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편은 IT 기술과 관련된 용어가 등장합니다. 오직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문해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도 잘 모르거든요)





Trigger warning

본 소설은 체벌 요소, 폭력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W. 편백










핸들을 감싼 손바닥, 그 표피 아래엔 더 선명한 감촉이 스며 있었다. 남혜성. 두툼한 옷자락을 포개어 잡고, 툭 튀어나온 쇄골을 짓눌렀던 그 불쾌한 감각. 정작 힘 줘야 할 곳은 발인데 애먼 손에다 힘을 실었다. 어떻게든 그 생경한 감각을 묻으려고.


[-'Exi로 가주십쇼.']


죄책감으로부터 파생된 불쾌감의 크기를 억제한 것은 C의 전화였다. 작전 팀의 파괴를 막기 위해, 작전 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사랑과 정의의 ND의 감초 남혜성의 수호신 C. 동시에 내 기분의 훼방꾼. 하필 또 남혜성 조지는 타이밍에 C가 전화했고 때문에 식탁 위에서 울리던 휴대폰이 고까웠다. 허나 남혜성의 말을 가로챘던 그 진동은 수호가 아닌 경보였다. 회사에 재앙이 일었다는 속보.


디도스와 누킹으로 인해 10분 째 Exi의 서버가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모든 서비스가 중단 되었다. 대량으로 침투 중이라 현 인력과 방어 장비로는 한계다. 한시가 급하니 일단 Exi로 가 달라. 그런 내용이었다.


급박한 상황 치고 수화기 너머 C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자신만만해서도 천하태평 해서도 아니었다. Exi의 대사고는 언제 터져도 불안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팀장이라면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눠도 여유로워야 했다. 가진 패가 구려도 조커를 품은 놈 마냥 태연해야 한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조직 내부에 팀장의 초조함까지 더 해지면 역효니까.


악셀에 무게를 싣고 Exi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길.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본 광경으로부터 이번 해킹에 대한 여파를 예감할 수 있었다. 21세기 인간은 전화기 없으면 못 사는 족속들이기에, 하나 같이 휴대폰을 들고 방황하고 있었다. 벌써 20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대중들의 여론이 점점 더 부정적으로, 점점 더 거세게 빗발칠 거다. Exi의 영향력이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상 우리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번진다. Exi 이외의 기업들도 사업에 영향을 받는다. 보안망이 뚫린 시점부터, 이 나라 경제가 적자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만 타깃으로 잡은 게 아니라면, 해외도 위험하다.


모든 인력을 다 동원해 최대한 빨리 복원해야 한다. 에러를 잡는 건 보안 팀에서 할 일이고. 나는 지금 그리고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 취할 자세를 결정해야 한다.



"지금 사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i 본사 입구엔 기자들이 당도해있었다. 양복 입고 사원증 매달고 있으면 인턴이라도 붙잡고 캐묻는다. 3년 전 개별이 새끼가 Exi 서버를 먹통으로 만들었을 때처럼. 한동안 시끌벅적 할 거다. 그땐 포털 사이트만 먹통이었으나 지금은 Exi 통신망과 관련 서비스 자체에 장애가 일어났다. 범위와 비례하게 기자들이 날뛰었다. 아마 쟤네 휴대폰도 다 좀비 됐을 거다. 쯧. 하는 수 없이 뒷문으로 들어가 시스템 보안실로 출두했다. 삭막하다. 아래층은 항의 전화 받느라, 기자들 대응하느라 개처럼 뛰어다니는데 이곳은 아주 고요했다. 일 터지면 제일 먼저 조져지는 쪽은 언제나 맨 아래다. 정작 해명해야 할 사람은 그들을 방패막이 삼고 할 일 한다. 그럴 수 밖에. 얘넨 해명이 아니라 해결이 우선이다. 따라서 이들의 전쟁터는 기자가 아니다. 지 대가리지.



"최 팀장님 오셨습니까."



최 팀장이라는 호칭도 오랜만이다. 양지라 구색 갖춘다고 보편적 명칭을 이용하는 거다. Exi 보안 팀 차장은 에러 잡는 데 정신이 없었다. 내가 근처까지 가고 나서야 뒤늦게 발견하고 일어났다. 보안 팀 팀장은 차장이 내게 인사한 뒤에야 날 인식했다.



"진행 상황은요."

"아, 예. 지금... 상대측에서 임계 방어를 포함한 탐지 시스템, 다른 보안 서비스까지 모두 통과하여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존 기술과는 달라서 새 보안 프로그램 적용하는 중인데 그 마저도 다 무시하고 있어 공격 위치를 찾는 중이고요... 추적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아 현재 권한이 넘어간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모든 방어벽을 뚫고 추적 시스템까지 해킹했다. 누가, 왜.


위치까지 알아내지 못 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 한날한시에 Exi를 공격한 것일까. 


