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월드에 사는 모든 드래곤들을 다스리는 드래곤들의 왕, 알파는 가끔 먼 바다를 보며 울부짖었다.



 왕의 울부짖음이 항상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그러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드래곤들은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가까이 가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드래곤들은 함께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들 또한 먼 바다 건너편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자신들의 왕의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등 뒤에 친구들을 태우고 다녔을 뿐이었지만 그는 그의 친구와 함께 꼬리를 공유한 사이가 아닌가. 그들에게 인간은 친구이자 가족이었지만, 그에게 인간은 한 몸이었다. 그들로서는 왕의 그리움을 달래줄 수 없었다.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왕비마저도 그 순간만큼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인간과 강한 연을 맺어본 적 없는 그녀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슬퍼하는 그를 보며 함께 슬퍼할 뿐이었다. 그가 울부짖을 때마다 그녀는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의 울부짖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실컷 울부짖은 후 지친 그를 다정하게 핥아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히든 월드는 평화로웠다. 그들을 괴롭히는 생명체들이 없었기에 그러했고, 그들을 이끄는 지혜로운 리더가 있었기에 그러했다. 인간들과 싸워왔던 지난 날들에 비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기껏해야 실수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일어난 작은 다툼 정도. 그가 알파의 힘을 쓰며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저절로 해결될 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드래곤들을 조종하는 알파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지 벌써 수 년이 지났지만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왕으로서 수시로 히든 월드를 날아다니며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드래곤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다시 인간들의 곁으로 돌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동족들을 위해 동족들을 해치는 인간들과 싸웠던 기억만큼 그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 남은 기억들이 있었다. 한 인간을 만나 다른 인간들과 연을 맺었던 기억. 한 인간과 싸우고 화해하고 장난치고 함께 놀던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기억들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지지 않았다. 처음 히든 월드에 도착했을 땐 이런 저런 일들로 바빠 잘 떠올려지지 않았던 기억들이었으나 이렇게 할 일 없이 자신이 다스리는 세계를 내려다 볼 때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왕은, 알파는, 그는 그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왕비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그는 히든 월드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왕의 보금자리에 누워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만약이라는 단어는 떠올려서 좋은 단어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히든 월드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그런 평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 중 바깥 세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인간들과 싸우고, 인간들과 함께 했다는 부모님들의 말을 그저 전설이나 동화로만 받아드렸다. 누구는 만약 자신이 인간을 만난다면 전부 잡아먹어버릴 것이라 말하며 아직 작은 그 날개를 펼쳤고, 누구는 만약 자신이 인간을 만난다면 그들을 등에 태워 함께 날아다닐 것이라 말하며 상냥하게 웃었다. 다양한 아이들의 반응에 어른들은 흐뭇하게 웃을 뿐 어떤 반응이 정답이라고 알려주진 않았다. 어차피 다시는 인간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때 인간들과 함께 하늘을 날았던 드래곤들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왕의 명령으로 닫혀버린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보며 그들이 옛 친구를 다시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히든 월드에 도착하자마자 알파의 힘을 이용해 드래곤들에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닫으라 명령했다. 우연히 이곳을 찾아낸 인간이 드래곤들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명령이었고, 어린 드래곤들이 아직 위험한 바깥 세상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명령이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폭포가 흐르는 문을 막은 이후로 드래곤들은 바깥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존재한 적도 없는 신비한 존재가 되어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이것이 히든 월드가 현재까지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였다.

