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아 있던 유진은 책상 위에 놓인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낡고 헤진 책, 그가 떠나면서 남기고 간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낡아버린 책, 끝이란 없을 줄 알았다. 여전히 그는 서하와 자신이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전소설일 뿐이었는데 숨막히는 전개가 펼쳐지거나 지독한 사랑이야기거나 삶의 진리가 담긴 소설은 아니었다. 단지 노인 한명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내용일 뿐, 하지만 읽고 또 읽고,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다음날 다시 표지를 펼쳐 읽기를 반복했다. 책은 곧 윤서하였다.

곁에 두고 떠나보내지 않고 싶었던 존재, 서하는 떠나버렸는데 책은 여전히 유진의 책상에 놓인 채 그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버려야 할까, 아니면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걸까, 그날은 비가 내렸다. 찾아가지 않으려 했지만 그를 못보는 괴로움이 너무 커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신 채 FLOR로 찾아갔다. 유진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휘청이며 FLOR의 문앞에 서서 일을 하고 있던 서하를 쳐다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너는?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인생에서 힘들거나 괴로운 구간을 마주쳤을 때, 곁에 항상 서하가 있었다. 뭐든 이겨낼 수 있었다. 윤서하만 있다면, 그가 자신을 사랑하든 안하든 그딴건 상관없었다. 늘 곁에 있었으니까, 언제든 만날 수 있었고 손을 잡을 수 있었고 함께 걸을 수 있었으니까, 하얗고 아름 다운 등에 함박꽃이 피어났을 때 느꼈던 희열, 드디어 사랑을 얻어냈다는 성취감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던 순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젖은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놀란 두 눈동자가 유진을 쳐다보았다. 천천히 서하에게 다가가는 유진, 서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위협도 압박도 없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붉게 충열된 유진의 두 눈동자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다쳐서 찢긴 상처를 새긴 두 눈동자, 슬픔이 차고 넘쳐 흐르는 눈동자,

“윤서하.”

“유진아.”

“보고 싶었어.”

유진은 서하를 품안 가득 끌어 안았다. 비를 가득 머금은 그에게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슬픔도, 결국 유진은 끅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허공에 맴돈 두 팔이 갈길을 찾지 못했다. 서글픈 유진의 울음소리에 잠시 뒤 서하는 그의 등을 감싸 안아주었다.

제탓이었다.

그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 서하를 끌어안고 울던 유진이 간신히 진정됐을 때, 서하는 그를 의자에 앉힌 뒤 따뜻한 차 한잔을 그에게 건넸다. 노란 꽃이 따뜻한 열기에 서서히 피어나고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유진, 엉망이 된 얼굴로 멍하니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좀 마셔, 술이 깰거야.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비를 맞고 온거야?”

“그냥 맞고 싶었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진이 말했다.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보고 싶었어, 서하야.”

미안하단 말로 유진의 결핍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고 그에게 이별을 강요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유진은 강제로 이별 당한 것이었고 서하는 유진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었다.

돌아간다 해도 베놈의 꽃을 피운 피스틸을 환영할 곳은 없다. 그것이 유진이라 해도,

“그냥 다시 나한테 오면 안될까? 내가 널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어, 너도 알잖아.”

“그건 불가능해.”

“왜!! 왜 불가능한데? 안티스테먼인데 나는 너한테 새겨진 꽃따위, 내가 치유할 수 있어.”

“넌 못해, 그리고 죽을거야.”

“널 되찾을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

울음 섞인 목소리가 서하를 아프게 했다.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유진이 얼마나 절박한지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말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를 죽게 내버려 둬서도 안되고 애초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실수였다면...”

“실수 아니야.”

크게 내쉬는 한숨에 술냄새가 비냄새와 섞여 FLOR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늘 널 기다렸어... 널 기다리는 것이 마치 내 의무인것처럼, 네가 날 기다리진 않았으니까, 언제나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널 기다리고 널 지키고 널 사랑하는 일, 내 의무였어, 이제 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걸까.”

서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순 없으니까, 그가 자신을 위해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유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운명이라는 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면 더 쉬웠을까,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해변이, 발바닥에 닿던 따뜻한 모래의 감촉이,

“소중한 무언가를 잊은 기분이라고 한 말 기억해? 만약 내가 한 선택이 그것 때문이라면 날 봐줄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유진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자신과는 달리 서하의 얼굴은 괴로움이나 슬픔따위 서려있지 않았다. 이별을 정당화하려는 듯 이기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얼음처럼 차가워도 윤서하는 아름다웠다.

“그 사람이야,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 소중한 무언가가,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아마 10살 이전이었을거야,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날이, 햇살은 눈부셨고 바다는 아름다웠어, 따뜻한 모래 위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처음 봤거든.”

“기억이... 돌아온거야?”

“전부 다는 아니야, 내가 너한테 잔인하다는 거 알아, 이기적이라는 것도 알고, 하지만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입술을 깨문 서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서하를 보며 태오는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낯선 말을 쏟아낼때마다 어디까지 아팠을까, 유진은 거칠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허리에 손을 댔다가 머리를 쓸어넘겼다가 왔다갔다 했다. 화가 났지만 서하에게 모두 쏟아부을 수 없었다.