아무리 능력 좋은 놈이라 할 지라도 Exi의 정보 없이 해킹하진 못 한다. Exi를 노렸다면 필수적으로 Exi의 정보를 취득 해야 했을 터. 그 과정에서 Exi가, ND가 침입의 흔적 조차 감지하지 못 했다? 분명, Exi의 시스템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탐지 시스템에서 걸러지지 않았다는 건 이미 그들이 Exi가 어떤 탐지 시스템을 운용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어떻게? 분명 어디선가 정보가 유출 되었다. 내부에 적이 있거나, 스파이가 있거나. 또는 말도 안 되는 가능성으로, Exi의 기술력을 능가하는 실력자 해커가 출현했거나.


전자라면 누군가 우리 내부에 침입해 정보를 취득했다는 뜻이다. 후자라면 개별이 과로 봐야 맞지만... 애초에 Exi에 침입한 사람의 흔적이 없다질 않나. 남혜성 조차 제 좌표를 숨기기 위해 Exi 시스템 정보를 캐냈다. 결과적으로 공격 좌표는 숨겼을 지 몰라도, 공격 전 정보를 캐내던 흔적 만큼은 남겼다. 모르니까, Exi가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모르니까. 그러니 C가 찾아가서 스카우트 한 거겠지. 


그 새끼는 취약점을 파고들어 와서 지가 만든 에러를 심은 거고. 이건 대량의 데이터가 모든 방어벽을 허물고 한 번에 들어와서 서비스 자체가 뻑 난 거다. 탐지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다르다. 남혜성은 침입해도 이상한 놈 같아 보이지 않아 안 잡힌 거라면, 이건 쉴드가 통하지 않은 쪽.


따라서, 어느 정도 Exi의 시스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철두철미한 보안망을 모조리 타파 가능한 공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윤 팀장?






-






슥, 희끄무레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S의 방에 들어가는 걸 볼 사람도 없는데 혜성은 퍽 조심스러웠다. 몸을 집어 넣고 문을 닫을 때까지도 심혈을 기울였다. 흑심만 가득 찬 속내에 양심이 찔끔 있긴 한가 보다. 그런다고 죄의 무게가 달라지진 않을 텐데 말이다.


아 물론, 처음부터 이 방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컴퓨터는 서재에도 있다. 그러니 거긴 이미 문고리 당겨 본 뒤였다. 손잡이가 안 내려가서 여기로 온 거다. 서재는 잠그면서 방은 왜 안 잠갔대. 급하게 나가느라 잊은 건가. 무방비하게, 쯧. 혀 찼지만 여기도 안 열리면 문 딸 생각이었다.



"와..."



혜성은 이국에 처음 온 놈처럼 감탄하며 방을 둘러봤다. 세 번째 방문인데도 와 소리가 나왔다. 너무 깨끗해서. 침구 빼면 전부 헌 것임에도 새삥처럼 윤기 난다. 소품이나 잡화, 서류 이런 것 하나 나 뒹굴지 않았다. 방이 네모 네모 하다. 모든 게 반듯하고 허연 것들로 통일돼 있다. 수납장이 이렇게 많은데도 방구석에 딱 꿰맞춰져 공간이 탁 트였다. 이 양반 다른 건 모르겠지만 테트리스 하나는 나보다 잘 할 것 같다.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로 깨끗하면 지금 다시 나가도 내가 들어간 게 티 날 것 같았다.


나한테 방 더럽게 쓴다며 질책할 때, 속으로 '나름 사람 사는 방 같이 해 놨는데...' 투덜댔었다. 이 방에 들어와 보니 내 방은 돼지우리가 맞는 것 같다. 순간 술 먹고 객기 부린 게 생각나 아찔했다. 이 정도로 깔끔 떠는 양반이라면 날 안 죽인 게 용했다.


방 꼬락서니나 지내는 사람이나. 인간미 하나 없는 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은 어쩐지 정겹게 느껴졌다. 팀장님 냄새 때문에. 시원하고 묵직한, 그 향수 냄새.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개개인 특유의 체취 때문에. 그건 정말 짜증 날 만큼 좋다. 내가 이 방에 온 목적을 실행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더 머물다 가고 싶게 만든다. 이리 지독한 페로몬을 가진 걸로 보아 역시 그 작자는 짐승 쪽에 더 가까운 게 맞는 것 같다. 냄새로 침입자 유인하고 붙잡아 두는 것이 꼭 식충 식물 같은 방이다.


눈에 비치는 침대, 코끝에 스미는 팀장님 냄새. 후각의 민감도를 떠나, 향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에.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처음 이 향을 느꼈던 기억이. 팀장님이 나를 한참 안아줬던 기억이.


생각이란 그런 것이다. 원 뿌리를 내리면 잔 뿌리로 뻗어나가는 것. 향 하나로 시작된 그날의 기억이 머리에 심겼다. 단단하게 나를 받치던 팀장님 팔, 허벅지. 등짝을 토닥이던 손길. 다정한 말투.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진동하던 팀장님 어깨.


좋았는데.


어쩐지 센치해진다. 팀장님과의 갈등은 빈번했다. 하루에 세 번 안 부딪히면 다행인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냉전이 유독 타격 컸던 이유는, 팀장님의 단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싫은 티 내도 강제로 조수석에 앉히던 양반이 그날은 '야, 뒤에 타.' 했고, 아닌 체 했지만 조금은 시렸다.


