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랫만입니다. 아마 제 트위터를 보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최근 ADHD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차마 140자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금 풀어놓아 보려고 합니다.

저는 2017년에 ADHD를 진단받았습니다. 이미 학창 생활 다 지나고 커리어도 잘 쌓고 있는 중이었고, 또한 진단을 사우디로 이민하기 직전에 받았던지라 병원을 꾸준히 다닐 상황이 안 되었기도 했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정신과 질환'에 대한 거부감도 은연중에 있었던 것도 맞아요. 그러다 올해 어떤 일을 계기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치료를 결심 할 때 많은 분들의 경험담들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되어 저 또한 저의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혹시 정신건강의학과와 정신질환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인식 개선을 꾀하고, 질환으로 고통받고 계시는 분들에게 치료과정을 공유함으로써 병원을 가시는 데 마음의 짐을 좀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ADHD를 처음 진단 받았던 건 2017년도에 서울에서 사우디에 올 준비를 하던 때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질병을 의심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거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ADHD에 찾아보기 시작하고, 내가 ADD(현재는 주의력 결핍 우세형 ADHD)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ADHD에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위기의 주부들'에 주인공 중 하나인 '르넷'의 쌍둥이 아들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 둘 씩 성인 ADHD에 공부하면 할수록 계속 확신이 늘어났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두려움에 바로 병원에 가지는 못했고, 1~2주정도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다. 우울증 아니면 ADHD 아니면 정상인데 어쨌거나 나는 이걸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거슬리는 무언가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리고 어떻게 하지 못하면 나는 다시 또 발목을 잡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고, 거의 2시간 정도 걸려서 4~5가지 설문지를 작성했다. 설문지는 해석해 결과가 나오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린대서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고 방문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 받았던 결과지를 들고 한참 울었던 것 같다. 지능은 높은 편이고, 우울보다는 불안/공황이 있으며,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왔었던걸로 기억한다. 담당 선생님께서 약을 처방하면서 언제 다시 올 수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난감하게도 3일 뒤에 사우디로 출국하는 비행기가 잡혀있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약 4주 치를 처방받고 비행기를 탔다.

사실 그 당시에는 처방받은 약이 뭔지 찾아볼 생각도 안 했다. 당장 출국이기도 했고, F/U이 힘들 테니 약을 복용하기도 난감했다. 나 자신에게 익숙해 진 상태라서 일상생활에 별 지장을 안 느낀 것도 있었지만, ‘정신과’와 ‘정신질환 약물’이라는 것 자체도 나의 디나이얼에 큰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나름 간호사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상태였고, 여기서 갑자기 나의 ‘정신병’에 발목이 잡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이 엄청나게 힘들었으니, 좀 더 나은 환경인 사우디로 간다면 증상도, 나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삶도 훨씬 편해져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코로나 전 까지는 말이다.

2020년 초, 코로나가 판데믹이 되어 전 세계를 휩쓸면서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한국에 있어야 했고, 9월에 비로소 복귀하게 된 병원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상당수의 스탭들이 사직을 했고, 새로 고용할 인력을 찾지 못하거나, 비행편이 없어서 사우디로 들어 올 수가 없었다. 남은 스탭들이 그 빈 자리를 메꾸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중환자실도 하나 오픈을 해 버리니 모든 널싱 스탭들은 계속 4주에 19~20개의 근무를 해야 했고, 비행기가 막힌 상태라 어디로도 여행을 갈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탈진이 누적되다 보니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무기력과 무감동이 너무 심해지고, 몸이 계속 가라앉으면서 피곤이 풀리지를 않았다. 만사에 의욕도 없었고. 그런 증상들은 2021년 6월 휴가 전까지 1년을 넘게 나를 괴롭혔다. 당연히 번아웃일 거라고 예상했고, 사직을 결심했다. 오버타임을 '강제'하는 이 병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와 사직 면담을 하고, 마지막 휴가 날짜를 정했다. 원래는 4주-28일의 휴가밖에 쓸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매니저의 배려와 운이 더해져서 거의 6주 정도를 한국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해 자가격리 첫 2주는 거의 자다 깨다 하면서만 보냈다. 처음 내 계획은, 한국에서 자가격리 동안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지고, 그 후 4주 동안은 영어공부에 집중 하는 것이었다. 사우디에 다시 돌아가면 공부를 할 수 없을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공부는 무슨, 4주 내내 에너지가 없어서 골골대기만 했다. 물론 더웠던 날씨도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했다. 

휴가 5주차가 되어도 번아웃이 사라지지 않자, 내 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집 근처 내과를 가서 갑상선 기능 검사, 간기능검사, 기본 혈액검사를 받았다. 모든 검사는 정상이었고, 나는 다시 불행에 빠졌다. 도저히 뭐가 문제인지 알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트위터에는 ‘이제 의심 가는 진단 검사는 다 해보았으니 다음은 정신과다’라고 트윗을 올렸다. 그런데 잠깐. 이미 나는 정신과에서 진단을 받은 경력과 처방받은 약도 그대로 있지 않던가?


한국에서 사우디로, 사우디에서 다시 영국으로 떠나온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내킬 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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