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2)



몇 번인지도 모를 다짐을 거듭했으나, 한유진이 현관문을 지날 때는 조마조마해서 차마 똑바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꼴로 곁눈질만 겨우 했다. 애써 괜히 신발 상태를 점검하고, 현관 옆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기도 하고. 다행히 유진은 외식 겸 드라이브도 데이트라고 신경 쓰는 거냐며 웃어 넘겼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서 그런 걸로 쳤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고 첫 번째 고비를 넘으니 그제야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가죽을 뒤집어쓸 수 있었다. 아닌 척 들뜬 모양인 연인을 위해서라도 오늘 하루, 나의 불안은 숨겨 마땅했다. 숨기는 건 특기니까 괜찮다.

유진이 정한 저녁 메뉴는 한식이었다. 조금 더 비싼 것을 요구해도 됐는데, 이유를 물으니 이유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언제나 한 사람 한정으로 예스맨이었기에 거부권 같은 건 애초에 없다.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래도 발품을 팔아서라도 들어주려 할 텐데.

“비싼 건 나중에 톡톡히 뜯어먹을 겁니다.”

“지갑 도톰하게 준비해 놓겠네.”

“많이 먹을 거예요. 진짜로요.”

“얼마든지. 거덜 내도 좋아.”

그 정도까진 무리라고, 가벼운 농담에 마찬가지로 가볍게 대꾸하며 웃는다. 그의 환한 미소로 나는 오늘도 이유를 얻었다. 꾸역꾸역 생을 연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소리들로 적막이나 채우던 도중이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밖에만 내내 시선을 고정하던 한유진이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 선 직후였다.

“어, 저런 데에 카페가 새로 생기나 봐요.”

“카페?”

“저기요. 저쪽 횡단보도 앞에. 이벤트 같은 걸 하고 있나 봐요.”

확실히, 유진이 가리킨 쪽 너머엔 무언가 화려한 장식을 늘어놓은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픈 기념 이벤트…인가. 그다지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반문까지 해놓고는 그의 말을 대놓고 무시할 순 없는지라 흥미가 없는 것처럼 적당히 목소리를 꾸며낸다. 핸들 위에 올라 있는 손가락이 초조하게 까딱거린다.

“흥미 있나? 단 걸 좋아하는 한유진 군.”

“…아니거든요. 그 얘기는 지금 갑자기 왜 꺼내는데요.”

“…아.”

이런, 실수였다. ‘이벤트’라고만 했지 그 이벤트가 구체적으로 무언지는 아직 알 수 없어야 맞는데. 이상하다 생각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을 숨기며 그의 기색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유진은 별 이상을 못 느꼈는지 여전한 태도로 창밖만 보고 있었다. 카페 앞에 세워진 이벤트 안내판을 보는 듯했다. 속도 모르고 내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저렇게 눈을 빛내면서 누가 단 걸 안 좋아한다는 건지. 슬슬 본인도 알지 않을까. 단지 부끄러워서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으로. 이상한 부분에서 부끄럼을 타는 한유진이라면 제법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오, 구매 음료와 상관없이 한 잔당 마카롱이랑 브라우니를 한 개씩 넣어준대요.”

“음. 그렇군.”

“제대로 들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들를까?”

때마침 불이 들어온 신호를 따라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며 넌지시 묻는다. 일단은 물음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사실은 좀 더 음습한 유도신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물으면 아마, 본인의 기호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한유진으로서는.

“네? 아뇨, 뭐, 꼭 내가 가고 싶어서 말 꺼낸 건 아니고요.”

“정말로? 기회는 한 번뿐이네.”

“예, 예. 정말이 아닐 건 또 뭐예요. 그냥 밥만 먹고 얼른 들어가든가 합시다.”

“착하군. 집에 가면 상을 줘야겠어.”

내 말을 뭐라고 해석한 건지, 빨개진 얼굴로 어깨를 두들겨대는 힘을 느끼며 묵묵히 앞만 응시한다. 붉게 달아오른 한유진이 보고 싶기는 했지만 채 없애지 못한 동요가 남아있어 아직 힘들었다.

모든 걸 다 들어주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러잖아도 불안한 마당에 나서서 변수를 추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변수 그 자체인 한유진은 그대로 두고 주변의 상황만 통제하려 드는 자신이 우습기가 그지없다. 그래도 어쩌겠어. 제멋대로 형벌로 삼았으면 누군가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내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밥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에서 하는 한유진과의 식사는 무척 즐거웠다. 중간 중간 어색하게 화제가 끊기는 일도 없었고 평소 자주 갔던 한정식 집은 여전한 맛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가장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초를 치고 싶지 않아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한 번씩 입안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평화로운 일상에조차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니.

