5명이나 되는 이들이 107연대 출신 병사라는 것이다.




107연대, 하이드라의 한밤중의 습격, 그리고 아이든 헌터.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이야기다. 모든 107연대의 병사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불타는 밤, 한 동양인 여자아이가 삽 하나 들고 모든 하이드라를 때려눕혔다는 이야기. 수많은 소문들이 거짓과 기만을 밥 먹듯이 하듯, 몇몇 병사들은 이 소문 역시 거짓을 기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여기, 하울링 코만도스의 멤버가 되기 전이었던 티머시 듀간과 제임스 모리타와 게이브리얼 존스는 행동력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 괴소문이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한 그들은 그 소문의 근원지로 가보았고, 그곳에서 소문의 주인공을 만났다.


동양인 여자아이, 160cm도 안되는 키에 안경을 쓴 신경질적이고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 그러나 그런 생김과는 달리 그들이 처음 본 아이든 헌터는 자신보다 몇배나 두꺼운 팔뚝을 가진 군인들을 팔씨름으로 완승을 거두고 있었다.


'내 놔.'


그 셋이 들은 헌터의 첫 마디였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모든 패배자들이 한숨을 푹푹 쉬며 헌터에게 초코바를 상납했다.


'왜, 또 도전할 놈들 있나?'


아이든 헌터가 한 손에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옆에서 버키 반즈가 바람을 잡았다.


'또 없어? 우리 107연대 저력은 이게 끝이야?'


넌 누구 편이니. 아이든 헌터가 버키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버키 반즈는 아이든 헌터에게 눈을 찡긋하며 초코바 하나를 슬적 했다. 아이든은 그걸 눈감아 주며 팔을 흔들었다.


'또 없냐?'

'내가 해보지!'


게이브리얼 존슨, 별명은 게이브. 그는 자타공인 마당발이었으며 시끄러운 성격. 이런 일에 빠지면 섭섭한 인간이었다.

재미있게 팔씨름을 구경을 하던 그렇게 그는 아이든 헌터에게 도전했고,


'끝.'


패배했다.


'이럴 순 없어!'


자신의 간식거리를 전부 털어 한 재도전도 탈탈 털리고만 게이브는 헌터의 자비로 작은 비스켓 하나만은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107연대의 일원들에게 깊이 각인된 사건이었다.


당연히, 아이든 헌터한테도 그랬다.



"뭐야.. 너 초코바 빌런?"

"...헌터!"


아이든에게 초코바를 탈탈 털렸던 게이브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너 왜 여기있어?"


아이든이 되려 물었다.


"그럼 너는 왜 여기있어."

"나, 나는 군인인데..?"

"아,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아이든 헌터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평지였고, 저녁이었으며, 모닥불이 옆에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아이든이 물었다.


"이거 무슨 상황인지 나한테 설명 좀 해줄래."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건 제임스 뷰캐넌 반즈였다. 슬프게도 아이든은 쫄쫄이를 입지 않은 캡틴 아메리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졸지에 모든 시선을 받게 된 제임스 뷰캐넌 반즈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얘 아는 사람?"


버키의 손가락이 아이든 헌터를 가르킨다. 반즈를 포함 총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버키는 잠깐 손가락을 손목에 톡톡 부딪히다가, 머리를 한번 헤집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긴 체코야. 저기 있는 저 녀석들은 나와 같은 하울링 코만도스 팀에 소속된 전우고. 캡틴 아메리카가 우리를 이끌고 있어."

"아메리카 대위(Captain;캡틴-단체의 우두머리, 대위)? 그거 성씨는 아니지?"

"푸흡.. 그건 별명이야. 캡틴 아메리카(Captian America)."


헌터는 버키의 손가락을 따라 한 금발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상당한 거구를 거진 근육질의 남자가 답지 않게 해맑게 웃으며 아이든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든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버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신문에 나오는?


"응, 그 사람 맞아."

"..흐응.."


