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풍이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으로 시작하는 글 / 모브한지

단풍이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걸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났다. 몇 번이고 자신을 덮치는 바람을 끈기있게 견디다가 끝내 떨어지고 마는 단풍. 내가 널 떨어뜨렸으니 아마도 너에겐 내가 바람과 같은 존재였을 거다.

너는 나 때문에 매일 땀을 달고 살았었다. 나와 함께 밤샘 작업도 자주 했었다. 그러나 누적된 피로로 눈 밑에 진한 어둠이 찾아와도 너는 비틀거릴 뿐 쓰러지지 않고 곧장 중심을 바로잡았다. 흔들림 없는 내 사람. 내 편. 너는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믿음직한 부하이자 파트너였다. 

당시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넌 언제나 너 자신보다 날 먼저 생각했다. 후회해봤자 변하는 건 없지만 한번쯤 나도 너를 먼저 생각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풍이 하나 둘 떨어질 때마다 내 가슴 속 한 구석도 조금씩 텅 비어갔다. 꿋꿋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너의 머리색을 닮은 단풍도 끝내 다른 단풍들 위로 떨어졌다.


2. '절망뿐인 세상'으로 시작하는 글 / 엘빈한지

절망뿐인 세상에서 조사병단은 동료의 죽음을 수도 없이 겪는다. 처음으로 출전한 벽외조사에서 동료가 거인에게 먹히는 장면을 보고 돌아올 때면 모두들 며칠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올라왔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은 주로 동료의 마지막이 끝없이 반복되거나, 피를 잔뜩 뒤집어쓴 동료가 무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탓하는 것들이었다. 한지와 엘빈 역시 이를 겪었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죽음 속에서 감정은 서서히 무뎌졌다. 조금씩 동료의 죽음을 마주하고 난 후에도 악몽 없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벽 밖에는 많은 거인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벽에 구멍이 뚫렸을 땐 순식간에 내부는 피 냄새로 가득찼다. 이것만으로도 절망이 가득한데 알게 된 세상의 진실은 더욱 절망스러웠다. 오랜 동료이자 조사병단 단장인 엘빈의 죽음, 그로 인해 갑작스레 단장 자리에 오르게 된 한지에겐 더더욱 그랬다. 그리샤 예거의 지하실에서 발견한 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뿐이었다. 혼란스러웠고, 한지는 일순간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벽 밖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됐음에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한지는 평소처럼 엘빈과 상의하고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의견을 말해주던 그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첫 벽외조사를 다녀오고 거인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르던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줬던 엘빈. 한지는 그가 자신보다 훨씬 어른이라고 그때부터 느꼈다. 곁에 모블릿이 없고, 조사병단에 엘빈이 없다. 상황 또한 많이 달라졌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한지의 가슴은 한동안 한없이 공허했다.


3. '어둠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간다'로 시작하는 글 / 리바한지

어둠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간다. 텅 빈 공간 속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눈을 감으나 뜨나 빛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리바이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몇 일인지조차 모른 채 그렇게 리바이는 어둠 속을 유영했다.

"내가 뭐라도 약을 구해올게."

평소처럼 작은 몸집을 이용해 대표로 상인들의 물품을 훔치던 리바이가 한 상인에게 걸려 된통 얻어맞고 돌아왔을 때였다. 보랏빛으로 피멍이 든 눈과 빨갛게 부어오른 볼, 온갖 까진 상처가 가득한 손, 무엇보다 서둘러 도망치다 건물 외벽에 다 쓸려 피범벅이 된 리바이의 왼쪽 허벅지는 찢어진 바지의 천 조각이 지저분하게 달라붙어 보는 이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지가 입을 열었고, 리바이가 곧장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너까지 당할 뿐이야."

"그렇지만 너 지금 상태를 봐! 그 모습을 보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뭐라도 해야지! 상처는 치료해야 할 거 아냐!"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지의 눈물이 맺힌 눈과 마주하자 리바이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제 나한텐 너밖에 남지 않았어! 너마저 그렇게 잃을 순 없다고. 그 상처들 가볍게 여겨선 안 돼. 너도 잘 알잖아?"

한지의 말대로 그동안 둘과 함께 생활했던 서너 명의 동료들이 제대로 성장을 하기도 전에 물건을 훔치다 헌병단에게 체포되거나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장 최근에 떠난 동료가 바로 무릎에 고름이 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가 고열에 시달렸었다. 그렇기에 한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아직 열 둘, 열 세 살에 불과한 아이들이 생활하기에 지하도시는 핍박했다.

낡은 가방과 리바이의 단도를 챙기며 한지가 일어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약을 구해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

돌아서는 한지의 옷 소매를 리바이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그러곤 손목을 꽉 쥔 채 놓지 않았다. 지금 한지를 보내면 영영 떠나보내게 될 것 같았다. 이것은 지하도시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리바이의 감이었다. 

한지가 몇 번이고 그 손을 떼어내려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잡아당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한지는 리바이가 붙잡은 손목을 비틀고 더욱 세게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리바이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서로의 고민으로 둘은 치열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소용없자 한지가 행동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에 물기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제발! 리바이……. 내가 더이상 후회하지 않게 해 줘. 부탁이야. 부탁할게, 정말……."

고통을 억누른 목소리에 결국 리바이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한지는 눈물을 닦아내 리바이를 한번 바라보곤 곧장 거리로 달려 나갔다.

한지가 떠난 자리는 일말의 온기조차 없이 차디찼다. 리바이의 무거웠던 눈과 볼은 어느새 조금 가벼워졌으나 왼쪽 허벅지는 고름의 썩은내가 은은했다.

어둠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간다. 텅 빈 공간 속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눈을 감으나 뜨나 빛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리바이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몇 일인지조차 모른 채 그렇게 리바이는 어둠 속을 유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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