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를 위한 위기관리론





토르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축축한 지하 법정의 습기가 피부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 폐부 깊이 파고들었다. 검은 돌로 된 벽에 희미한 빛을 발하는 횃불이 걸려있고, 그 양쪽 옆으로 텅 빈 기다란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연차를 이용한 지형은 맨 밑, 심문할 죄인을 압박하기에 탁월한 심리적 효과를 주는 배치였다.


제일 높은 의자들과 바로 그 아랫줄의 의자에 많은 사람이 어두운 조명만큼이나 어두운 망토를 두른 채 줄줄이 앉아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뭔가 수군거린다. 토르는 방 한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낡은 의자와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로키가 있었다. 의자에 얌전히 몸을 맡기고 늘어진 그에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팔걸이에 묶인 쇠사슬이 위협하듯 로키의 손목 위를 감싸고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토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갔다.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위즌가모트 전원 배석 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고, 몰려드는 관심에 마법부는 부내 직원에 한하여 방청을 허락했다. 토르는 재판 당일까지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무거운 발을 이끌고 법정을 찾고야 말았다. 위즌가모트 위원회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로키의 재판을 구경하러 자리를 가득 채운 상태였다.


제일 앞줄 중앙에 마법부 장관이자, 그와 로키의 아버지인 오딘이 자리해 있었다. 오딘의 왼쪽에는 마법부 차관인 후긴이, 오른편으로는 서기를 담당하는 무닌이 각각 양피지를 들고 엄숙한 얼굴로 오딘의 곁을 지켰다. 뒷줄에는 짙은 녹색의 망토를 두른 프리가가 가라앉은 눈으로 로키를 보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헬라도 있었다. 후긴이 천천히 입을 연다. 무닌이 깃펜을 들고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어두운 법정 안에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아스텔, 웨스트 녹, 프로네 가 7번지에 사는 로키 오딘슨에 의한, 영국 마법사 기본 행동 제한 법령과 국제 마법사 공동 협약 위반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

“심문자로 마법부 장관 오딘,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부장 티르, 마법부 차관 후긴, 법정 서기 무닌. 판결에는 모든 위즌가모트 위원이 참여합니다.”


토르는 말을 잃었다. 아버지는 어째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걸까?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누가 제발 이 모든 것을 환각이라 해 주었으면. 하지만 빌어먹게도 현실은 지나치게 생생했다. 아주 생생했고, 토르의 모든 기억이 이것이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토르는 거칠게 북받쳐 오르는 숨을 토했다. 아직도 손에 로키의 체온이 선했다. 아직도… 자신이 그를 붙잡을 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후긴이 낭랑한 목소리로 간략하게 사전 보고를 했다. 원래대로라면 마법부 장관인 오딘이 죄인을 심문하고 취조하는 것이 맞으나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였을 때, 형법 13조 5항에 의거해 마법부 차관인 자신이 오딘을 대신하여 재판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후긴이 서류 더미에서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를 빼냈다. 종이를 펼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목을 가다듬은 그가 지팡이로 항목을 짚는다.


“피고의 고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는 영국 마법부에 재직하며 특별히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의 일원으로 마법 법률에 관해 알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즉 자신 행동의 불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상황 하에 지난 6개월 동안 수많은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 그 결과 영국 마법사 기본 행동 제한 법령 G항을 위반하였으며, 국제 마법사 연맹 공동 협약집의 7항, 19항, 31항을 위반했다.”

후닌은 무닌이 제대로 말을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무닌의 깃펜은 엄청난 속도로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빼고 로키를 응시했다. 로키는 어두운 벽돌 바닥만 바라본 채다.

“당신이 아스텔, 웨스트 녹, 프로네 가 7번지에 사는 로키 오딘슨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로키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후긴이 양피지를 짚은 지팡이를 아래로 내려가며 다음 질문을 했다. 로키의 대답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당신은 영국 마법부에 재직하면서 타국의 마법부와 몰래 접촉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들에게 영국 마법부의 정보를 넘겼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어둠에 발을 담근 ‘그 사람’을 위해 일했습니다. 맞습니까?”

“…….”

“피고. 대답하십시오. 맞습니까?”


로키의 입술이 뒤틀렸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후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로키는 바로 다음 순간 눈과 얼굴에서 감정을 지우고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와 나지막이 대답했다. 별 것 아니라는 어조였다.


“맞다고 할 수 있겠군요.”

“지난 8월 4일 오후 10시 17분.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용했습니다.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피고는 수많은 법률을 어겼습니다. 최소 다섯 가지 이상을 위반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죄는 이러합니다. 영국 마법사 기본 행동 제한 법령 G항-마법부에 소속된 자국민은 허가 없이 기밀을 타국의 마법사 혹은 지능을 가진 마법 생물 혹은 스큅과 머글에게 넘겨서는 아니 된다-을 어긴 죄, 국제 마법사 연맹 공동 협약 7항, 19항, 그리고 31항을 위반한 죄, 어둠의 마법사를 위해 일한 죄.”


후긴이 잠시 말을 끊었다. 법정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수많은 청중과 위즌가모트 위원들이 그의 다음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토르는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손 끝과 발부터 몸이 얼어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따라서 마법부 측은 피고의 형량을 이렇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말도 안 돼. 그들이 로키에게 이럴 수는 없어.

토르는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로키가 그제야 아주 천천히 얼굴을 올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어 있다. 평소보다도 피부가 몇 배나 창백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뺨에 난 잔 상처에 피딱지가 말라붙고 여기저기 검은 것이 묻어있다. 조금이라도 티끌이 묻으면 질색하던 로키인데, 지금 과연 그가 어떤 심정일지. 토르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손바닥을 파고든 손톱이 결국 피를 본다. 그런데도 그는 로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로키가 고개를 돌려 토르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만은 여전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녹색이고, 여전히 토르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로키의 눈이 오롯이 토르를 담는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로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로키는 웃고 있었다.


후긴이 소리쳤다.

“아즈카반 종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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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카반 : 마법사들의 감옥. 디멘터가 간수로 존재해 죄인의 행복한 기억을 빨아먹으므로 수감 기간동안 불행한 기억만 떠올리다 보통 미쳐 죽는다(...


해리포터 원작에서는 해리-볼드모트의 마지막 결전 이후 아즈카반의 간수를 디멘터에서 오러로 전격 교체합니다만... 이 세계관에서는 아직 어떤 어둠의 마법사(ㅎㅎ)가 존재하며, 대대적 전투를 몇 번이나 겪은 혼란의 상태라 오딘이 장관이 된 이후로도 간수를 바꾸지 않았다는 제멋대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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