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루가 특별히 저녁까지 일을 일을 시키지 않는 날에 아성은 밤 늦게 밖에 다녀오곤 했다. 명경이 종종 어딜 다녀오니 묻곤 했으나 바람을 쐬고 왔다는 말로 몇번 일관하니 명경도 명루도 아성의 개인적인 시간이겠거니 싶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인 명대는 아성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명대의 관심은 명루나 명경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관심보다는 애정에 더 가까웠으니까.


-형, 오늘도 나가?

-응. 너는 왜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아... 책을 읽다보니...?

-거짓말이 늘었구나.


아성의 지적에 명대가 흠칫했다. 일부러 형을 기다린게 들킨건가?


-그만 놀고 얼른 자라.

-어....? 어.... 형 나도 데리고 가면 안돼?

-그냥 바람쐬러 가는거야. 술도 없고 여자도 없다. 금방 돌아올게. 너도 얼른 자라.


다정하지만 단호한 아성의 말에 명대는 시무룩하게 알았다며 대답할 뿐이었다.

이후로도 명대가 몇번이고 아성의 외출에 매달리자 하루는 명루가 명대를 제지했다.


-네 형도 사생활이란게 있는 법이다, 명대.

-흥, 형은 맨날 아성형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주제에

-뭐? 너 이녀석

-하하,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따라가고 싶은데.... 형은 여가시간으로 뭘 하는걸까. 일을 쉬는 주말이면 늘 가족과 함께 지내는게 보통인 아성인데 그런 아성에게 개인외출이라니. 말은 혼자 바람쐬러 다녀온다 하지만 애인이 생긴게 아닐까. 애인이 생긴게 아니더라도 혼자일때 아성은 뭘 하는걸까. 아성이 외출하는 날이면 명대는 궁금함에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아성이 돌아올때까지 잠도 안 자며 기다리곤 했다.

그 날도 명대는 잠도 자지 않고 아성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한시.. 아니 두시는 훌쩍 넘긴 시간. 평소 아성의 귀가시간에서 한참 늦어지고 나서야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아성이 들어왔다. 


-형 왔어?


명대가 총알같이 튀어나가 아성을 반겼다. 순간 명대를 보는 아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으나 이내 아성의 얼굴에는 다정한 형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직 안 잤구나 명대.

-응. 오늘도 잘 놀고 왔어?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온 것 뿐이다. 재밌고 자시고 할것도 없지.

-그럼 나나 좀 데려가지...


명대가 뾰루퉁하게 입을 내밀고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명대를 보며 피식 웃던 아성이 손을 들어 장갑을 벗었다. 자연스럽게 명대의 시선이 아성의 손끝에 머물렀다. 


-어쨌든 내가 들어왔으니 너도 얼른 들어가 자라.

-어?

-들어가 자라고. 누님이 집을 비웠다고 이렇게 밤 늦게까지 놀면 분명 내일 형님에게 크게 혼날거다.

-아 어.... 응... 형.. 형도 잘 자.


명대가 묘하게 아성의 눈빛을 피하며 대답하더니 뛰어내려올때처럼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갑자기 살짝 바뀐 명대의 눈빛에 아성이 고개를 갸웃하다 손을 들어올려 소매를 살폈다.


방에 뛰어 들어온 명대가 문을 쾅 닫고는 그대로 방 문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아성이 장갑을 벗으며 보였던 그것.


명대의 시선이 못내 마음에 걸린 아성이 소매를 보자 발견한 그것.


선명한 피.

피가 묻어있는 소매.


-아.


아성의 표정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무덤덤했다.


-어쩔수 없지.


그대로 아성은 제 방으로 들어갔고 곧 저택 안에는 새벽 세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명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피? 대체 왜 피가? 어디 다친걸까? 아니 안색이 안 좋아보이지는 않았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였다는 쪽에 더 가까웠지. 명루 형님이 시킨 일인걸까. 아니다. 아성 형의 외출은 철저히 개인적인 시간인게 분명해. 그것보다....


나는 대체 왜 거기서 직접 형에게 묻지 못했는가.



#


다음날도 명가의 일상은 특별한 일 없이 시작되었다. 아향이 일어나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명루와 아성은 각자 코트를 챙겨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러나 한가지 평소와 다른 점은 명대가 두 형의 출근 배웅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대는 아직 자나?

-네, 오늘은 도통 못 일어나시네요.


아향의 말에 명루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다 아성에게 물었다.


-어제도 너를 기다렸나?

-네. 제가 들어올때까지 안 자고 있더군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도 너에게 칭얼대는지 원.


아성이 민망한듯 웃으며 고개를 들어 명대의 방을 올려다 보았다. 방은 굳게 닫혀있었다.

idiot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