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mama!milk - a piacere 






  

1.

본가에 도착한 향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깨달았다. 그나마 하나 있는 도피처였던 이곳에도 절 반겨준 이는 없단 걸.

 

 

 

“ 왔어요. ”

“ 연락받았다. ”

 

 

 

시가에서 도망치듯 나와 본가로 돌아온 자신에겐 반가움보다 실패자라는 낙인들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기어이 네가 이 사달을 내는구나, 라는 눈빛들이 그를 더더욱 이방인으로 만들었고, 그래도 숨통은 트일 줄 알았던 이곳에서조차 숨 쉬는 게 버거워진 향은 단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해버린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 시집살이 좀 시킨 거 갖고 그걸 못 견뎌서 왔냐. ”

 

 

 

같은 이유로 아내와 별거 중인 제 오빠가 할 소린 나이지만, 향의 오빠 석은 제 동생이 이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심사가 뒤틀린 상태였다. 예전처럼 마냥 핍박하고 욕하기엔 당장 제 동생의 옆에 있는 놈이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다.

 

 

 

“ 등신 같은 년. ”

“ 입 닥쳐. 너나 잘해. ”

“ 미친년이 못 하는 말이 없네. ”

“ 이 와중에 오빠 대접은 받고 싶나 보네. ”

 

 

 

며칠을 숨어지내듯 방 안에 틀어박혀 도우미들이 가져다주는 식사만 겨우 먹으며 지내던 향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본 이는 역시나 그의 오빠 석이었다. 없는 재능을 물질로 채워 그 나이까지 겨우 노래 생명을 연장하던 그는 결국 대학 정교수 면접 마저 저보다 젊은 여자에게 뺏기자 홧김에 사표를 내고 본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매번 성악 앞에선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결과 값이 시원치 않아 평생을 제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지내온 이였다. 그도 나름대로 정신적 학대가 깊었던 것이, 몇 달 전 결혼 때문에 성악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온 제 동생의 소식에 이제야 겨우 여동생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단 생각을 한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변에서 천재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네 동생은 너 하나 때문에 있는 재능도 애써 썩혀놨건만, 넌 그 나이 먹도록 고작 몇 년 배운 게 다인 동생 하날 이기지 못해 그 꼴이냐. 재능도 없는 새끼 그나마 아들이라고 평생을 뒷바라지 해줬건만. 살기 좋은 이 나라에 딱 하나 불만인 건, 너 같은 새낀 폐기 처리도 안 돼서 돈으로 돌려받지도 못한다는 거야.

 

 

 

“ 그래서. 불만이야? ”

“ 뭐래, 등신이. ”

 

 

 

그리고 그때였다.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진 석은 그대로 향을 있는 힘껏 밀어버렸다.

 

 

 

“ ...... ”

“ .....!! ”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고 강한 힘에 밀려 계단 아래로 붕 떠버린 향은 머리가 가파른 계단 아래로 고꾸라져 처박힐 때까지 석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떨어지는 동생의 눈동자에서 겁에 질린 제 모습을 마주해버린 남자는 쿵콰쾅!!! 하는 엄청난 파괴음과 함께 계단 아래로 떨어진 동생을 차마 두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질끈 감아버렸다.

 

 

 

“ 아가씨!!!!!!!!!!!!!!!! ”

 

 

 

 

 

 










 

 

 

 

2.

“ 본부장님, 사모님께서 뇌진탕으로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

 

 

 

임원 회의를 다녀온 후 그사이에 올라온 결재 건들을 확인하던 현조의 손가락이 멈칫한다.

 

 

 

“ 왜요. ”

“ 계단에서 넘어지셨답니다. ”

 

 

 

그 한마디에 그의 얼굴은 빠르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언제나 제 동생을 눈엣가시처럼 대하던 그의 친오빠 이 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정신의 향이라면 절대 혼자서 넘어질 이가 아니었다.

 

 

 

“ 밀었대요? ”

“ 모두 함구하는 분위기라 사모님께서 깨어나셔야 확인 가능할 것 같습니다. ”

“ ...... ”

“ 그런데, 신고했던 상주직원이 현장에 이 교수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현조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두었던 재킷을 걸치며 곧장 차를 대기시켰다.

 

 

 

 

 

 

 




 

 

 

 

 

 

 

 

 

3.

이제 막 깨어난 건지 그가 도착했을 땐, 겨우 정신을 차린 향이 온몸이 쑤시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병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코트 끝을 펄럭이며 자리에 앉은 현조는 얼굴 한쪽에 계단을 구르면서 생긴 퍼런 멍이 든 제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막상 자신과 마주해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괜히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진 향은 고갤 반대로 훽 돌리며 애써 시선을 피해버렸다.

