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회적 훈련이 덜 되어서가 아니라 공감을 하는 기능 자체가 없다.

어릴 때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만한 사회적 규칙을 익혔다. 그러나 여전히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진 못 한다. 자신이 알게 된 규칙을 이용하거나 그 규칙 밖의 방법을 통해 남과 자극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상대는 자신을 가학적이라 표현했으나 '그'는 자신이 상대를 괴롭힌다는 생각조차 없다. 그저 자극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 끝에는 사회적 규칙을 어겼음을 알리면 곤란해지니 상대의 흔적을 지웠다. 아직 '그'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규칙을 어겼음을 들켜, 사형당한다. '그'는 유감이라고 생각했지만 분하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흔적을 지우는 것도, 들키지 않는 것도 그에겐 모두 게임에 불과했다. '그'는 그저 그 게임에서 졌을 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뭔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의 곁에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환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눈을 떴을 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에게 있어 감정은 권태와 유쾌함이 주였고 대부분의 감정은 미약했다. 강렬한 불안감은 그를 불편하게 했으나 새로운 자극은 희열이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강렬한 감정에 중독되었다. 불안도 희열도 그는 기꺼웠다. 매일 느껴지는 감정들은 불편했으나 그마저 재미있었다. 그는 새로운 자극을 추구했다. 다행히 새로 태어난 '그'는 몇 가지 규칙을 어겨도 될 만한 위치였다. 자극적인 관계를 맺고 내버렸다. 흔적을 지우려 애쓸 것도 없이 '그'의 아랫사람들이 정리해 주었다. 그게 아니어도 그는 흔적을 지우는 과정까지 게임처럼 즐겼다.


타인이 우는 것, 괴로워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그'는 이해했다. 불편함과 희열이 공존한다. 그 불편함이 죄책감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그'에겐 두 길이 열렸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자극 추구의 방향을 타인 위에 공포로 군림하느냐 충정과 존경을 받아 치세하느냐.

이 자극이 주는 즐거움을 인정하며 다채로운 감정 속에서 계속 살인을 하느냐.


***


후회하며 자극 추구를 멈추고 치세하려 해도 '그'는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지 못합니다.

죄책감을 외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면 '그'는 빌런이 되는 엔딩을 맞습니다. 왕이 처형하거나 민란으로 죽는 엔딩이 될 수도 있고, 꾸준히 흔적을 지우며 들키지 않고 늙어 죽되 후세에 마치 뱀파이어처럼 각색되어 나쁜 전설로 남을 수도 있죠.


만약 빌런 엔딩이라면 크게 세 가지 길이 또 생기죠. 하나는 말 그대로 빌런으로 엔딩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그 세계에 빙의하여 악역인 '그'를 처벌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그'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 교화되는 것입니다.


자, 작가님, 써 주세요. ^^


퇴고 없는 날것 그대로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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