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베르크 대륙의 북쪽을 탐험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노른 산맥의 엄준한 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묵빛 암벽은 숫제 깎아지른 벼랑에 가까웠다. 인류가 아는 한 산맥을 정복한 이는 없었고, 그들은 산맥과 인접한 삼림지대를 두고 대륙의 끝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안다.

십 년 전, 암벽 위에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은 흡사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같았다. 홀연히 발생한 어둠. 근본을 가늠할 수 없는 존재는 자연적으로 불길함을 내포한다.

하루, 사흘, 주가 지나고 달이 되었다. 망각하고 방심하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습성이다. 그리고 비극은 열에, 백에 한 번, 그러한 순간에 포자를 터뜨린다.

불쌍한, 제 죽음에 대해 상상조차 못 해본 그 어린 소년. 잔디는 파릇했고 구멍이 품은 어둠은 깊었다. 악은 순진한 것들을 꾀어내기 위해 그토록 깊은 식도를 가졌던가.

소년은 천진한 얼굴로 수렁에 다가섰다. 참극은 찰나였다. 처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아가리를 벌리고, 수십 개의 송곳니를 단 ‘그들’이 피에 젖은 땅 위로 발을 내딛었다.

인류의 역사에 최초로 마족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



악의 축, 어둠의 온상.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마왕성의 정원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했다. 첨탑의 지붕은 우아하게 빛을 미끄러뜨리고 고풍스런 상앗빛 벽돌은 밑단에 푸릇한 담쟁이 넝쿨을 둘렀다. 함뿍 볕을 머금은 풀과 나무들. 연분홍 꽃잎이 부드럽게 몸을 흔든다. 매일매일이 꽃이 피어나기에 가장 좋은 절기였다.

모든 것은 소년이 눈을 뜬 그 날부터.

“오이카와 씨!”

아름드리나무의 커다란 그늘은 남자의 긴 다리를 덮고도 한참이 남았다. 사박사박, 풀 밟히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남자는 외면하듯 모로 몸을 굴렸다. 잔디가 곧게 뻗은 콧대를 간질인다. 풀내음을 지우듯 선연한 향기가 밀려들었다.

짙은, 장미향.

자그마한 발소리가 등 뒤에서 멈춰선다. 남자는 가만히 자는 체를 한다. 소년을 놀리는 일은 변덕스런 남자가 질려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다.

“오이카와 씨, 주무십니까?”

마족의 오감은 인간의 그것보다 월등하다. 남자는 눈을 감은 채로도 아이가 고개를 쭉 빼고 제 얼굴을 살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그마한 그림자가 그의 팔 위로 얕은 무게감을 드리운다.

“오이카와 씨.”

목소리가 한층 작아져있었다. 아이는 오이카와의 팔을 조심스레 흔든다. 어수룩한 몸짓에 남자가 매끈한 입꼬리를 당겼다. 눈을 감은 채 오이카와가 대꾸했다.

“오이카와 씨 주무시거든?”

그러나 퉁명스런 대꾸에 외려 힘이 난 듯, 아이는 낑낑대며 커다란 몸을 뒤집었다. 마지 못해 눈을 뜨자 자두처럼 발갛게 익은 동근 뺨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파란 눈이 반짝인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건방진 토비오 쨩.”

남자의 기다란 검지가 소년의 이마를 향해 뻗었다. 훅, 바람이 연록빛 새처럼 아이의 이마를 가뿐하게 스친다.

“왜 자는 척하십니까.”

“또 귀찮게 굴 거잖아.”

토비오라 불린 소년이 윗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나무기둥의 옴폭 들어간 자리는 소년의 체구에 꼭 맞는다. 미덥지 못한 가는 다리를 쭉 뻗은 채, 아이는 시위라도 하듯 잔뜩 부은 얼굴을 했다. 암만 그래도 남자가 져주는 법은 없는데 아이는 손 쓸 도리도 없이 멍청한 게 분명했다.

상체를 일으킨 오이카와가 무심한 듯 잔디를 짚었다. 아이는 지나치게 순진하다. 머뭇거리던 커다란 눈이 남자의 깨끗한 손등을 향해 데로록 굴렀다.

