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햇살이 비쳐오는 창가에 검은 사내가 앉아있었다. 

검은 정장에 갈색빛 가르마탄 머리의 한쪽을 젤로발라 고정한 남자는 가게 오픈 시간부터 줄곧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결국 가게의 폐점시간까지 남자의 건너편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폐점을 알리는 종업원에 짧게 사과를 하고 남자는 가게 밖으로 나섰다. 

남자가 일어난 자리엔 작은 동화책 같은게 놓여있었다.



예전에 두 아이가 있었어. 

한 아이의 이름은 대휘고 밝고 밝고 또 밝은 아이였지.

다른 한아이의 이름은 진영이라고 어둡고 어둡고 또 어두운 아이였단다.


밝은 아이는 언제나 밝은 길만 걷고, 밝은 곳만 가고 밝은 사람만 만났지.

그러다 의문이 들었단다.

이렇게 밝은 곳만 계속되는 걸까? 다른건 없는걸까? 하고 말야.

그래서 길을 나섰지.

하지만 아이가 걷는 길은 계속 밝았단다.

밝은 사람만 있었어.


그러던중 길에 비가 왔어

아이는 비가 오고나면 뜰 무지개를 기대하며 비를 맞았단다.

하지만 비속에서 나온건 진영이라는 어두운 아이였지.


진영이는 대휘에게 물었단다

지금 어딜 가냐고

대휘는 대답을 했어

세상은 밝고 찬란하여 다른게 있는지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고.

진영이가 다시 대휘에게 물었단다.

밝은게 머냐고.

대휘는 다시 대답을 했지.

햇빛을 따사롭게 내려쬐는 태양이 밝은 것이고, 

밤하늘을 빛내는 달이 밝은 것이며

이렇게 비가오고 난 후에 하늘을 수놓은 무지개가 밝은 것이라고.

진영이는 대답을 했지

강렬하게 내려쬐는 태양은 눈을 멀게 만들고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비가 온후 무지개는 금새 사라져버린다고.


처음으로 밝은 것이 아닌 아이를 만난 대휘는 호기심을 느꼈단다.

그래서 진영이에게 손을 내밀었단다. 

같이 길을 가보지 않겠냐며.

진영이는 한참을 거절하다 대휘의 손을 마주 잡았지.


그때부터 같이 길을 걸은 두 아이는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의견을 냈단다.

시원한 바람이 불으면 대휘는 즐겼고 진영이는 피했지

귀여운 동물을 만나면 대휘는 끌어안았고 진영이는 이빨과 발톱을 겁내했단다.

대휘가 웃으면 진영이는 화냈고

대휘가 기뻐하면 진영이는 슬퍼 했단다.


같이 걷는 길이 점점 길어질수록 대휘는 진영이에게 물들어 갔단다.

마주잡은 손에서부터 팔로, 심장으로 말야.

마찬가지로 진영이도 대휘에게 물들어 갔단다.

마주잡은 손에서 시작된 밝음은 팔을 타고 심장을 밝혔단다.


그걸 처음 깨닳은건 진영이었단다.

진영이는 제몸을 가득채운 어둠이 대휘의 밝음을 태워 어둠으로 바꾸고 있는걸 알게된거지.

그래서 마주잡은 손을 놓기로 결심했지.

몰래 잡았던 손을 놓고 진영이는 사라졌단다.

제가 없어지면 대휘의 밝음을 태우는 어둠도 사라질거라고 믿었거든.


하지만, 

진영이 사라진 대휘는

더이상 밝지 않았단다.

제몸가득 있던 밝음이 다 불타 없어졌거든.



"사장님, 이거 방금 나가신 손님께서 두고 가셨는데요."

"응?"

"왜 있잖아요. 매년 이맘때면 와서 하루종일 앉아 계시는 분. 웃으면 이쁠거 같은데 시간내내 한번도 안웃고 창밖만 보고 있더라구요."

"아.. 웃으면 이쁘지. 환하게 빛나거든."

"사장님, 머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정리 대충 끝났으면 먼저 퇴근해. 내가 정리하고 들어갈게."

"아싸, 사장님. 내일뵈요."



"안녕,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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