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먹은 게 뭐기는! 네가 왜 모르는 것처럼 말해? 잘 생각해 보라고!”

반디의 마치 쥐어짜내는 듯한 그 말을 듣자마자 민은 아까 아침 식사를 할 때를 떠올린다. 그날따라 민은 자신이 자주 먹던 햄치즈샌드위치가 아닌, 팬케이크를 먹었고, 크게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그 샌드위치를 왜 누나가 먹은 거야?”

“아, 그런 일이 있었지. 마트에서 누군가가 빵에다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봤거든? 그래서 그걸 놓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엄마가 내가 표시해 놓은 빵으로 샌드위치를 해 놨길래, 내가 그걸 먹은 거고.”

“어... 그래요?”

언주가 문득 말을 꺼낸다.

“우리 학교의 누군가가 범인 아닐까요?”

“아니야. 너희 학교의 사람들만 노린 건 아니니까.”

“그러면요?”

언주가 묻자, 반디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앓는 소리를 잠시 내더니, 이윽고 입을 연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내가 먹은 빵이야. 메이링이 보내 준 건데, 그런 이상한 식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마트에서 파는 빵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지. 이제 그중에 나도 포함이 되는 거고.”

“정말요? 그걸 왜 고모가 먹었어요?”

“내가 그 광경을 본 이상, 다른 사람들이 먹게 할 수는 없었거든. 그런데 너희 할머니가 그걸 못 보고 그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네? 그런데 너희 삼촌이 그걸 먹게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내가 먹은 거야. 그리고 예상대로 이렇게 누워 있는 거지.”

반디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후회하지는 않는 건지, 웃음까지 흘려 가며 말한다.

“참... 고모도 참 고모답네요. 그런데 먹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별 느낌은 없더라.”

“무슨 별 느낌이 없어요?”

반디는 애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하지만, 여전히 계속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에 서 있는 민과 언주에게 빨리 돌아가라는 손짓을 연이어 한다.

“나는 괜찮으니까, 가서 너희들 일 봐.”

“어... 네...”

언주가 그렇게 말하고 반디의 방문을 나선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슬며시 문을 열고 반디가 뭘 하고 있나 한 번 더 본다. 반디가 침대에 다시 누운 걸 보자, 언주는 민을 보며 말한다.

“고마운 줄 알아. 네가 그 샌드위치를 먹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아니, 내가 알았나... 그냥 ‘우리 누나가 변덕을 부리나 보다’ 한 거지.”

“하여튼 먹을 것 갖고 장난치는 녀석들은 그 몇 배로 당해도 싸다고.”

언주는 민과 같이 민의 방으로 잠시 가기로 한다. 벌써 컴퓨터가 켜져 있고, 한쪽에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게임 대기 화면이 있다.

“친구들하고 또 게임 하려고?”

“어... 그런 거지.”

“또 이 거실을 오락실로 바꿔 놓으려는 건 아니지?”

“아니라니까... 오늘은 밖에 갈 거야. 아마도 여기 오락실 아니면 여기 PC방이겠지.”

“호오, 정말?”

“진짜라니까! 못 믿겠으면 한번 따라와 보든가.”

민이 그렇게 한번 와 보라는 듯 말하자, 언주는 오기라도 들었는지 곧바로 민의 뒤를 따라나선다. 민은 그런 언주를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쯤, 미린역 지하 아케이드까지 다다른 언주는 민이 간다는 그 PC방에까지 쫓아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크게 이상한 것을 하려는 건 아니고, 앉아서 가볍게 게임을 한 판 했다가, 민과 일부러 마주쳐서 놀래켜 줄 생각이다. 그런데 마침 언주의 눈에 아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야! 언주야! 거기서 혼자 멍청하게 뭐 하고 있어?”

“뭐야... 멍청하게라니.”

만화부의 나디아가 어느새 언주의 뒤에까지 와 있다. 누가 보면 마치 기습을 가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는 넌 뭘 하려고 하는지나 물어보자.”

“좋아. 루리 선배가 저기 마리나 센터에서 공연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려고 하거든? 너도 생각 있으면 같이 가 보고.”

“어... 정말? 누가 공연을 해?”

“바로 이거지!”

나디아가 보여준 포스터에는 몇몇 인디밴드가 마리나센터에서 소규모로 공연을 한다고 되어 있다. 잠시 언주는 고민을 하지만, 나디아는 그런 고민의 시간마저 주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이런 기회 흔치 않다고! 어슬렁거리며 시간 보내는 게 낫겠어, 아니면 공연 보면서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어?”

딱히 할 일이 없던 언주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다. 어차피 집에 가도 특별히 할 일은 없고, 이런 공연에 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침 걸어서 가면 공연장까지 딱 거리가 된다.

“좋아, 가 보자고. 기대해도 되는 거지?”

언주는 나디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시간은 지나 저녁 7시 30분. 민과 친구들은 PC방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어디선가 식사를 한 다음 간식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던 참이다.

“이상한 전법 좀 쓰지 마라. 내가 모를 줄 알고?”

“야, 그걸 자꾸 이상하게 보는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엄연히 ‘트리플 버스터즈의 전당’이라는 사이트에 보면 공략법까지 다 공개된 전략이라고!”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자, 토마는 애써 그렇게 말한다.

“나보다는 재림이 그 애가 이상한 전법을 자주 쓸걸? 봤잖아! 너도, 너도! 맞지?”