화해하고 싶다. 그러려면 말 잘 들어야겠지? 나 이 방에 들어온 거 알면 또 욕 먹지 않을까? 그럼, 다시 나가야 하나. 그래, 나가자. 화해하고 싶다며. 팀장님 올 때까지 얌전히...


얌전히.


기다리면 올까?


만약 Exi에 위기가 닥친 게 맞다면. 그게 수습 될 때까지 팀장님은 안 오지 않을까? 팀장님은 팀장님이잖아. ND에서 제일 높잖아. 보안이 뚫린 게 맞다면. Exi는 무사해? 피해 규모가 클 수록 팀장님의 귀가 시간은 무기한 연기 될 텐데.


장승처럼 서서 고뇌 하던 혜성이 끝내 결정을 내렸다. 내가 무단 침입해서 욕을 먹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에 일단 만나야 해결될 거 아니냐는 결론이었다. 들어오기 전과 후의 결심에서 조금 수정된 부분이 하나 있다면,


이번 일은 숨기지 말아야겠다. 팀장님이 추궁하기 전에 내가 먼저, 팀장님 방에 들어 갔다고 이실직고 해야지. 그 다짐이었다. 데스크를 차지하고 앉은 혜성이 컴퓨터 전원을 켰다. 원래는 용의주도하게 마우스 위치까지 기억할 작정이었지만 들키기로 마음 먹은 이상 눈 감고 마우스부터 휘저었다. 이제 엎질러진 물인 거다.


그나저나 얜 켜지네. 내 건 부팅도 안 되는데 얘는 잠금 화면까지 다이렉트로 켜졌다. 셋 중 하나다. 이 컴은 Exi 외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해킹을 막는 프로그램이 따로 설치돼 있거나, 아님 정말 내 것만 맛이 간 거거나. 그건 잠금을 풀어봐야 알겠지.


ND 팀장 답게 여러 보안 시스템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야 Exi 수석 입사에 ND 전설의 교육생. 정보 교육을 이수한 이상, 웬만한 보안 시스템은 다 파악하고 있었기에 해제하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픈.


인터넷 연결 원활. 네트워크 정보를 찾아보니 예상한 바와 같이 Exi 서비스가 아니다. 점점 윤곽이 잡힌다. 다음 내가 확인 해야 할 것은, Exi. 작업바에 있는 타사 포털을 클릭했다. 이건 들어가진다. 검색창, 'Exi' 입력, 클릭. 클릭.


흰 페이지.


역시, 내 것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Exi 서비스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 컴퓨터도 통하지 않는다.


'Deum 실시간 속보 [Exi 통신 오류,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서비스 장애......]'


통신 오류라니, 피해 규모는 생각보다 더 상당했다. 해커는 무려 Exi 네트워크를 해킹하셨다. 원 뿌리에 스며들어 잔 뿌리까지 썩게 만든 거다. 다른 허접 기업도 아니고 Exi를 말이다. 이 정도 인재라면 이미 Exi나 ND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간이 보통 큰 게 아닌가 보다. 잡히면 감방 행이거나 죽거나 스카우트되겠지. 죽기 싫으면 여기로 올 테니 조만간 ND에 뉴페이스가 뜰 것 같다. 정보 팀장님 기뻐하시겠네. 박힌 돌인 3번은 애제자 자리 강탈 당하게 생겼고.


그나저나 밖은 난리겠다. Exi가 문어발식으로 판 벌린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데. 업무나 작업 중이던 사람들은 하던 거 다 날아갔겠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웃고 보니 웃을 때가 아니다. 한동안 시끄럽겠네. 직장인들의 심기까지 건드린 이상 Exi는 날계란 맞는 걸 피할 수 없을 거다. 나도 피해자이니 같이 껴서 던져야지.


잠만.


그럼 주식은?



"씨발."



뭘 확인해 안 봐도 비디오지. 지금 쯤 수직 낙하 중이겠지! 혜성이 얼굴을 문지르며 절규했다.


그거 내가 어떻게 얻은 지분인데!!!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피랑 땀이랑 눈물 섞어 가며 얻은 귀한 돈이란 말이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나다. 분명 나다. 며칠 꼬라박은 작업물도 잃었고 주식도 잃었다. 그거 뿐이야? Exi 망하면 내 밥줄은? ND와 나의 관계는 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거 아닌가. Exi를 가져야 한다는 내 임무와 함께.


팀장님이랑 화해고 자시고.



$_$



내 돈은 내가 지킨다!






*






"...한 시간."



한국 제일 기업이라는 게... 고작 나 하나 못 잡아서 전전긍긍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Exi는 이 나라의 수치야.



"그치, 영아?"



나긋한 목소리가 은은히 퍼졌다. 그 음성이 차례차례 영의 귓가에 다 스며 들고 나서야, 그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내 의견이 궁금해서 건넨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님의 눈빛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았다. 그저, 바라봤다.


