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틀린 키라먼.

키라먼은 대대로 정치인을 배출하는 그런 집안이었다. 바이가 정치 사회면에 관심이 있었다면 '키라먼' 이라는 성을 듣자마자 바로 알았을 것이다. 바이는 정치 사회와 동떨어져있었다. 하루 살아 하루 벌어 먹는 바이네 집 티비에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웃긴 예능 프로그램이나 지친 하루의 일상을 마비시킬만한 뻔한 드라마만 주구장창 나왔기때문이다. 그래서 케이틀린은 바이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해야했다.

사실 케이틀린은 누군가에게 자기를 소개한다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모두가 이미 케이틀린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아마 바이를 처음봤을때 자신을 소개해야한다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던 것 같았다. 정계에서 가장 유명한 어머니와 재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버지를 둔 케이틀린 키라먼은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다 알았으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건 처음인 것 같아. 그것도...너한테."


케이틀린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바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이는 그 뉘앙스가 굉장히 불쾌했지만 어쨌든 길가에서 죽어가는 바이를 구한 건 케이틀린이 맞았으므로 참았다. 아마 같은 동네아이였다면 바이는 케이틀린에게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개를 한다고 했지만, 딱히 소개랄게 없었다. 그냥 이름만 알려줬을 뿐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케이틀린은 정말 굉장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렇게 반감을 살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말하는 내용도 재수가 없었지만 묘한 억양도 재수 없었고 깔보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는 정말 주먹이 꽉 쥐어질 정도로 짜증났다. 바이는 케이틀린이 뭐라고 할때 마다 눈을 찌푸리며 케이틀린의 말을 경청하려 노력했다. 대충 이야기를 듣자 하니 오갈 곳 없는 바이를 양자처럼 키워주겠다는 말에 어린 바이는 혹 할 수 밖에 없었다. 혹했다기보단 바이에게는 사실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무튼, 그래. 몸이 좀 안좋아 보이니 쉬어. 아무리 너 같은 아이라도 뭐...차차 적응하겠지."


마치 원숭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의 케이틀린 반응에 바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안전한 곳이라는게 느껴져서 굳었던 바이의 긴장이 풀어졌다.

일단 거처가 정해진다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다시 레인즈쪽으로 가면 '그들'이 바이를 찾아낼까봐 무서웠다. 파우더는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무서웠다. 그래서 바이는 아예 파우더의 생각을 자의적으로 멈췄다. 

그들이 왜 바이와 바이 가족들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일은 벌어진 일이었고, 바이는 힘조차 없는 몸이 큰 어린애에 불과했으니 무력감부터 밀려 들어왔다. 

복수심에 불타서 찾아가야지 하는 불나방같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 몸 안을 지배하는 것처럼 떠올리기조차 무서웠다. 사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니까. 바이는 정말 무모했다. 아무리 어떤 식으로 돌이켜봐도 도화선의 불은 바이였다.

방안에 혼자가 된 바이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약했기때문에 모두를 잃었어!

총을 겨눴던 것은 그 남자였지만 남자에 대한 복수심이나 원망보다는 바이는 스스로가 정말 증오스러웠다.

바이는 몸이 괜찮아지기까지 계속 침대에 누워 만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은 정말 외롭다기보다는 무섭고 막막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이렇게 부잣집이고 대단한 집안에서 자기를 돌봐준다는데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바이가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런 후원 같은 건 콧방귀 뀌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바이는 정말 오로지 혼자로 버텨야하는 몸이므로 어떻게든 울타리가 존재해야했다. 바이는 자신의 신변이 안정이 되자 두려움이 이내 증오로 바뀌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꼭 다시 그 놈들을 찾아내리라고 바이는 결심했다. 자신의 두려움이 증오로 바뀌는 순간 바이는 삶의 원동력을 얻어낸 것이다.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궁궐 같은 케이틀린 집에서 살거나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고, 바이가 지낼만한 곳을 마련해주었다. 바이의 생활비와 용돈은 바이 명의의 계좌로 송금이 되었으며, 잘 안볼 것처럼 이야기하던 케이틀린과는 매주 주말마다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형식적인 만남에 가까웠다. 여전히 재수없고 고까웠던건 사실이지만, 바이는 언제부터인가 케이틀린에게 눌려버렸다. 당연했다. 바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케이틀린에게서 나온 것들이니까. 뭐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일단 케이틀린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바이를 압도했다는 것이 더 맞았다.

케이틀린이 바이에게 마련해 준 거처는 혼자 살기 적당하고 있을 건 모두 갖춘 깔끔한 방이었다. 물론 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좁기야 했는데 월세는 아마 원래 집보다는 상당히 더 많이 나가리라는건 알 수 있었다. 가전기기들과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새 것이었으며, 집 위치 또한 치안이 좋은 시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는 학교도 다니게 되었다. 바이가 그 전에 다녔던 학교는 어수선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선생들까지도. 교실에 있는 창문은 언제나 깨져 있거나 부숴져 있었으며 쓰레기가 복도에 굴러다녔다. 이번에 다니는 학교는 바이와 다니던 학교와 확연히 달랐다. 유명한 사립학교라 교복도 있었는데, 학생들 모두 단정히 교복을 입었다. 그 누구도 복도에서 침을 뱉는다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고 학교의 모든 것들이 신식이었다. 바이가 그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일단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케이틀린을 복제한 것처럼 재수가 없었다.

