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or HATE?

W. 몸




단독 보도 드립니다. 알마 전 음성 파일이 공개되며 파문을 일으켰던 정당당 이지훈 의원의 음성 전문과 관련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약 2분 간의 대화 속에는 이의원 외 공정당의 김민규 의원이 등장하고 있으며 톱배우 K모씨와의 스캔들이 거론되고 있어 사실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입수된 관련 문건에 의하면 김민규 의원은 톱배우 K모씨와 6개월 이상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있습니까?”

 

지훈이 닫힌 문 앞에서 귀를 귀울였다. 문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습니... 있어요. 왜요.”

 

민규가 헝클어진 머리에 반 즈음 풀린 셔츠와 넥타이를 하고 문을 열었다.

 

“여기서 잤어요?”

“미리 체험 좀 해봤죠.”

“이사 오기 전에 수면감이 어떤가 해서. 나쁘지 않네요, 여기 소파.”

“뉴스 봤습니까?”

“벌써 나왔어요? 들어와요. 그래서 뭐래요?”

 

민규가 흐물흐물하게 걸어가 소파에 풀썩 눕듯이 앉았다. 테이블 위로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파일은 왜 공개했어요?”

“진실 좋아하시 않았나?”

“스캔들은 어쩌시려고.”

“그것도. 진실 좋아하시잖아요.”

“몇 년 전이었으면 간통죄 해당입니다. 알아요?”

 

간통죄? 민규가 웃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걱정마요.”

“지금 그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제 걱정 해주는 겁니까?”

“말 장난해요 지금?”

 

민규가 흐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는 창가로 다가가 휙 커텐을 걷었다. 아침 볕이 창가로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 채광 좋네요.

 

“이게 그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마음에 듭니까?”

“안 듭니다. 받을 생각도 없었고요.”

“할 수 없죠. 이미 선물 상자 푸셨는데.”

“뭔 생각입니까?”

“글쎄요, 내가 뭔 생각일까. 일단 내가 일정이 좀 있어서, 먼저 나갑니다.”

 

민규가 의원실에 멀뚱히 선 지훈을 지나쳐 제 자켓을 쥔 채 걸어나갔다. 어, 최보. 어서 와. 복도에서 울리는 민규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가고. 지훈이 홀로 남은 민규의 의원실을 휘 둘러보았다.

어젯밤 웅크리며 밤을 보냈을 검은색 소파가 이리저리 민규의 몸짓으로 움패여있었다.

 


 

“이의원. 뭐 어찌 됐든 잘 됐습니다. 오해가 금방 풀려서.”

 

크흠. 헛기침을 뱉은 의원 셋이 지훈의 눈을 피하며 차를 들었다.

 

“오해를 하시긴 했습니까?”

“왜 또 말꼬리를 잡고 그러세요.”

“오해죠, 그럼. 언론에서 이의원을 민우마을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하면서, 간접 살해자라고 몰아갈 때 우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대 성명 인터뷰를 내려고 했다구요.”

“맞습니다. 정당당에서 방송국 국장을 뒤흔든건지 씨알도 안 먹히더라 이 말입니다.”

“방송국 아니면 성명은 못 냅니까?”

“그 매스미디어라는 게...”

“됐습니다. 다들 휴가신데 저 때문에 출근까지 하시고, 제가 면목이 없네요. 얼른 집에들 돌아가세요. 괜히 휴일수당 올리지 마시고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성을 내는 의원들의 앞에 지훈이 활짝 의원실 문을 열었다.안 나갑니까 의원님들.

 

“큼. 어쨌든 일이 잘 해결됐으니까 우리는 마음 놓습니다. 김의원도 잘 처리됐고.”

“김의원... 뭐요?”

 

의원들이 문 틈 사이에 몸을 두고 흘리는 민규의 이름에 지훈이 되물었다.

 

“본인도 찔리는 게 있는지, 탈당하지 않았습니까?”


“탈당이요?”

“네, 지금 기자회견 하고 있잖아요.”

 

휴일이라 탈당은 내일부터 처리되겠네. 근데 왜 휴일에 기자회견을 하고 그래. 신경 꺼요. 출근해도 공정당 의원들이 출근하지, 우리가 하나요? 어서 집에들 갑시다. 해장국 먹고 갈 사람 있어요?