차를 타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피곤한지 옆자리에서 잠든 유진을 힐긋거리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핸들을 쥔 손에 불현 듯 힘이 들어간다. 차에 타기 직전 크게 요동쳤던 마음이 아직도 미세하게 수런거리고 있었다. 티 나지 않게 심호흡을 몇 번을 삼켰는데도 전부 소화가 안 된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닐 줄을, 괜찮을 줄을 알면서도 이성보다 먼저 몸이 튀어갔다. 한유진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기에. 이번에는.

‘어, 왜 그래요? 성현제 씨?’

‘…….’

‘괜찮아요? 왜 이렇게 땀이…….’

분명 타고 올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차인데. 그래서 이제는 괜찮아진 줄 방심했던 건데. 돌아가기 위해 앞장서 가며 차와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보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차는 멈춘 상태이며 들어오기 전 내가 직접 주차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 순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한유진만. 차에 가까워지는, 차가 가까워지는 한유진만 중요했다.

그래서 그를 무작정 붙잡았다. 사라지고 않고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일단 붙잡아야 했다. 공황에 빠진 머리는 영문을 모른 채 돌아보는 말간 얼굴을 보고서야 미칠 듯한 점멸 상태를 벗어났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줄을 그제야 알았다. 토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숨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죄책, 부채, 죄악, 그런 이름이 붙은 무형의 형태들을.

조심스레 뺨에 닿는 타인의 온기에 반사적으로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굴을 묻었었다. 고장 난 머리로는 정상적인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저 또다시 손길에 연기처럼 스러지지 않았다고, 이 순간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

한유진은 나에게 자초지종을 묻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사색이 되어 저를 붙잡았는지, 무엇에 그토록 떨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본인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게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데 궁금증이 하나도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입에 한번 올리지 않고 오지도 않을 잠을 청하려는 것은.

“…한유진은 친절하니까.”

그의 친절에 기대어 기만을 일삼는 나조차도 모른 척해줄 만큼. 친절한 한유진 씨는 아마 계속 기다려 주겠지. 언제고, 그러다 결국 죽어 유령도 뭣도 아닌 상태가 되어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지금까지도.

비는 지겹게도 추적추적 내린다.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을 본 게 얼마나 됐는지도 이제는 까마득했다. 내 기억 속 하늘은 언제나 비가 퍼부었고, 카페는 언제나 오픈 이벤트 중이었으며, 고양이는 언제나 애달프게 울어댔다. 이상할 것 없는 하루였다. 정말로. 잘못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하루이다. 내가 그렇게나 바라마지않던 일상. 노력에 노력에 인내를 거듭한 끝에 기어이 쟁취해 낸 평온. 그리고 한유진. 이 이상 또 무얼 바랄 게 있으랴. 현상 유지는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던가.

그치지 않는 비에 잠긴 8월 30일도 조금씩 자정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 다니는 차도 없이 한적한 도로는 마치 집까지 친절하게 나를 안내해 주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집 바깥으로 이렇게 완전히 나온 것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몇 번의 사고 이후로는 두려움에 질려 강박적으로 집을 벗어나질 않았으니. 유일한 내 안식처였기에 더 필사적으로 지키려 들었던 것 같다. 절대로 이곳을 떠나면 안 되는 것처럼. 공포는 쉬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왜 변했지.”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유진을 잃은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 자꾸만 달갑지 않은 변화가 생긴다. 한유진이 달라진다. 시간도 안 됐는데 실체가 생기고, 하지도 않던 제안을 갑작스레 입에 올린다. 어째서? 왜 갑자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건 좋지 않다. 겨우 쌓아올린 모래성이 무너져버린다.

차를 세우고, 잠든 연인의 옆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품에 안고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오는 작은 생명체의 울음소리는 부러 신경 쓰지 않은 채였다.

 


한유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존재를, 나의 결백을, 지금이 현실이라고 증명 받고 싶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잘못되지 않았어. 이런 건 일개 범인(凡人)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잖아.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저 충실하게 현실에 임했을 뿐인데. 상황이 시키는 대로 하릴없이 따랐을 뿐인데. 그게 전부잖아. 그 이상의 의미가 붙는다고는 얘기되지 않았잖아.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정신없이 광인처럼 눈앞의 살결을 그저 허겁지겁 탐한다. 이번에는 내 안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이성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울먹이며 소리치는 연인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치는 불안만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고는 암전. 마침내 암흑이었다.

 


판소처돌이 | 중독 유진른 문대른 | 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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