“8년이야! 너와 나, 그 인간하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겠지만 8년 동안 널 사랑하고 지킨 건 나였어! 윤서하, 어디까지 잔인해질 생각이야?”

유진이 성큼 걸어와 서하의 양팔을 꽉 움켜잡았다. 분노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거친 숨에 술냄새가 났다.

“미안해, 그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거 알아.”

“날 사랑하긴 한거야?”

“사랑해, 지금도.”

“그럼 나한테 다시 돌아와!”

이렇게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항상 차분한 목소리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럴 수 없어.”

“서하야, 제발... 너 없으면 나 죽어.”

“미안해.”

“사랑한다며, 서하야... 제발...”

울먹이는 유진이 서하를 품안 가득 끌어 안았다. 다신 놓아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그의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점점 숨이 막혀왔지만 서하는 참아냈다. 그 어떤 말로도 행동으로도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한다고 말해 놓고 그의 함박꽃을 등에 피워놓고 태오에게 가버린 자신을 유진이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몸이 바스라진다해도 서하는 그를 뿌리칠 수 없었다. 그저 유진이 하는대로 놔둘 수 밖에,

“정말, 미안해...”

겨우 낸 목소리로 유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밖에는 여전히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내리는지 유진의 울음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

 

욕실 안에선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서하는 문 옆 선반 위에 유진이 갈아 입을 옷을 올려놓고 부엌으로 가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거센 빗줄기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FLOR에서 그냥 유진을 보내려 했지만, 술에 취한데다 감정이 격해진 그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그의 차를 운전하고 그의 집으로 와버렸다. 그가 씻고 나오면 따뜻한 차와 약을 건네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한참 동안 물소리가 들렸지만 유진은 나오지 않는다.

소파 앞 테이블에 잔을 올려놓고 서하는 소파에 앉아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혹은 기다리지 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문득 그의 집을 둘러보았다. 결벽증까진 아니었지만 늘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였는데, 여기저기 물건이 흐트러져 있었고 빨래 바구니 안은 가득 차 있었다. 테이블 위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서 일어나 그는 침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제멋대로인 이불과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옷가지, 전혀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거기서 뭐해?”

갑작스레 들린 유진의 낮은 음성에 서하는 방문을 닫고 돌아섰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곤 유진이 서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낯설다 그가,

“테이블에 따뜻한 차 뒀으니까 식기 전에 마셔, 약도 먹고 나 가볼게.”

“가지마.”

서둘러 나가려는 서하의 손목을 잡은 유진, 서하는 힘주어 잡힌 손목을 빼냈다.

“난 여기 있으면 안돼.”

“오늘만, 제발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나하고 있어줘. 부탁이야.”

간절한 유진의 말에 서하는 멈칫했다. 하루는 이틀이 될 것이고 사흘이 나흘이 될 것이다.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걸까,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더 이상 유진에게 상처줘서는 안된다.

“갈게.”

“제발...”

부탁의 말이나 애원같은거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언제나 겸손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건 윤서하, 그였다. 사랑의 아픔은 한 남자를 망가지게 만들었다. 돌이킬 수 없다, 유진이 등 뒤에서 서하를 끌어 안는다. 너무나 따스한 그의 품에 서하는 눈을 감았고 하얀 뺨 위로 투명한 눈물이 타고 내려온다.

미안해, 정말이야

짙은 어둠이 깔린 밤, 고요한 세상에 들리는 건 거센 빗줄기 소리뿐이었다. 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서하는 잠들지 못했다. 그의 팔을 베고 누운 유진이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잠든 유진의 얼굴을 응시하는 서하, 처음으로 그가 자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아니면 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 때문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자는 유진이 신경 쓰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가 깰 것만 같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팔을 빼보려다 유진이 허리를 끌어당겨 안는 바람에 더욱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온전히 맡겼다. 그가 잠들고 나면 가려했지만 그냥 포기하는게 나을 듯 했다. 사랑한다. 유진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방식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를 사랑한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자고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도, 마음 약해지지 말고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밤이라고 말했지만 술에 취해 있었으니 기억을 할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새벽이 올때까지 서하는 일어나서 나가지도 잠들지도 못했다. 아침이 온 뒤에야 유진이 뒤척이자 서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가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유진은 눈을 떴다. 눈물 한줄기가 그의 뺨을 타고 베개를 적신다.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는 유진, 모든게 거짓이길 바랬다.

그러나 그건 헛된 바램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서하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씻었다.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몸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졸리진 않았다. 나른함에 잠시 몸을 맡기고 싶어졌다. 고요한 욕실 안에 물소리만 가득했다. 한참 뒤에야 서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오래 걸렸네?”

“언제 왔어?”

“와서 커피 한잔 내렸으니까 딱 그 정도? 네 것도 있어.”

“안 그래도 마시고 싶었는데 고마워.”

