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금마는 누군데, 와 품에 안겨오노.



투덜투덜투덜, 성우가 없는 집안이 다니엘의 투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토스트를 간단히 만들어 접시위에 올려둔 성우가 잠이 완전히 깨면 먹으라며 다니엘을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소파 위에서 일어난 다니엘이 부산스레 옷을 챙겨입는 성우를 멍하니 바라봤다. 햄 어데가는데.



"회사 가야지."


"꼭 가야돼나? 햄 부자라캤으면서."


"아 몰라, 내가 가고싶어서 가겠냐! 나도 내가 왜 가는지 몰라!"


 저번처럼 된통 깨지지 않기 위해 빠진 서류가 있나없나 점검하고, 가방까지 완벽히 챙겼다. 오늘 회식이있어서 늦을지도 몰라 집 어지르지말고 있어! 

 쾅, 하고 닫힌 현관문을 멍 하니 보던 다니엘이 도어락잠금이 걸리는 소리에 비척비척 소파에서 일어났다. 

뭐고.. 내 혼자있는거 싫은데. 어기적 어기적걸어서 식탁까지 간 다니엘이 물을 마신 뒤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우물우물.


"내 혼자먹는건 더 싫다."













 성우는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채워지는 제 잔에 미간을 찌푸렸다. 요술 항아리냐 비워지면 계속 채워지게. 

갑작스레 떠맡기된 업무 덕에 회식자리에 조금 늦은게 큰 재앙을 불러왔다. 늦게 도착한 회식자리는 모든 자리가 주인이 있었다. 아, 부장님 옆자리 빼고. 늦어서 죄송하다며 웃으며 자리로 걸어가는 성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부장 옆이라니 씨발... 조용히 몇 잔 홀짝대다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다 글러 먹은 것 같다. 부장이 회식자리 때 붙은 별명이 있었는데 농부다 농부. 토마토 기르는 농부.


직원들을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무한반복 루트를 타게만든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리고 그런 농부 옆에 앉은 나는 오늘 회식자리의 최고 수확물이 되겠지. 킹토마토 씨발.




대체 몇 잔을 비워냈는지 세는 것도 힘겨워졌다. 초점은 안맞고, 눈꺼풀은 내려오고. 설상가상 무거워진 머리는 테이블과 맞선을 보기 일보직전이었다. 안돼겠다 싶어 잠시 바람 좀 쐬고오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문 밖까지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를, 걸어가며 몇 번을 넘어질 뻔했다. 겨우 밖으로 빠져나와 담배를 꺼내물었는데, 라이터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입에 물은 담배를 빼내려는데, 옆에서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불을 붙였다.



"담배 피우시나봐요."

"네, ..감사합니다."




황민현. 같은 부서라지만 사람이 너무 차가워보이기도 하고, 딱히 접점이 없어서 말을 몇 번 섞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둘이 담배를 물며 나란히 서있는 지금 상황이. 완전, 진짜, 대박. 어색했다.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

"아, 괜찮습니다."

"데려다드릴까요."

"지금요? 부장님.."

"방금 나가떨어지셨어요, 테이블에 머리 콱."




어떻게, 데려다 드릴까요? 말까요.

성우는 잠깐 고민했다. 오늘 모든 걸 완벽하게 챙겼다 싶었더니, 차 키를 두고 나온거다. 다시 올라갔다 올까 생각하다 시간이 아슬아슬해보여 택시를 타고 왔기때문에, 회식이 끝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시간으론 버스 막차도 끊겼을 테고. 여긴 택시도 잘 안잡히는 곳이고. 그러므로 지금 집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주겠다는 저 말을 거절할 이유는 한-가지도 없었다. 물론 안친하긴 했지만. 


그럼 실례가 안됀다면, 부탁드릴게요.





만취한 부장을 대리를 불러 보낸 뒤 모두 해산을 했다. 

성우는 민현이 차를 끌고 제 앞으로 오자, 차에 탑승했다. 많이 마시긴 했던건지 앉자마자 감겨오는 눈에 창문에 머릴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고있었는데, 제 쪽으로 민현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점점 가까워진다는 느낌에 성우가 눈을 뜰까 말까 뜰까 말까 고민을 하던 도중 안전벨트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났다.



"안전벨트 하셔야죠, 성우씨."



 눈 떨리는 거 티나는데. 그 말에 머쓱해진 성우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쪽팔려.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달려 성우가 안내한 성우의 집까지 민현이 차를 몰았다. 그새를 못 버티고 진짜 잠이들어버린 성우를 민현이 난감하게 쳐다봤다. 성우씨, 집 다왔어요. 툭툭 쳐도 일어날 생각을 안하는 성우를 일단 부축했다. 오피스텔 현관에 들어선 민현이 엘레베이터 앞에섰다.


"성우씨 몇 층이에요."

"으응..."

"집이 몇 층이에요, 성우씨."

"..일..츠응.."

"몇 층이요?"

"시이입,이일..츠응..!"



11층을 누른 뒤 민현이 또 다시 고뇌에 빠졌다. 집 안엔 어떻게 들여보내지. 비밀번호를 말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엘레비에터를 빠져나온 민현이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비밀번호가 문제가 아니었네. 왼쪽 오른쪽 어디가 성우씨 집이야.. 혹시 디지털키를 가지고 있을까 싶어 주머니를 뒤지려는데, 별안간 문이 벌컥열렸다.

열린 문으로는 건장한 사내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니 누군데 햄 안고있나."


햄? 스팸 소세지 햄? 무슨 소리지. 민현이 못 알아들은채 가만히 서있자 다니엘이 성우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니, 끌어당기려고 했다. 성우를 끌어당기는 다니엘에, 민현이 힘을 줘 다시 제 쪽으로 끌어안았다. 뭐하는 짓이가. 눈썹을 꿈틀대는 다니엘에 민현이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같이 사는데, 와 뭐 문제있나."

"그걸 어떻게 믿어요, 댁이 누군지 알고."


다니엘은 끝까지 성우를 끌어안고 있는 민현에 짜증이 났고, 민현은 다짜고짜 같이 사는사람이라며 성우를 당긴 다니엘을 경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 불편한 자세에 눈을 뜬 성우가, 둘러져 있던 팔을 잡아내리고 다니엘을 향해 갔다. 다-아 니엘- 많이 기다려찌~


다니엘의 두 볼을 떡 주무르듯 챱챱거리며 만지는 성우에 민현이 그제서야 경계를 풀었다. 같이 사나보네. 



"성우씨 많이 취했으니, 바로 재워주세요."




내 알아서 할거니까 신경끄고 가이소. 퉁명스레 말을 내뱉고, 성우를 끌어안아 집안으로 들어가는 다니엘을 민현이 빤히 쳐다봤다. 개같네.





*수인물

anéantir é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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