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이 며칠 남지 않은 호그와트에는 여기저기 호박얼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해주면 호박얼굴들은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기꺼이 사탕을 내주곤 했다. 그러나 밤중에 어두운 복도에서 갑자기 주황색 빛과 함께 기괴한 얼굴이 떠오를 때면 정말로 놀라서 자지러지는 학생들도 꽤 되었다. 심지어 피브스도 거기에 재미를 붙인 듯 갑자기 호박얼굴들 사이에 섞여서 학생들을 심하게 곯려주기 시작했다. 결국 리무스를 비롯한 기숙사 반장들은 한동안 하지 않았던 저녁 순찰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할로윈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크게 깨지 않으면서 하급생들을 챙기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린 방안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너 괜찮아?”

  리무스는 창백한 얼굴로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할로윈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안 그래도 보름 전후로 몸 상태가 눈에 띄게 안 좋아지는 리무스였는데 이번 달에는 특히 심한 것 같았다. 그러나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리무스는 ‘할로윈 당일에 정말 늑대인간이 나타나면 분위기는 진짜 죽이겠는데.’ 하며 농담으로 넘겼다. 참는 것 정도야 리무스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신 돌아줄까?’ 하면서 눈을 빛내는 친구들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내보냈다가, 호박얼굴이나 피브스에게 당한 것보다 더 짓궂은 장난에 당한 피해자가 나왔을 때의 뒷수습이 더 골치 아팠다.

  “괜찮아,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는 건데 뭐. 애들도 익숙해져서 늦게 혼자는 안다니더라.”

  ‘에이,’ 하면서 뭔가를 아쉬워하는 친구들을 두고 리무스는 휴게실을 나섰다. 그리핀도르 탑을 돌아 본관까지만 갔다 오면 될 테니 뭐 별로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천천히 복도를 걷는 리무스의 옆으로 갑자기 주황색 불빛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는 놀라지 않았냐는 듯 계속 주위를 얼쩡거려서 리무스는 성의 없이 두 손을 귀 언저리까지 들어 보이며 적당히 놀란 척을 해주었다. 호박얼굴은 만족스럽다는 듯 머리 안에서 호박 필링이 들어간 초콜릿을 몇 개 꺼내서 리무스에게 주었다.

  하나는 까서 입안에 넣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넣고 리무스는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긴 창문으로 비쳐드는 달빛이 밝아 복도에도, 리무스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짙어졌다. 보름달, 늑대인간, 패트로누스. 리무스의 요즘 고민은 그거였다. 해리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기란 쉽지 않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학생들을 독려했지만, 리무스의 마음 한 켠에는 과연 자신이 그것을 쓸 수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안에는 패트로누스 마법에 의해 제압될 늑대인간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애초부터 행복한 늑대인간이라니, 역설적인 표현도 다 있지, 조소하다가 리무스는 문득 표정을 굳혔다. 이래서 보름 즈음은 부담스러웠다. 이성도 자제심도 희미해지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몸을 지배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리무스는 고개를 흔들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부터 계속 조용했던 것을 보면 더 가봐야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적당히 하고 내려가서 본관 쪽이나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며 뒤를 돈 리무스의 눈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보였다. 바로 코앞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뒷걸음질 치기는커녕 차마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리무스는 뱀 앞에 사로잡힌 쥐처럼 그 자리에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학교 내에서 만월을 맞이했다는 공포는 아직 보름까지는 날짜가 며칠 남아있다거나, 건물 안에 달이 떠 있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성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눈앞에서 달이 어른거렸다. 당장이라도 리무스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처럼 너울너울 다가오는 달은 리무스의 앞에서 점점 커졌다. 공포에 질린 리무스의 동공이 흐릿하게 풀어졌다.

