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너는 내게 그 한마디 못하고 떠나버린걸까. 뭐가 그리도 겁나고 두려웠던걸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너를 어디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렇게 떠났니. 너의 편지에 주인이 나라고 조금만, 조금만 일찍 알려주지 그랬어. 아니다. 너가 그 편지의 내용을 내게 보여줬을 때 내가 알아야 했는데. 그랬다면 우리의 결말은 달라졌을텐데.

아직도 널 찾고 있어.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길 빌고 또 빌어. 너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 해. 너와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말했던, 목표했던 회사도 들어왔어. 졸업하자마자 지원했는데 한 번 떨어지고, 올해 붙었어. 이제 너만 있으면 완벽해. 빨리 보고싶다.

적어도 내가 널 장례식에서 보는 일만은 없었으면 해. 아닌가 저렇게라도 만나면 다행인건가. 내가 죽기 전엔 널 만날 수 있게 해 줘. 승윤아.


이게 내가 너에게 쓴 편지야. 그러니까 얼른 돌아와서 안아줘. 많이 보고싶었다고, 만나고 싶었다고.

우리의 결말을 바꿔보자. 그때의 결말은 너무 슬프고 애달팠으니까 행복하고 눈부신 결말로 바꾸자.





-민호야 이거 좀 읽어 봐 주라.

문과 1등에게 다가온 한 남자. 조금 꾸깃꾸깃한 종이를 들이민다. 그가 고개를 들어 뭐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중요한 글. 조금이라도 이상한 곳 있으면 알려주라.

의아하다는 듯 종이를 받아들었다. 찬찬히 2번이나 읽어보았지만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하나도 안 이상한데? 다 괜찮아

-그래? 다행이다.

-누구한테 주는 건데?

-있어. 나한테 아주 소중한 사람

-그거 나 아니였어?


민호가 장난스레 말하며 살짝 인상을 쓰자 승윤은 그런 민호의 미간을 펴주면 말했다.

-너야 당연히 소중하지

승윤의 대답에 민호는 웃음을 보였다.



몇 달이 지나 졸업식날이 되었다. 올 것 같지 않던 그 날이 왔다. 3년을 꿈을 위해 달렸다. 남들이 원하는 대학교에 붙어 좋아하던 모습도 드디어 끝이라며 행복해 하던 모습도 막연히 멀게 느껴졌던 나이에서 이제는 저 순간들을 거쳐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자리에 섰다.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웃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오늘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미션 한 개를 끝냈다고 인정받는 날이다.


-우리 대학은 갈렸지만 직장은 같은 곳에서 만나자.

-당연하지. 우리가 떨어져 있으면 안되지.

-

-끝나고 어디 갈까?

-아무데나 가자.

-그래 졸업 축하해 강승윤.

-너도 축하해. 민호야.


앞을 나아가는 순간 중 하나를 완료하는 그 날까지도 둘은 함께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없이 웃었고 울었다. 영원히 함께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민호는 그리 생각했다. 평생친구, 뭐 그런 것도 있으니까. 때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저 우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졸업식을 끝내고 뒤풀이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민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집에 잘 갔냐?]

[ㅇㅇㅇ 지금 집]

[다행이네 쉬고 낼 아침에 가방 확인해 봐]

[왜 굳이 내일?]

[걍 내 말 좀 들어]

[ㅇㅋㅇㅋ 알겠어]


민호는 알 수 없는 승윤의 말에 갸웃거리다가 이내 생각을 포기하고 잠이 들었다.



전 날 엄청 열심히 놀아서인지 3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침대에서 몇 번 뒤척 거리던 민호는 거실로 나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렇게 몇 분 있었을까 민호는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뒤적거렸다.


-어디다가 넣어둔거야 도대체


-찾았다!

-엥? 이게 뭐야

민호 가방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상자에는 편지와 시계가 들어있었다.


안녕 송민호

시계 이쁘지? 내가 너한테 주는 졸업 선물. 예쁘게 잘 써. 기스내지 말고. 이 편지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 주는 거야.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 너 덕분에 혼자서 하는 서울살이 잘 해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 같아. 언제부터 였을까. 너 은근 나 많이 챙겨주고 그랬었잖아. 그때 되게 좋았다? 처음에는 부모님없이 혼자 지내고 그래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거랑은 조금 달랐어. 내가 너한테서 느낀 감정은 고마움도 있지만 사랑도 있었어. 갑자기 이런 얘기해서 미안. 근데 걱정하지 마 이제는 아니니까. 너같이 좋은 사람을 이렇게 잃는 내가 바보같아서 글로 써보는 거야. 너 얼굴 보고는 차마 못하겠어서. 너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지만 이건 그거랑은 다르잖아? 너가 어떤 표정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워서 글로 남기고 가. 너 이거 되게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맞아 내가 너한테 보여줬던 거야. 나한테 소중한 사람은 당연히 너니까. 이 편지 주인도 너야. 우리가 안 지 3년 반인가 4년인가 그랬지 아마. 너랑 나랑 꿈이 같아서, 원하는 직업, 직장이 같아서 많이 놀랐었고 너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좋았어. 행복했고. 너도 그랬을 거라고 믿어.