머그잔을 들고 있는 태오의 옆으로 다가가 커피 냄새를 맡는 서하, 고소한 카페인 향기에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나란히 싱크대에 기대 서서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문득 출근하지 않는 태오가 아침 일찍부터 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3개월 동안 백수잖아.”

“그래서?”

“눈은 떴는데 할 일은 없고 너는 보고 싶고 그래서 왔지.”

“뭐 할거야?”

“아무것도.”

“진짜?”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태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냥 하루 종일 너랑 있고 싶다.”

“난 바쁜 몸이야.”

“오늘은 나랑 있자.”

“쉬는날인거 알고 그러는거지?”

“쉬는 날이야?”

서로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소리 내 웃었다. 함께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두 사람, 태오의 어깨에 등을 기대고 있던 서하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밤을 새고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태오는 그저 잠든 서하의 모습이 귀여워 미소 지었다. 깊게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천천히 움직여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게 했다. 그리곤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곤히 잠든 서하가 궁금할 법도 한데 태오는 그저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책을 다 읽는 동안에도 서하는 일어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그는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서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가 스르륵 떨어졌다.

슬슬 허벅지가 저리기 시작하자 태오는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최대한 서하가 깨지 않게 하려 했지만 뒤척거리던 서하가 눈을 떴는지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태오를 쳐다보았다.

“나 설마 잔거야?”

“어? 응.”

“얼마나?”

“세시간정도?”

“그럼 너 세시간동안 앉아있었어?”

“음... 아마도?”

“깨우지 그랬어.”

미안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태오는 부스스해진 서하의 머리를 슬쩍 당겨 다시 무릎 위에 눕게 했다. 자연스레 따라가는 서하,

“졸리면 잘 수도 있지, 좀 더 누워 있어도 돼.”

“피 안통할텐데.”

“이미 감각이 없어, 괜찮아.”

“그럼 더 일어나야...”

다시 일어나려는 서하를 눕히는 태오,

“괜찮아. 좀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

등을 토닥이는 태오, 그의 손길에 안정감을 느낀 서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든건 아니었다. 그저 그의 다정한 손길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태오야.”

“응.”

“나 원망한 적 없었어?”

“내가 널 왜.”

“사라져버렸으니까.”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널 원망할 수 없었어. 살아있다는걸 알았을 땐, 내가 베놈이라는 사실 때문에 힘들었어, 널 다시 되찾는다해도 나 때문에 죽을 수 있으니까, 만약에 네가 죽으면 같이 죽으려고 했어.”

“바보 맞네.”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너만 바라보게.”

“각인이야?”

“똑같지 뭐.”

“나이만 들었지, 아직도 순진하네.”

“넌 여전히 나보다 한수 위고.”

태오의 말에 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인해보이는 눈빛에서 서글픔이 느껴졌다. 천천히 일어나 서하는 태오를 내려다보며 그 앞에 섰다. 그를 올려다 보는 태오, 허벅지 위로 서하가 올라가 앉으며 어깨에 손을 올리자 태오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들어 서하의 까만 눈동자를 응시했다.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널 떠나지 않았을거야, 항상 널 사랑했으니까.”

“윤서하.”

“그날, 해변에서 널 처음봤을 때, 꼭 친구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어, 왜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그랬으니까, 그리고, 지금 네가 날 원하는 것도 알아. 등 뒤가 가려워서 미칠 것 같거든.”

이마를 맞댄 두 사람의 숨결이 뜨겁게 뒤엉켰다.

“내가 아니라 네가 날 원하는 것 같은데.”

“누가 더 원하는게 중요해?”

“아니.”

뜨거운 숨결이 곧 하나가 되어 서로의 숨결 속으로 사라졌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키스를 이어가고 서로의 몸을 강하게 끌어당겨 안으며 밀착시켰다. 그럴 생각도 그럴 의도도 아니였지만 등뒤의 나무가 간지럽히기 시작하더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우성 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가지를 뻗여 서하의 목을 조르려는 듯 행동하지 않으면 가만 있지않겠다는 듯, 주인인 서하를 압박했다. 숨이 차기 시작했고 숨결은 뜨거워졌다. 모든걸 집어 삼킬 듯, 나무는 주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원하고 또 원한다는 듯, 당장 내게 꽃을 피우라는 듯 주인을 나무랐다. 태오의 손이 서하의 몸을 가리고 있던 얇은 티를 위로 올려 벗겨내자 나무는 숨을 쉬겠다는 듯 잠시 서하를 놓아주었지만 곧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뺨은 달아올랐고 붉은 입술은 더욱 색이 짙어졌다. 의식이 있었으나 까만 눈동자의 초점은 이미 흐릿했다.

태오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서하의 머리가 닿아있던 허벅지의 꽃들이 이미 흔들거리고 있었다. 서하가 머리를 떼고 일어날 때에는 이미 허벅지 사이가 불타오르는 듯 맹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당장 꽃을 번식시키라고 네가 아닌 타인의 몸에 꽃을 피우라고 주인을 닦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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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때문에 연재일을 맞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는대로 바로 가져올테니 기다려 주세요 ㅠㅠ


피스틸 버스 오메가 버스 일반BL 글러 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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