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넷, 민혁이는 후회공?!(2)

 

 

“헤헤. 맛있다.”

“그렇게 맛있어? 천천히 먹어.”

 

아늑한 카페 안에 요새 유행하는 가요가 흘러나왔다. 바람이 쌩쌩 부는 밖과는 달리 따스하고 포근한 카페 한구석에서, 서하는 도경과 마주 앉아 티라미수를 먹고 있었다.

서하는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티라미수를 한 조각 잘라 입에 쏙 넣었다. 케이크 위에 얹어진 코코아가루가 서하의 입가에 묻었다.

도경은 티슈를 꺼내, 서하의 입가를 닦아 주며 웃었다.

 

“여기, 묻었다.”

“으응. 도경이도 어서 먹어.”

 

입을 닦는 건데, 서하는 눈을 꾹 감았다. 그 얼굴이 너무도 귀여워서, 도경은 서하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 귀여운 눈 곁에 입술을 대었다. 도경의 촉촉한 입술이 살짝 닿자, 서하는 눈을 번쩍 떴다.

도경의 그윽한 눈빛과 서하의 맑은 눈망울이 마주친 순간, 서하는 도경의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그러곤, 순진무구한 얼굴로 헤헤 웃었다.

 

“헤헤.”

“뭐야, 이서하. 그렇게 아무 때나 뽀뽀하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

 

호로록, 소리를 내면서 서하는 커피를 죽 들이켰다. 도경은 서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두 사람의 저녁 시간이었다.

그들의 테이블 곁에 앉은 검은색 중절모를 눌러 쓴 남자가 서하와 도경을 흘끔거리고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

 

민혁은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신문을 펼쳐 들고 얼굴을 가렸다. 중요한 기사를 읽는 척하면서 옆 테이블에 앉은 남정네 둘을 주시했다.

도경과 서하가 하하호호 웃을 때마다 왜인지 가슴이 아팠다.

 

네가 뭘 잘했다고, 성민혁.

서하를 힘들게 하고, 서하에게 상처만 줬으면서 이제 와서 뭘 잘했다고 그러는 건데.

너한텐 서하를 볼 자격조차 없는 거라고.

 

마음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천사와 악마가 투덕거리며 싸우는 것처럼, 이번에는 또 다른 무의식의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아니, 그런데 저 자식이 먼저……!

황도 복숭아인지, 황도경인지 뭔지. 저 자식이 방금 서하한테 뽀뽀하는 거 못 봤어?!

저, 저. 서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참을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투고 있는데, 옆에서 도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연휴 때, 여행 가는 거 어때? 우리, 사귀고 나서 너무 바빠서 여행 한 번 못 갔으니까.”

 

도경이 말하자, 서하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좋아! 여행 좋아! 이왕이면 산이나 바다로! 우주로!”

“어떻게 우주로 여행을 가. 이서하, 너 요즘 SF소설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야?”

“재밌으니까. 도경이도 읽어 볼래?”

“네가 재밌다면 뭐, 읽어 볼게. 어떤 소설인데?”

“그게 말이지……”

 

여행을 간다고?

민혁의 머릿속에 ‘여행’이라는 글자가 등장했다. 자리를 차지하고서 자기 모습을 뽐내듯이, ‘여행’이 점점 비대해졌다. 이스트를 넣은 빵이 점점 부풀 듯이,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서서히.


“아니면, 여행 말고 놀이공원 같은 건 어때?”

“놀이공원도 좋아! 그치만, 여행도 가고 싶어.”

 

서하가 말하자, 도경이 웃었다.

 

“그럼, 서울 근교로 가자. 유원지 근처에 호텔을 잡으면, 호캉스도 즐기고, 놀이공원에서 뛰어놀 수도 있겠지.”

 

도경은 말을 마치고 커피를 마셨다.

민혁은 핸드폰을 눌러,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 비서. 서울 근교 여행지 찾아봐.」

 

짧게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민혁 도련님. 이제 다른 것에 시간 뺏기지 마시고, 승진하는 데 집중하시는 게 어떨까요?」

 

깔깔거리는 사람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점원의 소리. 웅성이는 소리들, 남자 가수가 부르는 애절한 노랫소리.