아이든이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진짜 스티브 로저스인가, 내가 아는? 버키는 헌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슬퍼보이는 스티브의 모습에 웃음을 꾹 눌러참았다. 사실 아이든 헌터는 속으로 자신이 아는 브루클린 꼬맹이와 저 금발을 대조해보고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 미국 대장.. 이름 구지..


"지금은 임무 중이야?"

"아니, 아직 결정은 안됐어. 한 내일 쯤에 새로 임무를 받을 거야."

"그럼 저녁 먹는 중?"

"저녁은 식당에서 다 먹었고, 그냥 오랜만에 모여앉아 대화나 하고 있었지."


아이든은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브가 프랑스어로 한 군인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는 것을 보았다. 아마 저 프랑스인이 자크 데르니에일 것이다. 레지스탕스 경력이 있다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내가 나타난 건가."

"그렇지."


버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든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럼 여기는 아직 군부대 안이라는 건가."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본 아이든 헌터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젠장, 일이 복잡해졌다. 거처를 얻는다면 기왕이면 링크된 인물 곁이 나은데, 이곳은 군부대. 즉 누군가를 함부로 데려오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그 누군가가 동양인에 수상한 어린애면 더더욱. 아이든이 물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든이 물었다.


"나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글쎄."


버키도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든이 이마를 짚었다.


"그건 됬고, 일단 자기 소개부터."


뒤쪽에서 자신을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는 몇몇을 가르키며 아이든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물어볼 거 있냐."

"나!"


게이브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어떻게 허공에서 튀어나온 거야? 너희 나라에서 무슨 주술이라도 배웠어?"

"..생각 하고는."


아이든이 신랄하게 말했다.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아이든 헌터가 거리낌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까."

"..?"


???, 두명을 뺀 모두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아이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자기 소개부터 제대로 할까, 난 아이든 헌터다.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부락의 리더지. 이름은 아이든으로 부르든 헌터로 부르든 상관없어. 하지만 애칭은 사절이다."


안경을 추켜올리며, 아이든 헌터가 말했다.


"너희도 자기 소개부터 하시지?"


흑남색 머리카락, 흑남색 눈동자. 어두컴컴한 심연마냥 시커멓기 그지없는 색의, 창백한 피부를 가진 동양인 소녀가 말한다. 한쪽 뺨에 붙인 하얀 반창고와, 반대쪽 턱에 있는 흉터같은게 눈에 띈다. 둥근 안경을 쓰고, 어딘가 허술한 무장을 한 그 소녀는 한 없이 당당해 보였다.


게이브가 가장 먼저 입을 연다.


"게이브리얼 존스, 일병이고, 3개 국어를 할 수 있고, 소속은 하울링 코만도스."


어두운 피부를 가진 흑인 남자가 말한다.


"자크의 통역을 맡고 있지."


그러면서 그는 바로 옆에 있는 한 백인에게 프랑스어로 이야기 한다. 아이든은 그가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들었다.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온 여자애고,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통역에 백인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만나서 반가워요, 꼬마 아가씨.(이 대목에서 아이든은 얼굴을 찡그렸다.) 내 이름은 자크 데르니에고 프랑스인이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게이브가 통역을 하기도 전에 아이든이 대답했다.


{그래. 만나서 반갑군, 자크 데르니에. 아이든 헌터다. 꼬마는 그렇다치고 아가씨라고는 부르지 마. 그런 호칭 딱 질색이니까.}


게이브와 자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나요?}

{배웠어. 학교에서. 그리고 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집어치워도 돼.}


아이든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게이브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에서 다른 동료들이 게이브를 닦달했다. 야, 통역! 그러는 와중 버키가 제 옆에 서 있던 덤덤을 툭 쳤다. 소개 안하냐.


"아, 그렇지. 그러니까... 다시 만나 반갑네, 아이든 헌터. 나는 티머시 듀간이고, 107연대 병장일세. 편하게 덤덤이라고 부르게."


주홍빛 수염을 가진 덤덤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밀었다. 아이든 헌터는 그의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아 짧게 악수했다.

