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 악!! 흐아아..."


검은 여인의 몸이 공중에서 낙하했다. 완충장비도 없이 그대로 낙하한 충격이 곧이곧대로 로제의 몸에 전해졌다. 평소 입고 다니던 의복 일부가 땅에 긁혀 찢어져 맨살이 드러났고, 그 맨살도 땅에 긁히며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낙하의 충격이 신경계와 뇌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탓에, 로제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절할 것만 같은 와중에도 비척거리며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로제를 카르텔 군인들이 둘러쌌다. 온 사방에서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로제는 모든 게 끝이란 생각에 허망하게 웃었다.


"여어! 나 왔다고."

"하아... 너무 늦었잖아... 그나저나, 스토미는?"

"걔 허리 아파서 입원했어. 그나저나... 로제는 이런 애들한테 쩔쩔맬 정도로 약했구나?"

"누... 누가 약하단 거야! 잠깐 방심한 거라고."


다음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레이저 소리에 로제는 냅다 뒤로 드러누웠다. 어리둥절한 카르텔 군인들을 붉은 레이저가 강타했다. 강제로 한 군데에 모여버린 카르텔의 군인들에게 죽음의 섬광이 내리꽂혔다. 눈부신 빛, 그리고 거대한 폭발. 버스터 빔 캐논을 다시 결합해 등에 짊어진 디스트로이어가 허리를 숙여 로제의 손을 잡아줬다. 항상 같이 다니던 누군가 안 보인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허리가 아파 입원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줌 잿더미가 되어버린 카르텔 군인들의 시체를 보며 시덥잖은 농담을 하는 디스트로이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멋져보였다. 그래도 약점을 건드린 탓일까. 로제는 버럭하면서 누가 약하단 거냐고 소리를 빽 질렀다.


"아윽... 아, 젠장... 너무 높이서 떨어졌다..."

"으이구, 무리하지 말고. 자, 업혀."

"후유유... 아... 그나저나 입원하면 스토미한테 뭐라고 하지..."


아직도 낙하하며 받은 충격에서 채 회복되지 못한 건지, 비틀비틀거리는 상처투성이 로제를 디스트로이어가 등으로 받쳐업었다. 벌써부터 스톰트루퍼의 잔소리가 걱정되는지 크림슨로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디스트로이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부벼댔다. 매번 스톰트루퍼와 함께 하던 행동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어리광부리고 싶고 또 디스트로이어가 고마워서도 그런 행동이 더더욱 하고 싶었다. 그녀 말마따나 나중에 스톰트루퍼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고 이렇게 타이밍 맞춰서 구하러 온 거야?"
"음... 황녀님이 이야기했거든. 로제가 카르텔 특수부대를 추격하러 가서 연락이 없었다고."

"그랬구나... 그래서 당신한테 구해달라고 한 거고?"

"잘 아네. 내가 자원한 것도 있지만 그 전에 황녀님이 먼저 부탁하더라."

"하하... 이거 참. 양면으로 신세를 졌네..."


일단 해상열차를 타고 루프트 하펜을 경유해서 겐트로 복귀하기로 했다. 멀쩡한 디스트로이어와 달리, 심하게 다쳐서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 로제는 좌석 하나를 통째 차지하고 누워야 했다. 디스트로이어도 기꺼이 양보해줬으니, 더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어떻게 자기가 카르텔 특수부대를 추격하러 나선 걸 알고 있었을까? 로제는 문득 의문이 생겨서 그에게 어떻게 알고 타이밍 맞춰 구하러 왔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나다를까, 황녀님이 디스트로이어에게 구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었다. 괜히 나서다가 심려를 끼친 건가... 로제는 에르제를 생각 못한 자신을 자책하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자아, 내리자... 걸을 수 있겠어?"
"업어줘. 오랜만에 당신 등에 업혀갈래."

"하하하하. 그럼, 분부대로..."


열차가 루프트 하펜으로 향할 동안, 크림슨 로제는 그저 누워서 간간히 디스트로이어의 말상대를 하는 것 말곤 딱히 할 게 없었다. 사실 중환자 신세인데 로제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기도 힘들었다. 디스트로이어가 가져온 응급 치료용구로 상처부터 일단 적당히 봉합해두고, 가져온 음료수와 간식류로 기력도 보충했다. 그러다 열차가 루프트 하펜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걸을 수 있겠냐는 디스트로이어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오늘은 조금 어리광부려볼까. 로제는 업어달라고 대답하곤, 씨익 웃으며 오랜만에 디스트로이어 등에 업혀가겠다고 대놓고 선언했다. 오늘따라 그의 등이 따스하면서도 넓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나 듬직한 사람이 내게 있으니, 말 그대로 세상 온갖 행복이 다 집결된 기분과 함께...

파르페르파의 포스타입입니다 찾아와봤자 별거 없어요 이거저거 할만큼 하는 포스타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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