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긴장감에 이도는 먼지를 뒤집어쓴 지금. 헝클어진 머리와 꾀죄죄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향한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얼마나 힘차게 뛴 걸까? 현관문을 열고 D와 난호의 사이에 선 이도는 거친 숨을 내쉰다. 그런 이도를 바라보는 두 사람. 서로를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부딪힐 것 같던 D와 난호의 표정이 변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이도에게 다가가자 이도가 난호의 손을 잡고 D에게서 살짝 물러난다. D의 표정이 급격하게 찌그러진다.

 

 

“뭐야.”

 

“누가 할 소리예요.”

 

“너 그렇게 쉬운...”

 

“입조심 해요.”

 

“그래, 방금 건 내가 사과할게.”


“네, 받아들일게요. 잘 가요.”


 “잠깐만... 난 아직...”

 

“아직 뭐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도와 D를 바라보고 있는 난호.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무리 예전에 친했어도 남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깊은 분위기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도는 자신이 잡고 있는 난호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진 것을 느낀다. 이도는 앞에서 말하고 있는 D의 말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 난호를 바라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도가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난호. 이도는 현관문을 연다. 난호가 정신을 차린다. 이도는 억지로 난호를 집안으로 집어넣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이도의 행동에 문을 잡고 버티고 있는 난호. 하지만 이도의 표정을 보고 현관문에서 손을 뗀다.

 

 

강하게 닫힌 문소리에 귀가 조금 얼얼한 난호. 철제문을 통과해 희미하게 들리는 뭉툭한 목소리들. 난호는 현관문에 기대앉은 채 두 사람의 대화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자꾸만 이도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귀를 손으로 막는다. 아직은 이도의 치부를 듣고 싶진 않다.

 

 

“쟤한테 뭐 숨기고 있나 봐?”

 

“네. 숨기고 있어요.”

 

“하... 너 쟤 때문에 나한테 그냥 그렇게 말하고 잠수 한 거지?”

 

“설마요. 저 지금 연애 같은 거 안 해요. 그냥 형이 눈치 없어서 이렇게 달라붙을 줄 알고 잠수 한 거죠. 근데 웃겨요. 사실 잠수도 아닌데.”

 

“너...”

 

“제가 말을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떻게 네가 할 말만 하고...!”

 

“기다렸잖아요. 한참 동안. 바쁘다고 X톡방 안 들여다본 자기 잘못이지, 부재중이 몇십통 찍혀 있는데 전화 안 해본 자기가 잘못이지.”

 

“...”

 

“나는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 갔는데... 형은 언제나 그대로였나 봐요. 바쁘니까 시간 개념이 없는 건가? 마지막으로 저랑 만났을 때랑 지금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잖아. 난...”

 

“그래서 이해해줬는데? 근데 사람이 변하질 않더라고요.”

 

“...”

 

“참 바보 같아요. 자기 잘못인 것도 알고, 내 마음이 안 변할 거 알면서도 여기까지 찾아오는 게.”

 

“...”

 

“슬픈 척 해봤자...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도 안 통해요.”

 

“...”

 

“그렇게 지키라는 선도 넘어가면서 사랑해주고, 매일같이 웃어줬고, 힘들 때면 항상 불러내서 위로해주고... 근데 결국 이렇게 된 거...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정말 날 사랑했을까?”

 

“당연하지! 아직도... 알잖아. 아직도 사랑하니까 이렇게 널 안 놓으려고...”

 

“제가 참 이기적인 게 뭐냐면 평소보다 힘들 때, 너무너무 힘들 때 형이 저한테 못 해준 거 밖에 생각이 안 나요.”

 

“난... 아니야. 난 계속 생각나. 같이 잠들었을 때도, 처음 손잡았던 날도, 네가 예쁘게 웃었던 날도...”

 

“...”

 

“이도야,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러면...!”

 

“그래봤자 인 거 알잖아요. 난 이미 헤어지자고 했는데, 내 마음이 전이랑 같을까요? 계속 형의 안 좋은 점만 볼 거 같아요. 그럼 형은 거기에 억지로 맞추고, 난 억지로 맞추는 형이 싫고... 결국 다시 헤어지자고 하고.”

 

“너무 안 좋게만 생각 하지 마... 좋게 흘러갈 수도 있잖아.”

 

“우린 그냥 이 정도에 헤어지는 게 무난한 건데. 우린 그냥 서로 모르는 척하고 살아갈 수 있잖아요. 형은 형 좋아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고, 나는 나대로 사랑하지 않거나, 하거나 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고.”

 

“... 아니야.”

 

“?”

 

“언젠가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정말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 넌 정말 이렇게 헤어지면 좋을 거 같아? 네 말대로면 이렇게 무난하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우리가 막 치고받고 싸운 다음에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다시 싸우다 결국 헤어지는 그런 걸 생각해요?”

 

“그렇게 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지금 날 붙잡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같아.”

 

“맞아.”

 

“너무 쉽게 인정하네요.”

 

“널 잘 아니까.”

 

“...”