다음은 붉은 빵모자를 쓴 남자였다. 아이든은 그 모자를 보고 그가 영국인일 것이라 예상했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좋아, 만나서 반갑구나, 헌터. 나는 제임스 펠스워스란다. 여기 제임스만 세명이니까 몽고메리라고 부르렴."


그가 영국식 억양의 영어로 말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건 내 미들네임이야. 그러면서 한 손을 내민다. 아이든은 이번에도 그의 손을 잡아 짧게 흔들었다.

다음은 아이든도 아는 사람이었다. 107연대의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니까.


"나 알지? 짐 모리타."

"어, 그래."


익숙하다는 듯이 악수를 나눈다. 제임스, 그러니까 짐 모리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자였다. 캘리포티아 출신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서 좀 껄끄러울 사이였으나 아이든 헌터는 그 생명의 은인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짐은 아이든에게 한 수 접어주었고 아이든도 그랬다. 그냥 서로 선만 넘지 않으니, 둘은 많은 것을 공유했었다. 예를 들면 왜 양놈들은 그렇게 신발신고 집에 들어가는 이유라든지..


그를 끝으로 아이든은 마지막 한 명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군복을 각을 잡아 입은 남자. 그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이였으며 꽤나 미남인 인상이었다. 아이든 헌터는 그의 키와 몸무게를 가늠했다. 근육이나 몸의 밸런스를 보니 상당히 오래 단련을 한 것 같았다.


"...."

"...."


아이든이 눈썹을 까닥였다. 자기소개를 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아이든이 버키에게 물었다.


"캡틴 아메리카가 영어를 못한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는데."

"엄, 아이든?"

"뭐."


아이든이 태연스레 말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은 알고 있다. 책에서 질리도록 나왔으니. 그래서 쟤 자기 소개 안한데?


"..."


순간 캡틴 아메리카-로 추정되는-가 무언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이내 굉장히 충격을 받은 표정에 아이든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던 버키가 순간 소리쳤다.


"아! 아~ 그래서~."


깨달았다는 듯 손을 탁 치는 제스처에 아이든이 얼굴을 찌푸렸다. 솔직히 아이든 헌터는, 캡틴 아메리카의 본명을 알았지만, 그랬지만. 저 놈과 그 스티브 로저스는 동명이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몸뚱아리 차이 너무 심하잖아.


그러나 그런 속도 모른채, 버키는 싱글벙글 웃더니 캡틴 아메리카를 가르켰다.


"아이든, 진짜 얘가 누군지 모르겠어?"

"..."


이 새끼 봐라..? 아이든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자기가 소개하기 전까지 사람을 속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오오.. 뭐해, 자기 소개 하지않고. 응? 캡틴."

"..."


자신의 허리를 툭툭 치는 버키의 행동에 캡틴 아메리카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든은 자신의 '설마' 가 사람을 잡을 준비를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캡틴 로저스(로저스 대위)라고 하네. 아이든 헌터."

"..."


아이든이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군더더기 없는 행동에 로저스 대위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진짜 나 모르겠나?"

"누구신데요."


예상간다, 예상가. 속으로 생각하며 아이든이 말했다. 애가 뻥튀기가 됐어. 로저스의 눈동자가 울망해졌다.


"아이든! 날세, 스티브 로저스!"

"아니 시발 진짜였냐!"

"아이든, 입!"


눈 앞에서 잉어킹이 갸라도스로 진화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기분이 된 아이든이 양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누가 스티브 로저스 아니랄까봐. 소스라치게 놀란 스티브가 아이든의 말투를 지적했다. 아이든 헌터가 되려 소리쳤다.


"넌 왜 말투가 군대식이 됬냐, 미친놈아!"

"아니, 그건. 습관이..!"

"아씨, 너 약 했냐? 뻥튀기야?"


아이든이 직구로 물었다. 벌크업을 다섯배 정도는 한 스티브가 울상이 되었다. 그 옆에서 버키를 제외한 하울링 코만도스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알다 마다! 유구하지! 아주!"


아이든이 빽 소리쳤다. 아하하하하! 버키가 큰 소리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가 스티브 로저스라는 것이 확인이 된 순간 아이든 헌터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바로,


"내가 미쳐, 진짜!"