통 창 앞에 선 뒷모습은 달리 볼 것도 없었다. 가볍게 내려 묶은 머리, 회색 정장. 한 품에 들어 올 여리여리한 몸.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하릴없을 때면 저렇게 창밖을 내다봤다. 마지막 잎새를 보는 소녀처럼. 그리 들여다볼 만큼 예쁜 풍경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사람들이 통신 오류에 허덕이고 있고 Exi에 대한 속보가 전광판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곤충을 괴롭히는 아이처럼, 그들의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기 위함은 아니었다. 눈 둘 곳이 필요해 창문을 택하신 거다. 물론 그녀는 Exi를 곤충, 그중에서도 해충 취급한다. 모기 터뜨리는 데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듯이, 그녀도 현 사태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 여파에 대한 책임감도 없었다. 엉겁결에 함께 손찌검 당한 벽에 사과하지 않듯.


그러나 Exi는, 해충처럼 하찮은 크기가 아니었다. 크고 해로운 것. 그런 건 괴물이라 부르는 것이다. 영웅만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다. 허나, 그녀는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혀 놓고도 영웅 행세 하지 않았다. 아마 완전히 물리칠 때까진, 저렇게 통 창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말할 것이다. 잃을 것 없는 자는 두려울 것도 없댔나.


그래서 그녀는 괴물과 싸우는 내내 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동시에 당장의 성공에 흥분하지도 않았다. 수 많은 실패와 성공 속에서 그녀는 항상, 지금처럼 나른했다. 기쁨, 슬픔 그런 건 느낄 줄 모르는 사람처럼 텅 빈 얼굴로 '-하네. 그치, 영아?' 했다.


30년도 넘게 본 사람이다. 상황은 사계절 바뀌듯 다채로웠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나른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저런 모습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완벽한 밀랍 인형 같진 않았다. 그땐, 생기가 남아 있었다.


["안녕."

"으아...!"]


그녀가 회장님께 입양된 지 1년 정도 지난 해였다. 담장 벽에 숨어있던 내게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인사했다. 난 그녀의 비밀 경호원이었다. 실상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게 멍든 팔을 훤히 드러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우리 나이, 고작 열 다섯이었다.


["왜 자꾸 따라와?"

"어? 어, 그냥,"]


90도로 굽어진 담장 벽에서. 난 X축에 쭈그려 앉은 채, 그녀는 Y축에 왼쪽 반신만 걸쳐 기댄 채. 해를 등진 그녀는, 무섭지 않았다. 그녀의 긴 생 머리가 내 볼 가에 내려앉아 간지럽혀도 소름 돋지 않았다. 사주를 받고 미행하는 내가, 상대에게 발각되었음에도 내 가슴을 뛰게 한 건 그게 아니었다.


["...예뻐서요."]


예뻐서. 오른 눈을 안대로 가린 외눈박이 소녀가, 예뻐서. 역광을 후광으로 만들 만큼 예뻐서. 그래서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볼 붉히지 않고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그리고 느직이 손을 움직였다. 부드러운 동선으로 귀 뒤에 걸린 끈을 풀었다.


["이래도?"]


안대가 벗겨지며 드러난 눈은,


흉측했다. 오른쪽 광대부터 이마 끝, 그리고 귀까지. 마치 용암이 지나간 길처럼 살이 녹아 내려 있었다. 아직도 타들어 가는 것처럼 붉었다.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난 네게 정체를 들켰다. 첩자가 아닌, 스토커로. 그래서 회장님이 날 쫓아내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내가 그 아이에게 정체를 들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기이한 일이지. 내가 쫓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회장님께 말하지 않은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난 그 아이를 계속 미행했다. 회장님은 내가 비밀 경호원이라 말했으니까. 내가 경호하는 것도 비밀일 만큼 회장님이 그녀를 아주 아낀다고 생각했다. 일거수일투족 쫓아다니며 누구와 만나는지 누구와 연락하는지. 어떤 내용을 주고받는 지까지 모조리 추적하고 감시했다. 그리고 회장님께 보고 했다.


["아흑-! 아, 끄윽..."]


내 말 한 마디에 회장 앞에 무릎 꿇고 온 몸이 푸르게 멍들 때까지 맞는 것도, 그 집 아들한테 머리채 쥐어 잡히며 개처럼 밟히는 것도. 회장님이 그 아이가 잘 되길 바라서 그러는 줄 알았다. 지금은 체벌이 학대의 상징이지만 그 시절엔 체벌이 사랑의 증표였으니까.


그렇게 합리화 하며 3년을 더 쫓았고, 고발했다.


그러다 그만두기로 마음 먹게 된 건,


'비행기 표를 끊은 걸 확인했습니다.' 내 말 한 마디에 공항에서 붙잡힌 네가. 집으로 끌려와 잔혹하게 학대 당하고 피 묻은 차림으로 마당 한 가운데 방치되었을 때. 그때 네가 그 흉진 눈으로, 내가 은신해있던 곳을 정확히 노려보았을 때였다.