토비오는 오이카와의 손을 좋아했다. 어려운 말로 선망했는데, 아이는 그 단어를 몰라 그저 ‘좋다’고 했다.

남자가 행하는 기행의 9할은 그 손끝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은 소년의 머리 위로 물을 흩뿌리는가 하면 어느 날은 망토를 쥐고 소낙비를 가려주었으며, 아이가 잡아온 풀벌레를 튀겨버리는가 하면 새하얀 발코니 위로 선연한 불꽃들을 쏘아올리기도 했다. 주인만큼이나 변덕스럽고 비밀로 가득찬 그 손을 볼 적이면 소년은 시종 목 아래가 울렁거렸다.

결국 먼저 백기를 흔드는 것은 토비오 쪽이다. 아이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말한다.

“저 방금 그거 한 번 더 해주세요.”

“그게 뭔데.”

“방금 저한테 하신 거요.”

슉, 하는 거 말입니다.

아이는 제 이마를 향해 오동통한 손가락을 뻗었으나 새까만 앞머리는 얌전히 이마를 덮고 있을 뿐이다. 새 부리마냥 뾰족해진 입을 보며 오이카와가 입꼬리를 비뚜름히 말아올렸다.

“오이카와 씨가 저번에 뭐라고 했지?”

“저 못생겼다고요?”

“그거 말고.”

토비오 쨩 얼굴이 못생긴 건 사실이지만 말야. 이죽거리는 말투에 조막만한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남자는 톡 튀어나온 윗입술을 검지로 두드리며 속삭였다.

“부탁을 할 땐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오이카와 씬 안 그러잖습니까.”

“그야 오이카와 씨는 마왕님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대리석에 새긴 듯 서늘하다.

언젠가 남자는 말했다. 그는 합당히 약탈하도록 빚어진 존재이며 그 또한 위선자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신의 안배’라고. 아이에겐 지나치게 어려운 이야기였다.

토비오의 허리를 안은 오이카와가 아이를 제 무릎 위에 앉힌다. 소년이 익숙하게 등을 기대었다. 남자는 동그란 귓바퀴에 대고 속삭인다.

“토비오 쨩은…… 나한테 뭘 줄래?”

남자의 속삭임은 달콤하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아이가 궁금한 것은 조금 다른 부분이다.

“이거, 계약입니까?”

“뭐?”

“시미즈 씨가 알려주셨습니다. 악마는, 사람이랑 계약해서 원하는 걸 주고 대가를 받아간다고.”

말간 얼굴이 그를 올려다본다. 소년은 이렇게 종종 의외의 방향에서 고개를 디밀곤 했다. 남자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유쾌한 낯은 아니었다.

“정말 욕심쟁이네. 그렇게 먹어치워서 오이카와 씰 괴롭히고도 말야. ……그런데도 이렇게 작아.”

오이카와는 양팔을 뻗어 제 손바닥 위에 아이의 발바닥을 올렸다. 발가락이 꼬물대며 옴츠라든다. 크기를 대어보듯 손바닥을 쭉 펴자 한 마디쯤이 남았다. 키득거리며 오이카와가 아이의 목덜미에 코를 묻는다. 진한 장미향에 콧속이 찡하니 아려왔다.

“물어뜯어버리고 싶어.”

목덜미의 솜털이 바짝 선다. 코끝으로 여린 살갗을 간질이자 옅은 땀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냄새의 근원을 찾듯 그는 코를 비비며 말했다.

“분에 넘치는 걸 바라지 마. 토비오 쨩. 인간 중에서도 못생기고, 하찮고, 어리석은 토비오 쨩이 오이카와 씨의 계약자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아? 오이카와 씨는 마왕이라구?”

남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상냥하다. 품에 안겨있던 작은 몸이 굳는다.

소년은 무언가를 빼앗기고 싶은 것일까?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달큼하게 덧붙인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전,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먹을 것도, 살 곳도, 전부 오이카와 씨가 주신 거고.”

그것은 남자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오이카와가 미소를 띤 채 따끈한 정수리에 입술을 부볐다.