"아아아악!"


폭력이었다.

망설임 없이 스티브의 귀바퀴를 죽 잡아당겨 비튼 아이든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가! 미치지! 아주! 어째 하나같이! 지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꼬맹이들 뒷바라지 해줬더니! 아주그냥! 어! 전쟁 나오니까 좋냐? 좋아!"


퍽퍽퍽퍽퍽퍽.

아이든 헌터의 현란한 등짝 스매싱에 스티브 로저스는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다.


"아악!"


슈퍼 솔져 혈청을 맞아 강화인간이 된 이후로는 왠만한 고통엔 눈도 깜짝 안했는데, 아이든에게 있어 그건 해당 사항이 아니었나보다. 손이 엄청나게 매웠다. 스티브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사정했다.


"아! 아이든! 미안! 잠깐만! 놔줄래!"


그리고 버키는 그 모습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저거 익숙하네..

하여튼 아이든은 스티브가 빌든 말든 상관없이 그의 등짝을 사정없이 때렸다. 저 멀리 막사에까지 그 소리가 울렸지만, 성인 남자들이 소리지르고 노는게 익숙한 간부들은 그 어떤 참견도 하러 오지 않았다.


결국 눈물이 찔끔 고일 때까지 두드려 맞은(놀랍게도, 그 어떤 하울링 코만도스도 스티브를 돕지 않았다.) 스티브는 등짝이며 팔뚝을 어루만지며 저도 모르게 버키의 뒤로 슬금슬금 도망갔다. 그 꼴을 보며 하울링 코만도스가 킬킬 거리며 웃었다.


짜증난 표정을 짓는 아이든, 그런 소녀에게 자크가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캡틴과 알고 있는 건가요. 헌터?}

{정리하자면 긴데.. 일단 앉아봐. 설명해 줄테니.}


자크의 프랑스어에 아이든이 대답했다. 너희들도 일단 앉아라. 내 이야기부터 알려줄테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명령조를 쓰는 헌터의 모습에 하울링 코만도스들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따랐다.


다들 자리에 앉자, 아이든 헌터는 자연스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티브가 놀랐다.


"아이든, 거기 앉으려고?"

"의자가 없잖아."

"..여기 앉을래?"


스티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든은 콧방귀를 뀌었다.


"필요 없어."

"그래.."


너무나 단호한 한 마디에 차마 반론도 하지 못한(아까 맞은게 좀 남았다.) 스티브는 시무룩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오빠 무릎에 앉을래?"


이번엔 버키 반즈가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리며 윙크했다.


"..."


아이든 헌터는 험악한 얼굴로 버키 반즈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극렬한 표정의 거부에 버키가 시무룩해졌다.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들이 그런 둘을 비웃었다.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든은 게이브에게 한마디 했다.


"통역 열심히 해라. 존스."

"Okay."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이든이 눈을 한번 깜박였다.


너희들도 아까 들었겠지만, 나는 다른 세계 사람이야. 시공간을 이동하는 아주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나는 이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없고, 하는 법도 몰라. 그리고 저 로저스와 반즈, 이 두 꼬맹이는 내가 이 세계로 떨어질 때 이동하는, 고정된 좌표 같은거야.


말을 마친 아이든이 게이브가 통역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아이든에게 버키가 작은 초콜릿 조각을 꺼내며 소곤거렸다. 먹을래? 아이든이 대답했다. 너 먹어.


그리고 내가 이 두 꼬맹이를 만난 건.. 1929년이지. 그 후에도 난 내 세계와 이 세계를 여러번 오갔고.. 그래서 이 녀석들하고의 인연은 꽤 길어. 오늘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이 세계로 이동된게 저번.. 그러니까 1943년 9월... 9일이었나 8일이었나 할걸?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든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만나니 두 꼬맹이가 군대에서 같이 구르고 있네."

"그럼, 최소한 캡틴이랑 버키가 10살 때 쯤 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덤덤이 흥미롭게 물었다. 아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때 사고치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아이든이 스티브를 째려보았다. 덤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아이든이 다른 세계에서 온 걸 믿기 힘든 모양새였다.


