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카루스, 당신은 떨어질 걸 알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나요. 그렇게 나를 떠나가나요.

 

그녀의 오랜 연인인 여자는 간결하게 이별을 고한다. 그녀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여자는 특유의 조곤조곤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한다. 여자는 파일럿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의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여자는 그 결과 한 쪽 눈과 귀, 팔과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여자가 살아난 것 자체가 행운이고 기적이었으나, 그것은 의사와 그녀의 관점일 뿐 여자에겐 아니었다. 여자는 지독한 정신병을 달게 되었다. 

여자의 말은 단조로웠다. 나에게는 고치기 힘든 병과 고칠 수 없는 장애가 생겼다. 더 이상 우리의 관계는 너에게 부담일 뿐이니 헤어지자. 그녀는 여자를 이해했으므로 여자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나는 너의 연인이고 너를 사랑한다.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널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여자의 한 마디에 묵살당했다.

 

“넌 도와줄 수 없어.”

“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널 볼 때마다 생각나. 건강하고, 정신병같은 거 없던 내가. 널 사랑하지만, 네 존재는 날 비참하게 해.”

“미안해.”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울 듯이 웃었다. 그래서 그녀는 화내고 싶었지만 화를 내지도,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녀는 무어라 답하지 못한 채 그저 일어나 여자의 집을 떠났다.

 

그녀가 다시 여자의 집에 간 때는 한밤중이었다. 여자와 둘이 대화하던 식탁에는 오후에 그녀가 두고 간 아이스티가 든 잔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불은 하나도 켜져있지 않았다. 여자의 성격상 치워두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늘 집안을 어지르는 건 그녀쪽이었고, 여자는 잔소리하면서 본인이 먼저 치워버려 그녀에게 기회를 넘겨주지 않았었다.

여자의 신발은 한 켤레도 빠짐없이 신발장에 놓여있었고, 때는 콘크리트가 불에 올린 프라이팬처럼 달궈지는 여름이었기에 그녀는 여자가 설마 맨발로 나갔으리라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여자와 그녀의 방 또한 그녀가 나가기 전과 그대로였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침대 위에는 여자와 그녀의 모양대로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이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안방에 연결된 화장실의 문을 열자 습한 기운이 확 몰려나왔다. 그녀는 집 안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공간을 찾아낸다.

 여자도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119의 번호를 세 번 틀린다. 전화 너머 어조 없는 침착한 목소리는 그녀를 진정시켜주지 못한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나서도 본인이 주소를 정확히 말했는지, 아니 말하기는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병실에서 하룻밤을 샜다. 여자는 이른 아침에 깨어났다. 매일 아침 보던 갈색 눈동자의 초점이 맞춰지며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밤새 흘린 눈물에 퉁퉁 부은 얼굴로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여자는 따라 웃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 돌아왔어?”

여자가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의 시선은 그녀와 병실 서랍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하루에 얼마만큼이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확인한다.

“난, 이대로 못 가겠어.”

“난, 그냥..”

“네 옆에 있게 해주면 안돼?”

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얼굴을 한 껏 일그러뜨리며 엉엉 울었다. 무릎 맡에 파묻혀 눈물을 묻히는 그녀를 여자는 붕대를 감은 팔을 들어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머리에 닿는 손이 기억과 달리 너무 거칠어 여자 몰래 입술을 깨문다. 사고는 여자의 부드럽고 매끈한 팔에 자글자글한 흉을 만들었다.

 

여자는 퇴원 후 상담을 권유받았다. 그녀는 여자가 템플릿에 잠시 시선을 주고, 다시 의사를 바라보다 다시 사람 둘이 눈을 감고 서로를 안고 있는 삽화를 빤히 들여다보는 걸 지켜보았다. 여자는 잠깐의 침묵 후 퇴원 가능 날짜를 물었다.