“흐응, 그럼 이번에도 달아둬야겠네. 정말 오이카와 씨처럼 자비로운 마왕님은 또 없을 거야. 토비오처럼 못생긴 인간한테도 이렇게 잘해주고 말야.”

그 말에 아이의 입이 댓발 튀어나왔다.

“압니다. 저도 제가 못생긴 거.”

평소 같았으면 눈썹이 쑥 내려간 게 우습다고 놀렸을 터였다. 그러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누가 너한테 그래?”

소년의 어깨가 작게 튀어올랐다.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갖게 마련인 공포심이다. 아이는 뻣뻣한 고개를 끌어올리고 애써 또박또박 대꾸한다.

“오이카와 씨가, 매일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말에 붉은 눈이 샐쭉하니 접힌다. 남자의 빨강은 차갑다.

“맞아. 토비오 쨩은 정말 못생겼으니까.”

오이카와가 싱긋 웃으며 검지를 뻗었다. 바람은 잔디를 휘감고 부드러운 소용돌이를 자아냈다. 흩날리는 나뭇잎은 마력을 인지할 수 없는 소년도 마법의 궤적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잔뜩 긴장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아이의 푸른 눈이 흥분으로 반짝인다.

“대단합니다……!”

커다란 손을 두 손으로 쥐고 토비오는 입술을 꼼질거렸다. 인간 아이의 힘따위는 남자에게 간지러울 정도도 못 된다. 그러나 팔을 흔들면 흔드는 대로, 오이카와는 아이가 하는 양르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소년은 알지 못한다. 마왕의 아량을 헤아리기에 인간 아이는 너무도 작고 하찮은 탓일지도 모른다.



***



토비오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젖혔다. 복도는 오늘따라 휑뎅그렁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들려오는 기척도 없었다. 소년이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내민다. 평소 같았으면 오이카와가 한 번쯤은 찾아왔을 시간인데, 그는 여즉 감감무소식이다.

“너 여기서 뭐해.”

고개를 돌린 곳엔 토비오 또래의 소년이 둘 서있었다. 화난 머리가 킨다이치, 시무룩한 머리가 쿠니미다. 마왕님도 귀신 같다니까. 쿠니미의 말에 토비오의 귀가 번쩍 뜨인다. 소년의 반응을 본 킨다이치가 혹시, 하며 묻는다.

“마왕님 찾아?”

“응.”

“마왕님은 오늘 늦게까지 공무가 있으셔.”

“공, 무?”

“일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쿠니미는 성실히 대꾸해주었다. 그러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토비오의 기분은 한껏 가라앉았다.

“왜 맨날 나만 몰라.”

골이 난 얼굴에 대고 킨다이치가 황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그야 우리는 회의에 참석, 윽!”

“킨다이치.”

“아, 어, 그치.”

토비오가 째려보았으나 쿠니미에게 옆구리를 찔린 킨다이치는 이미 입을 꾹 다물어버린 후였다. 쿠니미가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심심해?”

“……심심해.”

“그래.”

토비오에게 다가선 쿠니미는 망설임 없이 소년을 도로 방 안에 밀어넣었다. 뭐야, 너! 토비오가 소리쳤으나 단정한 낯은 미동도 않는다.

“안 들어오고 뭐 해.”

쿠니미의 말에 킨다이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다시 들어가 봐야…….”

“어차피 우리한테 제일 중요한 업무는 얘잖아.”

턱짓을 하며 쿠니미는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소년을 땡땡이 핑계 삼으며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였으나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머리 굳은 노친네들에게 시달리느니 폭군 같은 소년과 티타임을 갖는 편이 백 배쯤 나은 건 킨다이치도 마찬가지였다.

“……마왕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킨다이치는 허공에 대고 손을 휘휘 저었다. 발치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는 이내 몽실몽실한 털뭉치가 되었다. 새까만 강아지다. 킨다이치는 살갑게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녀석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부엌에 가서 먹을 것 좀 갖다달라고 전해줘.”

녀석이 소리 없이 왕, 짖자 까만 구름이 퐁, 튀어나온다. 강아지는 순식간에 도로 연기가 되어 카펫으로 스며들었다.

