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수업을 듣고 나니 어째선지 설아가 무지막지하게 답답해했다. 왜 이러나 싶어 이유를 물어도 그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식당으로 우리 둘만 떠밀었다.

"진짜 괜찮아? 혼자 안 외롭겠어?"

"그냥 가! 가라고! 제발!"

으음... 그래 뭐 혼자 밥 먹는 걸 즐길 수도 있지. 그래서 또다시 우리 둘이 뻘줌하게 식당에 같이 가게 되었다. 어제 그 친구는 오늘 오전에 먼저 밥 따로 먹자고 연락이 왔기에 걱정할 필요없다.

저번처럼 같이 점심먹고 각자 강의 들으러 잠시 헤어졌다.

아직까지도 설아가 답답해한 이유를 모르겠다.


거북이 같이 느리던 강의가 끝나고 드디어 누리 씨를 만나게 되었다. 아까 한 번 만났음에도 어째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다한 씨! 여기에요!"

어쩜 손을 흔드는 것마저 귀여울 수 있는거지.

"누리 씨, 아까도 느꼈지만 오늘따라 더 잘생기셨네요."

잘생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니 절로 흥분이 되었다. 진짜 거듭 말하지만 퇴폐미가 넘쳐흐르는 외모다. 거기에 검은 슬랙스에 회색 스웨터를 걸치니 정말이지... 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만 독점할거다.(?)

"다한 씨도... 오늘 엄청 예쁘세요!"

"고마워요."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워우 심장아 진정해. 나대지마. 아직 네 남자 아니야. 조만간 내 남자로 만들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다한 씨를 따라 시내로 향했다. 어라 그러고보니 작품을 보여주겠다 그랬지 어디로 간단 말은 안 했네. 혹시... 혹시?!

"참, 제가 목적지를 말씀해드리지 않았군요."

"그렇네요. 누리 씨 작품이면... 혹시 누리 씨 집인가요?"

"아... 비슷해요. 저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자수 공방인데 오늘은 잠시 고향에 내려가셔서 아무도 없어요."

마침 버스가 도착하여 내려 자수 공방으로 향하였다.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하여 보니 적당히 아담한 자수 공방이 눈에 보였다.

"여기에요. 그렇게 큰 곳은 아니라 볼 거리가 많진 않아요."

"이렇게 초대해 주신것만으로 감사하죠."

들어가니 벽 면에 제법 많은 자수 공예들이 펼쳐져 있었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엄청나다는 걸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로 가득했다. 꽃이 주를 이뤘지만 중간 중간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들도 보였고 용도 있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누리 씨 작품인가요?"

"네, 다 어머니께 배운 것들이에요."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자수 공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저렇게나 좋아하면서 대체 왜 싫어한다고 했을까?

너무 궁금했지만 함부로 물어도 될 일이 아닌거 같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누리 씨는 자수 공예 엄청 좋아하시는거 같은데 왜 싫다고 하신 거에요?"

예상치 못 했는지 당황해하며 말을 상당히 오랫동안 골랐다.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자수 공예 대회는 자주 나갔고 대상도 금상도 많이 타봤어요. 그게 기쁘기도 했고 그냥 자수 공예 자체가 재밌기도 했고 다 좋았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하고 마지막 남은 한 명마저 떠나려 하더라고요."

*

"왜 그러는데...  내가 잘못한게 있으면 고칠께. 제발 뭐라도 말을...!"

"너랑 있으면 자꾸 비교당하니까! 난 그냥 평범할 뿐인데...!"

난 할 말을 잃었다. 내 특별함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전혀 생각치도 못 해봤다.

"미안... 네 잘못 아니야. 아닌거 아는데... 잘 안되더라."

*

"그때 이후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어요. 슬럼프가 제대로 왔죠. 그래서 이참에 그냥 포기했어요. 이 정도로 흔들릴 마음이라면 일치감치 포기하는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말은 자수 공예가 싫어서 그만둔게 아니라 너무 소중해서 그만뒀다는 소리네.

"정말 바보 같네요."

"역시 그렇죠? 하하..."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포기해요? 슬럼프는 누구나 와요. 그게 어떤 이유든 간에 엄청 당연한 거라고요. 누리 씨가 천재라고 해서 슬럼프가 안 오는 게 아니라고요."

"우와... 이거 엄청 부끄럽네요."

"부끄러워할 것도 없죠. 누구나 처음은 어설픈 법이니까요. 아무리 누리 씨가 천재라도 자수 공예를 처음부터 잘 한 것은 아니잖아요?"

순간 누리 씨가 잠깐 멈칫했다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 다한 씨, 저 방금 엄청 설렜어요. 막 조금 있으면 반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 귀여워.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건가?

누리 씨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싱긋 웃었다.

"전 이미 반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까요?"

"네..."

누리 씨가 흐물흐물 조금씩 녹아 내렸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터질 듯이 달아오른 누리 씨의 얼굴은 가히 하나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쩜 몸도 마음도 이리 예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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