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희나리_w. 제철망개



새벽닭이 마지막으로 회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벌써 불을 떼러 나갔는지 누워있던 자리에 온기가 희미했다. 이 집 양반들이 일어나서 수선을 떨기 전에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정짓간에 들러 어머니가 내 몫으로 덥혀 놓은 더운 물로 얼굴을 씻고 입고 있던 옷의 소매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머슴이 아침부터 더운 물로 세수를 한다는 것이 소문나면 나나 어머니나 시샘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 집 양반들은 막 되어먹지 않은 덕분이다.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벽에는 약하게 입김이 보일 정도로 날씨가 추워졌다. 마당 한 구석에 세워놓은 빗자루를 들고 기지개를 펴다가 열려있는 2층의 창문에 눈길이 멈췄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이 집의 귀한 아드님이 나를 내려다보고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인 밀양 박씨는 박씨와 박씨의 누이, 박씨의 부친, 박씨의 아들까지 4명의 일가가 2층 양옥에 함께 살았고 나와 내 어머니는 이 집의 정짓간에 딸린 곡식창고를 개조한 쪽방에 붙어살았다. 박씨는 본집에서 십리쯤 떨어진 곳에 목재소를 가지고 있는 큰 사업가였다. 원래도 가지고 내려오는 재산이 많아 이 집의 식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나 같은 상놈이나 하는 고생과는 거리가 먼 족속들인데 다행히도 그들의 품성이 박하지는 않아서 같은 머슴이라도 박씨네서 머슴살이를 한다면 노났다고 할 정도로 나와 내 어머니에 대한 처우가 좋은 편이었다. 나는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길이 막막해진 동래댁, 내 어머니가 막 걷기 시작한 나를 안고 굶어죽기 직전에 이 집 마님의 귀에 우리 모자의 사정이 들려 거둬지게 되었고 그 덕에 숨이 붙어있는 것이라고 귓구멍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나와 어머니를 거둬준 마님은 가엽게도 타고난 기력이 약해서 박씨의 아들을 낳다가 산고가 길어져 그대로 병을 얻었고, 나와 내 어머니를 거둔지 3년 남짓할 무렵의 이른 봄, 막 터져나는 꽃봉오리도 구경하지 못 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기력이 쇠하여 젖이 돌지 못한 탓으로 생모에게 젖 한 번을 얻어먹지 못하고 자라난 박씨의 아들, 그러니까 저 2층의 창문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갛게 웃고 있는 지민도련님은 나보다 두 살 위로 꼭 죽은 마님을 빼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민도련님이 겉모습 뿐 만 아니라 마음씀씀이까지도 유순한 마님을 닮아서 박씨의 장손이라는 분이 저렇게 심성이 곱고 약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박씨의 목재소는 주로 일본인들과 거래가 잦았다. 이 근방에서는 도를 다 털어도 박씨의 목재소만큼 커다랗게 장사를 하는 조선인은 없었다. 어쩌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말쑥한 신사들이 천엔(圓/지금의 가치로 대략 천만원)짜리 지폐를 바꾸러 돈을 쌓아두고 있다는 은행에 가도 은행에서는 천엔을 거슬러줄 만큼의 돈은 없으니 박씨의 목재소에 가면 돈을 바꿔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박씨네 집안은 창씨개명을 하지는 않았으나 집안의 여자든 남자든 거의 다 일본말을 할 줄 알았다. 조선인을 개만도 못하게 보는 일본 순사들이 드글드글한 왜정 때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도 이 재력과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씨의 부친 덕분이었다. 조선인이라면 겉으로 표는 내지 못 했어도 왜인 보기를 금수 보기와 같이 했지만 박씨의 목재소로 거래를 트러 왔던 일본인 중에서도 사람 됨됨이가 멀쩡한 사람이 있었단다. 천운이었는지 그 일본인은 박씨 부친의 인품에 반해 몹시도 따랐고 거래만 해준다면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도 불이익이 없도록 높은 사람들한테 단도리를 쳐주었다고 한다.



물자가 귀하니 목재소 사업은 금맥을 찾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박씨는 부인을 일찍 잃은 것 외에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박씨의 목재소 덕분에 왜정이 살벌했던 시기에도 이 마을은 탈 없이 살 수 있었고 곧 모든 사람이 박씨네 일가를 따르고 칭송하게 되었다. 그래서 뒤로는 간간히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도 했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사돈에 팔촌까지 끌려 나가 개죽음을 당했을 것을, 박씨네 일가는 평탄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박씨의 유일한 걱정은 하나뿐인 혈육의 타고난 보드라운 기질이었다. 그 걱정 때문에 박씨는 마님이 죽고 몇 명의 후처를 두었지만 씨받이는 몽땅 실패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박씨에게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후사를 보는 일에 연달아 실패하자 박씨도 포기를 했는지 더 이상 집에 여자를 들이는 일은 없었다.



