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는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은 퍽 익숙하다. 윤동주 시인이 가장 좋아했다던,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는 독일에서 가장 낭만적인 시인. 한동안 지나치게 바쁜 탓에 글자를 읽지 못했는데, 문득 이 사람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주변 도서관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안타깝게도 시집은 찾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찾을 수 있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말 그대로 릴케가 한 젋은 청년,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낸 10장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와 편지 형식이고 한 사람에게 보냈다는 점은 같지만 주로 카푸스의 고민과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릴케는 군사학교에 갇혔지만 시를 꿈꾸는 이 청년이 과거의 자신과 겹쳐보였는지, 아니면 본성이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인건지 자신의 진심을 담아 그에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독과 사랑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언뜻 보기에 상반되는 주제를 그는 하나로 묶어낸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겠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 점에서 그토록 빈번하게 그리고 통탄스럽게도 실수를 범합니다. 사랑이 그들에게로 다가오면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고 흩뿌려버립니다. ...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의 더미를 가지고 그들의 생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 한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다소 모순되는 문장이지만, 거듭해서 읽다보니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펜팔을 통해 먼 곳의 친구와 인연을 맺었기도 하고, 원래도 편지라는 수단을 참 좋아한다.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편지를 아직도 인간들 사이의 가장 멋지고 풍요로운 교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인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벨에포크 시대의 이 '구시대적인' 시인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일치한다는 점에 조용한 기쁨을 느낀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한강에 나가서 릴케의 시집들을 정독할 계획이다.


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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