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날 저녁식사 시간, 아이든 헌터와 피터 퀼도 그 식탁에 참석해 자리에 앉았다.


"어이, 우돈타."

"..왜?"

"피터는 이제부터 에고에게 복수를 한데."

"???"


욘두가 겁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헌터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피터가 식판을 들고 달려왔다.


"좋아, 꼬맹이. 네 다짐을 우돈타한테 말해줘."

"난 에고한테 복수할 거야."

"????"


다른 라바저스들이 어이가 출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난 여기 있을거야. 날 도둑으로 쓴다면서?"

"..그랬지."

"그럼 나 여기서 도둑질 할테니까, 나한테 복수하는 법 알려줘."

"????"


욘두는 진짜 더럽게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크래글린이 주스를 쏟았다. 뭔 소리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거야!!


욘두가 그대로 눈만 굴려 아이든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평범하게 살긴 글렀어. 그럴 바엔 그냥 여기에 손 담그고 힘 길러서 맞서 싸우는게 낫지."

"..그렇긴 하지?"

"그리고 네가 여기 두자고 했다며. 그니까 얘 데리고 살면서 여러가지 가르쳐 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둑질 하는 법이랑, 입 터는 법이랑, 목숨 보전하는 법이랑, 총 쏘는 법, 싸움질 하는 법 뭐 그런 거. 어?"

"...."


욘두와 다른 라바저스들은 할 말을 잃었다.


"피터가 여기 있는 동안 최소한 허튼 짓은 안했잖아. 응?"

"..그래."


아이든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라바저스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얘가 여기서 지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그렇, 겠지."


욘두가 요상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다 물었다.


"근데 애송아,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하는 법은 쟤가 더 잘 알것 같은데."


욘두가 아이든을 가르키며 말했다. 아이든 헌터는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이 왜 안나오나 했다.


"사정이 있어. 지금 이야기 하기엔 기니까 밥 먹고 말하지."

"..그래."

"그리고 네 화살."

"!!!"


힘없이 수긍하는 욘두에게, 아이든 헌터가 야카화살을 돌려주었다.


"그거 가지고 허튼 짓 하기만 해봐. 바로 두동강이야."

"아, 알았다고!"

"화살 말고! 네 몸뚱이!"

"아니 미친, 알았다니까?"


소중하게 화살을 돌려받으며, 욘두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삼자대면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 옆에는 다른 라바저스 멤버들도 있었다.


"설명하자면, 난 다른 세계에서 왔어. 다른 우주에서 온거지. 다중 우주 이론이나 평행세계이론 알아?"


아이든 헌터가 경청하는 이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평소엔 내가 살던 세계에서 지내다가, 어쩌다 한번씩 이 세계로 오게 되는 건데.. 여기에 '링크' 라는 게 있어. 

난 주기적으로 이 세계의 누군가에게 링크되고 지금 링크되어 있는 사람은 피터 퀼, 얘인데 그럼 이 세계에 떨어질 때 무조건 얘 근처에서 떨어지는 거다."


"그 후로 약 2~3주 정도 이 세계에서 머물다가 다시 내 세계로 돌아가지. 이게 바로 내가 이 우주선에 침입한 방식이다. 이해했어?"


아이든 헌터가 조금 험악하게 물었다. 욘두는 골을 짚었다.


"그래서 그렇게 침입할 수 있었던 거군."


끄덕, 아이든 헌터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자신의 허리가방에 손을 올리며, 아이든 헌터가 말했다.


"뭐길래?"


욘두 우돈타가 그 붉은 눈에 의아함을 담고 묻는다. 지익- 허리가방에서 지퍼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든 헌터는 그 가방을 열고, 속에서 진주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그건."


라바저스, 도적단의 눈이 커졌다.


"진주 목걸이, 아스가르드의 공주님께서 내게 하사하신 물건이지."


피터의 눈 역시 커졌다. 그걸 왜? 하지만 아이든 헌터는 남의 시선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감정할 수 있겠어?"

"..가능하지."


욘두가 제 동료 중 하나에게 손을 까닥하며 물었다. 안경을 끼고, 조금 살집이 있는 외계인이 허겁지겁 달려와 돋보기를 들었다.