 

“사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멀리 가진 않았잖아. 그렇게 많이 어긋나진 않았어. 정말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이도야... 사실 난 지금 네가 어떤 생각을 하던 상관없어. 지금 널 붙잡고 싶은 게 다야. 정말 지금은 헤어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난 아직 널 보면서 가슴이 뛰는 걸...”

 

“... 싫어요.”

 

“이도야...”

 

“전 우리가 떨어진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게 싫어요. 형은 안 그랬을지 몰라도 전 그랬으니까...”

 

“...”

 

“전 많이 불안정하고 약해요. 정상의 범주에 들긴 해도 마음이 항상 무겁고 피곤해요. 차가워요. 그래서 싫어요.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게... 형은 잘 알잖아요. 그런 비참함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혼자라서 외롭게 지내는 걸 더 좋아하는 날.”

 

“이젠 정말 다를 거야...”

 

“아니에요. 전 정말 확신 할 수 있어요. 형은 언제나 똑같을 거예요. 마치 기계 같아요. 전원을 끄면 세상이 멈췄다 전원을 키면 형만의 세상이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좋아하긴 했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전 이기적이라서 항상 그런 걸 이해할 수는 없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같은 말... 계속 반복하게 안 할 거죠?”

 

“싫어. 하게 할 거야.”

 

“...”

 

“...”

 

“...”

 

“... 이도야.”

 

“...”

 

“일부러 그러지 마... 제발...”

 

“좋은 기억만 남겨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잖아요. 나중에 술이라도 마시면서 욕하세요. 저는 이제 들어갈게요.”

 

“잠깐만...”

 

“잡지 마세요... 지금은 정말 잡아주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미안해요 형. 예전에 약속한 것처럼 좋게 끝내지 못해서.”

 

“...”

 

“정말 들어갈게요.”

 

“잠깐만, 정말 진짜 잠깐이야.”

 

“...”

 

“괜찮다고 말하려고... 잘못은 내가 했으니까... 널 바로 붙잡지 못한 것도, 그 전에 너한테 외로움을 느끼게 한 것도, 몇 번 정도 네가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 것도... 그리고 다른 것도 전부 알면서도 너한테 말을 안 했어. 그냥 우린 서로 약속을 안 지켰어... 미안해. 정말 미안.”

 

“... 이래서 미워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니까.”

 

“너도.”

 

“잘 가요.”

 

“... 오늘은 갈게.”

 

“내일은 오지 마세요.”

 

“응.”

 

“아, 참. 쟤한테 숨긴 건... 내가 형은 전 애인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사기범 같은 걸로 거짓말해서 그렇거든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사기꾼? 쟤는 내 얼굴도 몰라?”

 

“뭐, 아직은 덜 유명한가 봐요?”

 

“... 거짓말.”

 

“잘 가요.”


 

현관문이 열린다. 귀를 막고 있는 난호는 등 뒤의 서늘함을 느끼고 귀에서 손을 뗀다. 난호는 고개를 들어 이도를 올려다본다. 난호를 발견한 이도. 난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난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멀어져가는 발소리. 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D가 엘리베이터를 향해서 가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집어넣는다. 조금 안심한 걸까? 왠지 모를 온기가 난호의 주변을 감싼다. 현관문에 기대 눈을 감고 무거운 숨을 뱉는 난호. 하지만 금방 눈을 뜨고 문에서 등을 뗀다. 현관에 자신과 이도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실수를 잘하지 않는데 유독 이도 앞에서만 감정을 잘 드러내는 난호다.

다행히도 이도는 현관 주변에서 사라져 있다. 난호의 이런 행동을 이도는 보지 못한 듯하다. 난호가 고개를 돌린다. 언제 거실로 걸어갔는지, 거실에 앉아 있는 이도. 난호는 이도를 바라본다. 이도는 고개를 돌려 베란다를 바라본다. 그리곤 조금 작게 소리를 지른다. 이도의 목소리에 놀란 난호가 이도에게로 달려간다. 이도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왜...?”

 

“아니, 나 이런 꼴이었구나...”

 

“그야...”

 

“창고 뒤지다 나온 거니까... 나도 알아.”

 

“...”

 

“이런 모습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왜? 문제 있어?”

 

“그야 당연히 있...”

 

“?”

 

“진 않지. 그런 사람한테 격식 차려서 입고 대하진 않아도 되니까.”

 

“응.”

 

 

조금 답답한 이도는 또 다시 한숨을 커다랗게 내쉰다. 난호는 그런 이도를 보며 ‘왜 저러지...’, ‘너무 심한 소리를 해서 후회하는 건가?’, ‘아니면...’,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그래, 추측 같은 건 하지 말자.’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청소기를 가져온다. 청소기를 돌리는 난호. 이도의 주변과 창고 앞에 내놓아져 있는 앨범과 그 주변을 빨아들인다.

이도는 앉은 채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한다. 아마도 D를 생각하는 듯하다. 약간의 복잡함이 이도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머리를 아무리 털어대도 떨어지지 않는 생각들. 어쩌면 이도는 슬퍼할지도 모른다. 기뻐할지도 모른다. 물론, 전혀 다른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가슴속 한 부분이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이다.

