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민의 날선 눈빛에 겁을 먹은 둘은 각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인주가 놓이자마자 허겁지겁 지장부터 찍었다. 긴장한 눈빛으로 나재민을 쳐다봤고 지장이 찍힌 두 장의 각서를 손에 든 나재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둘을 쳐다봤다.





“각서에 지장까지 찍었으니까 이제 잘 아시겠죠?”


“......”


“지금 이 문 밖을 나가는 이후로 두 분은 이제 여주씨를 볼 수도 없고 모든 관계가 끊긴 거예요.”


“...이제 우리 가도 되는 거지?”


“만약 이래놓고 여주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거나, 저 몰래 뒤에서 여주에게 손을 뻗다 걸리면...”





나재민은 입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은 처음 봤을 때는 사람이 편안해지는 웃음이었지만 지금은 소름이 돋다 못해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재민은 시선을 김석기 쪽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이제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거야.”


“......”


“알아들었지?”


“......”


“알아들었으면 대답.”


“ㅇ,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가게 해줘!”





이들이 여주를 안 찾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 미련한 짓을 안 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까. 그래. 그렇게 미련한 놈은 아니겠지. 옆에 있는 여주의 엄마를 슬쩍 훑어보고서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래요. 이제 제 볼일은 끝났어요. 나가시면 밖에서 직원들이 있을 테니 출입구까지 안내 받고 가시면 돼요.”





만나서 반가웠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집까지 조심히 가시고요. 생글생글 웃으며 나재민은 끝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여주의 가족들을 배웅하고 현장에서 복귀한 팀원들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팀원들은 나재민이 보이자마자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질문을 건넸다.





“어떻게 됐어? 말 잘 통했어?”


“장비부터 정리하고 물어봐. 누가 보면 동혁이 네가 나 쏘려는 줄 알겠어.”


“아아, 알았어. 기다려. 금방 정리할게.”





마저 장비를 정리하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바람에 씻고 오겠다는 이동혁을 나재민이 말렸다. 그 행동에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자,





“따로 할 일이 생겼어.”


“할일? 그게 뭔데?”


“동혁이 너는 누구 좀 줘패고 오고.”


“오, 누구? 누구 줘패고 오면 돼? 얼마나?”


“잠깐, 잠깐만. 재민아. 그게 무슨,”


“시말서 걱정은 하지마. 이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아니. 그것도 그건데... 뭐 때문에 그런 건지는 알려줘야지.”





걱정이 한가득인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황인준을 보니, 얼른 얘기를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손에 들렸던 클레어 파일에서 각서 두 장을 꺼내 팀원들에게 보여줬다. 일단 여주씨 가족들을 만나서 다시는 연락도, 보러오지도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왔어. 나재민 손에 들린 각서를 보며 이제노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순순히 거기에 지장을 찍어?”


“......”


“아아, 오케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재민의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이제노가 중얼거렸고, 나재민은 뒤이어 그들에게 알아내 온 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재민 입에서 나온 말에,





팀원들은 오묘한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맞추고 뭘 해야 할지 예측했다.











우당탕탕, 이제 그만 가도 된다는 나재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큰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놀란 김석기는 의자를 한번 쳐다봤다가 나재민 눈치를 봤다.





“아, 맞아. 가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재민은 여주의 엄마를 먼저 내보냈다. 면회실을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김석기는 좀 전에 빨리 나가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생긴 실수에 나재민의 심기가 거슬렸으면 어떡하지.





아까 나재민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받고 크게 두려움을 느낀 김석기는 허세고 뭐고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는 게 먼저였다.





“여주씨가 센터에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는...”


“말해줄 수 없다, 비밀이다. 이런 대답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





나재민은 고개를 돌려 면회실 안의 시계를 확인했다. 또 얼마나 시간을 끌까,





“침묵해서 되는 일이 아닐 텐데.”


“......”


“네가 말 안 해준다고 내가 못 알아내겠어?”





김석기가 끝까지 저렇게 고집 피운다고 해서 못 알아낼 일이 아니었다. 나재민이 가지고 있는 이능 중 하나, 그것만 이용하면 이런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재민은 그 이능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임무를 할 때도 꼭 필요할 상황에만 썼다.





평소 남의 마음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그 이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대하는 것도 싫었다. 분명히 상대방하고 대화할 때는 눈을 맞추고 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다 눈을 피하기 바빴으니까.