민혁은 무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찾으라면 찾아. 

내가 네 상사인 거, 잊었어?」

 

무표정으로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민혁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핸드폰에 눈을 고정하고서, 또 한 손으로는 종이 신문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같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민혁은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다가, 손이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앗, 뜨뜨.”

 

다행히, 재빠르게 피해서 손은 건사했지만, 커피잔이 바닥으로 데굴데굴 떨어져, 바닥에 뜨거운 커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민혁이 커피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봤는지, 그 곁을 지나가던 점원 한 명이 화들짝 놀라며 민혁에게 다가왔다.

 

“손님. 괜찮으세요? 다치진 않으셨나요?”

“아, 네.”

 

성격 좋아 보이는 남자 점원은 민혁에게 물티슈를 건넸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근처에 앉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민혁은 허겁지겁 신문으로 얼굴을 가렸다.

옆에서, 서하와 도경도 슬쩍 민혁 쪽을 쳐다봤다.

 

아, 이러다 들키겠는데.

 

조마조마했다. 이대로 들킨다면 큰일이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던 점원이 민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손님. 많이 놀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점원이 민혁을 보자, 민혁은 소곤소곤 말했다.

 

“그쪽이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흘린 건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황도 복숭아랑 귀여운 서하가 이쪽을 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러다 들킨다. 들킨다.

민혁은 눈치를 살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점원은 민혁의 말을 잘 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편안한 카페. 상냥한 점원. 무르익은 따스한 분위기.

하지만, 민혁은 점원에게 대답도 없이 가방과 핸드폰과 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에 허겁지겁 카페를 나섰다.

 

나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지?

대기업 이사 아들, 성민혁인데.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인기 많던 남잔데, 왜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컴컴한 하늘 위로, 차가운 한숨을 뱉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더니 메시지가 떴다.

 

「도련님. 일단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행 일정은 1박 2일입니까?」

 

...

 

늦은 밤. 평소 같았으면 클럽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화끈한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을 시간. 민혁은 홀로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넓은 창으로 내다보이고, 넓은 거실에는 중후한 재즈 음악이 흘렀다.

 

“좋아, 좋아. 이렇게만 하면 다 해결될 거야.”

 

몇 분 전, 비서가 보내준 <서울 근교 여행지와 호텔 리스트>를 훑어보던 민혁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담긴 편지와 초호화 호텔 이용권을 받으면, 분명 서하도 민혁을 용서해주리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하에게 저질렀던 일이 떠올라서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순진한 애를 그렇게 몰아세웠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욕까지 퍼부었으면서.

 

민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하가 민혁을 용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비서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민혁은 스피커폰을 눌렀다.

 

“뭔데, 이 시간에.”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으나 통화 속 상대는 별 타격도 없는 듯했다.

 

「도련님, 김 비서입니다. 설마, 이서하 대리님께 직접 사과하러 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말투와 달리,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민혁은 곧장 대답했다.

 

“직접 사과해야지. 편지도 건네고, 스위트룸 티켓도 줄 거야.”

「그건 그것대로 서하 대리님께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데도요.」

 

비서가 대답하자, 민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내가 판단해.”

「판단하는 것은 도련님이 아닌, 서하 대리님이 되어야지요. 게다가, 도련님께서는 자기 감정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편지에 뭐라고 쓰셨습니까? 서하 대리님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를 쓰셨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도련님은, 도련님의 욕구만 충족하려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민혁은 벌컥 화를 내면서 소파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을 던져 버린들, 비서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역정을 낸들, 과거를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서의 말이 맞았다. 편지에 진심 어린 사과 같은 건 담겨있지 않았다. 상대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민혁의 편지는 그저, 민혁의 욕구로만 점철된 종잇조각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차분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민혁은 천천히 숨을 내쉬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알겠어. 미안. 편지 다시 쓸게.”

 

그렇게 답하자, 핸드폰 속에서 후후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민혁은 말을 이었다.

 

“편지도 다시 쓰고, 진심을 담아서, 사과할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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