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gmalion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나 문장의 특징으로 글쓴이의 성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말하면 다소 건방지다는 중얼거림이 스쳐가는가? 아니면 꽤나 그럴듯한 사실로 본인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가.

예전에 읽었던, 구병모의 피그말리온 아이들을 최근에 다시 읽으며 작가의 가치관에 또 한 번 절실히 공감하고야 말았다.

꼰대를 혐오하는 인으로서, 구병모의 작품들은 타는 듯이 목이 마를 때 마시는 적정하게 시원한 한잔의 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낙인도와 로젠탈스쿨로 학생들이 학대 받는 세계를 구분 지었지만, 그저 잘라 놓은 현실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나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우주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아이는 낳음을 당한 순간부터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여기저기 난도질을 당한다. 가정을 포함한 사회의 어른들로부터 그들의 가치관대로 키워지면서 말이다. 아이를 하나의 소중한 유기체로 대하는 어른은 손에 꼽는다. 나 또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매분 매순간 노력하지만, 뿌리깊은 구닥다리 관념은 뇌 속을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개미처럼 좀체 머릿속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활달하고 가끔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았으며 그래서 대체로 웃겼던 친구가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며칠 뒤였던 성적표를 배부하던 날들 중의 하나였던 그 날, 화장실에서 터질 정도로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오열을 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저번보다 성적이 너무 떨어졌다고, 아빠는 반드시 90점을 넘기라 하였지만 정작 80몇점을 맞아버렸다고 이제 아빠한테 맞아 죽을 거라 소리쳤었다. 말의 세기와 상반되는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이 가슴 속 한편에서 딱딱하게 굳어 파편이 갈라지고 자잘한 유리조각으로 변하였다.

갖고 싶은 옷이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마자 가죽벨트로 등을 휘둘려 맞은 다른 친구는 연고도 바르지 못한 채 생 상처를 매달고 등교를 했고, 집에 들어서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던 부반장은 매일같이 교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서 별명이 모닝콜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의 모습이 아수라 백작이 울고 지나갈 만큼 상반되어 있었다. 날라오는 책들을 한 권씩 맞으며 공부는 안하고 책이나 본다고 비아냥을 받은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 책들은 방학 때 읽어야 할 권장도서들이었고, 책의 딱딱한 모서리에 맞은 손목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욱신댔던 것은 그들의 훈계에 걸림돌만 될 뿐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교실에서는 발표도 떠드는 것도 잘했지만 집에서는 더욱 암흑 속의 먼지처럼 움츠리면서 존재했다.


로젠탈스쿨의 교장 비서 은휘도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세상에서는 장난기가 많고 공을 뻥뻥 차는걸 좋아하는 아이일수도 있다. 딱 세뇌당한 만큼 목공에 대한 철학적 자부심을 카메라 앞에서 줄줄 읊던 무경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은 대패질이 아닌 미세한 바이올린 선일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치관은 아무도 단정지을 수 없는, 스스로 즐겁게 깨우쳐야 하는 그들만의 것이다.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2012년에 등장했다. 

9년이 지난 지금, 새장 속의 갈라테이아들은 탈출하여 날개를 펼쳤을까? 

부디 보이지 않는 결말 안에서라도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한다. 

현실 속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깊고 좁은 억압과 함께 성장하고 있으므로.



얼렁뚱땅 김제로의 진지하고 코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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