지민도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동생 대하듯 상냥했고 하마터면 나는 내가 상놈이 아닌 줄 알고 자랄 뻔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있노라면 저렇게 꼭, 일부러 창문을 열고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 샐쭉 웃는 모습이 나보다 두 살 위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열서너 살까지는 그래도 지민도련님의 머리가 내 위에 있었는데, 내가 열일곱 되던 해에 내 키가 도련님을 넘어버렸다. 아마 도련님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는 항상 도련님 앞에서는 허리를 숙여야 했으니까.




나는 7일중 두세 차례, 지민도련님한테서 글을 배웠다. 어머니는 상놈에게 글을 시켜서 무엇에 쓰겠냐고 탐탁치 않아했지만 도련님은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할아버지께서도 허락한 일이니 가르치게 해달라고 도리어 어머니께 허락을 구했다. 글 배우는 일을 마뜩찮아 했어도 저녁밥상을 물린 후에 책을 들고 방으로 오라고 도련님이 언질을 하면 어머니는 내 머리부터 빗겨줬다. 어디다 써먹을지는 몰라도 글공부를 하는데 행색이라도 깔끔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도련님.”

“정국아. 날이 많이 차졌다, 그치?”



도련님의 방에는 기름으로 불을 지피는 신식 난로를 들여서 훈기가 가득했다. 어머니가 가져다 준 차를 한 잔씩 따르고 도련님은 지난 번 외우게 했던 시조를 내게 다시 읽혔다. 이제 읽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속뜻을 알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양반들은 말 한마디도 그냥 뱉는 법이 없는지 문장 하나의 뜻을 풀이 하는 데만 몇 식경을 보내기도 했다.

방 안에는 죽은 마님의 사진이 자그맣게 남아 있었는데 워낙 낡은 것이라 도련님과 많이 닮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련님은 어쩌다 한 번씩 그 사진을 오래도록 쳐다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보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도련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를 어떻게 보고 싶어 할 수가 있겠느냐고.



한 번씩 도련님은 내가 산으로 장작을 패러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으로 갈 때 같이 나서기도 했다. 도련님은 어울리는 친구가 있긴 했어도 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멀리 살았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따로 외출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산에 가서 창고에 비축해 놓을 나무를 패고 희나리를 쌓아 올릴 때면 도련님은 옆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빤히 구경했다.



- 도련님, 이거 튀면 다치니까 멀리 계세요.

- 정국이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데 팔뚝이 이렇게 두껍다.

- …맨날 나무 해다 날라서 그런가 봐요.

- 나도 너처럼 나무 하면 그렇게 될까?

- 도련님 도끼 들다 팔 빠져요.



여름이 되면 지척에 나무열매가 열렸기 때문에 도련님과 둘이서 끼니때가 된 줄도 모르고 산딸기며 머루를 잔뜩 따먹고 놀았다. 도련님은 내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가려내서 따다주면 손바닥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포스라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려본 후에 꼭 나한테 먼저 먹였다. 신기하게 생긴 풀이나 꽃을 보면 나에게 뭐냐고 꼭 물어봤다.



- 정국아, 이거 먹을 수 있어?

- …망개 열매인데, 가을 되면 먹을 수 있어요.

- 지금은 안 돼?

- 지금은 여물지 못해서 떫기만 해요.

- 그럼 안 되겠다. 다른 것 뭐 없나.



산에서 정신을 놓고 도련님과 놀다가 소나기를 맞고 폭삭 젖어서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 그 날은 어머니한테 젖어 올 것이면 상것인 너나 젖을 것이지, 몸도 약한 도련님까지 젖게 하느냐고 부지깽이로 허벅지를 얻어맞았는데, 그나마 도련님이 내 편을 들어줘서 열 대 맞을 것을 다섯 대만 맞았다. 정국이는 빨리 내려가자고 했는데, 내가 더 놀고 싶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지민아, 내주부터는 네가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동행 하거라.”

“…제가요?”

“너 이제 일본말은 문제없지 않느냐.”

“예….”

“지금부터 익혀두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있었으니 그리 알고.”

“….”