“그럼…….”

문을 향해 몸을 돌린 킨다이치는 사뭇 비장한 얼굴이다. 스읍,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방 안에 들어섰다.


대비를 해도 버겁긴 매한가지였다. 이 지독한 장미향엔 여즉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먼저 티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쿠니미는 평온한 낯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제 다른 모습이 개의 형상을 띠고 있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심하게 코를 막은 그를 토비오가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안 와?”

의자를 당기는 킨다이치를 향해 토비오가 묻는다. 킨다이치는 질문의 생략된 주어가 ‘오이카와 씨’임을 알아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경을 칠 테고, 그렇다고 솔직히 대답하면…….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얼굴에 먹구름이 낀다. 쿠니미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쿠니미 아키라가 애용하는 매우 효과적인 질타법이었다. 뭐! 억울하다는 듯 킨다이치가 입모양으로 외쳤다. 

“마왕님이 너 어쩌고 있나 보래서 온 거야.”

쿠니미의 말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눈에 띄게 순해진 눈매를 보며 킨다이치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토비오는 킨다이치의 사역마만큼이나 맹목적이었다. 마치 남자의 존재가 영혼에 새겨져있기라도 한 양. 그는 고요히 잠든 소년의 머리와, 지옥불처럼 섬뜩하게 타오르던 붉은 눈을 기억했다. 처음 본 그 순간, 킨다이치는 남자가 소년을 죽음에서부터 건져낼 것을 알았다.

“넌 마왕님이 무섭지 않아?”

“안 무서워.”

“거짓말.”

대화에 끼어든 것은 쿠니미였다. 토비오는 입을 꾹 다물더니 뭉개지는 소리로 말했다.

“진짜, 가끔…….”

오만상을 다 쓰는 게 자존심이 상한단 얼굴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쿠니미가 헛웃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안 무서운 게 이상한 거야.”

마왕은 어둠에 거죽을 씌운 듯한 존재다. 그것이 웃고 떠든다 한들 마음을 허락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눈앞의 소년은 자진해 그의 옷자락에 파고들 유일한 생물이었다. 그는 좋게 말해 순진했고, 객관적으로 말해 좀 모자랐다.

토비오는 아랫입술을 꾹 물고 말했다.

“나도 오이카와 씨처럼 강해지고 싶어.”

“그건 불가능해. 애초에 마족이랑 인간은…….”

“야!”

도끼눈을 뜬 토비오에게 킨다이치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왜 넌 나한테만 화내냐?!”

소년은 고집스럽게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마녀의 말은 불완전한 진실일지언정 거짓은 아니었으므로.

“나도 마법 쓸 수 있어. 계약만 하면…….”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쿠니미가 눈썹을 밀어올리며 묻는다.

“너 그거 마왕님께도 말했어?”

“어. 왜?”

“그야…….”

그때였다. 노크 소리에 킨다이치가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내가 부탁한 걸 거야.”

그러나 문이 열렸을 때 그곳에 서있었던 건 그들이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마왕님!”

늘어져있던 쿠니미마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타이밍을 놓친 토비오가 둘을 힐끔거리며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뗐다. 오이카와가 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왔다.

“정말, 토비오 쨩은 재밌다니까.”

남자는 자연스럽게 티테이블에 앉는다. 방금까지 쿠니미가 앉아있던 자리였으나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다들 왜 이렇게 놀래. 설마 오이카와 씨 험담하고 있었던 건 아닐 테고…….”

“절대 아닙니다!”

“알아, 킨다이치.”

매끄럽게 웃으며 오이카와가 손짓했다.

“먼저 가 있을래?”

“네.”

예를 표한 두 사람은 토비오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남기곤 방을 떠났다. 문이 닫히자 소년이 뾰루퉁한 얼굴을 한다. 왜, 또. 오이카와가 턱을 괴고 눈을 맞춰온다. 기껏 낮은 눈높이에 맞춰주었건만, 아이는 맹랑하게도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제 손님을 멋대로 돌려보낸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오이카와 씨 기다린 거 아니야?”

“아닙니다.”

“진짜로?”