억양이나 말투하며 겸손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는 그들의 태도도 그렇지만 바이를 애초에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든 일들에 바이를 배제했다. 바이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옆에서 키득거리며 바이를 흘겨보기 일수였다. 어차피 여기 있는 아이들과 바이는 결이 달랐기때문에 아이들과 친해질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무시 당할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마치 정말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구경하듯이 바이를 바라봤다. 차라리 동물원의 동물은 귀여움이라도 받을텐데, 바이는 조롱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젠장."

안그래도 이런 학교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려고 노력 중인데 그 날은 유독 너무 거슬렸다. 바이는 자신이 무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작은게 쌓이고 쌓이다보니 더 이상 바이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야, 구경 났냐?"

참다 못한 바이는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며 아이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밌는 것이라도 본 듯이 오히려 더 크게 웃었다. 

"케이틀린한테 뭐 해줬길래 너 같은게 우리 학교를 다녀?"

어떤 남자애가 으스대며 아이들 사이에서 나왔다. 남자애는 키도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앞니는 비버처럼 툭 튀어 나왔는데다가 눈마저 뱀 같아서 그 남자가 웃을 때마다 더 비열해보였다. 하지만 바이에게 다가오더니 바이가 생각보다 컸는지 남자애는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고는 바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뭐 대주기라도 하는 건가?"

조롱 섞인 그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이의 주먹은 그 남자아이의 얼굴 중심부에 꽂혀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웃고 있던 학생들은 그 남자애가 땅에 처박히듯 꽂히고 나서야 경악하기 시작했다. 

"네 얼굴이 내 주먹에 대주는거겠지."

쓰러져서 신음소리조차 못내고 웅크리고 있는 남자애 몸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이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교실에 들어갔다. 






 바이는 수업 시간 내내 걱정이 앞섰다. 참았어야했는데...바보같았다. 이 일이 케이틀린의 귀에 흘러들어 간다면 케이틀린이 어떻게 반응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바이는 자신이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매일매일 어디서 어떻게 지내야 할 지 막막했다. 

근데 그 새끼들이 먼저 약올렸잖아. 좆같게... 

바이는 자신에게도 변명거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며 케이틀린에게 어떤 변명을 해야할 지 머리를 굴렸다. 수업 내용은 당연히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이는 이 수업이 끝나면 당연히 자신을 호출 할거라 생각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하긴, 고작 한 대 때렸다고 뭐 큰일나겠어? 앞으로도 좆같게 웃으면 어떤 놈이던 면상을 좆으로 만들어줘야겠다.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꽉 쥐고 집으로 가려고 일어나는 순간 누군가가 바이를 불렀다.

"바이, 잠깐 볼까?"

그럼 그렇지.

바이는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이 순순히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바이도 조용히 따라갔다. 교무실이라고 하더니 그 넓은 교무실에서 한참이나 더 들어가더니, 선생은 교무실 안에 있는 교장실로 데려갔다. 선생은 교장실 문을 노크하더니 바이를 교장실에 들여보내고 교장실에 있는 사람을 향해 눈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바이는 그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자신의 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아까의 일때문에 바이를 호출 한 거라 짐작한 바이는,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해야할까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고개 들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바이는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바이는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신고 있는 신발이 보였다. 신발로 그게 누구인지 알았으나, 왜 여기에 있는지는 바이도 의아했다. 바이의 시선은 천천히 발목부터 종아리 허벅지를 타고올라가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케이틀린이었다.  

 케이틀린은 교장 선생님의 책상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 발끝을 흔들흔들거리고 있었다.

"왜 그랬어?"

대뜸 왜 그랬냐고 묻는 케이틀린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바이는 눈을 굴리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걔가..."

순간 바이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빠르게 고민을 했다. 자신에게 모욕을 줬기 때문에 때렸다고 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유치하고 가벼워 보일지 알기에 말을 다시 삼켰다. 꼼지락거리며 말도 못하는 바이를 보며 케이틀린은 못마땅한 듯이 한참을 쳐다보다 말을 하려고 숨을 들이켜는 순간 바이가 황급히 내뱉었다.

"케이틀린을 모욕했어요!"

바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허무맹랑한 변명이 통하길 바라면서. 사실 아예 없는 마음은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약간의 과장을 했을 뿐이지.

바이의 대답에 케이틀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아마도 생각이라도 잠겼는지 바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 때문이라고?"

"아니, 아뇨. 케이틀린을 위해서죠. 그 자식이 먼저 케이틀린에게 몹쓸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많은 걸 베풀어준 은인에게 그런 모욕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어요."

바이는 순간 자신의 임기응변에 감탄을 했다. 바이의 대답에 케이틀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표정이 더 좋고 차갑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바이를 쳐다보았다.

