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릭! 하는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현관을 울리는 것 외엔 정적만이 감도는 집이었다. 집안 내부에 들어서니 거실에는 소파와 테이블 외에 오디오시스템만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딱 알 수있는, 좋은 브랜드였다. 귀가 까다롭긴 하지.. 우리 재환이가...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재환을 찾기 위해 집안을 둘러보았다. 가장 큰 방은 방음시설이 되어있는 작업실이었다. 각종 음향기기와 몇 대의 기타, 건반 등이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작은 방에 그토록 보고싶었던 재환이 누워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아기처럼 이불을 돌돌 말아서 웅크려서.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부어있었다. 다니엘은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재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 재환의 눈이 떠졌다.

“재환아, 환아..”
“..니가 왜 여깄어...?”
“정세운이가 알려줬다.”

재환은 가만히 누워서 다니엘의 손길을 느끼고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재환은 사실 그리웠다. 그의 목소리가. 다정히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동정이라도.. 불쌍해서 그러는 것이라도... 더 듣고 싶었었다.

“환아..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안하다.”

다니엘은 마치 발라드의 나레이션처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 처음엔 니가 불쌍했다. 나이도 나랑 같은데.. 눈도 불편하다 하고, 마사지하면서 돈 번다는 생각에..”

다니엘의 말에 재환의 눈물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래.. 역시.. 그런거였나봐.. 그런데 다니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새 다니엘은 재환이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다니엘의 시선은 올곧게 재환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재환아. 니가 보고싶고 궁금해지더라. 처음엔 그래서.. 마사지 핑계로 봤다. . 니가 웃는 거 보면 처음엔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는데.. 그 다음엔 5일.. 그 다음엔 3일...”

어느새 다니엘은 재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니엘의 손은 뜨거웠다. 아니..재환의 손이 차가운걸지도 모르겠다. 마주잡은 그 두손의 온도가 비슷해질 때쯤에서야 다니엘은 말을 이어갔다.

“내랑 동갑인 남자를 자꾸 보고싶어하고, 만지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게.. 무서웠다. 이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나 싶고. 근데 결론이 니랑 함께 있는게 더 중요하단 거였다. 그때 버스킹 처음 보러 간 날.. 그날 결론낸 거였다. 그러고 나니 버스킹 하는 거 딱 보는데.. 사람들이 니한테 막 박수치고 좋아하고 이러는 거 싫더라.. 내 눈에 이래 이쁜데.. 딴 년놈들 눈에는 안이쁘겠나? 내.. 이런말 하긴 쪽팔린데.. 질투한기다..”

질투라는 단어에 재환의 눈이 커졌다. 사실 늘 불안한 건 자신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시선을 받는 탑아이돌. 언젠간 자신을 버리고 가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눈치를 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좋아해'라는 그 세 단어에 애정, 불안, 두려움, 걱정, 떨림, 기대.. 모두를 담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마사지.. 니가 딴 사람 몸 만지는 것도,  딴 사람한테 웃는 것도 싫다. 백화점이랑.. 정세운 사이 오해한건.. 진짜 미안하다. 그건 진짜 내가 쓰레기였다. 딴 놈한테 웃고있는거에 빡돌아서..”

다니엘의 고백이 한참을 이어졌고, 재환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쪽! 하고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입에는 살짝 미소가 걸린채로.