아이는 거짓말이 서툴다. 잔뜩 힘이 들어간 입술이 옴찔거렸다. 오이카와는 부러 섭섭한 투로 말한다.

“서운해라. 예전엔 안 이랬는데.”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선이 깨끗한 입꼬리가 곱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토비오의 앞에서 그는 대개 웃는 낯이다.

마왕성 사람들에게 듣기로 그는 옛날엔 좀 더 무시무시했다고 한다. 무시로 폭우를 쏟아붓고 머리 위로 벼락을 내려치는 마왕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는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바쁘시다고 들었는데요. 공, 무가 있으셔서.”

“응? 걔들이 그랬어?”

오이카와가 손가락을 뻗자 방문이 활짝 열린다. 막 문앞에 도착한 메이드가 당혹해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까딱 검지를 접자 트레이가 날아옴과 동시에 문이 도로 닫힌다. 언제 보아도 진기한 풍경이었다.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소년을 보며 오이카와가 입꼬리를 당겼다.

“정말 단순하다니까.”

소년은 그제야 보기 좋게 넘어가버린 것을 깨닫는다. 토비오는 화풀이라도 하듯 트레이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오이카와의 커다란 손이 아이의 손을 막아선다.

“토비오 쨩 잘 시간 지났잖아. 졸리지 않아?”

“안 졸립니다!”

방금 전부터 눈이 조금씩 뻑뻑해지고 있었으나 소년은 오기를 피웠다. 흐응. 남자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연어 카나페를 한 입에 쏙 집어넣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재워줄게.”

“싫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도 잘…….”

“안 재워주면 또 어딜 쏘다니려고?”

인간의 아이는 너무 작아 한 팔로도 너끈히 들 수 있었다. 얄궂은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의 품은 안락했다. 토비오는 여전히 불만스런 얼굴로 그의 가슴팍에 파고든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왕성의 마족들은 모두 토비오에게 친절했다. 시종장은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꼼꼼히 챙겼으며, 주방장은 매일같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시미즈와 이와이즈미가 있었고, 킨다이치와 쿠니미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에게 상냥하지 않은 남자가 제일 좋았다.

오이카와는 토비오를 침대에 눕히고 가슴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긋한 목소리가 잠자리를 보살피는 자장가 같았다.

“킨다이치랑 쿠니미 너무 좋아하지 마.”

“걔네랑 친해지라고 한 건 오이카와 씹니다.”

“맞아. 그래도 토비오를 멋대로 휘두르는 건 오이카와 씨뿐이니까.”

“전 오이카와 씨 멋대로 휘둘리지 않습니다.”

마왕은 나지막이 웃는다. 

커다란 창으로 시린 밤은 한껏 쏟아지고, 남자의 얼굴은 달의 한 조각처럼 아름답다. 서늘한 손이 소년의 뺨을 쓰다듬는다. 두려움과 친애는 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심장을 떨게 하는 이것의 이름을, 소년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자의 아름다움은 보다 원초적인 층위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규정할 수 없어도 본능적으로 알고야 마는 것. 그는 모순 위에 피어난 파괴적인 역작이다.

토비오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이카와 씨가 토비오를 주워왔어. 너무 더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거든.’

이런 사람이 거둬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다니 저는 행운아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달은 휘영청 밝고, 나무들은 제 몫의 빛을 못 견디고 밤새 허우적거리는 밤이면 소년은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나도 당신에게 중요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데.

오이카와는 다정하게 속삭인다.

“자, 토비오. 꿈에서도 날 찾아와야 돼.”

“오이카와 씨, 마왕……, 악몽…….”

멀리서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으로 가슴을 도닥이는 손길에 아이의 눈꺼풀은 빠르게 무거워졌다.

어느새 아이는 색색 가벼운 숨소리를 흘리고 있다. 남자는 경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간 얼굴을 들여다 본다. 촘촘한 속눈썹 위로 엷은 달빛이 걸려있었다.

무해한 생명. 오이카와는 아이의 앞머리를 넘기고 매끈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응. 나쁜 꿈 꿔.”

잠에 빠지는 감각은 한없이 추락을 닮아있다. 소년은 까마득히 어둔 곳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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