"여전히 믿기 힘드냐?"

"아무래도 그렇지."


게이브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이든은 역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안 믿는다는 걸 억지로 믿게 할 생각은 없어. 믿든지 말든지.. 그건 스스로가 판단할 문제니까."


버키는 잠깐 눈을 옆으로 굴렸다가, 다시 아이든을 보았다. 상당히 냉정한 반응이로군.


"뭐, 뭣하면 이 두 놈이 진짜라고 말 할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든이 스티브와 버키를 한번씩 까닥이며 말했다. 몽고메리가 둘을 쳐다보았다.


"..아이든이 한 말이 진실이기는 하네. 우리가 몇 번이고 봤으니까."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데 안 믿기는 힘들지."


스티브와 버키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자크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똑똑히 봤죠. 어떻게 안 믿어요. 허공에서 사람이 나타났는데.}


게이브가 키들거리며 그의 말을 통역했다. 아이든이 버키의 물컵을 뺏어 마시더니 스티브를 본다.


"이제 네가 썰 좀 풀어봐. 도대체 그 몸뚱이 어떻게 된거냐? 내가 기억하기로, 이렇게 미래가 좋은 골격이 아니었는데."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올리며 헌터가 말했다.


"혹시 그 슈퍼솔져 혈청에 부작용 있는 건 아니겠지? 근육이 녹는 꼴은 보기 싫은데."

"..."


버키는 아무 말 않고 스티브를 흘긋 바라보았다. 스티브가 말했다.


"없어, 부작용."

"..."


아이든은 스티브의 그뉵그뉵한 팔과, 그뉵그뉵한 가슴과, 그뉵그뉵한 배와, 그뉵그뉵한 다리를 보았다.

부작용이 없다면 그거대로 위험하지 않나 싶었다. 저걸 왜 병원에 기부 안 하고 군인 만들 때 쓴거야? 역시 윗대가리들은 소아마비에 걸린 어린 아이들에게 관심따윈 없는 게 틀림없었다.


근육맨이 된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든 자네도 알겠지만(이 대목에서 아이든을 소름이 끼쳤다. 저 새끼 군대 말투 미쳤다.) 내 신체가.. 입대를 하기엔 좋은 조건은 아니었었지."


"..그런데."


"그런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입대 신청을 하러 간 날 자네도 알겠지만 어스킨 박사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셨네."


스티브가 아련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이든이 나른한 눈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슈퍼솔져 프로젝트의 대상자가 된 나는 혈청을 투여받았고, 이렇게.."


스티브가 단어를 골랐다.


"건강해졌지."

"..건강만이 아닌 것 같은데."


헬스 마니아가 아니라? 아이든 헌터가 시니컬하게 물었다.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걸세. 아이든이 얼굴을 구겼다. 말투 너무, 너무, ...진짜 에바..



"어쨌든 난 그 프로젝트에 성공했고.. 여차저차 일이 있은 후에 하울링 코만도스라는 팀을 창설하게 되었지. 지금은 대위(Captain)일세."


아이든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여차저차가 뭐였는데? 뭔가 많이 생략됬는데."


그 여차저차 사이에서 채권팔이 광고하지 않았나? 아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에서 본 대로라면 그렇게 열심히 얼굴마담 일을 하다가(그 끔찍한 쫄쫄이를 입고!) 버키 반즈가 하이드라에 납치되었다는 소실을 알게되고, 모두가 포기한 와중 혼자서 그를 구하러 갔다가 하이드라 대가리인 레드스컬과 마주하고, 납치된 모든 병사들을 구하고, 뭐 그러지 않았나?

다 알면서 아이든이 물었다.


"..그건 말일세.."


스티브가 슬적 시선을 피했다. 버키가 키득키득 웃었다.


"우리 스티브는 그때 위문 공연 다녔어. 그치?"

"조용히 해, 너."


스티브가 버키를 흘겼다. 푸흣,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들도 키득거렸다. 스티브 로저스의 채권팔이 공연은 나름 유명했던 탓이다. 덤덤이 끼어들었다.