그땐 너와 나의 처음과 달랐다. 난 그때 무서워서 심장이 뛰었다. 내 한 걸음 한 걸음을, 넌 다 알고 있어서. 난 비밀도, 경호원도 아니라는 것을 그 눈이 정확히 직시하고 있어서. 나란 놈은 널 감시하란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회장님의 개일 뿐이란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증오 가득한 눈빛을 보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실감 났다.


그렇게 경호를 가장한 첩자 노릇을 관두기로 했다. 그 아이의 앞을 가로 막고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고. 그런 건 줄 몰랐다고. 그녀는 그때와 같이, 해를 등지고 머리카락으로 내 볼을 간지럽히며 말 했다.


["가지마."]


가지 말라고.


["미안하면, 그만두지 마."]


어차피 빈자리는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네가 해 줘.


그래. 그렇게 10년, 20년, 30년 그리고 지금까지. 집을 벗어나겠다며 유학을 떠났던 그 세월에도. 네가 공로 한 Exi에 지분 하나 얻지 못한 채 좌절 했을 때에도, 그런 Exi를 보좌하겠다며 ND에 들어갔을 때에도. 거기서... 팀장 하나와 눈 맞았을 때에도.


아이를 가진 네가, 혹여 Exi에게 아이를 뺏길까 산 중으로 도망쳤을 때도, 결국엔 아이를 잃었을 때에도. 그리고 Exi를 무너뜨리려다 실패하고, 이후 남편을 죽인 뒤 Exi에서 도망쳤을 때에도 끈질기게 그녀의 뒤를 쫓고, 쫓고. 또 쫓았다.


빈 자리는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니까.


모든 최악의 선택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을 만큼, 네가 최대한 덜 고통스러울 만큼. 그 중간 지점을 찾아 타협하고 또 타협해서 움직였다. 회장님의 사람도, 네 사람도 아닌 그 위치에서. 그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걸었다.


내가 줄타기 하는 동안, 넌 처참히 무너졌다. 내가 줄을 제대로 타지 않아서. 완벽히 네 쪽으로 기울어 버린 바람에. 결국 회장님이 나 말고 다른 개를 구한 탓에. 네 아이를 물어 뜯고, 네 계획을 허물어트린 충견을.


["또 너구나."]


날 지옥으로 끌어 들인 게.


넌 그게 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라고 말하지 못 했다. 아이를 잃은 네가, 남편을 죽인 네가. 사방이 너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을 때 살아남기 위해 ND를 다시 도망쳐 나온 네게. 난 네 불행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직도 부족해?"]


아니. 부족하지 않아. 충분하고도 남아.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은 겪지 않는 게 맞아.


["...아가씨를 죽이라십니다."]


근데 회장님은 그걸로도 모자라신가 봐.


["그럼 죽이지, 왜 등신 같이 졸졸 따라오기만 해?"

"저는, 회장님 사람이 아닙니다."]


네가 흉진 눈으로 날 직시 했을 때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네가 날 감시해 달라 부탁 받은 날부터. 난 네 명령에 복종했다.


["다, 알잖아요."]


그때부터 내가 회장에게 거짓을 말했단 걸, 다 알잖아요. 당신이 어딜 가든, 누구와 내통하든, 무엇을 꾸미고 있든. 회장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내 흔적과 더불어 네 흔적까지 모두 지워 버리는 것까지. 전부 알잖아요. 그래서 나를 달고도 산장에서 애 낳고 지냈던 거잖아. 출산 중 기절한 너를 간호한 것도, 그동안 아이를 보살핀 것도 나라는 걸 알잖아.


회장님의 사람이 네 거처를 알아냈다는 소식을 네게 알린 것도, 아이를 보육원에 두고 네 발로 회장에게 돌아가 목숨을 구걸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나란 걸 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불행에 동조한 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 했다. 난 네 아이를 지켜내지 못 했으니까. 줄 타느라고. 내 자리가 대체되지 않기 위해, 회장의 명령을 수행하는 동시에 너를 지키는 그 타협점을 지키느라고. 널 찾았다, 회장한테 말해버린 바람에. 네가 아이를 낳았다는 정보가 회장의 귀에 닿은 것도 모른 채. 그의 새로운 개가 산 주변 보육원에 불 지른 것도 모르고. 걸음마 제대로 못 하는 한 살배기들은 모조리 공기 중으로 날아간 것도 모르고.


혈혈단신,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에 딱 한 번 찾아온 축복. '천륜'이라는 끊지 못할 인연. 그 소중한 아들과의 연줄이 기어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사실도, 그 극악무도한 사람이 Exi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나였다.


네 계획을 모두 무산 시킨 사람이 네 남편이라는 걸 말한 사람도,


나였다.


난 동조했다. 그녀의 불행에 동조했다. 그녀가 남편을 죽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게 나니까. 그녀의 아이가 저항도 못하고 불태우도록 조성한 게 나니까. 의도건 아니건. 내가 남 팀장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너와 네 아이의 거처가 발각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넌 남 팀장을 죽이지 않았겠지, 넌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지 않았겠지. 그렇게 난. 난, 그녀의 불행에 동조했다.