“아니, 재림이는 그냥 이상한 능력을 쓰는 것 같은데. 내가 틀렸나?”

카일이 그렇게 재림이라는 이름을 듣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참에, 마침 일행의 눈에 젤리와 각종 디저트를 파는 가게가 보인다. 민과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가게로 앞다투어 들어간다.

“이야, 저건 새로 나온 건가? 큐브 젤리를 막대기 같은 거에 끼워 팔잖아?”

카일이 그 젤리 꼬챙이를 보더니 궁금했는지 민과 친구들을 가까이 오게 하며 말한다.

“이것도 혹시 그 탕후루 같은 건가?”

“야! 봐봐, 아니라잖아!”

민이 가게 한쪽에 걸린 광고판을 가리키며 말한다.


[탕후루와는 다르다! 술술 넘어가는 큐브젤리!]


“오, 그래! 이거 하나 먹어보고 싶었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젤리가 유행인 거지?”

“그러게. 하나 먹어 봐야지!”

“야, 다들 무슨 젤리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그러냐. 내가 이런 젤리는 마음껏 먹게 해 줄 수 있는데.”

유가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유도 젤리로 손이 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도 먼저 큐브젤리 하나를 고르고 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들 젤리를 원하는 만큼 고르고 가게를 나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 보인다. 옆에 보이는 고기구이 가게에, 세 사람이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은 여기저기 만신창이가 된 미린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정장을 입은 덩치가 꽤 커 보이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흰 옷을 입고 머리가 긴 사람이다.

“어? 아까 본 거 같은데...”

민은 바로 그 얼굴이 누군지 기억해낸다. 소공원에 누워 있었던 그리핀이다.

“우리가 가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저렇게 왜 잡혀서 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한 토마가 막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 위해 주위에 구름을 생성하려다가, 그 정장 입은 남자와 머리 긴 남자가 누군지 알았는지, 황급히 그걸 거두고, 차렷 자세를 한다. 마침 그 머리 긴 남자가 토마를 돌아본 참이다.

“피... 피오 씨죠!”

“그래. 토마 생라파엘이었지? 요즘은 사고 안 치고 잘 지내나?”

“무... 물론이죠! 콜록... 요즘은 그런 사고 안 쳐요. 여기 제 친구들한테 물어보세요. 저 요즘... 안 그런다고요!”

토마는 피오와 아펠바움 실장의 시선에 잔뜩 겁이 질린 모양인지, 또다시 기침을 여러 차례 하며,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하며, 자꾸만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말한다. 토마의 그런 말을 들은 피오가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허, 진짜인가? 여기 친구들, 여기 토마 군이 하는 말이 맞는 건가?”

“아, 당연하죠! 요즘 사고는 안 친다고요.”

민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토마를 은근히 재미있다는 듯 보며 말한다. 토마는 역시 민의 시선을 은근히 피한다. 물론 긴장한 나머지 천식 증상이 또다시 도질 뻔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토마가 만약에 무슨 사고를 치게 된다면 제가 뭐든 해 버릴 건데, 어떻게 또 사고를 치겠어요? 안 그래요?”

그 말에 친구들이 실실대며 웃자, 토마는 토라진 표정을 짓고서 주위에 구름을 만들려는 신호를 보이지만, 이내 피오가 뭔가 묘한 손동작을 보이자, 금세 아까의 긴장된 표정으로 돌아간다.

“친구들 말이 맞아.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그런가?”

“네...”

“그리고 여기 그리핀 군도 그렇고.”

“저기, 제가 뭘 어떻게 했다고요...”

그리핀이 그렇게 변명을 해 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게 피오를 자극한 건지, 피오는 그리핀의 그 말이 가소로운지 ‘하’ 하고 한숨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말을 덧붙인다.

“모든 증거가 자네가 그 마왕성 사건의 장본인임을 가리키고 있는데? 자네가 아무리 자네의 행적을 축소하려고 해도, 주변의 CCTV라든가, 자네가 아까 만들었던 그 어설픈 환각을 보면 딱 자네인 게 나와. 이제 순순히 인정하고, 우리 쪽의 처분을 받아들일 때가 됐는데. 쓸데없는 고집은 자네에게 해만 될 뿐이야.”

“그러니까 그게 왜요! 저는 마왕성은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그리핀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자, 피오도 더 참을 수는 없었는지, 정보원들이 보내 온 사진을 꺼내 보이며 말한다.

“이래도 아니라고?”

거기에는 후드를 둘러쓴 그리핀이 마왕성을 막 만들어내고서 낄낄거리는 사진이 담겼다. 교복을 입은 탓에 이름표가 희미하게 노출되었고, 거기에는 그리핀의 이름이 쓰여 있다.

“어...”

그리핀은 그래도 잡아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라고요! 그 사진이 조작되었을지, 그리고 그 사진을 누군가가 거짓으로 모함할 목적으로 조작해서 퍼뜨린 건지, 어떻게 알아요? 확실한 증거도 없잖아요!”

“그리핀 군,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자네만 추해지는데.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좋아요... 그 마왕성, 제가 만들었어요, 다. 이제 마음대로 하시죠.”

그리핀은 체념한 건지, ‘하’ 하고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 같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이제 어떻게 되든 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다행이네. 이제 자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준비는 됐겠지?”

그리핀은 피오의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건지, 아니면 앞이 깜깜해진 건지 ‘후’ 하는 한숨만 연거푸 쉴 뿐이다.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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