 

지훈이 제 의원실 문의 문고리를 잡고 의원들의 어수선함과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두고 봤다. 더 이상 소란과 소음이 들리지 않는 의원회관과 희색빛 복도는 마치 곧 무엇인가를 지훈의 앞에 내려놓을 묵직한 컨베이어 벨트처럼 느껴졌다.

 


 

“의원님, 갑작스레 탈당을 결정하신 이유가 뭡니까?”

“공정당과 사전에 상의가 되었습니까?”

“보수주의 정책을 포기한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연신 질문들이 쏟아져나왔다. 민규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들어 말을 시작했다.

 

“저는 가치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공정당의 방향을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이지, 맹목적인 방어를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수라면, 보수를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 진보 성향으로 돌아선 것인가요?”

“보수, 진보. 저는 그 어느 진영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저는 그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을 뿐입니다.”

“혈연관계인 공정당 김대표님과 어떤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그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네요. 대한민국 사회는 혈연관계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죠. 혈연을 떠나서 방향이 다르다면 돌아서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분명한 제 방향을 봤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공정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활동합니다.”

 

다른 정당의 러브콜은 없었습니까? 유력하게 고려하고 계신 곳은 없습니까? 공정당의 공식 의견은 언제 들을 수 있습니까? 민규가 단상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수 십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빗줄기처럼 몰아치는 플래시 속을 걸어나가는 민규를 본 지훈이 회장 밖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의원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남은 임기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민규가 의사당을 벗어나는 길목에서도 기자들 무리는 끊이지 않았다. 보좌관이 온 힘을 다해 막아도 역부족이었다. 웃음으로 일관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민규와 기자들이 어떠한 소란에 눈을 돌리고 걸음을 멈췄다.

 

민우마을 재개발을 전면 무효하라, 무효하라!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의사당 입구를 에워싸고, 그 앞으로 절벽을 맞은 듯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앞으로 날계란과 밀가루가 날아들었다. 흩뿌려지는 가루들을 피해 얼굴을 돌린 그의 등과 작은 몸짓, 지훈이 기침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몇 년 째 재개발 계획 무효화가 반복되는 것은 야당과 여당이 짜고 치는 것 아닙니까? 녹음 파일이고 뭐고 필요 없고! 당장 재개발을 무효화하세요!”


선두에 선 남자가 피켓을 높이 쳐올리며 선동하자, 남은 무리들이 남자의 뒷말을 후창하며 들끓었다. 이미 하얀 가루에 온몸이 뒤덮인 지훈이 물러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제자리에만 서 있었다.

 

“이지훈 의원! 말 좀 해보세요!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할 땐 언제고, 왜 말이 없습니까?”

“말해 뭐합니까! 여당이랑 한통속일텐데!”


무리 속에서 술렁이는 대화가 오가고, 초로의 남자가 계란 한 판을 들어 그대로 지훈을 향해 집어던졌다.

파바박, 수 십개의 날계란들이 터짐과 동시에 그 소란을 방관하는 플래시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플래시 세례 후 적막해진 공기 속에 눈을 뜬 지훈이 저의 앞에 있는 민규를 느끼고 뒷걸음질쳤다.

 

“말은 바로 합시다. 누가 누굴 구원해요.”

 

민규가 제 뒤편에 서있는 지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좌중을 향해 말했다.

 

“아무리 민생을 살핀다지만, 누구의 지옥을 누가 구원해 줍니까. 국회의원이 신이에요? 자신들의 상황을 돌봐주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합니까?”

“야당은 닥치세요! 본인들 배때지 불리는 데에만 온 혈안이 되어있는 주제에, 뭘 논합니까?”

“민우마을 재개발, 무효화 됩니다. 걱정마세요,”

“오늘이 그 지랄 같은 크리스마스라 아직 공식 성명이 없는 겁니다. 내일이면 발표될 거니까 걱정마시고 돌아들 가세요.”

“정, 정말입니까?”

“저기 뒤에 기자분들 안 보이십니까? 기자 앞에 거짓말하는 국회의원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민규가 제 자켓을 벗어들었다. 하얗게 질린 지훈과 눈을 마주친 민규가 지훈에게 자켓을 건넨 후 걸음을 옮겼다.