["...곧 브로커가 올 겁니다."]


그래서 놓으려고. 이제 그만, 널 쫓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 너를 쫓는 나. 나를 쫓는 누군가. 그 누군가를 죽이고 마지막으로 널 쫓기로 한 밤,


["지금 어딜 가든 회장님 사람이 안 깔린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잠깐 체류하다 브로커 따라서 입국까지,"]


고아, 입양 후 학대, 공로 탈취, 친 아들 타살, 복수 실패, 남편 살해, 이후 본인을 향한 양아버지의 살인 교사까지. 단 한 순간도 평탄한 적 없던 네가, 다시 육신 하나 남은 네가.


["너는."]


내게 물었을 때.


["계속 따라 올 거지?"]


흉진 눈으로 날 직시하며 물었을 때.


["응."]


난 당신 만을 따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 듯.


윤리아의 개로. 누군가의 향을 쫓는 유기견이 아니라, 비로소 주인을 지키는 개로 거듭났다.



"C가 고생이 많겠다."



그 아이는 항상 나 때문에 고생이네.

창 너머는 괴로워하는 사람만 널려있는데, 시야에도 없는 사람을 걱정한다. 그 사람에게 만큼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C, ND의 정보 팀장. 리아의 직속 후임. 직접 가르치기까지 한. 별이를 키우느라 비운 자리를 대신 채운. 돌아온 리아에게 다시 자리를 넘겨준. 그리고 다시 떠난 리아의 구멍을 다시 채운.


애틋할 만도 하다. 리아가 목 놓아 별이를 울부짖었을 때도, C는 그녀를 보좌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복종했으나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연민이었다.



"그래서 Exi 통신만 건드신 겁니까."



Exi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자사가 개발한 통신 매체를 이용하지 않는다. Exi가 방어마저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들이 따로 이용하는 통신을 끊는 방법이 있지만,



"...응."



그녀는 그 수법까지 가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애 먹고 있을 텐데, 그러면 C는 목숨 부지도 힘들 거야. 자비가 아니라, 위선이야. 어차피 이번 공격 목적은 그게 아니기도 하고.


자비가 아니라, 위선. 적확한 표현이었다. 그녀가 'Exi 통신'만 마비 시킨 이유는 C를 향한 일말의 정 때문이 아니다. 굳이 그 방편이 아니더라도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 공격의 목적은 여론이기 때문에. 적어도 통신이 끊기지 않은 대중에게 Exi에 대한 진실을 주입하는 것. 확산 시키는 것.


Exi가 먹통이 될 동안 타 서비스는 활성화 된다... Ex에 주목이 쏠린 틈을 타 대표 이사의 불법 행위와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Exi의 증거 인멸과 압력에 의해 기소 조차 못하던 검찰에게 명분을 주고, 수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증거까지 확보해 미리 전송한다.



"이번은 쉽게 묻히지 않을 거야."



Exi 사장 그리고, 회장. 그들이 그녀의 해충이다. Exi는 벌레와 함께 손찌검 당하는 벽. 내리 쳐도 미안할 거 없는, 그러나 크게 흔들릴. 나를 물어 뜯은, 물어 뜯을 지도 모르는 모기 박멸하는 일개인. Exi에게 치명타를 가해도 흥분하지 않는 이유. 그녀에겐 맨 벽을 친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웅이 아니다. 그녀의 상대가 괴물이 아니기 때문에.



"저기에 Exi의 비리 속보가 먼저 뜰까, 아니면..."



너흴 공격 하는 우리 컴퓨터가 먼저 차단될까.






*






벌써 네 시간 째다. 혹여 팀장님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가슴 졸이는 건 애진작 그쳤다. 이 상황이면 내일모레까지 죽 치고 앉아 있어도 안 올 거다.


아래 키를 삼천 번은 누른 것 같은데 취약점은 찾지 못했다. 내 눈이 삐었나? 아닌데. 아무리 삐꾸여도 삼천 번 봤으면 보여야 맞는데. 이쯤 되니 기능이란 확신이 선다. Exi가 세워 놓은 방어벽을 모두 허물, 그런 기능. 그런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든 걸까? 웬만한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가능할 리 없는데.


Exi를 정확히 겨냥하고 프로그래밍 된 기술을 Exi 장비로 잡을 수 있을 만큼 허술하게 만들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해답은 공격 주소를 찾아내 차단하거나, 새로운 방어벽을 개발하거나 혹은 먹힐 만한 보안 시스템을 새로 구해오거나. 둘 중 하나가 답이다. Exi도 ND도 그것 정도는 파악 했겠지. 벌써 수 많은 인력이 투입 됐을 것이다. 이제 와서 내가 새 방어벽을 세우는 건 무리지. 이미 ND 정보 팀엔 수많은 인재들과 팀장님이 있으니까. 그러니 이만 접는 게 좋겠다.


2시간 내내 먹통인 Exi를 헐뜯느라 바쁜 언론이나 구경했다.


