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니까요!!  누나는 뭘 모르네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종이 위에 난센스 퀴즈를 내고 대뜸 풀어보라던 아이는 그녀에게 면박을 준다.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 같은 이 자연스러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윤서는 아이의 면박에 웃음 짓는 입매를 느끼다가 어설프게 밖으로 삐져나오는 제 마음을 본다. 뭐지...?


-어!  나왔어요. 이 집 떡볶이랑 김밥이랑 비빔 냉면이 정말 끝내주거든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몰라 하하하.


맛있는 거 사달라며 윤서를 잡아끌고 온 아이는 불쑥 길가의 분식집으로 들어섰다.  작은 테이블과 작은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분식집.


-어서 먹어봐요!  진짜 맛있다니까!


아이는 포크를 들어 떡볶이 하나를 찍어 들고 윤서 입가로 집어나른다. 


-알았어. 내가 먹을게. 이리줘 .


-아니 아니. 아~~하세요.  이게  또  남자가 먹여주면 맛이 끝내 주거든요 하! 하!


기어이 떡볶이 하나를 받아먹게 하고서야 포크를 윤서에게 넘긴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음식을 먹어 치웠다. 윤서의 포크질은  서너번 다녀가고 아이의 손놀림은 빠르게 훑어내려 이미 접시들은 하얗게 바닥을 들어냈다.


-이야!  진짜 맛있다. 그죠 누나?


-그러게 진짜 맛있네.


그 아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제가 계산을 한다.

무어라  대꾸하려는 윤서에게 다가와 불쑥 손을 잡더니 담엔 맛난 거 사드릴게요 하며 능청을 떤다. 그리곤 나가자며 잡은 손을 당겨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무엇에 홀린 듯 그녀는 그 아이를 따라나선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건 뭐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방비로 끌려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저기..  잠깐만.


-견우예요, 제 이름  이.견.우.


제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얘기하는 아이의 눈빛이 너무강했다. 갈수록 오리무중. 윤서는 잠시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누나, 제가 밥 샀으니까 누나가 술 사주실래요.  요즘 술친구가 없어서 며칠 굶었거든요. 하하


웃음이 호탕한 것이 속이 시원해 진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처럼 윤서는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끼는 자신을 본다. 덜컥 겁이 난다. 뭘까. 이 아이는  순식간에  터줏대감 처럼  제 마음에 들어 앉았다. 뭐지?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며 윤서는  앞서가는 견우의 등을 바라본다.


-빨리 오세요. 저기 동동주 끝내주는 집 있어요. 파전도 기가 막히게 맛있고요. 하하.


견우는  윤서를 마주 보게 돌아서더니 뒷걸음으로 걸으며 해맑게 웃는다. 예쁘게 보조개가 패이는 그 모습이 너무나 맑아 그녀는 무어라 말하려던걸 잊는다.  오늘은 그냥 이 아이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어서 오라며 잡힌 윤서의 손에 따스함이 한 움큼 묻어났다. 아이의 손은 따스했다. 남자에게  손을 내어주고 아프지 않은 적이 있었나...? 윤서는 또 한 번 덜컥 겁이 난다.



2.

시끌시끌하다.

견우는 동동주를 시키고는 두잔을 따르더니 건배를 하잔다.

-나 미성년자 아니야. 학교를 3년이나  늦게 가서 나이는 너랑 동갑이야. 넌 윤아보다 세살 위잖아. 누나라고 하지 않으면 네가 따라오지 않을 거 같아서... 그래서 그냥 누나라고 했어.

웃음기 없는 말끔한 얼굴로 그가 말한다. 윤서는 술잔을 집어 들어  한입에 툭 털어넣고 그를 바라본다.


-뭐냐 이건. 나갖고 장난하는 거냐?


팔색조. 윤서는 상대에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특이한 성격이었다. 회사에서는 콧대 높은 커리어우먼으로 아무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차가움이 있었고, 대하에겐 약한 아이처럼 그저 늘 조용함이 있었고, 집에선 털털한 이십 대 계집아이였고, 지금은 거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너 뭐냐고? 내가 좀 만만해 보였니?


-아니. 좋아서


-......?


말문이 막힌다.  견우는 끊임없이 윤서를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진 듯했다.


-놀라고 정신 없는 거 알아. 근데 난 네가 내 여자가 될 거 같거든. 그래서 널 놓칠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오늘은 여기 까지만 놀래킬께. 술이나 먹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제 스물 두살. 길을 가다 우연히 맘에 든다며 따라오는 남학생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이건 좀 느낌이 다르다.  너무나 긴 하루의 끝에 견우가 수많은 메시지를 주며 윤서를, 그녀가 세워놓은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삶이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존경하는 황미나 작가님 글 나의 인생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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