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Faded Promises - MJQ|CMKC 들으며 읽으면 좋습니다.


 몸에서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만 보이는 잔상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 잔상을 눈앞에서 지워 버리고 싶었다. 양옆에서 들리는 박수 소리가 자꾸만 나를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대현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새로 부임하신 남다성 이사장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부로 대현고등학교 이사장이 된 남다성입니다.”


 그 말을 끝내며 분명 나를 보았다. 난 도저히 그 아이의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발끝으로 시선을 내렸다. 분명 아까 전 창밖에서 본 그 아이는 잔상이었다. 잔상이어야만 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어 눈을 감았다. 옆에서 내게 눈치를 주며 몸을 툭 치는 나은 선생님의 목소리도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덮쳐오는 이 기억들을 모두 비워내고 싶었다.


 “선생님... 저 잠깐 화장실 좀...”

 “응? 지금? 좀 이따 가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신히 나은 선생님께 말을 꺼냈지만 선생님의 다급한 손이 내 팔을 잡았다. 호의였을 손길이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어떤 말도 다시 꺼내지 못하고 급하게 나은 선생님의 손길을 뿌리쳤다. 교무실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강연수 선생님. 어디 가세요? 저도 낯선 곳 새로 와서 힘든데, 환영 좀 해 주세요.”


 나에게 꽂힌 한 마디에 모든 선생님들이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나는 천천히 그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환영, 합니다, 저도.”


 ...웃었다.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가식일지도 모르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너무나 보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반가울 자격이 없었다, 나는.


 “강연수 선생님을 아시나 봅니다.”

 “.....고희원 교장 선생님. 서혁 교감 선생님. 정선우 선생님, 정찬수 선생님, 김영서 선생님, 최세아 선생님. 여기 계신 분들 전부 불러 드릴 순 없지만, 이름은 다 외우고 왔습니다. 앞에 계신 분들부터 저 뒤에 강연수 선생님 옆에 계셨던 조나은 선생님까지 모두 다요. 이 정도 준비성은 있습니다. 학교에 애정이 깊거든요.”


 교장 선생님의 입이 벌어지더니 이내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한 명, 한 명 눈빛으로 콕콕 집으며 자신들의 이름을 부른 이사장에 모두들 놀란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대단하다며 추켜세웠고 이사장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나은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까지 불러준 모습에 눈빛을 반짝였다.

 나 혼자만 불편했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이 순간에 나만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풍족한 집안에서 오는 분위기는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항상 센스와 재치를 탑재하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나와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되는 그런 아이였다.


 ....난 한 번 마음 준 사람 지구 끝까지 쫓아가거든.


 순간 갑자기 들려온 과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거칠어진 내 숨소리는 화목한 웃음소리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외면하고자 해도 저 아이에 대한 기억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 - -


 *

 “우리 학교로 새로 전학 온 친구야. 다성아, 인사해.”

 “안녕하세요, 남다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총기가 들어찬 눈빛이었다. 남다성이라는 아이는 전혀 낯설어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도 아니고 2학년 때 전학을 오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반 애들은 모두 환하게 웃으며 그 친구를 반겼다. 인기가 많아질 것 같은 아이였다.

 남는 자리는 내 뒷자리밖에 없었다. 남다성은 내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크게 신경 쓸 것도 없는 아이였는데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넌 이름이 뭐야?

 -지금 무슨 시간이야?

 -나 연필 하나만 빌려줄래?

 -너 되게 귀엽다.


 하필이면 다리가 부러져 입원한 내 짝의 부재로 그 친구의 질문은 오롯이 나에게 쏟아졌다. 친하지도 않은 짝이 그리워졌다.

 전학생은 역시나 인기가 많았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내 뒷자리로 몰려와 그 아이를 칭찬하며 호감을 표시했다. 시간이 지나며 옆 반 아이들도 우리 반 창문으로 그 아이를 흘끗흘끗 쳐다보기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나였다. 우리 반, 그것도 내 자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온 건 처음이었다.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널브러져 있는 책걸상 위에 앉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그나마 세상으로부터 떨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을 이렇게 버티면, 또 아무렇지 않은 내일을 맞을 수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교실로 가려고 옥상 문을 살짝 열었을 때였다.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3,826 공백 제외
3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