 

 

 

“ 야. 보낸 지 며칠 됐다고 이래. ”

“ ...... ”

“ 평생 팔다리 다 묶어 옆에 끼고 살려던 걸 기껏 보내줬건만, 며칠 됐다고 이렇게 흠집을 내놔. ”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그 등신 같은 새끼한테 힘으로 밀려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단 말을 제정신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었다.

 

 

 

“ 장 비서가, 자긴 모르겠다는데. ”

“ ...... ”

“ 난 누군지 알 것 같거든. ”

 

 

 

그러곤 피곤함과 짜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본다. 향이 설마 하는 마음에 그를 보자, 이미 현조의 시선엔 피곤함 아래에 서슬푸른 살기가 숨어있다. 제가 막 한국에 들어와 그에게서 도망쳐 다닐 때 절 갈구하던 눈빛과 비슷했다.

 

 

 

“ 맞아, 아니야. ”

“ ...... ”

“ 한마디만 해. 다른 건 묻지 않을 테니. ”

“ ...... ”

“ 말해, 안 그러면 장인어른까지 피 봐. ”

“ 맞아. ”

“ 맞아? ”

“ 어, 네가 생각하는 그 인간 맞아. 그러니 넌 그냥 알고만 있어. 내가 퇴원하면 해결....! ”

 

 

 

본인이 의심하던 자가 맞단 사실을 확인하자, 현조는 그대로 미간을 확 찌푸리며 복도 밖에서 대기하던 비서를 고함치듯 불렀다.

 

 

 

“ 장 비서!!!!!!!!!!!!!!!! ”

 

 

 

드륵. 대기하고 있던 그의 비서가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 현조는 어느새 꽉 쥐고 있던 주먹을 다시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향이 다급히 그의 손을 잡아챘지만 이미 그의 눈빛을 마주하니, 소용없는 짓이었다.

 

 

 

“ 지금 당장 집에서 드라이버 가져와. ”

“ 예. ”

 

 

 

미쳤어? 향이 다급히 그를 말려봐도 이미 눈이 돌아버린 현조의 귀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 너 진짜 왜 이래. 계단에서 좀 밀쳤다고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

“ 성가시면 그래야지. ”

“ 장현조!!!!!!! ”

“ 난 사람대접해줬는데 짐승보다 못한 짓만 골라서 하면, 그에 걸맞은 대접해드려야지. ”

“ 안 돼. 그러지 마, 제발.. ”

 

 

 

현조는 기어이 차분한 손길로 울부짖는 아내의 손을 떼어낸다.

 

 

 

“ 내가 우리 결혼 때문에 뭘 포기했는데! 성악까지 포기하고 들어온 거 아니야! 그럼 네가 날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지. 적어도 우리 앞길 막을 짓은 하지 말아야지!! 지금 네가 단순 폭행을 저질러도 온 언론에서 득달같이 달려들 텐데, 하다못해 사람을 죽이겠다고? 미쳤어? 너 돌았어?!!!! ”

“ 네가 ‘우리 결혼’을 위해 성악을 포기했다고. ”

“ 그래!! 내 전부를 포기하고 들어왔어, 내 인생, 미래, 다 포기하고 들어 왔다고!!!! ”

 

 

 

점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상상 속의 공포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죽기 살기로 제게 매달려 자신을 뜯어말리는 아내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이미 순애殉愛였다.

 

 

 

“ ...나도 전부를 내놔야 너 하나 가질 수 있으려나. ”

“ ..뭐? ”

 

 

 

현조가 떠난 후 병실에 혼자 남겨진 향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곧바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다 양쪽 귀를 있는 힘껏 막으며 두 눈마저 질끈 감아버렸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사람처럼.

 

 

 

 

 

 

 

 

 

 

 

 

 

 

 

 

 

 

 


4.

“ 도착했습니다. ”

 

 

 

그는 비서가 내리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그러곤 남자가 있을 골프장 안으로 걸어간다. 곧장 어느 홀에서 게임 중인지 파악한 비서가 자세한 위치를 알아 오자, 그는 뒤에서 제 드라이버를 들고 있는 직원에게서 드라이버를 가져와 앞장섰다. 카트를 타고 남자가 있을 홀로 가는 내내 현조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몇 대에서 끝내야 할지. 물론 제 동생을 미워하는 건 맞지만 일부러 민 건 아니겠지 싶었다. 그냥 어쩌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제 아내가 밀려 떨어진 거겠지.