  “리무스!”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소리는 리무스에게는 닿지 않았다. 리무스는 하얗게 질린 채로 덜덜 떨며 달그림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보가트의 잔영이 웃는 것처럼 흔들렸다. 리무스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고 해리는 다짜고짜 리무스를 가로막았다. 해리에게 밀려 리무스가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것을 한손으로 부축하며 해리는 보가트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해리를 인식한 둥근달이 순식간에 이지러지더니 뚜렷한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비죽비죽 흔들리다 검은 연기처럼 모여들어 훌쩍 길쭉해진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리디큘러스를 썼다간 자칫 보가트가 다시 리무스를 타깃으로 삼게 될지도 몰라서 해리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주문을 펼쳤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따뜻한 은빛의 수사슴이 어두운 복도를 신비롭게 비추었다. 보가트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유령 같은 존재이니 금세 어딘가의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으리라. 내일이라도 당장 이 구역을 샅샅이 뒤져 보가트를 잡아 가둬야겠다고 생각하며 해리는 리무스를 보았다.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던 리무스는 그제야 다리 힘이 풀리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가워진 손을 꼭 잡아주며 해리는 몇 번이고 리무스를 불러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애썼다.

  “리무스, 리무스? 괜찮아, 저건 보가트야.”
  “…….”
  “네가 본 건 보가트가 보여준 환상이야. 보가트가 뭔지 알고 있지? 대답해봐, 리무스.”

  리무스가 입안으로 뭐라고 대답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해리는 한시름 놓았다. 계속 말을 걸고 차가운 손을 주무르자 리무스의 눈에 차츰 초점이 돌아왔다. 리무스가 안정을 되찾은 것을 알고 해리는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
  “그래.”

  리무스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떨리고 있는 것을 알고 해리는 아직 덜 안정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리무스의 낯빛을 살폈다. 그러나 리무스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 보가트가 뭘로 변했는지…… 보셨나요?”
  “…… 그래.”

  리무스가 왜 그런 걸 묻는지 금세 눈치 챈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무스의 안색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저번 수업 이후로 계속 궁금해 하던 것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교수들이라고 해서 다 늑대인간을 학교에 두는 것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리무스 루핀이 늑대인간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교수 중에서도 덤블도어와 맥고나걸, 플리트윅과 병동의 폼프리 부인뿐이었다. 해리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리무스는 약하게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해리는 잡고 있던 리무스의 손에 더 힘을 주어 잡았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던 리무스가 잠시 후 주저하며 해리를 쳐다보았다.

  “왜 제가 달을 무서워하는지…… 묻지 않으세요?”
  “묻지 않을게.”
  “예?”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비밀로 할 테니까.”

  짐짓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투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리무스는 해리가 비밀로 해주겠다는 것이 보가트를 보고 무서워 한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달을 보고 무서워 한 모종의 이유를 말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리무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리무스를 마주보며 안심하라는 듯 빙긋 웃었다.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 리무스 성격상 오히려 더 불안해 할 거 같아서, 해리는 오히려 리무스가 자기의 의도를 전자로 해석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해리는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런, 하고는 리무스에게 물었다.

  “혹시 리무스, 초콜릿 있니? 내가 지금 가진 게 없어서…….”

  그거라면 아까 호박얼굴에게 받았던 것이 주머니에 있었다. 리무스가 하나 꺼내서 내밀자 해리는 달라는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먹어둬. 따뜻한 기운이 돌면 훨씬 회복에 도움이 될 거야. 이런 말은 내가 주면서 해야 하는데 좀, 그렇지?”

  멋쩍은 표정을 하는 해리를 보고 리무스는 약하게 실소했다. 초콜릿을 까서 천천히 입에 넣자 곧 입안에 단맛이 퍼졌다. 앉아있는 리무스에게 먼저 일어난 해리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리무스는 해리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왠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리무스가 금방 손을 놓자 해리가 빙긋 웃었다.

  “좀 전의 그게 교수님의 패트로누스인가요?”
  “그래. 뭔지 봤니?”

  말을 돌리려는 게 뻔히 보이는 화제 선정이었다고 리무스는 자책했지만 해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슴이요. 수사슴. 멋있네요.”