너랑 눈 마주치면 내 생각이 읽히는 거잖아. 그게 불편하고... 좀 무서워.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이유를 들은 이후로 마인드리더 이능부터 조절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나재민 본인도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상대방의 생각 때문에 어지럽고 불편했으니까. 그래서 누구를 심문할 때도 제일 마지막에 쓰는 게 그 이능이었다.





하지만 김석기하고는 더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침묵을 유지한다면 바로 이능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네.”





다시 한 번 내부 안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러다 진짜 제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킨 김석기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누구인지 말하면 자신을 죽여 버린다 했는데 이러나저러나 다 죽는 결과 밖에 안 나온다면...





“그, 그게 누구냐면...”





단 5분이라도 살아있는 게 먼저였다.











퍼억─ 타격음 소리가 훈련실 안에 크게 울렸다. 훈련실 안에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동혁과 그리고 망신창이로 엎드려서 그 멸시를 받고 있는 사람.





“크윽... 갑, 자기... 왜 이러는 건데...”


“성철아. 입이 아프다. 입이 아파.”





몇 번을 다시 말해줘야 하니 내가. 뒷목을 주무르며 지겹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랬냐고. 어? 왜 그 쓰레기한테 연락을 해서 그 새끼가 여주를 찾게 만들었냐고. 말을 하면서 기분이 확 나빠진 이동혁이 낮게 욕을 읊조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나재민에게 여주가 센터에 있다는 정보를 전한 사람이 한성철이라는 말이 들었을 때. 아, 어떻게 조지지? 그 생각부터 떠올랐다.





‘동혁아. 네가 할 일이 그거야.’


‘......어?’


‘방금 네가 생각한 거.’


‘......’





그대로 하고와.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이동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었다.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성철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한성철과 여주랑 연관이 있던가? 전혀 없었다. 그니까 왜 그런 거냐고. 불법 연구소에서 같이 구출되고 센터로 들어오게 된 이후로 이동혁에게는 계속 좋은 일만 일어났다. 그래서 여주에게도 좋은 일만, 좋은 것만 받게 해주고 싶었다.





근데 왜, 여주에게는 왜 계속 이런 일들만 일어나지. 왜 여주를 못 건드려서 안달이지? 나 때문인가? 다 내 욕심 때문인가? 여주에게 받은 게 많아서 그만큼 더 옆에서 챙겨주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뿐이었는데.





“나는, 진짜... 진짜 아무것도 몰라. 나는 연락한 적이 없단 말이야...”


“어어, 그래─ 성철아. 계속 모른다고 해.”





분노가 끓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이동혁은 아직도 앓는 소리를 내며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대답하는 한성철을 발로 걷어찼다. 허억, 커억... 그만, 제발... 그만. 한성철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침과 피가 섞여 나왔고 온 몸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그 모습에도 이동혁은 눈 하나 깜짝 안했다. 오히려 자신이 봐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적당히 선은 지켜서 만나고 와.’


‘그 선이 어디까지인데?’


‘음...’





이래나저래나, 숨이 붙어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우리는 다른 놈들하고 수준이 조금 다르잖아? 눈을 접어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나재민을 보며 황인준은 옆에서 경악의 눈초리를 보냈다.





‘동혁아! 제발!’





나재민이 말하는 ‘적당한’ 기준이 아닌 일반적인 ‘적당한’ 기준을 생각해! 알겠지? 동혁아! 알겠냐고! 한성철을 찾으러가는 이동혁 뒤로 황인준이 절박하게 외쳤다. 그럼에도 황인준이 말한 ‘적당한’ 기준은 벗어나버렸지만.





“근데 성철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네 대답과 다르게 그 새끼는 너한테 연락을 받았다고 하잖아.”


“끄윽...”


“응? 서로 말이 다르면 어떡해. 일을 벌일 거면 입이라도 맞췄어야지.”


“걔랑, 허윽, 연락을 안 한지 엄청 오래 됐단 말이, 야...”





이동혁은 한성철의 가슴팍에 발을 올린 채로 힘을 줬고, 눌리는 압박감에 콜록대며 피를 토해내던 한성철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눈이 커지더니 그대로 손을 올려 이동혁의 발을 잡았다.





“씨발. 성철아. 어디에 손을 대.”


“생각, 생각났어... 커헉...”


“드디어 생각이 났어?”





