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Of Pain


W. AMOUR






창 밖은 추적추적 비가 내려, 좋지만은 않은 날씨였다. 휠체어를 탄 소년은 병실 창가로 가 창문을 열어 손을 뻗은 채 내리는 비를 손바닥에 고이게 손을 모았다가, 손을 꾹 쥐니, 제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배시시 웃었다. 남들은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데, 이 소년은 비가 내린다는 게 기분이 좋은 듯 휠체어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의사에 소년은 팔을 거두고는 창문을 닫았다.



"승관아, 또 그러고 있었어?"

"... 갑갑하니까"


"감기 걸리면, 너만 고생하는 거 알잖아"


"선생님, 저 나가고 싶어요"


"승관아"



의사는, 승관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고는, 승관의 침대 위 담요를 집어 들어 승관의 다리 위에 덮어주곤, 휠체어를 뒤에서 밀며 갑갑한 병실을 나오자 신이 난 듯 병원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조금만 있다가 들어가는 거야. 의사는 휠체어를 밀며 병원 주변을 돌아다니다,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승관에 고개를 돌렸을 땐, 홀로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연신 한숨만 푹푹 내쉬는 소년이 있었다.



"환자분 보호자잖아, 이제 들어가자 승관아 춥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되요?"


"승관아, 감기 걸려"


"..."



눈 마주쳤다... 승관은 가기 싫은 듯 의사의 팔을 붙잡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땐,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고 승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던 소년은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원우로 인해 먼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한솔아, 승철이 형은?



"... 모르겠어요, 아직 수술중인 것 같은데" 


"차 사고지?"


"네..."



그나마 경상이라 다행이네, 한솔의 옆에 앉은 원우는 한솔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였다. 어쩌다 다친 거래? 아직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하는 듯, 제 손에 있는 캔커피를 따 한솔의 손에 쥐어준 원우가 한솔에게 고개를 돌렸을 땐, 깊은 한숨을 쉰 한솔이 입을 떼었다. 



"요즘 몸이 안좋다 안좋다 하더니, 횡단보도 걷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졌나봐요"


"그 형, 몸 관리 좀 하라니까"


"아무래도, 저 챙기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었나봐요"



아, 참 너 기억 돌아온 건 있고?. 한솔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두어번 저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화가 나는 듯 차마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괴롭히는 한솔을 일으켜 세운 원우가, 검사라도 받아보자며 안내데스크에서 접수를 하곤 대기 의자에 앉았다.



"... 기억, 어차피 돌아오지도 않을 거 뭣 하러 검사까지 해요"


"네가 그렇게 검사를 거부해서 악화 되는 거야, 약만 받아 먹으면 뭐해"


"..."


"정확한 병명도 모르고, 완치 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축축 처져서는"



'최한솔님-' 원우는, 한솔의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에 한솔을 데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고,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의사에 고개를 들었을 땐, 승철의 연인인 정한이 한솔과 원우를 반기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아, 형 이 병원으로 옮긴 거야?"

"응-, 너무 바빠서 말해준다는 것도 깜빡 하고 있었네..."


"형, 승철이 형 교통사고 당해서 수술 중이에요, 심한 건 아니고"


"승철이가?"


네, 다리 골절에 타박상이 심해서 지금 수술 중이에요. 정한은 원우의 말에 한숨을 푹 쉬고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의사인 애인 두고 병원에 안 오고 뭐하다가 에휴... 아, 그나저나 기억 상실증 때문에 온 거지? 정한이 본래 직업인 의사로 돌아와서는 이전 병원에서 가지고 온 한솔의 진료 파일을 꺼내 종이를 넘겼다.



"사고 난 날짜는 기억 나?"

"... 아뇨, 전혀요"


"큰일이네... 그래도 전엔 사고 난 날짜는 기억 했는데."


"..."


"그럼, 기억 나는 건 뭐야?"



... 쓰러진 후에 눈 떴을 때 병원이였던 거요, 그건 기억이 나요. 정한은 한솔의 말에 흠- 하고 짧게 고민 하는 듯 싶더니, MRI를 찍어봐야겠다며 한솔을 데리고 MRI실로 들어갔고, 원우는 승철에게서 수술이 끝나 병실에 있다는 문자를 받고 정한의 책상 위에 포스트잇을 하나 뜯어 메모를 남기곤 급하게 승철의 병실로 뛰어갔다.



***


"어, 정한아!"


"진짜, 너 의사인 나 두고 병원엔 안 오고 사고나서 다치기나 해?"


"미안해, 나도 쓰러질 줄은 몰랐지"


"하여튼, 진짜 너 때문에 내가 심장 떨려 죽겠다!" 



어떻다고 해?, 1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승철의 병실로 들어온 정한과 한솔이였고, 정한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승철에게 달려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고, 원우는 홀로 멍 하니 서있는 한솔을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와 병실 복도 의자에 앉아 조심스레 물었을까 깊은 한숨마저 떨리던 한솔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고는 겨우내 고개를 들어 입을 떼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더라고요"


"해리성 기억상실증?"


"...네, 외부 충격으로 인한 건 아니고,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질병이래요"


"..."


"이대로 가다간"



... 형도, 승철이 형도 그리고 저 자신까지도 잊을 수가 있대요. 한솔의 말을 들은 원우는 제 머리를 누군가 세게 내리치는 듯한 충격에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짓고는 제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솔의 사고가 있었던 것은 겨우 2년, 그 기간동안 약도 잘 챙겨 먹고, 잊은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고 발악했지만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자, 원우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 이러다, 모두 다 잊으면" 


"..."


"그땐 혼자가 되는 거겠죠"


"한솔아"



기억을 모두 잃으면, 친 형도 기억 못해서 멀리 할텐데, 그때 혼자 남겨지면 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형. 혼자가 될 미래의 자신을 떠올리는 한솔은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포기 하고 싶어도, 기억을 되찾고 싶어하는 한솔을 위해서라면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게, 그게 원우의 일이였다. 기억을 조금씩 잊어가는 한솔을 떠나는 주위 사람들을 탓하면서도 자신은 꼭 한솔 옆에 남아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위로 해준 사람이 원우 자신이였으니까.


 

"형이 도와줄게, 기억 찾을 수 있도록"


"말은 너무 고맙지만요, 형"


"..."


"전 기억을 모두 다 잃은 후에 형을 대하는 제 모습이 두려워요"


"안녕-"



... 한솔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손을 보고 고개를 들었을 땐, 승관이 밝게 웃으며 한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환자복과 링거대를 끌고 다니는 것 보면, 이 병원에 환자구나 하며 홀로 정리를 내렸을 때, 또 다시 걷혀졌던 손이 나타나더니, 이젠 그 손 안에 작은 막대 사탕 하나가 들려 있었다.



"너 이거 먹을래?"


"... 누구신데, 저한테"


"나는 부승관이야!"


"... 아, 네..."


"나랑 친구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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