 히든 월드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드래곤들은 바깥으로 나가는 모든 문이 닫힌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 히든 월드 아주 깊숙한 곳엔 그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막지 않은,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작은 통로가 있었다. 그는 평소 욕심 없고,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왕이었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왕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만들었다. 그 통로는 믿을 수 있는 드래곤들에게 감시와 관리를 맡겼고, 자신과 자신의 왕비, 그리고 둘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함께 인간들과 연을 맺었던 몇몇 드래곤들이 자신들도 이용하게 해달라고 불평했지만 그는 알파의 힘으로 그 불평들을 억눌렀다. 그가 자신의 권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른 것은 이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얌전히 돌아갔다. 현명하신 자신들의 왕이 그 누구보다 인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한 달에 한 번씩 그 통로로 나가 길게 울부짖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혼자서 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불꽃을 통과하여 사라지는 기술을 가르쳤다. 같은 종족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마주했을 때 이 기술을 사용해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라는 말은 그의 말버릇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그의 말버릇을 질려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바깥으로 통하는 작은 구멍을 지날 땐 거의 쉬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걱정하고, 안달날 거면 대체 왜 우리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는 거냐고 투정을 부릴 때마다 그는 말했다.


 “우리 종족이 아닌 생명체를 만나면 어떻게 하라고?”


 “…불꽃을 내뿜고 그 사이로 들어가 숨으라구요. 이미 수 천 번은 들었어요, 아빠.”


 아직 귀여운 한숨을 내뱉으며 말하는 자신의 아이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먼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빠가 말한 생명체에 예외가 있어.”


 “…예외가 뭐예요?”


 아이의 질문에 그가 당황스러워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왕비가 질문을 한 아이의 머리를 핥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란다, 아가야.”


 왕비에게 핥아지고 있는 아이 뒤에 있던 다른 아이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헉! 진짜요?! 그럼 제가 예외할래요!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생명체가 될래요!!”


 다른 아이의 말에 나머지 두 아이들도 서로 자신이 예외가 되겠다며 말하며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귀여웠지만 오래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투슬리스는 한 손으로 세 아이들의 머리를 살짝 누르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제지를 받고 조용해진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먼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는 쓸쓸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늠름한 드래곤들의 왕인 모습만 봐왔던 아이들은  그의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별 것 아닌 이유로 그들이 서로 싸웠을 때도 그들의 아버지의 표정은 이렇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을까. 아이들은 차분하게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생명체는 …그는 아빠의 절친이자, 가족이자, 한 몸이었지.”


 말 없이 그를 바라보던 왕비 또한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비록 그와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않았지만 그녀 또한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드래곤들을 아꼈던 그는 현재 자신의 남편이 된 알파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망설임 없이 택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알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비록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그녀의 마음 속에도 그가 들어오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너희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항상 이렇게 바깥으로 나오는 거란다. 그는 분명 우릴 만나기 위해 자신의 세계에서 이곳까지, 이 넓은 바다를 건너올 테니까.”


 “…그가 누군데요?”


 진지하게 물어보는 아이를 부드럽게 핥아주며 그가 대답했다.


 “인간이란다. 히컵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인간들의 왕.”


 “아빠는 드래곤인데 인간이랑 친해요?”


 아이의 물음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신중하게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평소에도 아이에게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고심해서 하곤 했지만 이번엔 더욱 그러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는 자신의 절친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랐다.


 “…아빠의 이름이 뭔지 알고 있니, 아가?”


 “엄…. 위대하신 알파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아이를 보며 그는 잠시 고민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음…. 아빠 친구들이 아빠를 부르는 말… 들어본 적 없니?”


 “저 알아요! 투슬리스! 아빠 친구들이 아빠를 그렇게 불렀어요.”


 유일하게 하얀 비늘을 가진 아이가 말했다. 그 아이를 상냥하게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맞아. 투슬리스. 그게 아빠의 이름이란다.”


 “좀… 이상해요.”


 솔직한 아이의 말에 왕과 왕비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웃었다.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평화로운 나날들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이 아이들이었다. 혹여나 자신의 말이 위대한 드래곤들의 왕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드려질까 두려워진 아이는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자신의 꼬리를 이용해 아이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등 뒤로 꼬리가 닿은 것은 느낀 아이는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꼬리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힘을 풀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맞아. 드래곤치곤 이상한 이름이지. 그럼에도 내가 이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 이유는….”


 먼 바다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평소보다 부드럽고 상냥한 바람이었다. 뭔가 오늘은 느낌이 좋았다.


 “아빠의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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