'Exi 윤희종 대표 이사 횡령 및 배임 비리 의혹'


희종이가 누구냐? 누군데 Exi 돈으로 횡령에 배임까지 했대. 거기에 내 돈도 있는데. 게맛살처럼 미간 구기고 기사를 읽었다. 애초에 대표 이사 이름을 직원이 아리까리 하면 배임이 맞다. Exi 회장이야 '한국 경제를 빛낸 위인'에 이름 박혀 있으니 모르면 간첩이지만 희종이는 아니다. 연관 기사 몇 개까지 보고 나서야 Exi 회장의 아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입 비리, 성매매, 노동법 위반 등등... 많이도 해 처먹었다.


'한편, 2018년, 검찰은 Exi 윤병민 회장의 아들 윤희종 대표를 마약 유통 혐의로 입건 했으나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진작 매장 당해야 했을 일들이 왜 이제 와서 수면 위로 드러나는 걸까. Exi 직원도 모르는 대표 이사의 이름. 자랑스러운 것은 드러내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기 마련이다. 아킬레스건. 약점. 모든 싸움에서 상대의 약점은 중요한 패가 된다. 무도에서 공격을 가르칠 때 무엇부터 익히는 지 아는가.


급소.


상대의 급소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방어는 급소를 최우선으로 막는다. 이는 격투 뿐 아니라 모든 싸움의 공용어다. 논쟁은 감정이 곧 약점. 상대의 감정을 들추는 자가 승리를 거머쥔다. 사이버전도 마찬가지다. 공격은 보안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것으로 시작하며, 방어는 취약점 보완하는 것.


희종이가 세상에 꼭꼭 숨어 있던 것도 같은 원리일 거다. 감춰야 할 약점이라서. 마약 유통한 대표는 기업의 취약점이니까. 해커는 취약점을 파고드니까. 취약점을 파고들어 와서 공격하니까. 치명적인 공격은 급소를 찌르는 것.


Exi를 취약점으로 만든다. 취약점을 파고들어 와 윤희종이라는 급소를 찌른다.



"...똘추인가."



땅 팔 곳은 여긴데.






*





엄마, 나 좀 살려주세요. 안구가 부패하기 시작한 거 같아. 3번은 녹아내리는 몰골을 마구 문질렀다. 그제 진급 테스트를 통과한 난, 오늘 승급식을 치르고 휴가 떠나야 할 몸이었다.


반질 반질한 옷도 쫙 빼 입고! 지하 강당에서 딱 어? 딱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보팀 소속 요원 나와."]


은 나 밖에 없었고 나만 차려입은 상태로 보안 팀 사무실에 끌려갔다. 사무실이니 만큼 시끄러울 리 만무했지만 이건 조용한 걸 넘어서서 삭막했다. 진급식도 안 치른 신입이 왔는데 모두 제 할 일 하느라 바빴다. 전장의 총소리 만큼이나 사나운 키보드 소리, 화면을 바라보는 비장한 얼굴. 다리 떠는 사람은 책상 하나 건너 있었다.


정보팀 사무실 깊숙한 곳 위치한 정보 팀장님의 사무실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팀장님은 안에서 선 자세로 작업 중이셨다. 진급식에 오셔야 할 분이 여기서, 나와 같이 때깔 고운 옷을 걸치고 발목 잡혀 계셨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ND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날 데리고 온 선배님을 따라 빈 자리에 앉았다. 어인 상황인지 짤막한 설명을 듣고 너도 손 보태라는 임무까지 부여 받았다. 아직 놀란 가슴 진정시키지도 못했는데 선배님이 떠나시려기에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


["저, 진급식은..."]


지금 그딴 거 물을 때냐? 그 분이 눈으로 욕했다. 다크써클 때문에 조금 무서웠다. 입 다물고 컴퓨터 전원을 켰고, 그 분은 날 한심하게 훑더니 한숨을 푹 내쉬셨다.


["에러 잡을 때까지 무기한 연기니ㄲ,"

"예엑?!"]


사무실에 내 외 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산통 깬 직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고, 덕분에 골방에 있던 정보 팀장님까지 날 보게 됐다. 선배님한테 뒤통수 후려 맞으면서 팀장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널 어쩌면 좋을까~...^^?


싸 맞은 대가리나 낮게 들려오는 슨배림의 쌍욕 보다도 그 미소 하나가 더 무서웠다. 얌전히 입 여물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팀장님을 미소 짓게 만드는 나, 제법 젠틀해요.



"S, 보스."

"안녕하십니까!!!"



자그마치 여섯 시간 동안 천천히 액화 되는 중에 작전 팀장님과 보스가 출두하셨다. 주변 사람이 인사하는 소리에 덩달아 놀란 나는 뒤늦게 템포 맞추느라 '느엉하십니까...!' 라고 인사 올렸다. 받아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기에 작전 팀장님과 보스는 바람을 가르며 정보 팀장님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무슨 얘길 하는 거지?


괜히 궁금해서 팀장님 방 쪽으로 귀 기울였다. 거리가 먼 건 둘째치고 저 방이 방음이 잘 되어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그치만 궁금한 걸? 6시간을 또 컴터에 꼴았더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그러니까 화장실 가는 척 아주 쪼끔 엿들어 볼까...?



