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3일


일본의 주민등록증과 마찬가지라는 마이넘버 카드 신청서. 그리고 늘 기분좋은 학교 옆 벚꽃길.일본의 주민등록증과 마찬가지라는 마이넘버 카드 신청서. 그리고 늘 기분좋은 학교 옆 벚꽃길.


어제 목이 그렇게나 따끔거리더니 결국 감기에 걸려 버렸다.

딱히 옷을 얇게 입거나 감기에 걸릴만한 행동은 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월요일에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가 주 원인이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추측을 해 무엇하리.

이미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데. 흑흑...

다행히 저녁부터 약을 꾸준히 챙겨먹은지라 더 심해지진 않는 것 같지만

학교에서부터 머리가 띵한 것이 전신마취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몸 전체의 감각이 둔해진 느낌이라 해야 하나. 피부도 들떴는지 스칠 때마다 쓰라렵다.)

이번 주 안에 말끔히 나으면 좋으련만. 



다행스러운 점은, 내 몸뚱아리도 늦게나마 적응이라는 걸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홉 시 수업을 듣기 위해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다보니 오늘도 이른 시간에 눈이 트였다.

오전 다섯 시 반에 한번 깨고 일곱시에도 한 번 깼던 듯 하다.

그러나 몸 상태도 그닥 좋지 않고, 오후 수업까지는 시간이 넉넉했기에 한 시간 정도 더 잠을 잤다.


오전 열 시가 되었을 때, 느릿하게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그 때 찌르르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확인해보니 집배원이었다.

무엇인가 또 올 게 있었나, 이번엔 집에 있을 때 와서 다행이군, 이라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집배원에게서 우편물을 전해 받았다. 늘 수고하시는 분들이니 감사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대충 내용을 확인해보니 마이넘버 카드를 신청하라는 서류와 가이드가 들어 있었다.

처음엔 이게 무엇인지 몰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일종의 주민등록증의 역할을 하는 것이더라.

앞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가 오면(구약소 혹은 관공서에 갈 때)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를 준비할 필요 없이 이 카드 하나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개 구약소에서 주소 등록을 하고 2주가 지나면 오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일본 유학생들도 다 발급받길래, 나도 신청을 마음먹고 동봉된 서류를 작성했다.

내일 학교 갈 때 편의점에 들러 우체통에 넣어야지.


아침을 챙겨 먹고, 감기약을 입 안으로 털어넣은 뒤 열두 시 이십 분 쯤 밖으로 나왔다.

마스크를 썼더니 입 안과 목이 확실히 덜 마르는 것 같아 좋더라.

수업 내내 콧물을 줄줄 흘리게 될 것을 우려하여 WelPark에 들러 비염 스프레이와 포켓 티슈를 구매했다.

(지금 몇 번 사용해봤는데, 비염 스프레이는 썩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 차이도 없어...

한국의 오트리빈이 효과도 바로 나타나고 제일 최고인데... 난 오트리빈을 원해...!)

일찍 집을 나섰더니 등교길도 자연스레 여유로워졌다.

매일 보는 동네의 아기자기한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하며, 학생 홀에 위치한 컴퓨터로 다가갔다.

전에 신청한 이수등록 과목들을 다시 확인해보았고, 여전히 取り消し 선은 보이지 않았기에

(혹여나 잘못 확인한 부분이 있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 통과된 거겠지, 라며 안심하고는 교실로 올라갔다. 다 된 거 맞겠지...?


오늘은 오후 한 시부터 네 시까지 진행되는 일본어 수업을 들었다.

담당은 유자와(湯沢) 센세. 중학교 시절의 가정선생님과 닮은 둥글둥글한 얼굴에 친근감이 들었다.

첫 시간인만큼 가벼운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선생님의 소개를 듣고,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마친 후 간단한 직소 퍼즐을 통해

개개인의 일본어 능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문 하나를 문단 별로 나누어 뒤섞은 종이를 글 흐름의 순서대로 다시 배열하는 퍼즐이었다.)

조금 애매한 지문이었지만 어떻게든 정답을 맞추는 데 성공하고,

지문 속 내용에 대해 모두와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대략 '일본인들은 사진을 좋아하는데, 왜 직장에 가족이나 애견 사진을 올려두지 않는가?'라는 주제였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남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올려둘 수 있지 않나?