이제는 내가 없이도 행복해. 내가 없어도 넌 행복하겠지만 말이야. 이거 읽을 때 쯤 너가 나한테 문자를 하든 전화를 하든 뭘하든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야. 아니 하지 못 해. 어디 멀리 떠나거든. 우리 언젠가는 만나겠지만 그 때가 되면 날 피하지만 말아줘. 이런 나라서 미안해. 친구로 남고 싶었는데 내가 힘들어서 이렇게 내뱉어 버려서 이기적이여서 미안해.

아 그리고 그 시계 혹시 이런 내가 준 거라서 차기 싫다면 환불하러 가도 돼. 환불할 때 필요한 건 다 넣어뒀으니까. 고마웠고, 잘 살아. 행복하게, 너답게 웃으면서 살아. 어디가서든 당당한 너로. 그리울거야 많이.


안녕 송민호


-강승윤- 


다급히 승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말 뿐이였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승윤의 집으로 뛰어가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 여기 살던 사람 어디 갔어요?"

"여기? ..아 그 학생? 몰라, 어디 멀리간다고 방 뺀 지 며칠 됐어"

"얼마..나요?"

"아마 한 4,5일은 됐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떠났다.

그 사람은 아무런 예고없이 곁을 떠났다.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모른 채 시간은 흘렀고 어느 새 제대를 하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아무도 승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돌아오는 걸까 하염없이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을 또 기다린다.


-야 너 그 시계 아직 있냐?

-그건 갑자기 왜?

-우리 회사 프로젝트하다가 디자인 봤는데 생각나서.

-고이 모셔놨지. 부적처럼


그 선물마저도 버리지 않았다. 승윤과 만나면 시계 새로 사달라고 찡찡 거리고 싶어서. 그 나름의 애교라는 걸 부리고 싶어서. 그것도 승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붙잡고 있는 끈이였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서로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같아서. 입사하기를 원했던 회사가 같아서. 원래였으면 열심히 했을 것을 악착같이 했다. 운명같았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그래서 혹시라도 만날까하는 믿음이 만들어졌다. 약 9년 정도를 찾아헤맸다.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진다 는 말은 누가 했던가. 이루어지기는 커녕 이름 한 번을 들은 적, 사진 한 번을 본 적 없다. 그럼에도 그 희망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민호는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잊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겁먹고 미리 도망쳐 버리는 것이 포기이다. 그 어떠한 결과도 알지 못한 채 달아나는 것이 포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짓을 하는 것이 제일 멍청하다.

그러므로 포기는 멍청한 짓이다.]


승윤이 제일 좋아하던 구절인 동시에 민호가 승윤을 원망하는 이유다. 포기란 걸 하지 않던 사람이 도망가버렸으니까. 원망하지 않으려 해도 그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신을 또 원망한다.

.

.

.

오늘은 그의 첫 출근일이다.


쨍강-


그 출근길 아침부터 문제가 많다. 아침준비를 하다가 제일 아끼던 접시를 깼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의 고양이가 그에게 앵긴다. 고양이를 떼어 놓는데 족히 10분은 쓴 것 같다. 승훈이 준 슈트에 고양이 털이 덕지덕지 붙어 그걸 뗀다고 또 5분이 걸렸다.



-빅스비, 양자리 운세 확인해줘.

그는 느꼈다. 아무래도 오늘은 재수가 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양자리 오늘의 운세. 오전에 약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데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연애운은 싱글일 경우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날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인연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 오전이 최악인건 맞네.


결국 확인사살 당해 기분이 꾸겨진 채로 회사에 도착했다. 첫 출근길부터 이게 무슨 불운인가 싶지만 연애운이 나름 좋게 나와 승윤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사실 회사를 오는 길에도 어쩌면 회사에서 만나지 않을까,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잔뜩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마땅한 대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승윤의 생각에 금세 표정이 밝아진 채 딱 두 대 뿐인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대기업계에서는 아직은 성장 중인 회사지만 중소기업과 비교하면 한참은 위인 회사다.