  해리가 기분 좋게 웃더니, 문득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했다.

  “사실 나는 내 아버지와 패트로누스가 같아. 그래서 패트로누스를 쓰면 아버지가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유치하지?”

  리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해리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의 패트로누스는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진짜 사슴처럼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리무스는 해리의 아버지가 누군지 새삼 궁금해짐과 동시에, 그렇게 강한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려면 얼마나 강렬한 행복한 기억이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리무스의 어깨가 조금 쳐졌다.

  “저는…….”
  “걱정하지 마. 너도 곧 멋진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어.”

  있을 거야, 하는 위로나 추측이 아니라 있어, 하는 확신을 담은 말투에 리무스는 다시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일체의 의문이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약간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친숙한 그 얼굴은 리무스에게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제임스가 저런 식으로 확고하게 나올 때면 그가 한 말은 당시에는 아무리 어이없게 들리더라도 항상 이뤄지곤 했다. 어쩐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비단 아까 먹은 초콜릿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 그리고 다른 학생들한테는 내 패트로누스가 뭔지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다.”
  “왜요?”

  정확히 말하면 제임스에게 비밀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해리는 일단 다른 학생들이라고 폭넓게 범위를 확장시켰다. 리무스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해리는 더 이상 시간의 선후가 꼬이는 불상사를 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제임스가 사슴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든가, 그래서 다른 패트로누스를 만들어낸다든가 하는 일은 꿈에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패트로누스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상상해내야 하는 거거든.”

  리무스는 순순히 납득했다. 실제로 해리는 수업시간에 시범을 보일 때도 뚜렷한 형태가 없는 패트로누스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방금 전처럼 강한 패트로누스를 보면 영향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해리도 아마 아버지의 것을 보고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새 그리핀도르 탑 입구에 도착했다. 그럼 내일 보자며 돌아서는 해리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리무스는 해리가 일부러 데려다 준 것임을 알았다. 해리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해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보가트에게 홀려 더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본관 건물까지 내려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그냥 돌아온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다시 내려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아서, 결국 리무스는 뚱뚱한 여인의 초상을 지나 휴게실로 들어갔다. 여태 노닥거리고 있었는지 친구들이 들어오는 리무스를 반겨주었다. 오늘은 정말 여러 이유로 피곤해서 리무스는 적당히 받아주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 때 제임스가 리무스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더니 얼굴을 살짝 굳히고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응?”

  제임스의 말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걱정을 담고 있었다.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어디서 눈치 챘는지 모르겠다. 하긴 제임스는 감이 좋은 편이었다. 리무스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다. 사실 보가트를 만나서 겁먹었다는 말은 5학년씩이나 돼서 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얘기였다. 그러나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얘기해야 하는 문제였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보가트를 만나고 또 해리를 만난 일련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리무스는 새삼 자기가 이상하리만큼 해리에 대해 안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 신뢰의 태반은 눈앞에서 지금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친구에게서 비롯된 것일 터였다. 단순히 닮은 것이 아니라 느낌까지 비슷하지 않았더라면 리무스는 아무리 해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도 지금처럼 덜컥 믿음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을 자신을 알고 있었다.

  “진짜 같이 갈걸 그랬네.”
  “관둬. 너희들 앞에서 그런 꼴을.”

  리무스는 생각만 해도 민망하다는 듯이 거절했지만, 제임스는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리무스가 ‘털 달린 조그만 골칫덩이’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고 노심초사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보가트가 형상화해서 보여준 것은 단순히 실체로서의 보름달이 아니라, 늑대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리무스의 온갖 불안과 공포의 총집합이었다. 다행히 해리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리무스는 악몽에 사로잡혀 안 좋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니, ‘하필이면’ 이었다. 하필 리무스를 도와준 것이 해리여서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제임스는 못내 기분이 나빴다. 해리는 자꾸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어떤 의도이든, 아니 의도가 있든 없든 그는 명백히 제임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것이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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