왜 가족사진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민망해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의견도 있었고,

'나는 내용이 이해가 간다. 일본인들은 가족들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이는 걸 꺼려하는 것이다. 굳이 모두에게 공개할 필요없이 휴대폰으로도 사진은 볼 수 있잖아.'

와 같은 의견도 등장했다. 나의 경우엔 후자에 속한다.


한 번은 내 옆에 앉아있던 중국인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지문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여 힘이 들 때 아내의 사진을 보면 기운이 난다]라고 했던 외국인에게

일본인이 [기운이 난다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느는 게 아니고?]라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이는 일본의 현대사회 문제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과의 소통과 정에 소홀해지는 건 현재 가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글쓴이(일본인)가 [아내의 사진을 보면 스트레스가 늘어난다]라고 대답한 이유는

하루하루 힘겨운 회사 일을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괴로운 일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언급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위의 중국인과는 반대의 입장인 셈이다. 아내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손을 들어 이런 내 의견을 모두에게 말했더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길다고 느꼈던 세 시간은 어느새 쏜살같이 지나고, 오늘의 수업도 마쳤다.

그러던 중 복도에서 익숙한 인영을 목격했다.

같은 스즈키 클래스의 중국인 여성이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나와 거의 비슷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내가 걷고 있던 오르막길의 건너편에서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을 봤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에게 다가가 '집이 같은 방향이던데 혹시 괜찮다면 같이 가자'라고 말을 걸었다.

흔쾌히 좋다고 대답해줬던 그녀의 이름은 '코 세이.' (중국 한자가 기억이 안난다...)

마침 방향이 같은 또다른 중국인 남성이 있길래, 총 셋이서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우리 셋은 서로 (생각보다) 매우 근처에 살고 있었다. 

특히 남성 분은(이름을 분명 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흑흑)

오젠지 공원 앞 버스정류장의 붉은 깃발이 걸린 집이 자신의 집이라고 했다.

나와 거의 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 거리였다...!

요리가 특기라던 그는 나중에 맛있는 걸 만들어 줄테니 집으로 놀러오라고 권유했다.

뜻밖의 초대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훗날 코 세이 상과 함께 놀러가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집 위치는 두 사람에게 정확히 말해주진 않았다. 나중에 친해지면 알려줘야지.)

마트에 들른다는 남성 분과 헤어진 후, 코 세이 상과 단 둘이서 마저 길을 걸었다.

월요일 자기소개 시간 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나도 만화 엄청 좋아한다.' 라고 했더니 자신의 집에 만화책이 잔뜩 있다며 나중에 보러 오라고 하더라.

중국인들은 원래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인가...!

하루에 두 번이나 받은 초대에 감사함을 전하며, 

나중되면 학교도 같이 다니자고 말하고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기분좋은 하교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온몸이 나른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로손에서 구입한 딸기 생크림 샌드위치를 먹은 후 몸이 나아지길 바라며 낮잠을 잤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도 몸 상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슬프군.

느즈막히 저녁을 해 먹고 약을 먹은 뒤,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다.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은 거르려 했지만, 몸이 아플 때에는 뭐니뭐니 해도 잘 먹는 게

제일 효과 만점인 것 같아 빠르게 된장국을 끓여 밥을 말아 먹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니 확실히 목도 풀리고 낫는 기분이 든다. 역시 난 된장이 없음 안돼!)


내일은 다시 오전 수업이다. 이름하여 사회학 인문.

첫 시간인데 조금 설렁설렁 진행되었으면 좋겠는데...(벌써부터 요령피울 생각이라니!)

표상문화론도 바로 수업에 들어갔었는데, 이것도 그럴 것 같아 조금 서글프다.

내일만 참으면 꿀같은 주말이니 또다시 힘을 내자!

감기 따윈 날 막을 수 없지.




코 세이 상 일행과 함께 집에 돌아가려던 때, 

어제 이수등록확인을 도와줬던 한국 남성이 또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옷이 좋아보인다는 둥... 일본인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는데 너도 저녁 같이 먹지 않을래? 라고 물어오더라.

친해지고 싶어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뭔가 기분도 쎄하고 맘에 안 들어서

코 세이 상 일행과 함께 돌아가기로 선약을 잡았다고 나중에 불러 달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시원한 김칫국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어리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치근덕대는 것 같은데...

제발 내게서 신경을 꺼 주었으면 좋겠다...헤헤...

(무엇보다 그 '애기' 호칭 좀 그만 둬 주지 않으려나...)

今の瞬間を大切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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