“내가 전에 부모님이 장사해서 가끔 돕는다고 했잖아.. 마사지 가게..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거야. 20살이 되니까 가게 운영하는 거 배우라고 그래서 가끔씩 일도 하고... 너랑 싸우던 날.. 아버지한테 가게 안나갈거라고 말했어.. 그리고 백화점은..”
“맞다. 왜 백화점에서 내 전화 안받았는데? 전화 안받는거 내가 봤거든! 아.. 또 그거 생각하니 화난다..”
“형이.. 놀려서.. 안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선물 고르는데 도와달라니까 큰형이랑 작은형이 다 나오겠다고 난리라서..”
“형이 2명이야?”
“응.. 나 3형제. 형들이랑 나이 터울이 좀 나.. 큰형이랑 9살, 작은형이랑 7살. 그때 백화점 같이 간건 작은형.”
“사실 명품관에서 나오는게 좀 쇼킹했다. 나도 비싸서 큰 맘 먹고 한번 갈까말까하는데..”
“작은형이.. 연예인이라고.. 비싼거 사야한다던데? 사진에 다 무슨 명품으로 휘감고 있다고..”
“그거야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주는 것도 있고.. 팬들이 선물해준거니까.. 사실 난 그냥 아무거나 입는데.. 내가 또.. 몸이 되니까 개떡같은 것도 소화시키니까.”
“맞다맞다. 우리 다니엘 피지컬이 죽여주지.”

이제 슬슬 농담도 오가자 둘 사이의 분위기가 슬슬 달콤하게 바뀌고 있었다. 색으로 따지면 인디언핑크쯤 되려나.

“내가 니 전화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나?”
“나도.. 세운이가 나보고 한심하다고, 밀당 좀 하라고.. 아.. 내가 진짜 글로 연애를 배운 그 놈 말을 듣는게 아닌데..”
“닐 좋아한다는 거.. 사랑한다는 거.. 부끄러워서, 말하면 닳을 거 같아서.. 입밖에도 못꺼냈다. 그게 닐 서운하게 할 줄은 몰랐다. 대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뭘 줬던거다. 니한테 궁금한게 없던게 아니고.. 괜히 물으면 니가 힘들어할까봐..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기다린거다. 근데 집 안물어본건 진짜 내가 멍청했다. 보고싶어 죽겠어서 찾아가려고 해도.. 알아야가지.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으흐흥~ 첨에 니가 바래다 준다고 할때 알려줄걸. 그때 너무 설레가지구.. 심장이 터질거 같아서 말못했는데..계속 안묻길래.. 오기가 생겨서..”

어느새 둘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그동안의 오해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었다. 진작 이렇게 감추지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거라는 생각따위 하지 않았어야했는데.

“정세운이 오늘 아침에 내한테 욕 엄청 하고 갔어. 니 가지고 놀았다고..내 진짜 그런거 아인데..”
“우와.. 정세운 아침부터 왜 그런거야?”
“내 땜에 곡 안주겠다고, 위약금 물어줄테니 곡 못준다고.. 소속사에 전화해서...”
“뭐라고?”

재환은 진짜 몰랐던 일인지 깜짝 놀라 전화기를 찾았다.

-야! 너 도대체 뭔 사고를 친거야?
-큐피트 역할?
-큐피트 좋아하네.. 너 땜에 나 망할 뻔 했구만.. 그리고 다니엘한테 사과해. 얼른. 우리 다니엘 이미지 어떻게 할거야? 소속사에 찍혀서 좋을 게 뭐있다고 그랬어!
-우와.. 어제 울고불고 할때 달래줬구만.. 우리 다니엘이래.. 헐.. 이래서 남의 연애에 끼어드는 거 아니라더니..
-소속사에 전화해서 해명해. 얼른.
-네~네~

우와.. 우리 환이 좀 멋진데? 멍하니 입을 벌리며 감탄하자 조용히 어깨를 으쓱하는 재환이었다. 또 그 모습이 귀여워 다니엘은 쪽쪽쪽! 그의 얼굴에 입술을 퍼부었다.

“저기.. 뽀뽀만 할거야?”
“재환아. 재환아.. 환아.. 내 진짜 니 사랑한다. 지금 니 너무 사랑스럽다. 내 옆에 오래오래 있어라. 알았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재환이 이뻐 죽겠다는 얼굴로 다니엘은 그의 얼굴을 잡고 진하게 키스를 하고 재환은 다니엘의 목에 팔을 둘렀다. 어느새 침대 위로 쓰러진 둘은 서로의 존재를 뜨겁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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