 

 

 

“ 장 비서, 드라이버로 맞아본 적 있어요? ”

“ 없습니다. ”

“ 난 있는데. ”

“ ...... ”

 

 

 

그렇게 믿으려 했는데, 제 동생 얼굴에 피멍 만들어놓고 이 등신 새낀 아침 댓바람부터 필드에 나온 건지 홀이 깨나 멀리 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분위기에 카트를 운전하는 직원마저 잔뜩 움츠러들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 존나 아파요. 가끔 잘못 맞아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파. ”

“ ...... ”

“ 그러니 너무 많이 때리는 건 상도덕에 맞지 않겠죠. 그래도 내 와이프 오빤데. 가뜩이나 돈 없으면 먹고 살 능력도 없는 새끼 다리까지 X신 만들면 안 되지. ”

 

 

 

도착했습니다. 카트가 멈추고 미세하게 떨고 있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카트에서 내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어느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 ...... ”

 

 

 

이 석이다. 제 친구들과 온 건지, 그의 주변엔 배가 나온 중년들이 가득했다. 더 이상의 지체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니,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를 먼저 발견한 주변인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에게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중 한 사람이 남자의 팔을 툭툭 치며 고개짓을 하자,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단 걸 깨달은 남자가 고갤 들어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 형님. ”

 

 

 

햇빛에 반사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은 그가 뿌옇게 흐려진 눈을 잘게 뜨며 제대로 보았을 때 이미 그의 앞엔 묵직한 드라이버를 쥐고 있는 현조가 있었다. 주변인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현조는 이내 하얗게 질려 목석마냥 잔뜩 굳어 있는 남자에게 다가와 섰다.

 

 

 

“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

“ ...... ”

“ 이 사람들 앞에서 그냥 할까요? ”

“ ...... ”

“ 저야 상관없고. ”

“ 그, 그래. 여기...... ”

 

 

 

아무리 미친 새끼라도 보는 눈 많은 곳에서 절 어떻게 하겠나 싶었던 남자가 황급히 고갤 끄덕이자, 현조는 ‘그러시던가.’ 한마디 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남자에게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순식간이었다. 그의 드라이버에 팔을 얻어맞은 남자가 엄청난 고통에 악 소리를 지르며 그린 위를 데굴데굴 구르니, 주변에 있던 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묻지도 못한 채 그저 살려달라며 싹싹 비는 남자를 지켜보던 그의 눈빛엔 어느새 동정마저 서려 있었다.

 

 

 

“ 형님, 왜 그랬어요? ”

 

 


제 아내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새끼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고 있단 게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도저히 짐승마냥 잔디 위를 구르고 있는 이 돼지 새끼를 용서할 수 없었다.

 

 

 

“ 내가.. 요새 약을 못 먹어서 손이 좀 떨려요. 괜히 움직이면 목 나가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

“ 처남, 처남..!! ”

 

 

 

저도 아까워 건들지 못하는 애를, 이 등신 같은 새끼가 박살을 내놨다.

 

 

 

“ 뇌진탕이래요. ”

 

 

 

분명 그 호랑 말코 같은 게 때리지 말라 한 건 여자뿐이었다. 사람은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순리다. 그에 합당한 처벌 수위는, 내가 정한다.

남자의 상체를 발로 차 데굴데굴 굴리던 현조는 곧 적절한 위치를 잡아, 드라이버 끝으로 남자의 머리를 피 위에 올려두었다. 주변에 있던 그 많은 이들 중 말리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두려움에 하얗게 질려 얼어버린 상태였다.

 

 

 

“ 네 동생, 내 마누라. 너 때문에 뇌진탕이라고. ”

 

 

 

피 주변에 놓여있던 볼이 남자의 머리에 치여 필드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간다.

 

 

 

“ 왜 밀었냐. ”

 

 

 

하염없이 굴러 내려가던 공이 어느덧 필드 내 연못 속으로 퐁! 하고 빠지던 순간, 하늘 높이 들어 올려진 드라이버가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퍽!!!!!!!!!!

  

강력한 파열음과 함께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필드 위에서 가만히 서 있는 건 현조와 그의 비서뿐이다. 피가 뚝뚝 흐르는 드라이버를 툭 던져버린 그는 흐트러진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 별거 아니네. ”

 

 

 

 

 

 

 

 

 







 

 

 

 

 

 

5.

[단독] 현대일보 장남 장씨, 존속살해로 긴급체포

**家 李교수, 처남에게 골프채 폭행당해 병원 이송 후 끝내 사망

현대報, 李교수의 폭력으로 장씨의 아내가 뇌진탕 당해...

죽은 李교수 지인, ‘골프장에서 장씨가 드라이버로 두 차례 가격’




강같평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