"야, 어디 보냐."



그거 잠깐, 고작 5초 다른 데 봤다가 옆자리 분께 쿠사리 먹었다.



"죄송합니다."

"하기 싫은 티 내? 너 뿐만 아니라, 여기 사람 다 주말에 끌려 나왔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개념 챙겨라."

"...옙."



조금 꼰대? 아닐까? 싶어ㅠ.


물론 개념 없는 생각을 했기에 할 말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화면이나 봤다. 눈이 뻑뻑해 무기력하게 비비니 방금 내게 꼽 줬던 분이 이번엔 인공 눈물을 주셨다. 어쩌면 천사일지도?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간신히 광대 억제하고 고개 꾸벅 숙였다. 똑, 똑 이슬 보급 좀 해주니 동태에서 명태 정도의 눈깔로 승급 했다. 눈깔 승급식 겸 휴가 이틀 더 줬으면 좋겠다.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다시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정상 작동 확인용 Exi 컴퓨터 화면에 눈빛을 발사 했다. 뭐가 문젠지 내게 텔레파시를 보내줘!


음음, 알겠다, 알겠어. 누가 너를 괴롭히는 중이라고? 근데 그게 누굴까?



"...아?"



정보 팀 사무실 준수 사항 1번은 '특수 상황 외, 아? 어? 뭐야? 금지'이다. 일 난 줄 아니까. 아니나 다를까, 정보 팀 사무실 공식 금지어를 대차게 뱉은 3번에 요원들은 명령어 삽입 된 AI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신입이 무언갈 보고 벙 쪄 있다. 금세 불안감이 치솟은 그들은 신입의 시선이 향한 곳을 다시 돌아 보았다.



"...어?"

"뭐야?"



사무실 곳곳에서 금지어가 터져 나온다. Exi 통신이...



"돌아 왔어...?"



쿵! 골방이 열리며 C가 훅 튀어 나왔다. 요원들은 화면 보던 얼굴 그대로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골방 안 살짝 비치는 S와 태윤은 각자 다른 곳을 보며 통화 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팀장님? 팀장님께서 하신 건가요? 어떻게 하신 거죠? 우리 이제 퇴근할 수 있는 건가요?



"누구야."



'...네?' 죄 대답 없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C가 미간을 좁혔다.



"누가 잡았냐고."



어쩐지 심각해 보이는 상사의 표정에 살살 눈치를 살핀다. 하나 둘, 주변 사람을 추궁한다. 너야? 나 아니야. 너니? 저 아닙니다. 그럼 너? 저도 아닙니다. 눈길 쏠리면 항복 선언 하는 사람처럼 두 팔 들고 고개를 젓는다. 팀원 사이에서 의미 없는 물음과 답변이 오갔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자, 정보 팀장님은 이윽고 다시 사무실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새 통화를 끝낸 S와 보스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듯 하다. 모두 숨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까 나 보고 어디 보냐며 쿠사리 주던 옆자리 선배도 팀장님 간의 대화가 궁금한 듯 소리에 집중했다.



'Exi도 아니라잖아.'



Exi에서 잡은 것도 아니라고? 요원들이 입 대신 눈으로 술렁거렸다.



'상대측에서 공격을 멈춘 걸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잡을 때까지 추적해. 방어벽도 다시 세우고.'



잡을 때까지 추적, 방어벽 다시 세우기.



'예, 보스.'



칼퇴 안녕...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편백입니다. 보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참고로 전 RAM이 뭔지도 모르는 컴맹입니다...:ㅅ; 이번 화 만큼 머리 굴린 적은 없는 것 같네요. 그치만 이 과정 없이 쓰는 건 Exi와 ND가 허울만 남아 어쩔 수 없이 알아봤습니다. 혹여나 전공자분이 계신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일지라도 비전공자의 발악 정도로 생각해주십시오. 아니면 개인 메시지로 찾아와서 제가 일타 강의를 펼쳐 주셔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잘 몰라서 이 정도라도 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네요. 쓰면서 이걸 이렇게 디테일 하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근데 그다지 노딱 받을 만큼 디테일 하진 않는 것 같네요. (당연함. 그 쪽 지식 없음.)

새 인물이 무려 둘이나 등장했네요. 네, 윤 팀장은 살아 있었습니다. 화려한 등장!이 아니고 수려한 등장. 그리고 함께 나온 '영'이라는 인물까지. 그들 간의 서사가 한 번에 쏟아져 나와 특히 더 이해하기 어려운 회차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공지 이벤트 글로 찾아와 QNA 질문 주시길 바랍니다.

2023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한지 년차로만 3년이 되는 해네요. 다들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랍니다. 열흘이 넘었지만, 빠른 연재를 위해 노력 중 입니다. 항상 기다려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날이 조금 풀렸지만 그래도 감기 조심하세요. 겨울이니 귤도 많이 드시고요. 겨울 잠 많이 자두시고, 가끔 날 좋으면 산책도 가시고 하세요. 우리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트위터: @PB20220721

편백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