그녀는 그녀가 밤새 집과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가져다놓은 짐을 정리하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1층 병원 매점에서 얻어온 종량제 봉투에 옷가지며 물건을 아무렇게나 넣고는 매듭지어 묶었다. 그녀는 여자가 그걸 집으로 가지고 돌아갈 일은 없으리란 걸 알았다. 그들은 그 정리가 진행될동안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랑 결혼해.”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속이 빈 유리알같은 여자의 눈이 진의를 파악하듯 그녀를 흝었다. 그녀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자와 며칠만에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것에 황홀감마저 느꼈다. 여자는 그녀의 목 언저리를 보며 살이 내려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난 널 좋아해.”

“그래서 너가 날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널 싫어하게 될 일은 없어.” 그녀가 단언했다.

“아니, 넌 몰라. 넌 결국 지치고, 후회하게 될거야. 난 너도 망가뜨리고싶지않아.”

그녀는 이제 여자를 노려보았다. 눈물 가득찬 벌건 눈이 새까맣게 빛이 들지 못하는 눈을 마주한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연다.

“난 널 떠나지 않을거야. 이건 내 선택이야.”

“..넌 후회할거야.”

“그것도 내가 결정해.”

그녀는 고개를 숙여 여자에게 입을 맞춘다. 버석거리는 여자의 입술에 그녀의 눈물이 한 방울 흘러 젖어들었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깐 여자의 눈을 하염없이 쫓았다. 여자의 눈동자에 그녀는 비치지 않았다.

 

 

--

 

그녀는 집안에 들어서며 습관적으로 거실을 살핀다. 여자는 없다. 그녀는 소리없이 한숨쉬고 방문을 연다. 불 하나 키지않은 방 안은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와 적당히 어두웠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반쯤 눈을 뜨고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2시야. 일어나. 약은 먹었어?”

“아니..”

그녀는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여자를 일으키고 물 한 잔을 가져다준다. 여자는 절반도 삼키지 못한 채 잔을 침대 맡 서랍에 올려둔다.

“일단 밥부터 먹자.”

 

여자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밥을 몇 번 씹지도 않고 목으로 넘긴다. 그녀는 천천히 씹으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맨밥만 입에 넣는 여자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준다. 여자의 아삭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울린다. 그녀는 하루중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낀다.

 

여자가 먹는 약은 두 가지였다. 항우울제와 새콤한 맛이 나는 동그란 비타민. 여자는 레몬 맛을 가장 좋아했다.

 

여자는 비행기 소리에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온몸을 떠는 여자를 껴안고 괜찮다는 말을 속삭여 주었다. 그걸로 여자의 떨림이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품에 파고드는 여자를 그 소리로부터 최대한 숨겨줄 수 있었다.

 

여자는 느리고, 불규칙적으로 나아지고 다시 나빠졌다. 여자는 종종 비명을 지르고, 벽에 머리를 쿵쿵 찧어댔고, 푸른 하늘을 보며 눈물 흘렸다. 그래도 이건 나아진 편에 속했다. 그녀는 여자를 상담에 데려가고,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며, 비행기 소리가 더 이상 공포가 되지않도록 공항을 들락날락했다.

 

여자는 어느날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를 보며 얕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그녀를 다시 웃게 만들었다.

 

계절이 몇 번 지나가고, 그들의 이웃이 몇 번 바뀔 때까지도, 그들은 그 집에 살다가 여자의 권유로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렇다할 짐을 챙기고 남겨둔 것은 침대뿐이다. 이 밤이 지나면 그들은 이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것은 낯설고 불안하지만,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녀는 잠이 든 여자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밖은 매미가 깨어났는지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열린 창문 너머에서 흘러들어온다. 여자는 이제 웬만한 소음이나 자극에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나보다. 그녀는 지독하게 푸르른 하늘 위로 구름보다 높이 떠있는 태양의 열기를 느낀다. 하지만 저 열기가 이 곳에 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창문을 닫았다.

 

나의 이카루스, 부디 너무 높이 날지말아요. 추락해도 내가 잡아줄 수 있도록. 하지만 설령 당신이 저 태양에 다다를 정도로 날아가버릴지라도, 당신을 위해 땅을 지키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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