"광고도 찍었어."


게이브도 한 마디 했다.


"신문에 만화로도 나왔지."


짐이 말을 올렸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다는데?"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이든 헌터는 질렸다는 표정을 만들며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그의 귓바퀴가 화르륵 타오르더니, 다시 해명(왜 하는진 모르겠지만)을 시작했다. 역시 이 자식한테도 흑역사인 모양이다. 스티브의 속을 훤히 아는 버키가 나불대기 시작했다.


"이거 아니, 아이든? 세상에, 그 동안 우리 스티브가 대스타가 됐다 이 말씀이야!"


즐거운 얼굴로 깐죽대기 시작하는 버키 반즈의 입을 스티브 로저스는 필사적으로 막으려들었다. 하지만 버키가 누군가, 자칭타칭 스티브 로저스의 절친, 쉬이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그동안 우리 스티브는 나한테 편지 한장 안 보내고 전 세계에서 위문공연을 다니면서-"

"조용히 해! 버키!"

"웬 광고도 찍고! 신문에 만화로도 나오고! 인형으로도 나오고!"

"버키 반즈! 야!"


아이든이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흑역사를 밝히려는 자와 그걸 덮으려는 자, 아이든 헌터가 혀를 찼다.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하고 있으니 지루했다. 슬슬 받아주기 귀찮아진 헌터가 입을 열었다.


"영화도 찍고?"

"..스팁, 너 영화도 찍었어?"


버키가 물었다. 스티브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의뭉스러운 눈을 한 아이든 헌터가 입을 열었다.


"나 그동안 여기 말고 다른 시공간에도 갔었어."

"..그런데?"


순간 불안해진 스티브가 물었다.


"내가 간 곳은 1980년이었지.."


아이든 헌터가 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버키 반즈는 과거 아이든이 자신에게 설산에서의 전투는 가지 말라고 한 것을 기억해냈다. 저때 알아낸 건가?


"그리고 거기서 한 장의 포스터를 봤었고 말이지...."


아이든이 말을 이었다. 스티브를 딱 보며, 헌터가 말 했다.


"역사 영화였어."

"설마.."


버키가 신나게 이야기를 들었다. 미래의 이야기?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들도 집중한다. 


"캡틴 아메리카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지."


거기까지 말한 아이든 헌터가 한쪽 입꼬리만 씩 올려 웃었다.


"너 쫄쫄이 더럽게 안 어울리더라."

"...아아악!"


순간 스티브 로저스가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벌게진 그가 손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아이든 헌터가 그런 그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꺼냈다.


"굉장히 유익한 역사 영화였지. 너 나오는 것도 찍어놨음."


낡은 핸드폰을 켜서 사진첩에 들어간 아이든이 스티브의 눈에 동영상을 틀어 들이댔다. 빰빠바밤~ 1940년대 미국 특유의 감성과 함께 머리통에 날개 두개를 단 스티브 로저스가 걸어나와 소리친다.


[자랑스런 미국의 젊은이들이여! 독일의 히틀러가 세계 대전을 일으킨 지금 우리 조국에게 한없는 애국심을 바칠 시간이 찾아왔다~!]


아악! 기계에서 퍼져나오는 과거에 흑역사에 스티브 로저스가 몸부림 쳤다. 아하하하! 버키가 신나서 동영상을 보더니 자지러졌다. 아이든이 한마디 덧붙였다.


"쫄쫄이 진짜 개거지같다. 너 이거 무슨 생각으로 입고 살았냐?"

"아아악!"

"나도 볼래!"

"나도!"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들도 다가와 손바닥만한 핸드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미래문명이고 나발이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사의 흑역사 탐방이었다. 덤덤이 행복하게 외쳤다.


"보면 볼수록 애국심이 솟아나는 연설일세!"

"그렀습니다! 캡틴을 보고 있자니 절로 채권을 사야할 것 같군요!"


푸하하하하하!! 버키가 땅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아이든 헌터는 동영상을 스티브에게 들이대 주었다.