"그거, 얼마야?"

"...자세히 감정해봐야 알겠지만, 대장? 이거 한 5000년 전 양식이에요.. 그 왜, 위그드라실 소속 아홉세계 중 하나에서 온 것 같은데.."

"!!!"


욘두의 눈이 커졌다. 안경을 낀 외계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진주 하나만 팔아도 평생 먹고 살거라고요.."

"...."


도적들의 눈이 탐욕으로 빛난다. 하지만 감히 건드릴 순 없다. 그 목걸이는 아이든 헌터의 것이니.


"그거 흥미롭네. 이제 내놔."


반짝반짝, 진주가 조명을 받아 빛난다.





*


"욘두, 그거 저희가 뺏으면 안되나요?"

"자고 있을 때 기습한다면 가능할지도.."

"그거 하나만 있으면 진짜로, 우주선 기름값 걱정은 안해도 되는데!"

"...."


부하들의 독촉에, 욘두 우돈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늦은 밤이었고, 아이든 헌터는 피터 퀼과 함께 잠자리에 든 이후였다. 

아까 아이든이 보여준 진주목걸이는 확실히 굉장히 귀한 것이었다. 각 진주마다 음각의 조각이 새겨진 아름다운 유물. 그걸 저 지구인이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는 불명이었지만 저거 하나만 있으면 아마 그들 전부가 라바저스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삶을 살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욘두. 저 애는 이미 저희를 공격했었어요. 치료비라 치고 받아오죠?"

"...."


욘두 우돈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뿐이다. 챠르르-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둥글고 음각이 새겨진 구슬의 감촉이 손가락이 생생했다.


"..."


욘두 우돈타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

"너희들이 그렇게 보고싶어 하는 목걸이 여기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아까 아이든 헌터가 감정을 시켰던 진주목걸이였다.


"오 세상에! 이미 훔친 거군요!"

"대단하구만요, 대장!"

"저 한번만 만져봐도 됩니까?"


라바저스 우주선의 회의실이 금새 시끌벅적 해졌다. 흥분한 라바저스들이 목걸이에 손을 뻗었다.

하아, 욘두 우돈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주먹을 들었다.


"그만!!"


쾅!! 책상을 치는 소리가 회의실 안을 울렸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가운데 욘두가 말했다.


"그거, 그 지구인이 준거다. 나한테."

"..네?"


크래글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걔가 왜 이걸 댁한테 줘요? 의아한 물음에, 욘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피터 퀼이 잠들고 얼마 뒤, 아이든 헌터가 욘두 우돈타에게 찾아왔다.


"어이, 우돈타."

"..뭐야? 무슨 일이야?"

"너는 도적집단이지만 의뢰도 받지?"

"그래, 그런데 왜?"


안경을 쓰고, 자신의 몸보다 한사이즈 큰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욘두는 의아하게 물었다. 저 짧은 머리카락의 지구인은 결코 얕봐서는 안되었다. 단신으로 아무리 비무장이라지만 이 우주선의 모든 라바저스들을 쓰러뜨리고, 욘두 자신의 센서까지 부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지금, 굉장히 삐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욘두는 조금 긴장했다. 아까도 피터 퀼에게 복수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만, 왜 또 온거야.


아이는 기본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주의지만, 솔직히 이 소녀는 좀 예외가 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어른보다 훨씬 강하고 야카 화살을 맨손으로 잡는데 무슨 보호가 필요하단 말인가? 욘두 자신이 보호받으면 몰라도.


갑작스레 아이든 헌터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욘두 우돈타는 재빨리 휘파람을 불 준비를 했다. 이미 한번 발렸지만 도전이라도 해봐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그건?"

"자."


챠르르-

그러나 소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예상했던 잭 나이프나 폭탄이 아니라, 아까 전 소녀가 감정했던 진주 목걸이였다.


"너네한테 의뢰를 할까 하는데."

"-그게 뭐지."


