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즉 그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 개인은 군중 속에 묻혀있다. 

- 자유론

우리가 역사시간에 공부하다보면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그림을 보게 된다. 난 이 그림 볼때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웃음이 나오던 기억이 있다. 사실 지금도 보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는데 교황이 자기 권위를 위한 일이었다면 이건 후대에 까지 왕을 우습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으니 그 의도가 아주 잘 먹혀들어간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지금 와서 우리는 교황을 절대 권력자라 표현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 권위자들이 자기 섬의 왕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밖에 나와서 보면 마치 다른 중대 아저씨에게 충성을 박지 않는 법처럼 내 세계 밖의 인물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치처럼 우리에게 숨쉬듯이 작용하는 것이 좌우로 오갈때마다 우리는 왜인지 모를 불쾌감이 솟아오른다. 시민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인데 얘네가 뭐라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냐고 몸 안의 세포들이 악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있게도, 교황의 권위가 시사하는 것은 그 생성 플로우를 따져 보았을 때 왕권보다도 더 민중의 입김이 더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좋든 싫든 그 당시 민중의 믿음이 종교라는 거대 권력을 만들었고 그 살아있는 권력의 형태가 종교 단체로 현세에 군림한 거니까(이러저러한 의견들이 많겠지만 우선은 넘어가줘라. 얘기하고 싶은 것은 믿음과 믿음이 형태를 만들어 교황이라는 권력을 만든것이므로). 지옥가기 싫어서라도 사람들은 믿고 의지하고 그를 위해 권력을 주고 '파문'이라는 전무 후무한 추상적 형벌에 왕이 설설 기도록 만들었다. 믿음이란 이런것이다. 왕을 밖에서 기다리도록 만드는 것. 

앞서 설명했듯 우리는 지금와서 교황을 절대권력자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믿음은 시대를 타고 바뀌게 된다. 이제 와서 종교적 믿음이 왕이나 왕에 준하는 권력자를 파문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것도 아니다. 그럼 중세와 비교해 더 많은 인간이 살고 네트워크로 이어진 이 세상에서 어떤 믿음이 힘을 만들고 인간을 좌우하는걸까? 그것이 정치일 수 있겠다만 정확히는 정치란 이름의 파도를 타는 제 3의 세력 아닐까 싶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권력자들의 횡포는 그들을 위인으로 만들었지만 또 그들을 극혐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제 권력자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권력을 말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와 대치되거나 감시하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균형'은 곧 진리처럼 여겨지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다. 단순히 A와 B의 공정/공평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로부터 약자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균형'이 잡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설마 돈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고 배고픈 약자가 악할 수 있는걸까? 잘못된건 무조건 가진놈들일거야!

전위당이 왕과 귀족, 자본가와 달랐던 것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느냐 아니냐 였을 뿐일지도.


못먹고 못사는 세상일수록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어하는 인식은 아주 짙어지고 구체화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하철 타는 사람들만 봐도 피곤에 쩌는 눈빛이 왜인지 지하철 안뒤집어지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힘들면 빡이친다. 분노는 어딘가에 표출해야 하는데 마침 원망하기 쉬운 것들이 있다면 아주 쉽게 그 대상을 미워하며 감정을 배출하게 된다. 혐오의 과정과 비슷하달까. 뭉치면 힘을 얻게 된다. 대중의 심리는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강하게 휘몰아친다. 

우리는 참 많은 교황님들을 섬겨왔다. 지금 와서 봐도 우리의 교황은 대중이시다. 대중의 파문을 받은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은 나라의 땅을 밟고 있기도 힘든 수준이다. 이건 무려 시민혁명의 결과가 아니다. 태초에 우연하게도 그렇게 설계되었다(다시말해, 지금까지의 시민혁명이라는 것들은 대중의 힘을 직접적으로 보여줬을 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다는 것이다.). 좋게 해석할 수도, 나쁘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해석의 방향은 대중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공평함을 얘기한다지만 그 공평함이 정말 공평한지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 따져보자.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여론이 언제나 올바른 방향을 가리킨 것은 아니지 않았나.

그러면 당신은 올바른가, 난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피력하는 것은 싫다. 그것은 역겨운일이다. 당신들이 권력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만큼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다만 우리 중 올바른 사람은 누구인가, 유일한 진리는 우리의 올바름을 의심하는 버릇이고 그것은 대다수 대중과 하층민들을 포함해서 모두 마찬가지다. 이제 모든 것을 의심해볼 차례다. 우리 주변, 심지어 우리 자신까지도. 그 의심의 끝에서 우리는 헤게모니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020.03 한국미소문학 등단 / 입시, 입사 지원 자기소개서 첨삭 문의는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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