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드가 움찔 했다.

"알아내야 할게 버젓이 남아있는데 주변인에 감겨 정신을 못차리고 있지. 미련해."

그가 동요했다. 틀린 말 없다 여겼다.

"이런걸 보면 황제에는 내가 더 어울리는데 말이야. 하하하!"

폭소하는 브렉을 자라드는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뭘 얼마나 알고 있지?"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 화살을 쏴대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모두 알았지. 아, 어쩌면 내가 알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무슨뜻이야."

브렉은 얼굴을 굳혔다.

"글쎄…."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 알고 나면 자네는 나를 죽일 수 없을거라는 말이야."

"이유는?"

"넌 꽤 선한 인간이니."

브렉이 비릿하게 웃었다. 잠시 생각하던 브렉은 자라드에게 물었다.

"아, 자네 그 노래 기억나나?"

"노래?"

"그래 노래. 내가 자네와 처음 만났을때, 내가 들려줬던 노래 말이야."

자라드의 머릿속에 가사들이 뒤섞였다. 

"기억이…"

브렉은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강변을 걷는 그대여, 이 소리가 들리는가.

부모 잃은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가. 

심장이 가려운가, 혹은 아파오는가.

그들의 울림이 가벼운가, 무거운가.

강변을 걷는 그대여.   」


자라드는 아주 짧은 순간,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를 브렉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분노인가. 어째서, 저를 향한.

그때 태양이 조금 떠올랐다.

"오 이런,"

옅게 퍼져나가는 짙은 주황빛을 목격한 브렉은 안타까운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우우우웅-

곧 수많은 영혼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포탈이 그의 뒤로 드러났다. 자라드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건 원치 않았다. 포탈은 굉장히 불쾌한 기운을 뿜었다.

"역겨운 짓을 하고 다니는구나 브렉."

브렉은 포탈 안으로 한 발을 넣은 뒤 뒤돌아 웃었다.

"하하하하! 우둔한것 보다야."

"뭐든 내려놓고 죽는게 마음이 편할거다."

브렉이 자라드를 바라봤다. 해가 조금 더 떠올랐다.

"글쎄, 나는 너를 죽여도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할거라니까."

브렉은 입술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우리는 빌어먹게도 엮였네. 그것에 우리의 의지가 있던, 없던 간에. 마음이 시키는대로 움직여봐. 내게 즐거움을 줘, 발데리."

자라드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잠깐…!"

포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라드의 외침이 마침표라도 되는듯. 트위츠가 손을 뻗은 곳에는 허공만이 잡혔다.

"제기랄, 어떻게…"

'발데리'


서쪽에서 바람이 몰려왔다.


-


아침해가 모두 떠오른 시간이었다.

브렉의 오러는 꽤나 날카로워서, 조금 더 베였다면 혈관을 모조리 끊어먹었을 것이다. 자라드는 엉망이 된 제복을 그대로 입고 상처에 설렁설렁 붕대를 감고 있었다. 두통과 무기력, 혼란은 고통이 지워줬다. 


똑똑-

"접니다 전하."


그가 지금 가장 마주하기 두려운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두렵기는 그 상대방도 마찬가지 였다. 글로 쓰기 애매한 기운이 육중한 문 하나를 사이로 두고 오갔다.

"…들어와."

끼익-

문 사이로 남색 머리카락이 서서히 흘러들어왔다.

남색 눈동자에 자라드가 담기자, 그 눈동자는 크게 확장되었다. 

"전하, 무슨…"

"거기 서서 보고해."

실버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는 왕을 응시했다. 새벽에 있었던 일로, 저를 멀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저리 망가진 모습으로 기대어 있을까 싶었다. 팔에 난 상처는 피가 제대로 멎은 것 같지도 않았다.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자라드는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되었으니 보고 해."

"부르기 전까지는 안합니다."

"좀 시키는대로 해!"

"안합니다!"

실버가 맞받아 소리쳤다. 자라드는 자신이 방금 소리쳤다는 사실과,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실버를 쳐다봤다.

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자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랬습니까?"

자라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저를 신뢰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맞아."

실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안 오실거면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성큼성큼 자라드에게 다가가 다친 팔을 들어올렸다. 그가 낮게 신음했다. 대충 감겨진 붕대가 흘러내리고 길게 베인 상처가 드러났다. 실버가 붕대를 천천히 다시 감기 시작했다.

"대충 감을거면 안 감아 두는게 더 낫습니다."

"그런가."

실버는 상처를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누구입니까?"

"브렉."

그녀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자라드가 보지 못할 리 없었다.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를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버는 남은 붕대를 지익 찢었다.

"제가 다칠까봐 그런거 아닙니까?"

자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호위 한명일 뿐인데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아랫사람은 아랫사람 대우에 맞게 대해주면 된다고,"

실버가 차갑게 말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었는데."

자라드는 피식 웃었다. 맞는 말에 맞는 말이었다.

"네가 내게 특별해졌나 보지. 내 기준에 네가 아랫사람 1의 영역을 벗어났나봐."

실버가 자라드를 올려다 봤다. 가까운 거리였다.

"브렉이 나보고 그러더군. 내가 주변인에 감겨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그게 뭐가 나쁩니까?"

자라드는 텅빈 공간이 조금씩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흑마법을 위해 에이몬에게 사람을 사서 영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짓이야 말로 역겨운 짓 아닙니까? 사람이 살자고 행복해 보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쁜건지 모르겠습니다."

"다 넘겨두고 행복해 하는건 모순이니까."

"항상 행복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자라드는 굳게 저를 쳐다보는 실버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웃었다.

"하하하!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좋네."

햇빛이 길게 들어와 둘을 비출 때였다. 눈을 찡그릴 법도 한데 자라드는 그녀에게서 반사되는 모든 빛을 눈에 담았다.










소설 [죽은 장작에게]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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