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스포 성향 있어 빼놓았던 부분 넣었습니다.






타앙-!!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인두로 눈을 지지는 것 같은 감각 뒤로 엄청난 격통이 따랐다.




“으아악-!”


헨리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은 땀으로 축축해진 몸에 긴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왔다. 어두운 방 안에는 한 동안 그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여전히 화끈대는 오른쪽 눈 부근에 오른손을 들어 손을 얹었다.

까슬한 붕대의 촉감이 따뜻했던 피부를 대신하고 있었다.

다물어진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달칵.


“일어났나?”

“…빅터.”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체크 무늬 코트가 어른거렸다.

헨리 곁에 다가온 빅터는 들고 온 트레이 안에서 작은 주사기를 하나 꺼내 그의 팔뚝에 찔러 넣었다. 깔끔한 동작이었다.


“진통제다. 통증은 좀 가실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빅터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텨. 심한 고통은 며칠 이내로 잡힐 거야.”

“하아, 듣던 중 반가운, 윽, 소리군.”

“버텨서 그대의 오른쪽 눈과 맞바꾼 내 가치를 직접 확인하도록.”


자기 할말만 하고 들어올 때처럼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방을 나서는 빅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헨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당신을 이 조직의 정점에 올려놓겠어. 내 눈이라면 그 정도 값은 해야지.’







“실례하네.”


중후한 노년의 신사가 열려 있는 문에 노크를 했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던 빅터는 고개를 들어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고선 들고 있던 물건들을 내려놓고 예를 갖추었다.


“어떤가? 새로운 곳은?”

“좋습니다.”


빅터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정도면 이전 바이에른 연구실보다 백배 정도 좋았다. 쾌적하고 깨끗했으며 사람들 눈에 띄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가 연구를 진행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래. 혹시 헨리는 어떤가?”


신사의 질문에 빅터의 눈동자가 반사적으로 방 한 켠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열도 완전히 내렸고 이제 상처가 문제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빅터는 자신도 모르게 얕은 한숨이 나왔다.


“이제 저격은 어려울 겁니다.”












“네?”


슈미츠는 그녀답지 않게 반문했다.

서장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자네 사수 요청 때문이야.”

“같이 갈 사람 고르라며? 내 후배님 데려가는 게 당연하지.”


껄렁껄렁한 태도로 서장의 말에 대답하는 그의 사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맹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슈미츠의 눈빛은 불신이 가득한 것이 아닌 존경하는 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헤르더가 이곳에 온 후로 계절이 두 바퀴 돌아왔고, 그 시간만큼 둘은 이제 파트너라고 불릴 만큼 합이 잘 맞았다.


형사 부장까지 했던 헤르더가 이런 변방으로 온 이유도 어느 정도 친해진 그와 몇 번 술자리를 가지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그의 딸을 찾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살해당하고 어린 딸은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 아무 단서도 없는, 그야 말로 미궁인 사건.

거의 5년 동안 추적 중인데 건진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식 하나라고 했다. 그것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그도 그 이상의 단서는 없다고 했었다.


그 이후로 그는 실종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을 찾아 다니고 있었고 슈미츠가 있던 서로 온 것도 프로이센과의 국경 근처에서 실종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곳으로 온 이후로 국경의 범죄율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는 있었지만 연이은 실종사건은 사건 간 개연성도 떨어지고 시체를 못 찾는 경우가 허다해서 큰 성과는 없는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신고자가 적다는 것이었다. 국경 근처이기에 밀입국이나 밀수를 하려는 이들이 주로 실종되고는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실종자의 가족이나 동료도 신고를 꺼려하는 통에 정확한 실종자 수 조차 확인이 어려웠다.


실종사건의 전말은 오리무중이었지만 어찌되었건 그가 온 이후로 실종 사건도 점차 줄어들었고 서장은 이때다 싶어 중앙 자치대 경찰 대장에게 화려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던 듯 했다.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 저도 데려가신다고요?”


그런 자리가 있다고는 들었었다.

왕실에서 한 해에 한번 경찰대장의 추천을 받아 눈에 띄는 공을 세운 이에게 주는 상으로 무려 수도 드레스덴까지 가서 받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그냥 헤르더님의 부사수로 딸려 가는 것이지만 그런 곳은 처음이었고 그 동안 상상도 못했기에 얼떨떨했다.


“가도 별거 없긴 해. 지겨워.”

“헤르더님은 이전에도 가본적 있으세요?”


언제나처럼 긴장감 없어 보이는 말투에 슈미츠가 눈을 빛냈다. 중앙 경찰대에서 형사 부장까지 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설마 왕궁까지 가보았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 뭐. 수사 때문에 몇 차례 갔었어. 아무튼 대강 준비해서 내일 출발하지.”

“네, 저 그렇데 옷은 따로 준비 안 해도 되나요?”