"영원한 비밀을 없다, 이 꼬맹아."

"그거 치우게..! 내가 잘못했네. 아이든 제발!"

"싫다, 이놈아. 전쟁 나가서 구르는 놈 뭐가 이쁘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캡틴 아메리카의 연설이 끝나더니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곰 인형 광고였다.


[어린이들의 꿈 친구 버키 베어!]

"...뭐라고?"

"풋!!"


그 경쾌한 나레이션을 들은 짐이 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번쩍 든 스티브가 소리쳤다.


"그거! 다시 뒤로 돌려보게!"

"야, 아이든! 잠깐만!"


아이든 헌터는 친절히 동영상을 뒤로 돌렸다.


[어린이들의 꿈 친구 버키 베어!]

"큽, 푸하하하하!"


이번엔 스티브 로저스가 웃기 시작했다. 버키가 튀어나와 아이든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으려 들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게이브!"


아이든이 동영상을 화면에 잠근 다음 핸드폰을 게이브리얼에게 던졌다. 행복하고 즐겁게 웃으며 게이브가 핸드폰을 받았다.


[자기 전에 꼭 안고 자면, 악몽을 물리쳐 줄 거에요~]

"크흐흐흫흫흑.."


게이브가 웃으며 핸드폰을 자크에게 던졌다. 그 핸드폰의 화면을 본 자크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야! 그거 가져와!"


핸드폰의 화면에는 버키 베어 군복 에디션이 딴딴딴 틀어지고 있었다. 자크가 허리를 접어 웃었다.


{이쪽으로!}


스티브가 야매 프랑스어로 소리쳤다. 자크는 팔을 둥글게 그리며 핸드폰을 스티브에게 던졌다. 턱! 그것을 받은 스티브는 잠깐 버벅거리더니 동영상을 다시 뒤로 돌렸다.


[어린이들의 꿈 친구 버키 베어!]

"아악!"

"축하해, 벜! 어린이들의 꿈 친구가 되었구나!"

"닥쳐, 스티브!"

"자! 몽고메리! 받게!"

"와!"


[자기 전에 꼭 안고 자면, 악몽을 물리쳐 줄 거에요~]


타인의 불행은 나의 기쁨, 제임스 몽고메리 펠스워스는 신나게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대단하군, 버키! 역시 자네라면 훌륭한 곰인형이 될 줄 알았어!"

"야!"


버키가 목까지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그 꼬라지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아이든 헌터가 척척척 걸어가 핸드폰을 뺏어들었다.


"그리 걱정하지 마. 이건 나중에 극장에서 광고로 상영될테니."

"..거짓말이지?"

"아니, 진짠데."


아이든이 버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나중에 어린아이들의 스테디 셀러 인형이 될거야."

"NO!! Thats terrible!"

"괜찮아. 로저스는 피규어로 나오니까."


"아하하- 잠깐 뭐?"


스티브가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아이든은 흐릿한 미소를 짓더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입도 함께 닫았다. 스티브가 급해져서 아이든의 어깨를 흔들었다.


"잠깐, 아이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왜 피규어로 나와?"

"..."

"아이든, 아이든?"


아이든 헌터는 텔레비전에서 본 캡틴 아메리카: 하울링 코만도스 특별전과 그들의 피규어를 만들어 모아놓은 박물관과 전시회 등을 떠올렸다. 아이든은 입을 계속 다물기로 했다.


"아이든, 제대로 말해봐. 저거 가짜지? 미국 대통령 사인까지 위조하는 시대잖아! 내가 곰인형으로 왜 나오는데!"


참고로 피터도 하나 가지고 있었단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이든은 아련하게 웃었다. 실제로 봤었어.. 사진까지 찍어놨지.. 하울링 코만도스들이 짝사랑 썰을 들은 사춘기 애들처럼 꺄르륵 웃었다. 다들 참 행복하고 즐겁고 기뻐보이는게, 이놈들은 현실친구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받는 두 브루클린 꼬맹이들을 보며 어쩐지 아이든은 흐뭇해졌다. 그래서 입대 하랬냐.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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