어머니가 조반 차리는 것을 돕다가 지민도련님이 곧 목재소 하는 일에 함께 하게 될 거라는 말이 들렸다. 박씨의 부친, 그러니까 지민도련님의 할아버지 되시는 양반은 참으로 특이하게도, 일본말을 알면서도 직접 입으로 나불대는 것은 양반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왜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는 해도 내뱉는 말은 꼭 박씨를 시켰다. 남자들도 상투를 자르고 양국에서 들어온 가다마이를 입고, 여자들도 단발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니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박씨의 부친은 그 고집만은 꺾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에 두어 번 왜인들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직접 행차를 할 때면 땀이 버지기로 흐르는 삼복더위에도 갓을 쓰고, 생초로 지은 도포 자락에 광다회로 만든 세조대를 매어 의관정제를 갖추었다. 어머니는 큰 어르신의 그런 단정한 품행이 왜인들을 탄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련님은 아침부터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부터 거래 장부를 챙겨 큰 어르신을 모시고 왜인들을 응대하러 가야했고 처음 입는 가다마이가 불편한지 박씨의 누이가 매어주는 넥타이를 자꾸만 꼼지락 거렸다. 말갛고 어리게만 보였던 도련님이 처음으로 어른처럼 보였다. 나 같은 놈은 평생 입어볼 일이 없는 가다마이를, 원래부터 입어온 것처럼 말끔하게 차려입고 갓을 쓴 큰 어르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도련님의 뒷모습이 듬직하진 않았어도 애처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활짝 열어둔 대문으로 왜인들의 새카만 자동차가 들어왔다. 나는 최대한 멀리서 도련님을 지켜봤고 도련님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동차 안으로 올라탔다.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진 덕에 도련님은 어둑해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몹시 피곤한지 차려놓은 저녁밥의 반도 다 먹지 못하고 방으로 가서 눕겠다는 도련님이 걱정되었다. 방마다 가져다 놓을 자리끼를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도련님 방의 자리끼는 내가 가져다 놓겠다고, 그걸 핑계로 도련님 방문을 두드렸다. 기척이 느껴지질 않아서 가만히 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굳어 있었을 테지, 가다마이의 우아기만 벗어놓고 침대에 누운 도련님은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자리끼를 옆에 두고 한참 도련님을 내려다 봤다. 도련님은 입술이 꼭 앵두같이 발갛고 도톰했다. 박씨의 누이, 그러니까 도련님의 고모가 가끔씩 외출할 때 바르는 구찌베니도 이렇게 예쁘지는 않았는데.







“정국아. 내 방으로 와.”

“뭐 필요하신 거라도…”

“줄 것이 있어.”



조반상을 치우는데 도련님이 무슨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방으로 오라고 해서 이것만 치우고 금방 가겠다고 했다. 도련님은 가끔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나에게 사탕 같은 단 것을 주면서 내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고, 꼭 두 개를 주면서 어머니와 하나씩 나눠먹으라고 했었다. 어제 왜인들을 상대하러 가서도 나를 위해 뭔가를 챙겨 온 것인가,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문을 두드리니 ‘들어와’ 하는 소리가 들려서 방문을 열었다. 도련님은 무슨 보물을 감췄는지, 두 손을 허리 뒤로한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정국아 이리 와’ 하는 말을 듣고 도련님 가까이로 다가갔다. 도련님이 웃으면서 앞으로 꺼낸 손 위에는 난생 처음 보는 노란색 과실이 쥐어져있었다.



“정국아, 이거 향 맡아볼래.”

“…이게 뭐예요?”

“미깡, 이거 미깡 이라고 한다.”

“미깡?”

“어제 왜인들이 선물로 줬어. 열 알 받았는데, 할아버지, 고모, 아버지 드리고 두 알 남았다.”

“신내가 나는데….”

“어제 그 자리에서 한 알 먹었는데, 신맛도 나고 단맛도 나.”

“와….”

“어제 너 불러서 준다는 걸, 그새 잠들어서. 이거 한 알은 너 먹고, 한 알은 동래댁 드려.”

“귀한 거를, 한 알 나눠 먹으면 되는데….”

“아니야. 이게 크지 않아서, 반으로 나누면 양이 아쉽다.”

“고맙습니다…. 근데 이 추운데 어떻게 이게 자라났대요?”

“미깡은 원래 추울 때 먹는 거래. 여름, 가을 내내 키워서, 서릿발이 서야 딸 수 있다더라.”

“일본에는 별 것이 다 있나 봐요.”

“응, 나도 처음 들었어.”



어머니에게 줄 한 알은 주머니에 넣고 한 알은 도련님이 보는 앞에서 껍질을 깠다. 속 알맹이가 무척 연해서 껍질을 까다가 손가락이 푹 들어가는 바람에 미깡 한 쪽이 터져 물이 흘러나오는 걸 도련님이 ‘에구, 아깝다’ 하며 웃었다. 나는 그 새콤달콤한 향내가 풍기는 즙이 떨어질 새라 얼른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 빨았다.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게 또 있을까. 여름에 살구를 따다 먹어도, 가을에 홍시를 따먹어도 미깡 맛에는 견줄 것이 아니었다. 한 쪽씩 줄어드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게 눈 감추듯 먹고 나니 껍질을 벗겼던 내 손가락의 손톱이 꼭 치자로 물들인 양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그걸 본 나도 도련님도 킬킬 대며 웃었다.


쪽방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미깡을 내보였더니 어머니는 내 등짝을 후려치면서 이 귀한 걸 염치도 없이 얻어왔다며 역정을 냈다. 그래도 얻어온 것인데 맛이라도 보라고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껍질을 까서 입에 넣어주니 미깡 알맹이를 씹은 어머니의 눈이 커졌고, ‘맛은 있다’ 하면서 어머니는 내 입에도 한 쪽을 넣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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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귤까먹다가 떠오른 소재를 시대물로 버무려 봤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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