나름 잘 대답한 것 같았는데, 아닌가... 

정말 종 잡을 수 없는 케이틀린의 성격에 바이는 살짝 시선을 땅바닥으로 내리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나를 모욕했기 때문에 때렸다, 이 말이지?"

"네."

"바이, 네 실수에대해 말해 줄게. 내가 너에게 화가 난 이유는 그 자식을 때려서가 아니야."

케이틀린이 바이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케이틀린의 특유의 향이 바이의 코 끝을 스쳤다. 달큰하면서도 진한 향수 냄새. 그 냄새가 바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 같았다.

"첫번째 네 실수는, 그 까짓 놈이 학교에서 나에게 뭐라 하든 난 흠집조차 나지 않아. 그 알량한 말이 나에게 모욕이 될 수 있다 생각한 점이고."

바이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눈을 굴리며 케이틀린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두번째는 나를 위했다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가장 큰 네 실수는"

케이틀린은 바이에게 바짝 다가왔다. 케이틀린의 숨결조차 차갑게 느껴져서 바이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키라먼이라는 이름을 뒤에 업고 다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거야."

케이틀린은 바이를 매섭게 쳐다보더니 케이틀린의 어깨가 순식간에 뒤로 젖혔다. 그리고 살과 맞부딪히며 찰진 소리가 났다. 바이의 고개는 살짝 돌아갔다. 그리고 바이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는데 바로 중심을 잡고 케이틀린을 쳐다보았다.

"멍청하긴."

케이틀린이 차갑게 내뱉자 바이는 얼얼한 뺨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케이틀린의 눈치를 보았다.

"생각을 좀 하고 살아. 그래서 네가 때린 놈은 어떻게 됐니? 죽었니? 멀쩡하게 활보하면서 이제 자기를 줘 팬 후원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니겠지. 걔의 말이 모욕이 아니라 네 행동이 나를 먹칠했어.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 할 거면 움직이지 말아야지."

케이틀린은 바이가 누군가를 때려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처리를 못한 것에 화가 났을 뿐이다. 바이는 그 확실하게라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죽이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럼 참으라는 뜻인 걸까?

바이가 억울한듯이 케이틀린을 쳐다보자 케이틀린은 바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성질머리대로 하고 싶으면 능력이 돼야지. 뭐라도 있어야지. 하다못해 다른 애들을 이용해서 조지는 머리라도 있던가."

케이틀린은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바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케이틀린은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그렇게 길게 통화하지도 않았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굉장히 차갑고 사무적이고 간단명료하게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강제 전학 보내요."

바이는 케이틀린의 말에 뜨끔 놀라다가 차라리 이런 학교를 다니느니 조금 편한 학교로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당연히 자신이 전학을 가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케이틀린이 전화를 끊자마자 바이가 힘없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전학 간 곳에서는... 조용하게 생활 할게요."

바이의 대답에 케이틀린은 의아한 목소리로 되려 반문을 했다.

"네가 왜?"

"네?"

"네가 왜 전학을 가?"

"어....제가 가는 게 아니었나요?" 

바이의 질문에 케이틀린은 웃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성격이 더럽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 성깔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지." 

바이는 케이틀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바이는 케이틀린이 왜 자기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까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케이틀린은 마치 바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바이를 빤히 쳐다보며 툭 내뱉었다.

"너의 반골 기질이 참 마음에 들거든. 근데 조금 덜 멍청했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해. 알겠어? 나 귀찮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케이틀린은 손으로 바이의 볼을 톡톡 건드리더니 슥 나가버렸다. 바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케이틀린을 뒤따라 나갔다. 






 케이틀린은 그대로 어디론가 가버렸고, 바이는 교실에서도, 수업 중에도 생각에 잠겼다. 

바이는 어리긴 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왜이렇게까지 케이틀린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지, 어떻게 보면 과할 정도로 보호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 던 것이다. 단순히 불쌍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까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다고? 먼 친척도 아니고 정말 생판 모르고 연고도 없는 바이에게?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 걸까? 

바이는 노트 구석에 의미없는 원만 까맣게 칠하다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맞다, 케이틀린은 바이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곧 알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굳이 먼저 꺼내지 말까? 근데...나한테서 원하는 게 내가 감당 못하는 거면 어떡하지...?

바이는 이제 걱정보다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갱단이 바이에게 원하는 게 있었을 때에도 사실은 바이가 감당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당연히 바이에게 원하는 건 더 클지도 모른다. 문득 옛날 벤더가 읽어준 동화책이 생각났다. 헨젤과 그레텔도 마녀가 잡아먹으려고 걔네들을 살찌우려고 했었는데. 

근데, 내가 잃을게 있나?

그렇다, 바이는 이제 잃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기 때문에 케이틀린이 바이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라도, 바이에게는 전혀 손해는 아니었다. 바이는 굉장히 찝찝하긴 했지만 케이틀린의 의중을 굳이 파헤치고 싶지는 않았다. 







백합조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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