슈미츠는 자신의 칙칙한 색의 경찰복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왕궁에 이런 옷을 입고 간다면 역으로 더 튀지 않을까 생각해서 였다.


“그럼 경찰이 드레스라도 입고 가려고?”

“아, 아, 아뇨! 드레스라뇨!”


그녀는 마치 밤송이라도 밟은 마냥 화들짝 놀라 튀어 올랐고 헤르더는 그 모습에 큭큭거렸으며 서장은 그 둘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슈미츠, 자네가 그렇게 재미있게 반응하니 자꾸 놀려대는 거야.”

“…예, 자중하겠습니다.”

“아무튼 출발은 내일이니 오늘은 이만 가서 쉬도록. 헤르더 자네는 잠깐 남고.”

“내일 보자고 후배님.”


손을 살랑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헤르더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서장실을 빠져 나왔다.


밤 늦은 시간이기에 서 안에는 최소 경비 인력만이 남아 있었기에 고요하기만 했다.

자리에 돌아온 슈미츠는 퇴근을 하기 위해 짐 정리를 시작했다. 2주 정도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니 컵이나 필기구 같은 것들은 정리해둘 필요가 있었다.


개인 물품이 많은 편이 아니기에 금세 정리를 끝낸 그녀가 서 안을 나서려 할 때, 밖이 약간 소란스러운 것 같았다.

1차 근무조가 돌아올 시간은 더 있어야 했기에 누구인지 짐작되지 않았으나 몇 초 후 알기 싫어도 알게 되었다.


쾅.


“어이, 재수탱이 아냐?”

“…”


문이 거칠게 열리며 나타난 것은 일단은 그녀와 동기인 녀석이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야, 난 납득이 안되. 어?”

“음주 상태에서 서에 들어오다니. 최악이군.”

“하! 나 지금 하-나도 안 취했거든?”


어디서 술을 퍼마신 건지 거의 개가 된 녀석은 그동안 슈미츠에게 가끔 시비나 저질스러운 농담정도 던지는, 그냥 서에 있는 경찰대원 중 하나였다.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돌진하는 녀석의 모습에 인상을 구긴 그녀는 상체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그를 피했다. 덕분에 그는 바닥을 굴렀고 씩씩 거리며 일어섰다.


“야, 쳤어? 어? 내가, 여자라고 못 때릴 거 같아?”

“누구라도 지금 너한테 맞을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굼벵이.”


술에 취해 균형감각이나 방향감각은 온통 엉망이겠지만 완력은 상당한 녀석이었다. 그녀 얼굴 근처로 날아오는 펀치를 다리를 살짝 구부려 피해낸 그녀는 일어서며 그의 아래턱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듯이 가격했다. 충격에 비틀거리는 녀석의 어깨를 잡아 책상 위로 강하게 돌려 눌렀다.


콰앙-!


책상 위의 서류들이 한차례 들썩일 정도로 내리 누른 충격에 그는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양팔을 뒤로 꺾어 수갑까지 가뿐히 채운 그녀는 버둥거리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수갑 열쇠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둔 그녀는 조금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이제 진짜 퇴근하기 위해 발을 놀렸다.


“야, 슈미츠.”

“…”

“이 XX아!”


저 녀석이 같은 경찰만 아니었어도 지금 말도 못할 정도로 팼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난 납득 못해! 왜 너 같은 년이, 어?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승진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니들이 뒤떨어진 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그렇게 남의 성공이나 질투하는 거 밖에 못하는 새끼들이.”

“씨발! 입 안 닥쳐? 여자니까 다 대우해주고 하니 그게 권리인줄 알지? 네 년이 여자라서 먼저 기회가 간 거잖아. 다 안다고, 헤르더 그 새끼랑 맨날 밤마다 뒹군다는 거! 몸이나 굴려서 승진한 주제에!”


슈미츠는 더 참지 못했다.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운 후 오른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그녀의 두 배 정도 되는 체격을 가졌지만 그녀의 주먹은 상당히 매서운 편이었기에 그 충격으로 그는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으윽-“

“몸이나 굴려서 승진했다고? 하, 왜 그게 부러우면 너도 대 보지.”


퍼억-


“끄어억-!”


그의 사타구니를 냅다 발로 차버린 그녀는 수갑이 묵인 채 고통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분이 풀리지 않아 한번 더 차서 확실히 없애 버리려다가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 더 손을 대면 되돌리지 못하게 될 수 있었다. 녀석의 미래나 자손이 걱정되는 건 아니고 그를 반병신이 되도록 팬 자신에게 돌아올 패널티가 걱정되었다.


“야.”


그는 여전히 사타구니를 타격 당한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그녀는 말을 이었다.


“너 같은 새끼가 경찰이라니.”


그녀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난 무슨 수를 쓰던 이 곳의 정점에 오를 꺼야. 그 땐, 너 같은 새끼들은 내 발닥개로 쓰고 버려주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은 그녀는 진짜 발길을 돌려 서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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