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탈론의 요새 옥상에서 위도우메이커 홀로 별을 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조직원들도 처음엔 야간 경비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계속되는 이상현상, 예를 들어 탈론의 옴닉 간부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거나 중요 기밀이 누출되거나 하는 현상에 자연스레 신경쓰게 되었고, 그 의심은 결국 위도우메이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위도우메이커가 요즘 이상하지 않아?"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군..."

"뭔가 수상한 점이라도 찾았나?"


그래도 탈론의 인체 개조 실력은 어디 갈 만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솜브라가 요즘 위도우메이커가 이상하다는 한 마디를 던지기 전까진 그랬다.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없는데... 디지털 통신회선을 조회해보니 언제부턴가 위도우메이커의 통화내역이 아무 것도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그야, 이전엔 잠깐씩이나마 통화내역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게 없다는 것은..."


솜브라는 탈론의 소속원들이 뭔가 계략을 꾸미는 건 아닐까, 통신회선을 하루도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었다. 탈론뿐만 아니라 볼스카야 인더스트리, 헬릭스 또한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위도우메이커의 통화내역이 전혀 검색되지 않았다. 처음엔 통화할 일이 없어서 안 했나 보다 했지만, 한 달, 그리고 두 달씩 되어가니 점점 솜브라는 위도우메이커가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불신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를 들은 리퍼와 둠피스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뭔가, 결심을 하고 있다는 건가..."

"혹시나지만 말야... 만약 아니라면 전력 손실이니... 일단 좀 더 지켜는 보자고. 신중해야지."


뭔가 결심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둠피스트의 말에 리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작 그녀를 가장 불신하는 솜브라가 신중해야 한다며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확실히 위도우메이커도 탈론에 없어서는 안되는 전력이니, 솜브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일단 지금은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멍청이들..."


문제는 이 모든 걸 위도우메이커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적외선 투시경과 도청장치로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모조리 엿들은 위도우메이커는 한 가지 결심을 세웠다. 더 이상 이 곳에 있긴 위험하다. 그렇다면... 허나 1급 살인범으로 지명수배된 몸인데 딱히 어디 갈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곧 토사구팽당할 모양새라 남아있기도 영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위도우메이커는 몰래 허벅지의 포켓에서 아날로그형 무전기를 꺼냈다.


"어, 하나야...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이야기하자. 지금부터 내가 말해주는 좌표로 와."


야심한 밤에 비상연락망에 잡힌 그녀로부터의 구조 신호, 탈론 소속인데 혹시 나를 납치하려는 계략 아닐까? 믿음 반 의심 반, 하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메카를 타고 해당 좌표로 향했다. 그런데...


"역시 솜브라가 말했던 대로군...!"
"후후, 잘만 하면 메카를 양산해서..."


해당 좌표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신나게 얻어맞고 피떡이 되어 쓰러진 위도우메이커였다. 역시 연락망을 들켰던 걸까. 이어 둠피스트와 리퍼가 하나의 메카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이게 뭐야 도대체...!!"


하필이면 솜브라의 농간에 메카가 해킹당해 작동불능이 된 상황에서 쫓아오고 있는 둠피스트와 리퍼, 하나는 괜히 나왔나... 싶어 뒤늦은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융합포로 탄막을 쳐서 저항하고 있긴 하지만 마이크로 미사일도, 부스터도, 하다못해 자폭 시퀀스도 사용 불가능한 상황에서 융합포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끝장을 내주지."


아니나 다를까, 융합포의 화망을 뚫고 돌진한 둠피스트의 건틀릿 충전 펀치 한 방에 메카의 캐노피가 깨져 날아갔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벽에 들이받으면서 부스터 노즐도 으깨져버려 메카의 추진장치가 고장나버렸다. 철권포에 직격당한 다리 관절도 나가버려 더 이상의 가동은 불가능한 상황. 비상 탈출장치가 강제로 작동해 하나를 메카에서 방출했다. 


"치잇...!!"

"슬슬, 죽음을... 받아들여라..."


다급히 허벅지의 포켓에서 권총을 꺼냈지만 그마저 리퍼의 산탄총에 맞아 튕겨나갔다. 완벽히 무방비 상태가 된 하나의 눈앞에 3개의 총구가 다가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목표, 포착..."


그러나 이들이 하나에게 정신이 팔려 잊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리퍼와 둠피스트, 솜브라 모두가 하나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다급히, 그러나 조용히 그 장소를 빠져나간 위도우메이커는 건물 옥상에 와이어로 매달린 채 적외선 투시경으로 놈들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죽음의 입맞춤 소총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리라 맹세했는데, 그 때와 거의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더 이상 놈들을 놔둘 수 없었다.


"으으윽!!"


광장 한가운데에 천둥소리가 메아리쳤다. 산산조각난 리퍼의 가면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미간에서 피를 흘리며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운 저격소총을 한 손으로 지탱한 채 반동까지 받아낸다는 건 역시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위도우메이커는 해냈다.


"망할...!! 솜브라, 네가 책임져라!!"

"쳇, 알았어...!!"


위치변환기가 날아오는 모습이 적외선 투시 고글을 해제한 위도우메이커의 시야에 들어왔다. 갈고리를 회수해 땅으로 낙하하면서, 위도우메이커는 몸을 뒤로 기울여 하늘을 향해 맹독 지뢰를 발사함과 동시에 죽음의 입맞춤 소총을 난사했다.