회사원도 많은데 엘레베이터가 두 대뿐인게 말이 되나 하고 그가 툴툴대던 찰나에 왼쪽 엘레베이터가 먼저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탈 게 뻔해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탔다. 문이 막 닫히던 순간에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왔지만 이미 엘레베이터의 문은 굳게 닫혔고 위로 올라가려 했다. 통유리로 된 문을 통해 밖을 지켜보던 그는 놀랐다.


그 순간에 뛰어오던 그 사람은 백금발머리를 흩날렸고, 단순한 검은색 정장과 하늘하늘한 검은색 넥타이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는 뛰어오던 저 사람이 승윤을 닮았다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은 그 사람이 승윤을 닮았었다는 생각에 가득 사로잡혔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은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첫 날에 신입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싶어 뺨을 착착 때리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당연히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고 부장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늦게 봤네. 미안해요.

파란 머리에 연핑크슈트를 입은 그 사람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이야기했다.


-음.. 아직 한 명이 안 오긴 했는데 소개할게요. 이쪽은 신입사원 송민호씨예요. 모르는 거 물어보면 친절하게 답해주고 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송민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씩씩한 그의 인사에 다들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아, 김 대리는 좀 있다가 강 대리 오면 이 친구 소개 좀 해줘요. 자리도 알려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곤 그를 바라보며 악수를 건넸다.

-내가 누군지는 말 안해도 알거고. 잘 해봐요. 송 사원

-네 감사합니다.

그는 살짝 꾸벅이며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김 대리 옆자리에 가방을 두고 앉았다.

-김진우 대리예요. 내 앞이 강 대리고 내 오른쪽은 이 차장님, 이 차장님 앞은 박 과장님이에요. 부장님 자리는 아까 봐서 알죠?

그는 따스한 얼굴만큼 말도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네. 근데 강 대리님은 언제 오시는지?

-그러게ㅇ / -나 지금 왔는데? 송민호씨?

저를 부르는 소리에, 그리고 이제 온 사람이 그를 아는게 신기해서 두 사람 다 뒤돌아봤다.

-강 대리, 송 사원 알아요? / -강 대리가 너야??

-당연하죠. 내가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데.

-진짜? 왜? /-그런 사람이 연락 한 통이 없었냐?

둘 다 높아진 언성에 팀 내에 직원들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머쓱해진 승윤은 머리를 긁적이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가 앉았다.


-둘이 뭐야 뭐야?

진우는 뭔가 되게 신나는 것을 알아버린 것 마냥 놀리는 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대리님

-아닌데 내가 보니까 완전 많은데~ 수상해요 송 사원

사실 진우는 승윤과 그의 관계도 궁금하지만 지호와 많이 친해보이는 그가 신기하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궁금했다. 신입사원이 팀 내 부장과 친하기 쉽지 않으니까. 그런 진우의 속셈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그는 먼저 선수를 쳤다.

-다른 것도 물어보셔도 대답 안 해드릴거예요.

-알겠어요. 안 그래도 안 물어볼 생각이였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가서 강 대리한테 일 배워요. 좀 있다가 다른 팀에 인사하고 계약서 작성하고 그래서 바쁠테니까.

그러곤 그의 등을 떠민다. 어서 가라는 뜻이겠지. 진우는 한참 전부터 본인과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당연 승윤이였다.

승윤은 속으로 아직도 눈치없네 곰탱이 라며 그를 씹어댔다. 뭐 누가 봐도 쳐다보는 게 느껴지는데 그걸 못 느끼고 있는 송민호인건 맞으니까 그런 캐릭터를 만든 내가 잘못이긴 하다. (미안해 승윤아ㅜㅜㅜ)

뒤늦게 진우의 눈짓을 따라 가 도착한 곳이 승윤의 시선인 것을 알고 그는 일어서 제 앞자리로 갔다.


-강 대리님. 잠깐만 나가서 얘기할까요?

다정한 목소리에 눈은 여러 가지 감정을 담고선 그에게 내뱉었다. 복잡미묘한 그의 기분이 그대로 드러났다.그의 눈빛을 본 그는 일어서 답했다.

-그러죠 그럼. 송민호 사원

이윽고 그가 탕비실로 발길을 향하자 그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만나면 어떻게 할 지 생각만 했지 어떻게 할 지 결정 안했는데..나 어떡해'

생각을 아주 아주 열심히 했지만 대안이라곤 없는 그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





다음 편에서.




오늘 하루 못난 글 보시느라 수고하셨고,

미노 말처럼 하루하루 의미있게 사는 여러분이 되어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세요!


+3월 15일이 마지막 글이란 거 알고 열심히 속도내서 썼습니다. 조만간 다른 글도 하나 올라갈 예정이니 볼 품없지만 재미나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ㅜㅜ 라뷰해요 모두들 행복하세요!


W. 그 안에 훈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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