앉아 있는 이도를 발로 툭툭 치는 난호. 아마도 비키라는 뜻일 거다. 이도는 고개를 들어 난호를 바라본다. 무표정한 난호의 얼굴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호는 이도의 등에 손을 올려 욕실 쪽으로 밀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야...”

 

“청소.”

 

“내가 할 게 이리 줘. 집주인은 나잖아.”

 

“너, 지금 네 꼴을 알고도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

 

“바닥 봐봐.”

 

“...”

 

“네가 걸어간 자리에는 다 먼지가 떨어져 있잖아. 그러니까 네 몸 좀 어떻게 해 봐.”

 

“...”

 

“빨리 들어가.”

 

“고마워.”

 

“그냥, 뭐... 고맙다고 말을 들을 정도의 행동은 아니잖아.”

 

“그거 말고.”

 

“그럼 뭐가?”

 

“모르는 척 해줘서 고마워.”

 

“뭘?”

 

“아냐.”

 

“?”

 

“진짜 모르는 거면... 한동안은 그냥 모른 채로 있어 줘.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어. 일단은 알겠다고 할게.”

 

“그래.”

 

“근데...”

 

“?”

 

“너도 더럽잖아. 나만큼은 아니라도...”

 

“난 먼지 같은 건 안 떨어지잖아. 그리고 최소한의 면적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고.”

 

“흠.”

 

“?”

 

“너도 씻어야겠는데?”

 

“응. 집 가서 씻으려고.”

 

“굳이 왜?”

 

“...”

 

“그냥 여기서 씻고 가.”

 

“아, 아냐. 괜찮아.”

 

“왜? 너도 찝찝하지 않아?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먼지 끼어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옷도 없고... 남의 집이고...”

 

“옷은 내 거 빌려줄게. 그리고 청소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

 

“그냥 씻고 가. 그리고 그러는 김에 저녁도 먹고 가. 혼자 먹기 외롭거든.”

 

“...”

 

“그럼 그런 걸로 알고 있을게. 만약에 나 나왔는데 없으면 앞으로 절교 한다?”

 

“... 알았어.”

 

“그래.”

 

“...”

 

“...”

 

“...”

 

“또 왜.”

 

“같이 씻을래?”

 

“나간다.”

 

“아, 장난이야! 장난! 아직 갈아입을 옷 안 가져와서 그래! 나 밖에 나가도 돼지?”

 

“... 잠깐만.”

 

 

청소기를 들고 욕실 앞에선 난호. 이도가 욕실에서 한 발 한 발 나설 때마다 난호가 고개를 바닥으로 향한 채 그 뒤를 따라다닌다. 먼지가 떨어지거나 바닥에 더러움의 징조가 보일 때마다 돌아가는 청소기. 장난기가 발동한 이도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을 돌아다닌다. 2분 정도 흘렀을 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난호가 고개를 들어 이도를 노려본다. 이도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눈빛으로 이도를 재촉하는 난호. 그런 난호의 시선이 느껴져 급하게 옷을 꺼내는 이도.

똑같은 모습으로 욕실 앞까지 온 난호와 이도. 이도는 바로 욕실로 들어가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이도를 바라보는 난호. 두 사람의 얼굴 사이 거리가 꽤 가깝다. 눈을 떼지 못하는 난호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도. 난호는 침을 꿀꺽 삼킨다. 이도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뻥긋 거리며 말한다. “미안.”이라고. 난호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를 때 쯤 이도가 머리를 턴다. 먼지를 그대로 먹은 난호. 약한 기침을 내뱉는다. 난호가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이도. 조금 화가 난 난호가 욕실 문을 두드린다.

 

 

“야! 진짜 너...”

 

“난호야.”

 

“뭐!”

 

“고마워.”

 

“미안해 라고 해야지!”

 

“아니, 방금 거 말고 다른 거로 고맙다고.”

 

“...?”

 

“그럼 나 씻고 나올 때까지 청소 파이팅!”

 

“야 진짜 너! 내가 여기 난장판으로 만든다?”

 

“응.”

 

“... 진짜 장이도 짜증 나네.”

 

 

난호는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한숨만 나올 상황인데도 얼굴에 미소가 도는 난호. 청소가 즐거워서는 아닐 것이다. 그래,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확실하다. 샤워부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욕실 문을 통과해 뭉툭하게 울려 퍼진다. 바깥에서부터 허기를 부르는 냄새가 들어온다. 어느새 반이 넘게 차오른 밤. 무난한 저녁이 됐다.



?

올 해도 벌써 5일이 지났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항상 시간이 빠르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그게 더하네요! 

싫지는 않지만 시간이 빠른만큼 제 인생이 조금 가볍다고 생각이 들긴 해요... ㅋㅋㅋ

 

날씨가 더 추워졌습니다! 다들 감기, 코로나 그리고 다른 병들도 조심하세요~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어떤 댓글도 다 좋아요~ dm도 다 좋아요~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oriyouguri 트위터 : 영양만점오리너구리 @oriyouguri3528

영양만점 오리너구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