"으아아악~!!!"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순식간에 솜브라의 몸이 허공으로 이동했다. 이어 밑에서 날아오르는 소총탄이 솜브라의 몸을 꿰뚫어 그녀의 피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한 발이 아니었다. 10발, 15발, 20발, 25발...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맹독 지뢰가 터지며 상처 틈새로 독소가 스며들어 그녀의 신경계를 마비시켰다. 마지막 한 마디를 할 새도 없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는, 솜브라는 그렇게 입에서 피를 토하며 무너진 자세로 떨어져 땅에 처박혔다.


"그 아이에게서 손 떼. 둠피스트."

"호오, 우릴 배신하겠다는 건가?"

"배신이라... 처음부터, 네놈들 편이었던 적도... 없어!!"


초점이 사라져버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솜브라의 시체와 부서져버린 그녀의 기관단총을 버려둔 채, 위도우메이커는 소총의 탄창을 갈고는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한 채 천천히 둠피스트를 향해 다가갔다. 하나에게서 손 떼라는 엄포와 함께. 철권포의 포구가 그녀를 향했지만 눈 하나 껌뻑하지 않은 채, 위도우메이커는 처음으로 분노를 가득 담아 외쳤다.


"뭐, 좋다. 어차피 네년은 쓸모가 더 이상 없으니... 여기서 죽어라!!"

"죽는 건 네놈이다... 둠피스트!"


철권포와 죽음의 입맞춤 소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위도우메이커의 방탄 슈트에 가뜩이나 산탄이라 탄환 하나하나가 소구경인 철권포는 그리 큰 위협이 안 됐다.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둠피스트의 건틀릿 또한 위도우메이커의 소총에 피해를 입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었다. 천천히 다가서는 둠피스트와 반대로 위도우메이커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다가, 이어 날아오는 둠피스트의 주먹을 피해 갈고리를 시계탑의 꼭대기로 뻗어 걸쳤다. 그녀가 있던 자리를 둠피스트의 주먹이 거세게 내리쳤다. 지면이 갈라질 정도의 파괴력, 저런 걸 맞았다간 즉사다...!


"라이징 피스트!!"

"고작 그 정도냐?"


둠피스트의 점프 어퍼컷이 위도우메이커의 복부를 강타했다. 꽤나 아팠지만 신경쓸 것 없었다. 오히려 위도우메이커가 바라던 것이었으니, 타격의 반동과 갈고리가 회수될 때의 장력을 이용해 위도우메이커는 보다 높이 점프해 하늘 위로 날아올라 둠피스트와의 거리를 벌렸다. 소총을 난사해 화망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윽...!!"

"아무래도 승부가 난 모양이네, 슬슬... 죽어."


비록 견제용 탄막이라곤 하나 둠피스트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다리나 복부 등에 맞은 몇 발의 탄환은 그에게 유효한 상처를 내기에 충분했다. 뼈를 부수는 듯한 고통에 자세가 무너진 둠피스트의 눈앞에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소총구가 들이닥쳤다.


"이... 망할 년이...!! 흐억...!"


최후의 발악, 둠피스트의 건틀릿이 위도우메이커에게 닿기도 전에 소총의 개머리판이 둠피스트의 턱을 후려쳤다. 그대로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은 둠피스트의 미간에 총성이 울려퍼졌다. 잠깐의 침묵, 이내 머리에 구멍이 난 둠피스트의 시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아이야, 괜찮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냉혹한 표정으로 예전의 자기 동료였던 사람들을 가차없이 쏴죽이던 모습과 달리, 하나 앞의 그녀는 마치 엄마와 같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급히 소총을 거두고 하나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준 위도우메이커는 리퍼의 산탄총에 맞고 부상당한 그녀의 손목에 천천히 비상용으로 챙겨온 붕대를 감아줬다.


"아멜리, 나랑 가자. 응?"

"...안돼. 난... 갈 수 없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위도우메이커가 등을 돌린 그 순간, 자기랑 가자는 하나의 부탁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가면, 아니, 따라갈 수 없었다. 위도우메이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손에 묻은 제라르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피... 그걸 네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


탈론에 의해 가혹한 개조를 받던 나날들, 제라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그 날,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암살하고, 아나의 한쪽 눈을 빼앗고, 몬다타를 죽이고 트레이서와 대치했던 기억... 그 모든 죄책감이 위도우메이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짐을 하나에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까짓거 같이 짊어지면 어때서 그래? 1급 지명수배범인 게 뭐 어때서? 여러 번 날 도와줬잖아! 개인적인 거라곤 하지 말아줘... 제발. 난 그게 너무 고마웠고 또 미안했고, 그래서 같이 가자는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미안해. 아이야..."

"괜찮으니까, 제발... 이번 한 번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면 안돼?"

"후... 후후... 하하하... 아, 역시 어린아이라니깐... 뭐, 좋아... 어차피 갈 곳도 없는 몸이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나는 위도우메이커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간절한 그녀의 부탁에 마음이 흔들린 위도우메이커는 한번만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해달라는 하나의 부탁에 허탈한 듯 웃어넘기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아이야..."

"응? 지금 무슨 말 했어?"

"아무 것도 아냐... 하하, 시원하네..."


재호출한 메카에 탑승한 하나와 그 메카의 위에 올라탄 위도우메이커, 천천히 메카가 본대복귀를 위해 날아올랐다. 고맙다는 위도우메이커의 한 마디가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파르페르파의 포스타입입니다 찾아와봤자 별거 없어요 이거저거 할만큼 하는 포스타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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