그 말에 이동혁이 가슴팍에 올려뒀던 발을 치웠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한성철은 죄를 고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이동혁을 올려다봤다.





“아진이.”


“뭐?”


“아진이가... 저번에 아진이가 물어봤었어.”


“아진이? 걔가 누군데?”





이동혁은 정말로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한성철에게 채아진의 대해 얘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떠올랐다. 내가 굳이 그 가이드를 알고 있어야 하나? 이동혁에게 채아진은 그저 성격 더러운 가이드였다.





“그래. 그러니까 너는 최아진이 연락했다는 말이지?”


“......”





한성철은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다. 최아진이 아닌 채아진이라고 정정해 주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이동혁의 질문에 맞다고 대답하면 앞으로 채아진을 보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날 얘기한 것 말고는 김석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좀 전에 말했듯 김석기와 연락을 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연락해서 동생 행방을 얘기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럴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가이드 앞에서 허세 좀 부려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성철의 변명을 듣던 이동혁은 그만 말하라는 듯이 손을 펴서 휘저었다. 내가 네 변명까지 들어줘야 돼? 어쨌든 나한테 걔 이름 말한 거 보면 넌 이미 걔가 한거라고 단정 지은거야. 표정을 찌푸리며 얘기하더니 이제 한성철하고 볼 일은 끝났다는 듯이 훈련실을 나가려는 듯 뒤를 돌았다가,





“아, 맞아. 성철아.”


“어, 어?”





다시 뚜벅뚜벅 걸어와서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한성철 앞에 발을 내밀었다. 이동혁의 행동을 이해 못한 한성철이 어리둥절 쳐다보자,







“너 때문에 피 묻었잖아.”


“......”


“닦아.”











이동혁은 이 뒤로 한성철에게서 들은 얘기를 바로 나재민에게 전달했다. 호출기로 이동혁이 가져온 정보를 들은 나재민은 알겠다며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노야. 너는 여주씨 데리고 팀하우스로 가있어.”


“응. 알았어.”


“그리고 인준이 너는 나랑 같이 가자.”


“어딜 가는데?”





황인준이 눈을 깜빡이며 묻자, 음... 하고 어떻게 대답할까 짧게 고민하더니





“여주씨를 지키러?”


“그건 또 뭔 소리야...”





아까부터 좀 알아듣게 얘기해줘야지. 어이없다는 듯이 얘기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재민 뒤를 따라나섰다. 둘은 곧바로 채아진을 찾아갔다. 채아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채 여느 때와 같이 자기를 떠받들여주는 센티넬들과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당찬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걸어가자, 채아진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은은하게 맴도는 살기와 다르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재민과 무관심한 표정으로 있는 황인준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 이렇게 두고 가도 되는 건가? 주변에 있던 센티넬들은 둘의 등장에 당황한 듯 서로 시선을 나누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재밌는 일을 벌려놨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얘기하면 열에 아홉은 다 알아듣던데 너는 머리가 나빠서 못 알아 듣나봐?”


“뭐라고요?”


“멍청한 건 답이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지.”





저번에는 끝까지 예의를 차려주던 나재민이 이제는 말끝을 잘랐다. 짧아진 말투와 알 수 없는 말에 채아진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를 하냐며 대답했다.





“내가 그때 친절히 얘기해줬잖아. 온갖 수를 다 써도 우리 팀은 못 들어온다고.”


“......”


“그 말이 다 해보란 뜻은 아니었는데.”





비웃음을 섞으며 하는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남자가 발끈했는지 몸을 들썩였고, 다행히 옆에 눈치 있는 다른 남자가 그를 막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지금 하시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죠?”


“우리 여주 상처주고 혼란스러운 사이에 네 자리가 생길 것 같아?”


“......”


“그렇게 들어온다 쳐도 우리한테 네 존재가 의미가 있을까?”


“증거 있어요? 제가 여주한테 무슨 짓을 했다는 증거 있냐고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채아진은 슬쩍 시선을 돌려 같이 있던 센티넬들을 쳐다봤다. 아무나 나서봐. 나서서 이 자리에서 나 좀 데리고 도망가라고. 하지만 나재민과 황인준의 기세에 눌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더 짜증이 솟구쳤다.







“이번엔 좀 더 친절하게 정확히 말해줄게. 네가 어찌저찌 운이 좋아서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된다고 해도,”


“......”


