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그대를 잊는다는 건 - 다비치 들으며 읽으면 좋습니다.


 연수와의 짧은 통화가 끝났다. 도로 옆에 세워둔 차가 아슬아슬했다. 운전석에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도 연수가 무사했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숨이 가빠졌다. 머리를 싸매고 있던 손을 내려 핸들을 세게 내리쳤다. 두 뺨이 온통 흥건했고 턱 아래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안도감, 불안, 분노, 총천연색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당장이라도 연수에게 달려가 정말 무사한 건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연수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박한영이 집에 왔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내 걱정을 예상한 행동이었다. 연수의 핸드폰이 켜져 있었으니 박한영과 나혜은도 연수의 집에서 나온 듯했다. 일단은 놀랐을 연수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많은 협박을 받았지만 이번 일만큼 치가 떨리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내 곁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연수가 그 개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내가 무력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사장 자리는 연수가 견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생각했다. 나 때문에 연수가 털끝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연수를 다치게 한 사람들을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누구 때문에 대현 이사장이 됐는데, 나의 모든 목적과 이유가 사라져 버리면 나도 살 이유가 없었다.

 미약한 신음이 나왔다. 손바닥으로 눈가와 뺨을 문질렀다.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이 거칠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간신히 부여잡고 핸들을 돌렸다. 핸들은 다잡은 손에 들어간 힘이 자연스럽지 못해 덜덜 떨렸다. 새벽의 캄캄한 어둠도 불안정한 손의 떨림과 위태로운 눈물방울들을 감춰주지는 못했다.


- - -


 “연수 쌤 왔어?”

 “아, 네네. 좋은 아침입니다.”


 간단한 인사만 건네며 쌩하니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내 모습에 나은 선생님이 조금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은 선생님이 몇 초 동안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무슨 일 있어? 오늘 왜 이렇게 쌤답지 않게 뭐가 급하실까?”


 나은 선생님의 입가에 흥미로운 듯 은은한 미소가 맴돌았다. 새로운 흥밋거리에 눈빛이 반짝반짝해지고 뺨이 불그스름해진 나은 선생님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보내고 핸드폰을 챙겨 급히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출근하고 아침에 잠깐 체육관으로 와 봐 줄 거 있어]


 다성이에게서 이렇게 문자가 오니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조회가 시작하기 전 체육관으로 가서 다성이를 만나야 했다. 학생들과 다른 선생님들의 눈에 띌까 일부러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고 체육관으로 가는 와중에도 열심히 주위를 살펴야 했다. 싱숭생숭했던 어제 일 때문에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다성이가 이렇게 연락을 주었을 때는 꼭 가야만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갤 만큼 중요한 일임이 틀림없을 테니까.

 뛰어가는 두 다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체육관 계단을 올라가는 시간도 아까워 나도 모르게 두세 칸씩 오르게 되었다. 아직 체육 선생님들도 출근하시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이사장실 쪽을 살폈다. 멀리서 본 이사장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이사장실 쪽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던 이사장실 안에는 문 옆의 좁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다성이가 있었다. 다성이는 가만히 서 있다가 내 인기척에 이사장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다성이를 보면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그 쉬운 이름마저도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남다성이.

 다성이는 그 자세에서 시간이 멈춘 듯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팔로는 내 머리를 잡고 다른 팔로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내 목덜미에 파묻은 다성이의 얼굴에서 따뜻한 숨소리가 색색 들려왔다. 갑자기 다성이의 품에 안기게 된 나는 조금 당황하다 다성이의 등에 손을 올려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다성이의 가슴이 숨소리와 함께 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불도 켜지 못한 어두운 이사장실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잠시 뒤 다성이가 먼저 고개를 들고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나를 보는 다성이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지만 마냥 밝아 보이지 않았다. 다성이는 뒤를 돌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종이봉투를 가져왔다.


 “…이건 휘두르면 펼쳐지는 삼단봉이야. 그냥 잡고 아래로 내려치면 돼. 그리고 이건 스프레이. 누르고 눈에 분사하면 돼.”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이건 전기 충격기. 버튼 누르고 상대한테 갖다 대면 전기 통하는 거, 알지? TV에서 많이 나오잖아.”

 “이걸 왜 나 주는데?”

 “……사람 한 번도 안 때려봤지?”


 남다성은 내 오른손을 잡아 들고 가운데 손가락만 조금 툭 튀어나오도록 주먹을 쥐게 했다. 나는 봤다. 그렇게 내 주먹을 잡고 있는 남다성의 눈에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주먹은 이렇게 쥐는 거야. 펜만 쥐지 말고 주먹도 쥘 줄 알아야 잽이라도 날리지.”


 남다성은 애써 웃었다. 나는 알았다. 남다성은 뭔가를 알고 온 것이었다.


 “왜 이러는데. 갑자기 와서 왜 이런 거 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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