책상에 올라온 목걸이의 진주가 알알이 빛나며 조명을 반사했다. 섬세하게 세겨진 음각의 문양이 불규칙하게 반사하는 빛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차고 넘치지? 그거면."


아이든 헌터가 확신하며 말했다. 그 빛에 홀려, 욘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든 헌터의 눈동자가 깊다.


"그걸 줄테니까.. 피터 퀼을 버리지 마."

"..그 애송이를?"

"그래. 알아듣겠지? 단순히 쫓아내지 말란 뜻이 아니야."


아이든의 얼굴이 딱딱했다. 복잡한 감정이 차분한 얼굴 아래 고요하다. 헌터는 입을 열었다.


"그 애한테 가르쳐줘. 애정을 주고 키우고, 배움을 줘. 피터 퀼이 정상적인 도덕관념을 가지고,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돌봐줘. 전투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아픔을 털어내고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알려줘."


아이든 헌터가 속을 토했다. 절절히 들어있는 진심에 욘두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애한테, 져도 된다고 해주고, 실수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있다고 확신하게 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챙겨먹고 잘때 이불을 덮고 자는 습관이 들게 해줘. 작은 상처라고 호들갑 떠는 법을 알려주고, 총을 장전했을 때 겨누는 곳이 심장이 아닌 다리나 발이 되게 해줘. 그 애가 복수심에 삼켜지지 않게 해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게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


"그 애한테 사랑을 줘, 믿음과 우정도 줘. 이곳이 집이 되게 해줘. 혼자 우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 곁에서 위로받게 해주고, 의심없는 애정을 줘. 아플 때 약을 먹고 간호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 나쁜 짓을 하면 혼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동시에 용서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 너무 많은 책임을 지게 하거나 너무 과다한 부담을 주지 말아줘."


"그 애가 지금처럼 망설임 없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 언젠가, 복수 따위는 잊어도 될 정도로 행복해 질 수 있도록..."


그것은 고해였으며, 고백이자, 고발이었다. 아이든 헌터 스스로에게 말하는 진정 어린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말하는 모든 순간이 담담하며 태연하며 동시에 차분한 어조였으나 그 속에 거대한 감정의 쓰나미가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헌터의 눈동자의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진심이었으며, 이것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였다. 

헌터는, 부락의 리더이자, 다른 세계에서 온 전사이자, 동시에 모든 아이들에게 관대하라는 규칙을 만든 소녀는 제 앞에 있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부탁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애를 다른 멀쩡한 집에 입양보내도록 해. 그 애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 유년기를 보내면서 복수에 칼을 갈 바에야 차라리 그게 나을 테지."


"나는 메레디스 퀼의 지인이며, 동시에 피터 퀼의 보호자나 다름없어. 만약 네가 그 애에게 어떠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와 폭력을 행사한다면."


챠르륵, 진주목걸이가 욘두에 목에 걸렸다. 아이든 헌터는 목걸이를 X자로 꼬아 잡아당겼다. 알알이 굵은 목걸이가 욘두 우돈타의 목을 가볍게 조른다. 흉폭한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아이든 헌터가 경고했다.


"난 너를 죽일거야."


너 뿐만 아니라, 저 애의 학대를 방관한 모든 놈들을.

그것은 경고, 그것은 선언, 그것은 계고, 그것은 주의, 그리고 동시에 선포. 분명 강하지 않은 힘인데 욘두 우돈타는 죽음과 마주한 듯 했다.


챠르륵-

욘두의 목에 걸려 그를 목조르던 진주 목걸이가 챠르르 풀렸다. 


"뭐, 널 믿으니까 그 목걸이를 주는 거야. 이상한 놈은 아닌 것 같으니까. 유튜브에서도 너한테 좋은 설명만 했었고."


"내가 말한 건 기본적인 거야. 알았냐?"


다시 태연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든이 욘두에게 경고했다.


"알았냐고."

"-그래. 알았어, 알아먹었어."

"...."


아이든이 눈썹을 한 번 까닥하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난 간다."










그리고 욘두 우돈타의 간략한 설명이 끝났을 때, 회의실에는 형용하기 힘든 종류의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좋은 애네요. 살인예고를 하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돼?"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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