 

“아오, 난리네. 난리.”

 

의원실 문을 닫고 돌아선 민규가 툭툭 제 셔츠를 털면서 말했다. 아차차. 아직 제 자켓을 두르고 있는 지훈을 보고 민규가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자켓을 벗겨들었다. 온통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 쓴 지훈이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괜찮죠?”

“아니요.”

 

민규가 말없이 지훈의 머리칼을 털어냈다. 하나 둘 가볍게 털어내던 손이 지훈의 뺨을 쿡, 눌렀다.

 

“이거 어째요. 반죽 됐네 완전.”

 

지훈이 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 작은 순간에도 형체 없는 가루들이 너풀 흩어져내렸다.

 

“지겹다.”

 

짙은 입술 사이로 지훈이 가까스로 내뱉었다.

 

“이제 지겨워.”

“천하의 이의원님이 지겨울 때도 다 있네.”

“지겨워. 너 말이야. 저 밖에 사람들도. 이 구질구질한 정계고 기자고...”

“민우마을은 뭐야?”

“원래 딜은 딜로 받는 법이거든.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먼저 딜을 시작한 사람이 불리한 법이야.”

“민우마을이랑 딜을 했다는 거야?”

“그 노친네도 스캔들 어마어마하거든. 그 노친네 저녁 밥상에 쌀알이 몇 개인지까지 안다고, 내가. 근데 그 노친네는 나를 너무 몰라. 몰라도 너무 모르지.”

 

지훈이 가까스로 마주친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떨궜다. 눈꼬리가, 동근 코 끝이, 뺨에 켜켜히 쌓인 가루들이 지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민규의 앞으로 불어닥쳤다.

민규가 제 엄지손가락을 들어 굳게 감긴 지훈의 눈꺼풀을 쓸어주려 했는데 지훈의 얼굴에 딱 맞춰 걸쳐진 안경 앞에 손을 멈췄다. 스윽, 손 끝이 지훈의 눈에 닿은 것처럼 허공을 쓸어내리자 천천히 뜨인 지훈의 눈이 또렷하게 민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뚝, 눈물을 흘려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감격스러웠나보네.”

“어이가 없어, 아주 많이.”

“좀 선물이 많긴 했지? 아침부터 계속. 서프라이즈 마냥.”

“내가 몇 년씩... 저 사람들이 매일 같이 고통스럽게 원하던 일이 고작 간단한 딜 하나로 해결되는 일이었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

“이지훈씨.”

 

민규가 젖은 지훈의 얼굴을 조금은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세상을 다 등에 업으려고 하지마. 이지훈씨가 신이야? 이지훈씨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는 그냥 그 사람들이 소원하는 일부를 거들어주는 것 뿐이야. 왜 이지훈씨가 그 사람들 인생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굴어? 인권주운동가들은 다 그런가? 지 생 깎아서 남들 생을 보살피고 그런 거야?”

“모르면 닥치고 있어.”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나 이래뵈도 머리 좋아요. 연수원 수석 졸업이라고 내가.”

“지랄하지 말고.”

“이지훈시 그 죄의식 좀, 책임감 좀 내려놔요. 보기 좀 그렇네. 과정이 어쨌건, 결과는 같잖아.”

“꺼져.”

“여기 내 의원실인데?”

 

그 말에 지훈의 눈이 커졌다.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더 남았는데. 줘도 되나?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흔들리는 지훈의 눈과 시선을 맞춘 민규가 지훈에게 다가갔다. 살며시 고개를 틀며 지훈의 입술 가까이로 다가간 민규가 지훈의 입술 앞에 멈춰서 이야기했다.


“저번에 스캔들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하죠.”

“...”

“내가 사실, 여자 앞에선 안 서.”






*

쓰다가 괜히 찔려서 덧붙입니다..  

이 글에 모티브가 된 인물도 없고 오로지 제 망상에만 의지해서 쓰는 글입니다. 정치적 성향은 요만큼도 안 들어갔구요.. 정치인을 옹호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구.. 그 점 유념하면서.. 봐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ㅎㅅㅎ.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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