“네가 있을 자리는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 용쓰고 포기해.”


“......”


“저번에도 말했잖아.”





우리는 여주 말고 다 필요 없다고. 채아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상하다 못해 짓밟혀버렸다. 저는 아무 짓도, 안했다고요. 끝까지 모르쇠 하며 억울하다는 채아진을 보며 허─ 나재민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재민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인준은 이제 슬슬 말릴 때가 된 것 같았다. 나재민이 여기서 더 화나게 해서는 안됐다.





“우리가 여주씨 생각해서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예요.”


“......”


“지금처럼 센터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거라면 잘 생각하고 행동해요.”


“...저 협박하시는 거에예요 지금? 저는 억울하다고요!”


“아뇨. 이건 협박이 아니죠.”


“......”







“경고죠. 저희가 하는 마지막 경고.”











연구실에서 조 쌤 옆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 조 쌤 손님인가보다. 네. 들어오세요. 조 쌤이 대답을 하니 문이 열렸고 보이는 사람은 이제노였다.





“어, 제노씨! 임무는 다 끝내고 온 거에요?”


“네. 센터 복귀 한지는 좀 됐는데 이것저것 할일이 남아있어서요.”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요 여주씨. 조만간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요. 조 쌤은 얼른 가보라길래 정리 하고 있던 거는 마무리 하고 나왔다. 오늘 나갔던 현장에 대해 들으며 이제노랑 팀하우스까지 걸어가다가





“제노씨.”


“왜요 여주씨?”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막상 부르고 눈을 마주치니 하려던 말을 망설이게 됐다. 아, 이런 거 그냥 물어보는 건 이상한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노가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아니, 그냥... 세아가 저한테 물어본 게 있거든요.”


“세아?... 아, 여주씨 친구?”


“네. 궁금해서 물어본 거 같은데 저도 잘 모르겠어가지고.”


“어어, 뭐길래 그래요?”


“왜 아직도 팀원들하고 존댓말 하냐고, 좀 사이가 멀어 보인다고...”





우뚝, 그 말에 이제노가 걸음을 멈췄다. 어, 그럼 여주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물었다. 원래 이렇게 물어보고 하는 게 맞나? 자연스럽게 놨어야 했나. 약간 민망함을 느껴 바로 말을 못 하니 이제노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제 말 편하게 할까요?”


“어, 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지금까지 여주 네가 존댓말 해서 같이 한 거였거든.”


“아, 그리고 또... 제가 오빠라고 하면 좀 불편할까요?”







“헐. 아니? 너무 좋은데?”





사실 ‘오빠’라는 단어가 내 입에 안 붙어서 계속 존댓말한 건 맞지만 저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지. 그러다 갑자기 이제노가 뭔가 생각났는지 씩 웃더니 내게 가까이 와보라는 듯이 손짓을 하길래 가까이 다가가니 소곤소곤 귓속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어차피 우리 둘만 있는데 왜 귓속말을 해?”


“몰라. 나도 모르게 귓속말 했네. 어쨌든 팀하우스 가면 그렇게 해봐. 알겠지?”


“어어... 다들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은데.”


“맞아. 그거 보려고 한 말이야.”





아, 너무 재밌겠다. 우리 얼른 가자! 잔뜩 신이 난 이제노를 보니 괜스레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얼른 가자. 아, 맞다. 오빠 가는 동안 가이딩 해줄게. 손 줘. 이제노의 손을 잡아 가이딩을 하며 아까보다는 빠른 걸음으로 팀하우스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노가 귓속말로 내게 한 말은 팀원들이 돌아오면 그 앞에서 제게만 말을 편하게 해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예상했듯이,







“여주씨. 이게 무슨 일이죠? 왜 갑자기 제노한테만...”







“제노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말 좀 해볼래?”







“뭐야! 뭐냐고! 왜 이제노만 오빠인데!”





팀원들의 반응에 내가 슬그머니 이제노를 올려다봤다. 오빠 이제 어떻게 해? 나 벌써 감당 못 할 것 같은데. 이제노에게 속삭이느라 가까워진 우리 둘의 모습에 팀원들의 반응이 좀 더 쎄졌고, 이제노는 상황을 정리하기는 커녕 웃느라 바빴다.





난 모르겠다. 하라는 대로 했잖아. 이제 오빠가 마무리 해. 다시 한 번 이제노에게 속삭이고 자리를 피해 방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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