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썩.


어떤 양해도 없이 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의 모습에 그녀는 미간을 구겼다.

제국의 수도는 사람도 많았고 그만큼 무례한 이도 많았다.


그녀가 당장이라도 발로 찰까를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 앞에 앉은 자는 느긋하게 로브를 벗었다.

어깨보다 조금 아래로 내려오는 긴 갈색 머리카락이 사락거렸다.


“저, 아시죠?”


갈색머리의 남자의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잘 봐봐요. 우리 어디서 봤었죠?”


남자는 상체를 그녀 쪽으로 기울이며 집요하게 물어왔다.

이건 또 무슨 신종 또라이인가 싶어 그녀, 앨리스는 그녀의 짧은 커트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니. 모르니까 이만 꺼졌으면 좋겠는데.”

“…”


앨리스는 슬슬 자신과 눈 앞의 남자를 흥미 있게 보고 있는 여관주인과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젊은 커플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미친 놈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싶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눈 앞의 미친 놈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처연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검이 내 가슴을 관통하던 순간을.”


그는 언젠가 그녀가 보았던 유랑극단의 연기자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앨리스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머리에 참을 인자를 새기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옭아매는 무형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바로 이 자리를 떠났을 것이었다.


“뭐야.”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순순히 앉으시죠.”


앨리스는 눈앞의 남자가 꽤나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주문의 영창도, 바닥에 그리는 번거로운 꼬부랑 글씨 같은 것도 없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조용히 발현되는 마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 처음 보는 거라고 해서 대응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싫은데.”


벽에 기대어져 있던 그녀의 검이 미끄러지듯 그녀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이 깨졌다.

앨리스는 당연히 남자가 놀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저 시선을 검으로 돌렸을 뿐이었다.


“꽤나 순도가 높은 마정석이군요.”

“후우, 내가 뭘 해주면 꺼질 건데?”


앨리스는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 앞의 놈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냥 또라이는 무시하면 되지만 이 정도 마법 능력을 가진 또라이라면 무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간단합니다. 제 호위를 해주시죠.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싫다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앨리스는 저 미소가 꽤나 짜증난다고 느꼈다.)


“그럼 제가 쫓아다녀 드리죠.”


어쩌다 이런 또라이에게 걸린 거람.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그 쪽이 해달라고 해서 해준 건데?”


앨리스는 말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은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듯 그녀 쪽으로 고개를 더 숙였다.

옳지, 착하네.


“그 쪽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서.”

“네?”

“출발한다? 발레나까지는 말로 일주일은 걸린다고.”


그런데 왜 나를 죽인겁니까, 란 말이 나올 뻔 해서 입을 합 다물었다. 더 이상 미친 놈 취급 받고 싶지는 않았다.

데인은 먼저 말에 올라 출발하는 앨리스를 따라 서둘러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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